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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및 신학자료 스크랩 김선도목사 부친 이숙녀전도사 이야기
유정호 추천 0 조회 441 14.01.10 05: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숙녀전도사라는 분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분은  광림교회의 김선도목사, 금란교회의 김홍도목사, 임마누엘교회의 김국도목사, 미국 LA의 사우스베이 연합감리교회의 김건도목사의 어머니입니다. 이 분은 1908년 평북 선천에서 3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13살 때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날 요한복음 14:14절 말씀인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 말씀이 이분의 심령에 화살처럼 꽂혔습니다. 그날밤 13세의 나이로 그분은 자유롭게 예수 믿을 수 있도록 밤새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튿날 어머니로부터 교회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그녀는 살아계셔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결혼 적령기인 18세 때 김상현이라는 분과 결혼했지만, 그는 1년이 지나지 않아 남편은 이숙녀 전도사를 버리고 독립 운동한다는 명분으로 집 안의 돈 될 만 한 것은 다 들고 한마디 말도 없이 만주 땅으로 가버렸습니다. 그녀를 버린 것입니다. 3년 후에 남편이 돌아왔지만, 남편은 오히려 핍박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부터 남편의 회심을 평생의 기도제목으로 삼게 되었고, 태의 열매인 자식들만큼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아침밥은 걸러도 예배는 절대적으로 드리는 자세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믿음의 본을 보이며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불의와 타협치 않고 오직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도록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큰아들 선도가 인민군으로 끌려가서 생사를 알지 못할 때도, 둘째 딸이 뇌염으로 고통당하다가 하늘나라로 먼저 갔을 때도, 그리고 자신이 발진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나약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6.25 때는 하루 먹고 살기조차도 어려운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숙녀전도사님은 바느질로 돈을 벌었지만, 일곱 식구가 끼니도 때울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김홍도목사는 목판을 만들어 목에 걸고 역전에서 실, 바늘, 초콜릿, 도너츠 등을 팔았고, 김국도목사는 논에서 개구리를 잡아오거나 시장에서 생선 대가리를 얻어오면 온 가족이 그것을 함께 삶아 먹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숙녀 전도사는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만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임을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어린 자녀들이 벌어오는 족족 하나님의 재산으로 십일조를 떼었습니다. 교회를 온전히 섬기다보니 늘 토요일 저녁과 주일 아침에는 먹을 것이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토요일 저녁과 주일에 굶고 있는 어린 자식을 보고 있다 못해 주일아침에 당시 개나 돼지먹이로 주던 술찌끼를 얻어다 물에 타서 온 식구가 먹었습니다. 이렇다보니, 어린 김건도 목사가 술에 취해 예배 중에 자빠지고, 건도와 국도는 아동부 예배시간에 입을 열면 술 냄새가 풍기므로 찬송도 못하는 기막힌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자식들을 바라보며 전도사님은 오열하는 아픔 속에서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 자식 여섯을 굶기고 말씀대로 십일조를 바칩니다. 저 자식들의 장래를 책임져 주십시오"


  전도사님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자식들을 살리는 길임을 믿고 인간적인 정을 부인하고 오직 순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눈물로 기도할 때 고향 이웃 아주머니가 쌀 한가마니를 주었고, 이 십일조의 체험이 커다란 믿음의 원동력이 되었고, 차후 4형제로 하여금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전도사님의 인생의 큰 열매중 하나는 남편의 회심이었습니다. 남편은 강직하고 의리가 있고 통이 큰 사람이었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요 핍박자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남편의 회심이 응답받지 못할 기도제목이라면 자식들을 핍박이나 하지 않도록 차라리 남편을 먼 곳으로 보내달라는 기도를 몇 날밤이고 계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전도사님이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지금 아주 잘못된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핍박하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바른 생활하고 있다 여겼지만, 정작 자신과 한 몸 된 남편의 영혼을 긍휼히 여길 줄 모르고 원수 보듯 한 죄, 남편을 미워하고 저주한 죄가 생각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24절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말씀을 붙들고 자신이 가정에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섬기는 썩어지는 밀알이 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남편을 위해 새벽제단에서 부르짖고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남편을 잘 섬기고 순종했는지 남편은 감동을 받고 회심하여 50이 넘은 나이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1965년 남편인 김상혁목사님이 위암으로 소천하자 살길이 막막해진 전도사님은 상도동 중턱에 구멍가게를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숙녀전도사님의 길을 막으셨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분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전도사의 길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남편과 아이들의 신앙을 위해 한 가정 의 썩어지는 밀알의 인생에서 이제 많은 양 무리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증거 하는 작은 목자로서 축복된 인생을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물의 어린 나이에 전도사가 되어 하나님 위해 살겠다는 이 기도제목을 잊지 않으시고 60의 노년의 나이에 철원의 군탄 교회에서 단독목회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일평생을 쉼 없이 기도하고 쉼 없이 섬기는 썩어지는 밀알의 인생을 사셨을 때 이분의 인생을 통해 맺혀진 열매는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크고 놀라운 것들이었습니다. 힘든 가정형편으로 태의 첫 열매인 큰 아들만을 하나님 종으로 드리고 나머지 자식들은 바르게 사는 하나님 자녀 되기를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어머니가 있었던 이 가정을 넘치게 축복하셨습니다. 가정의 핍박자요 아이들의 핍박자였던 남편이 회심하여 목사로 목회의 길로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광림교회의 김선도목사, 금란교회의 김홍도목사, 임마누엘교회의 김국도목사, 미국 LA의 사우스베이 연합감리교회의 김건도목사와 맏사위 김용일 목사에 이르기까지 온 집 안이 세계적으로 큰 목회의 능력을 펼치게 하신 것입니다. 현재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17명의 목회자가 이 집안에서 배출되었고, 이 집안에서 나온 목회자들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향을 받는 성도들의 수가 22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 감리교회의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광림교회와 금란교회입니다. 등록인원이 각각의 교회가 10만여 명에 이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이 얼마나 한 사람의 영향력이 무서운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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