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단산장 함태식 씨
“산은 걸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하이힐 신고 케이블카 타고 정상으로 가는 건 지리산에 대한 모독이지요. 산을 망가뜨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돌아올 겁니다.”
국립공원 1호 산장지기, ‘노고단 호랑이’로 불리는 함태식(85)씨가 2009년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리산 산장지기로 유명한 함씨는 1971년 노고단산장지기를 자처해 산사람이 된 이후 18년을 노고단에서, 나머지 22년을 피아골산장에서 보냈다.
산악인들은 그의 긴 턱수염을 보고 '털보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했고, 노고단산장지기 당시 엄한 규율을 적용한 이유로 '노고단 호랑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내가 함태식씨를 처음 본 것은 1970년대 첫 지리산 종주 때였다. 요즘은 대부분 성삼재까지 차를 타고 올라서 지리산 종주를 하지만 성삼재 도로가 뚫리기 전엔 화엄사에서 4시간을 숨가쁘게 올라야 했다. ‘코재’를 거쳐 노고단에 오르면 옛날 미국 선교사들이 사용했다는 피서별장이 보이고 그 앞에 노고단 산장이 있었다. 숨도 돌리고 잠시 쉴겸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털보 함태식씨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이화여대에 근무한다고 했더니 이영로 선생님과 노분조 선생님 안부를 물었다. 생물학과의 두 분은 식물 채집하느라 전국의 산을 누비고 다녔을 것이고 산장지기와도 당연히 알고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고산장에서의 18년.
그는 1928년 전라남도 구례에서 태어났다. 그의 말처럼 항상 지리산을 올려다보고 살았던 까닭일까. 그의 삶은 지리산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친우들과 지리산악회를 조직해 그 활동으로 지리산을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게 했다. 그리고 그때 까지만 해도 산장이 없던 지리산에 노고산장을 짓게 한 것도 그가 활동했던 지리산악회다. 관리인이 없는 무인 산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그는 노고산장을 지키기로 마음을 다진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리산 노고단의 산장을 18년간 지켜왔다.
<구 노고단 산장>
그러나 국립공원의 노고산장 직영화로 거의 쫓겨나다시피 피아골로 물러나게 된다. 그 이후 지금까지 10년을 피아골 산장에서 지내고 있다. 3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지리산 산장지기로 살면서 수많은 등반객을 구조하고 안내해 왔으며, 대자연 속에 파묻혀 청정무구한 삶을 살아온 진정한 지리산 산장지기였던 것이다.
지리산 '원조 산장지기' 함태식씨(현재 85세)는 38년간의 산장생활을 마감하고 하산하게 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연로한 함씨의 건강이 염려되고, 조난 등의 긴급상황에 대처하는 산장지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근무처를 피아골산장에서 산아래 피아골탐방지원센타로 조정하게 된다. 공단은 함씨의 상징성과 산악인들의 의견을 존중해 원조 산장지기가 계속해서 지리산 언저리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피아골 산장>
“산밖에 모르는 사람인데 하산하고 나서도 산에서 살아야지.”
공단 관계자는 "지리산의 살아있는 문화재나 다름없는 함씨가 산장을 내려오더라도 지리산국립공원 지킴이로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함태식 씨>
<한자리에 모임 탈보 산장지기와 산악사진작가 김근원 씨, 도봉산장 유용서 씨>
서 있는 사람은 왼쪽부터 유창서(권금성). 유용서(도봉산)씨,
앉은 사람은 왼쪽부터 사진작가 김근원씨, 함태식(피아골). 윤두선(백담산장)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