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 헤어진 지 몇 시간이 지난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를 입은 ‘색시’가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아래에서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몸을 숨기고 님을 생각하며 ‘말 없는 슬픔’을 쌓고 있다. 하늘엔 ‘나즉히 흰구름은 피었다 지고’ 떠난 님이 건너가신 ‘푸른 강물은’ 변함없이 ‘십리’를 ‘휘돌아가는데’ 님이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 사라졌다.
멀리 보이는 ‘고운 뫼아리’에서 님이 타신 말의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들려오는 것 같아서 색시는 행여 님이 돌아오시는가 기대하는 마음으로 님을 보려고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섭섭하고 슬프기가 말할 수 없이 크다. 떠난 님을 생각하며 색시는 ‘자주 고름에 소리 없이’ ‘이슬 방울’을 ‘맺’는다. 색시는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날씨가 추워 방이 쌀쌀할 터인데 혼자 남아 님이 없는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 생각하니 점점 더 외롭고 슬퍼진다. 그러나 님은 가실 때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면서 반드시 돌아오신다고 하였으니 이를 믿고 기다릴 밖에……
별리(別離)는 이별이다.
시간적 배경은 가을이 다가온 늦여름이다.
‘색시’의 정체는 모호하다. ‘두리기둥 난간’이 있는 큰 집에 살며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를 입고 있는 것을 보면 부유한 상태로 보인다. 색시에게 ‘말 없는 슬픔이 쌓’이는 것을 볼 때 어진 선비와 나눈 정분이 보통이 아니다.
‘색시’는 ‘색시1[색ː씨] ꃃ①=새색시. ②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젊은 여자. ③술집 따위의 접대부를 이르는 말. ④예전에, 젊은 아내를 부르거나 이르던 말.’이다. 여기서 ②는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5연)에 의해 아님을 알 수 있다. ④는 자기의 아내를 부르는 말이기에 3인칭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화자가 남의 아내를 색시라고 부를 수 없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①이 아니면 ③인데 ③으로 보기에는 색시의 행동이 너무 정숙하다. 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두리기둥 난간에 반만 숨’는 행위는 수줍어하는 처녀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①이라 하기도 이상하다. ‘초록 저고리 당홍치마’는 새색시가 시집와서 입는 옷이긴 한데 ‘어진 선비’가 남편이라면 돌아올 때를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님아……’에서 님이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는 사실이 상황에 맞지 않는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면 ‘색시’는 ‘기생’일 가능성이 높다.
‘밟고 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 가고’는 바람을 활유한 표현이다.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은 화자가 님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환청(幻聽)이다.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鴛鴦枕)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꼬’는 임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을 의미한다.
‘실버들 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는 님이 다시 오겠다는 사랑의 약속이다. ‘버드나무’는 전통적으로 사랑의 증표로 쓰여 왔고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홍랑이 최경창에게 보낸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에서 ‘뫼버들’과 같은 의미이고 여기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