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건너로 쫓겨갔단다
구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인문평론?, 1939.10)
* 도래샘 :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도 방언.
<오랑캐꽃>은 지금까지 유이민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를 형상화 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여진족이 고려 장군에 의하여 살던 곳에서 쫓겨나 떠돌며 살았고 몇 백 년 뒤인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이 일제에 의하여 고려 때의 여진족처럼 떠도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를 잘못 평한 것이다. 이러한 평을 수용하면 시의 서두 앞에 쓰여진 산문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이 부분이 없어도 4연에 서 충분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연 또한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만 나타낼 뿐이고 시간의 흐름을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 백년이 몇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로 표현하는 것은 과잉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3연의 ‘두 팔로 햇빛을 막아줄께’라는 구절을 해석하기 어렵다. 햇빛과 오랑캐꽃과는 인과관계가 없다. 화자가 막아 준다는 것은 햇빛이 ‘오랑캐꽃’에게는 부정적인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와 같이 오랑캐꽃의 의미가 ‘유이민’이라고 본다면 이 구절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해석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 시에서 나오는 오랑캐꽃은 고려시대에 쫓겨난 오랑캐와 연관되어 서술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일제하의 우리 민족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민족과 혈연관계도 없고 풍속도 같지 않은 우리 민족이 외모가 비슷하다고 하여 오랑캐인 일본이 우리 민족을 자신들과 같은 오랑캐라고 취급을 하는 우리 민족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이다.
이 시가 발표된 1936년은 일제 강점기였기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라도 일제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일제가 이 시의 뜻을 아는 즉시 시인은 불령선인(ꃃ일제 강점기에,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람을 이르던 말)으로 몰려 곤욕을 치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용을 아무도 모르게 쓰면 시를 쓰나마나한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시를 일제 비판과 조선민족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조선인이 보았을 때에는 그 뜻이 들어나도록 교묘하게 시를 써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시인은 이제까지 어떤 시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던 장치를 한다.
시인은 첫 연이라 해야할 지 시로 인정해야 할 지 고민스러운 오랑캐꽃의 전설을 산문으로 요약하여 시 앞에 넣는다. 이로 인하여 시가 오랑캐꽃의 전설을 쓴 것처럼 그리고 아주 먼 옛날의 오랑캐인 여진족에 대해 쓴 것처럼 위장한다. 그러면서도 시를 읽는 조선인들이 자신이 말하려는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염려하여 산문의 내용을 다시 3연에서 반복하면서 ‘햇빛’을 부정적인 존재임을 알려 이 시가 우리 민족과 여진족과 연관성을 서술한 것이 아님을 은근히 드러낸다. ‘햇빛’이 부정적으로 쓰였음을 드러내어 ‘해’가 일본의 상징임을 알고 있는 당시의 조선인들이 이 시가 일본을 비판한 시라는 점을 알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해’가 일본의 상징이라는 점을 막연하게 알고 이를 이 시에 적용시키지 못한 평자들은 ‘햇빛’을 일본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문학적인 표현으로만 생각해 버리고 이 시를 오랑캐인 여진족의 처지와 우리 민족의 강점기하의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 시를 해설하고 평하였다. 결국 시인이 전달하려는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평과 해석을 내놓았고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지금부터 이시가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본인 취급을 받던 억울한 조선인의 설움을 토로한 시라는 것을 밝히도록 하겠다.
시의 앞부분에 나온 오랑캐꽃에 대한 해설의 중점적인 내용은 ‘오랑캐꽃’의 이름이 ‘오랑캐꽃’의 ‘뒷모양이 머리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에서 유래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랑캐’와 ‘오랑캐꽃’은 모습의 유사성 이외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명백하게 말한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시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랑캐(여진족)들은 무지무지 쳐들어온 고려 장군에 의하여 ‘아낙도 우두머리도’ 서로 ‘돌볼 새 없이’ 갑작스럽게 이 땅에서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가랑잎처럼 굴러’ ‘강건너로 쫓겨갔’다. ‘가랑잎처럼 굴러’간 것은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쫓겨갔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기술은 실제의 사실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표현한 것은 과거의 우리 민족이 무지무지한 힘을 지녔음을 은연 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암시는 민족적인 자긍심을 무의식 중에 일으킨다.
‘아낙도 우두머리도’ 강 건너로 쫓겨났기 때문에 이제 이 땅에는 오랑캐들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 시에서 화자가 제시한 역사와는 달리 실제로는 고려 장군이 오랑캐를 정벌 했어도 이 땅에는 오랑캐 취급한 여진족이 우리 민족의 압박을 받으며 미천한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 이러한 사실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낙도’라고 ‘도’로 ‘아낙’을 강조하여 이 땅에는 모계라도 오랑캐의 피를 받지 않았음을 단호하게 말하려 한 것이다. ‘우두머리도’라고 하여 오랑캐가 쫓겨난 이후에는 이 땅에 오랑캐의 우두머리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말하여 이 땅을 지배하는 민족이 우리 민족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몇 백 년 동안 유지된 것이다.
따라서 2연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연이 아니다. 오랑캐가 이 땅에서 쫓겨난 상태로 순수한 우리 민족이 주인인 이 땅에 몇 백 년간 오랑캐가 아닌 조선민족만이 살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몇 백 년 동안 이 땅에는 오랑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랑캐의 피는 이 땅에 전해질 수가 없었다. 순수한 한민족만이 이 땅에서 살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면서 일본과 한국은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이른바 ‘내선일체(內鮮一體)’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일제의 주장은 억지인 것이다. 수 백 년을 순수한 혈통을 지킨 우리 민족을 일본인과 같은 민족이다고 하는 것은 마치 오랑캐꽃이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모습이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오랑캐’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 민족도 오랑캐인 일본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건 같은 민족이라는 소리를 오랑캐인 일본에게 들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오랑캐꽃’이 오랑캐의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오랑캐꽃’이라 불리 듯이 우리 민족도 일본의 풍습이나 습성도 모르는데 오랑캐인 일본이 같은 오랑캐라고 동일시하는 억울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고려 장군이 오랑캐를 쫓아낸 이후 오랑캐란 있지도 않은 조선 땅의 민족에게 오랑캐인 일본이 같은 오랑캐라는 주장을 하는 억울한 현실을 당하고도 그 설움을 발설하지 못하는 조선인들에게 화자는 자신이 ‘햇빛’으로 상징된 ‘일제의 감시’를 막아 줄 터이니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하며 외모의 유사성 때문에 억울하게 오랑캐라 불리는 설움을 마음껏 표현하라는 권유하는 것이다.
실제로 화자는 일제의 압박 내지는 감시를 막아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점은 시인인 화자가 현실과는 달리 문학 속에서 자신을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생각하는 과대망상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절라도 가시내’에서도 나타난다. 아무 힘없는 화자가 팔려온 ‘절라도 가시내’의 근심과 걱정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처럼 방자한 말을 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식은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2004, 9. 2일 오후 10:1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