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 까치밥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이 시는 까치밥을 남겨놓는 풍속에 담긴 뜻으로 어려운 삶의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조카아이들이 아버지 고향에 와서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를 휘둘러 까치나 야생짐승들이 먹으라고 남겨놓은 까치밥을 따는 모습이 보인다. 서울 조카아이들아,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까치밥 없는 빈 하늘만 남으면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하겠니! 이 세상 살면서 삶의 험난한 어떤 순간에 몹시 어려워 배를 굶주릴 때도 까치밥은 남겨 놓았다. 그것은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따뜻한 등불과 같은 것이었단다. 그 뜻을 모르고 까치밥을 따려는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아, 그 까치밥 따지 말라.
할아버지이자 너희의 증조할아버지는 사랑방 나무갈고리에 몇 죽의 짚신을 걸어놓고 저승에 가셨다. 그 짚신은 더러는 외롭게 길을 가는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에 동네 개가 컹컹 짖는데 그 짚신 짊어지고 나의 아버지이자 너의 할아버지는 다시 새벽에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다. 서울조카들아, 내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에 까치밥은 내 등을 따뜻하게 비추어 주었다. 그러니 서울조카들아, 까치밥을 못 따게 한다고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을 맞으며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가지에 매달려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을 이렇게 등이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말쿠지: 말코지의 사투리, 물건을 걸기 위하여 벽 따위에 달아 두는 나무갈고리
이 시를 구절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까치밥’은 늦가을에 감이나 과일을 수확할 때에 새들이나 짐승들이 먹이를 구하기 힘든 겨울에 먹으라고 가지에 남겨놓는 과일을 말한다. 겨울에 짐승들의 삶까지 생각하는 선조의 마음이 담긴 풍습이다.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 그 까치밥 따지 말라 /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는 서울 조카아이들은 아버지 고향에 와서 까치밥의 의미를 모르고 따려는 것을 말리는 말이다.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는 서울에서 자라서 아버지 고향의 풍속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은 공간적 배경이 ‘남도’임을 알 수 있다. ‘남도’는 일반적으로 ‘전라도’를 말한다.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은 까치밥이 없는 ‘겨울 하늘’로 의지할 것이 없는 상태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는 아래 구절에서 화자는 ‘까치밥’을 ‘따뜻한 등불’로 ‘등 따숩게 비춰주’는 존재로 보고 있으므로 이것이 사라진 상태에서 느끼는 마음 상태를 말한 것이다.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 그 까치밥 따지 말라’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다가 어려운 때를 당하여 몹시 힘들고 먹지 못해서 배가 주릴 때에도 날짐승을 위하여 ‘까치밥’을 남긴 마음은 어려운 삶을 따뜻하게 해주는 등불과 같은 것이니 ‘까치밥’을 따지 말라는 말이다.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 소용돌이치고 휩쓸려’는 살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배 주릴 때도’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 굶는 때를 말한다.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는 ‘까치밥’은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지만 오히려 화자가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을 위해서 사랑방 나무갈쿠리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다른 사람이 쓸 수 있게 준비하셨다는 말이다.
‘사랑방’은 할아버지가 거처한 곳으로 보인다.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은 것은 자신이 신기 위해 짚신을 삼아 걸어놓은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 - 외로운 길손, 아버지-이 사용하라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무덤 속을 걸어’간 것은 죽었다는 말이다.
‘길보시’는 시인이 만든 합성어로 보인다. ‘길’은 ‘길손’의 준말이고 ‘보시’와 합성되어 형성된 것으로 ‘길손에게 은혜를 베풀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 짚신 짊어지고’는 먼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먼 길을 가려면 여러 죽의 짚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짚신을 짊어졌다는 것은 먼 길을 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는 화자의 아버지가 한 밤중에 집을 떠나 새벽에 두만강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갔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는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은 한 번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 겨울 하늘에 떠서 /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는 조카들에게 ‘까치밥’은 화자에게 아주 오랜 기다림의 세월을 등 따뜻하게 비추어준 존재이니 ‘까치밥’을 못 따게 한다고 서러워하지 말라면서 ‘까치밥’이 너희들이 살아야할 먼 삶에서도 따뜻하게 해줄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은 화자가 누구를 기다리는 세월을 보낸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의 내용으로 보아 두만강을 건너간 아버지로 보인다.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까치밥을 남겨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마음 따뜻하게 살아온 것으로 보이다.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는 서울조카들에게 하는 말로 ‘까치밥’을 따지 못하게 하는 것을 서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까치밥 몇 개가 / 겨울 하늘에 떠서’는 ‘까치밥’이 그냥 까치밥이 아니라 ‘겨울 하늘’에 떠있는 해와 같은 따뜻한 등불이 되어 겨울 추운 때에 등을 따뜻하게 비추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존재이라는 것을 말한다.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은 아직 ‘까치밥’이 조카들이 살아갈 먼 세월에서 만나게 될 삶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는 ‘까치밥’이 지금도 화자에게 ‘따뜻한 등불’이 되어 등을 따뜻하게 해주듯이 조카들에게도 어려울 때에 따뜻하게 해줄 것이라는 말이다.
까치밥
어려움 속에서 따뜻한 여유를 갖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20180904화후0412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