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 궁극의 마카롱이라는 거야?" "그것보다 여기 주인 얼굴 봤어? 완전 모델이야 모델! 여기 빵 그 사람이 모두 직접 만드는 거래!"
10월 30일 흔히 '홍대 거리'라고 말하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작은 가게에 20대 초반 여성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흰색과 꽃분홍색이 어우러진 내부 인테리어가 눈길을 끄는 그곳은 디저트 카페 '마카롱'. 이곳을 찾은 여성들은 꽃분홍색·연노란색·초콜릿색 등 색색의 마카롱(아몬드가루·밀가루·달걀흰자·설탕 등으로 만드는 작은 과자)을 한 아름 골라 한 입씩 베어 물더니 '음~' '아!' 등 갖가지 감탄사를 쏟아냈다. "작품이야 작품" "아까워서 먹겠니"라는 둥 호들갑을 떠는 것도 잠시, 어느새 십여개의 마카롱이 그녀들의 입속에서 모두 녹아 사라졌다. 가게를 떠나기 전,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휴대전화로 가게 안 갈색 머리 남성의 사진을 찍고는 '인증 샷'이라며 자신의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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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년 사이 '요리하는 남자'가 인기를 끌면서 해외파 젊은 제과제빵사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 높은 인기에 얼마 전 패션 브랜드 커스텀멜로우와 협업해 화보도 찍고 의상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왼쪽은 마카롱의 루벤 얀 아드리안, 오른쪽은 르뱅의 이진환씨. / 커스텀멜로우 제공
그들의 피사체가 된 주인공은 네덜란드 출신의 제빵사 루벤 얀 아드리안(32). 그저 빵이 좋아 12세 때 벨기에의 제과전문학교에 입학했다는 그는 졸업 뒤 프랑스 디저트 브랜드인 '피에르 에르메'등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았다. 20년 경력에서 묻어나는 맛도 맛이지만 마치 순정만화에서 걸어나온 듯한 외모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팬클럽까지 있을 정도다. 그의 마카롱을 먹기 위해, 또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지방에서 '원정'까지 온다.
그렇다고 이 남성 혼자 여성 고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최근 들어 루벤 얀 아드리안처럼 고객들의 입과 눈과 마음마저 사로잡는 젊은 제과제빵사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일부는 '제빵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며 '고정팬'도 확보하고 있고 또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의상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 몇년 사이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요리 솜씨로 인기를 끄는 '스타 셰프'들이 TV 등 매스컴을 장식하더니 이제 그 열풍이 제과제빵업계까지 불고 있는 것이다. 소위 '외국물' 좀 먹었다는 스타 셰프들이 한때 유행처럼 서울 강남 일대와 이태원 등지에서 자신의 레스토랑을 앞다퉈 열었던 것처럼 젊은 유학파 출신 제과제빵사들이 서울 홍대 근처와 이태원 등에 개성을 담은 '동네 빵집'을 열고 있다. 루벤 얀 아드리안처럼 해외 '용병'이 국내에 유입되기도 한다. 이들 역시 '오너 셰프(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요리사)'라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서울 바닥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러한 작은 가게들이 최근 들어 70~80곳이 성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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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젊은 유학파 셰프들…'오빠 부대' 형성지난해 서울 반포동에 '르뱅'이란 빵집을 연 이진환(33) 셰프는 얼마 전 고객에게 향수 선물을 받았다. "저는 그냥 빵만 열심히 만들었을 뿐인데 가끔 '고맙다'며 각종 선물까지 챙겨 주시는 손님들이 계시더라고요. 명절엔 직원들 먹으라고 도시락도 보내주시는 분도 계셨고, 그냥 장보다 들르셔서 사과 하나 배 하나 이렇게 손에 쓱 쥐여주고 가시는 어머님들도 꽤 있고요. 아! 얼마 전 돌 지난 자기 아이가 그렸다며 하트 그림이 그려진 상자에 손 세정제 같은 걸 잔뜩 넣어주신 분이 기억이 남아요."
미국 샌프란시스코 르코르동 블루를 졸업하고 미국 호텔 등지에서 경력을 쌓은 이 셰프는 촉촉한 바게트빵 속처럼 뽀얗고 하얀 얼굴로 여성팬을 다수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각종 블로그와 SNS 등엔 그의 빵집 방문기를 남기면서 "훈내 진동 훈남 셰프님 인증샷이요~" "빵맛 좋다 해서 왔는데 셰프님 얼굴에 반하고 가요" 등의 칭찬이 쏟아졌다.
몇년 전만 해도 '동네 빵집'은 그저 동네에 있는 빵집이었을 뿐이었다. 김영모 빵집이나 리치몬드 제과점 등 '1세대 제빵장인'들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생계형'이나 '은퇴 뒤 창업' 같은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신만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동네 빵집들이 화제가 되면서 '유명 맛집' 같은 명소로 대접받고 있다. 프랑스국립제빵제과학교 출신의 장은철(31) 셰프가 총괄하는 서울 상수동의 퍼블리크를 비롯해 일본 제과학교 출신인 강원재 셰프의 브레드 05, 미국 CIA 요리학교에서 연수한 윤문주(30) 셰프의 천호동 블랑제리 11-17 등은 빵 마니아들의 '빵지순례(빵+성지순례)' 단골 코스로 등장하고 있다.
항생제와 각종 화학 첨가제를 쓰지 않는 걸 철칙으로 내세우고, 천연 발효종으로 숙성하고, 설탕이나 버터까지 쓰지 않는 빵을 만들어, 기존 우리가 흔히 아는 식빵류에서 벗어난 유럽식 빵 혹은 과자류를 내세우는 게 특징이다. 치아바타(겉은 바삭하고 안은 쫄깃한 이탈리아식 바게트 빵), 깡빠뉴(흔히 시골 빵이라 불리는 커다랗고 투박한 모양의 빵. '장발장이 훔친 빵'으로 알려졌음), 독일식 호밀빵인 펌퍼니클 등 해외에서 주로 보던 빵들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제빵사들이 가게를 직접 운영하면서 '훈남 제빵사' 시대를 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유럽 등지로 해외 유학한 경험이 있고, 국내외 유명 빵집에서 경력을 쌓다가 자신의 가게를 오픈한 경우다. 최근 같은 '작은 빵집' 붐을 일으킨 1세대로 꼽히는 서울 압구정동 '뺑드빱바'의 이호영(43) 셰프는 "이전에만 해도 빵집이라고 하면 빵·케이크·과자 등 모두를 진열하고 파는 '백화점식 가게'가 주를 이뤘는데 최근 트렌드는 호밀빵, 마카롱 등 취급하는 종목이 단순해지고 분야도 세분화됐다"고 말했다.
젊은 나이를 내세워 신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 벨로'의 반영재(31) 셰프는 "2년 전 개포동에 6평(약 20㎡)짜리 가게를 처음 오픈 했을 때는 오븐 온도 때문에 한여름에 가게 안이 40도가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면서 "다른 가게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경남 진주까지 내려가 밀을 구입해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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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보여주니 셰프가 뜨다'동네 빵집'이 이처럼 인기를 끌게 된 원인으로는 TV·영화 등 대중문화의 영향을 꼽기도 한다. 보통 빵집을 오픈하는 데 10년 내외의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업계에선 대체로 지금 같은 유행의 시작을 10년 전쯤으로 본다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따끈따끈베이커리(2004)'나 국내 TV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2005)' 등을 통해 파티시에(과자나 케이크 같은 제과류를 만드는 사람)라는 직업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2008)'에서 '꽃미남 제빵사', '여자를 단박에 사로잡는 마성의 제빵사' 등이 화제가 되면서 제빵 업계에도 '훈남' 바람이 불었다.
여기에 주방이 개방된 '오픈 키친'이 유행하면서 셰프 인기에 불을 붙이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보통 '빵집' 하면 작업장과 매장이 분리돼 보통 손님들은 제빵사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업실을 오픈하는 빵집들이 늘어나고, 제빵사들이 직접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자신이 만든 빵에 대해 설명하고 판매도 하면서 셰프에 대한 관심도 함께 는 것이다. 얼마 전 '작은 빵집이 맛있다'라는 책을 낸 김혜준 인천문예전문학교 디저트제과제빵학과 교수는 "이전까지만 해도 '제빵사'라고 하면 배 나온 50대를 연상하기 쉬웠는데 최근 젊은 요리사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날씬하고 여릿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뛰어난 요리 솜씨로 여성을 매혹시키는 남자를 일컫는 '개스트로 섹슈얼(gastrosexual·미식가를 뜻하는 '개스트로놈'과 성적 매력을 암시하는 '섹슈얼'의 합성어)'의 바람이 제빵업계도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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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를 밥 대신 먹는 '디저테리안' 등장…'빵 투어'도 인기이들이 인기를 끌다 보니 유명 셰프들의 빵 맛집을 찾아다니는 '빵투어''빵지순례'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밥 대신 디저트를 더 선호하는 '디저테리안(dessertarian)'을 표방하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빵집 찾아 전국 일주를 나선다는 사람들이 모인 '빵생빵사' 인터넷 카페는 회원 수만 5600여명이다. 1년 4개월 전 '빵생빵사'를 열어 운영하고 있는 정은진씨는 "서울 홍대·상수 투어, 이태원·경리단 투어 등 빵투어 루트가 인기를 끈다"고 말했다. 홍대·상수 투어는 퍼블리크, 브레드05, 우스블랑, 스노브, 피오니, 마카롱, 쉐즈롤 등의 순서로 다니고, 이태원·경리단길로는 로즈베이커리, 오월의종, 타르틴, 더 베이커스테이블, 달롤, 새로 생긴 프랭크까지 도는 게 인기 코스라고 전했다. 정은진씨는 "식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하게 빵을 만드는 가게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며 "화려한 동네가 아닌 구석진 소박한 동네에 문을 열더라도 재료가 좋고 맛만 좋으면 사람들이 찾아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최근 불고 있는 디저트 열풍도 이들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디저트 매출은 2008년 466억원에서 2012년에는 975억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디저트 매출 신장률은 매년 두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하면서 식품 전체 매출 신장률을 뛰어넘었다. 신세계백화점 식음팀 정준경 팀장은 "식품도 패션으로 인식하는 젊은 층이 늘면서 인기있는 '동네 빵집'이 백화점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 백화점은 11월 서울 자양동의 유명 베이커리 '라몽테'를 입점시킬 예정이고,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최근 리뉴얼을 마치면서 '로즈베이커리'를 입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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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매일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중노동을 하는 고된 직업"'뺑드빱바' 이호영 셰프(43)는 "TV나 각종 잡지에 노출이 되다 보니 생활도 굉장히 화려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새벽 세 시부터 일터에 나와 밤늦게까지 서서 일해야 하는 힘든 직업"이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발을 들여놨다가 일주일도 채 안 돼 그만두는 친구들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름난' 제과제빵 셰프들의 하루 일과는 비슷하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반죽을 하고 오븐에 빵을 굽는다. 더 벨로의 반영재 셰프는 "처음엔 쉴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어 발이 퉁퉁 붓는 데다 손에 굳은살이 잔뜩 박여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진환 셰프는 "가게 문을 열고 수개월 동안 하루 세 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어 뇌수막염까지 걸려 호되게 고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 업장(빵가게)의 초임이 대체로 80만~90만원 수준인 데다 일도 고돼서 가방 끈 긴 해외 유학파들이 업장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규모 소자본으로 창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 디저트 제과류 업계의 최강자로 꼽히는 정홍연(41) 셰프는 "20년 전 빵집에 처음 취직했을 때 3년간 월급 60만원이었는데, 지금도 근무 환경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우리나라는 실력이나 빵맛보단 외모가 낫다는 이유로 이슈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