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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류열풍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솔바람2
아토피와의 동거 |
번호 2504 글쓴이 풍경생태 (scapecology) 조회 1656 누리 149 (154/5) 등록일 2007-8-16 17:57 | 대문 8 톡톡 0 |
아토피도 결혼은 한다
아토피를 치료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량스럽게도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과 집 사람의 친척이 같은 업종에 종사를 해서 소개를 시켜주었다. 집사람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 아토피가 있다는 말을 했다. 첫 눈에 보면 아는 것이니까 말을 한다는 것은 우습고 병명을 확인해 준 것이었다. 문제는 집사람은 내가 그렇게 심한 줄을 몰랐다면서 결혼 후 한참 세월이 지나간 다음에야 나에게 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결혼 초에 팔꿈치 안쪽을 너무 긁어서 상처가 심해 팔을 펴지를 못한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자고 일어나면 피부가 긁혀서 주위가 온통 빵가루였다. 집사람은 그런 상태에서 임신을 하는 것이 겁이 났던 모양이다. 아토피는 유전의 성격이 강해서 자녀가 아토피 생길 확률이 높다. 그러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현상이고 결국 임신이 되었다. 피는 속일 수 없다 임신을 하고 집사람은 여간 조심한 것이 아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했다. 출산 당시 처음에는 피부가 깨끗했는데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이라 얼굴에 동전만한 크기로 피부가 일어났다. 집사람은 전방위 치료를 했다. 임신 때부터 먹었던 건강식품(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음)을 우유병에 타서 먹이고, 세제도 사용하지 않고 가루비누로 빨래를 했다. 집안은 열심히 쓸고 닦고 청결하게 하고 유아원에 보낼 때에도 간식을 따로 만들어 보냈다. 그 덕에 집사람이 만든 쿠키는 나도 잘 먹었다. 그 무렵 나는 공중보건의 근무를 하고 있어서 주말부부로 지냈다. 딸애는 집사람의 통제 하에서 생활한 덕분에 아토피가 없어져서 이제 아토피는 옛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반면에 나는 바깥에서 식사를 하느라고 유기농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유기농 이거 쉽지 않습니다 내가 철저히 유기농 식사를 하게 된 것은 직장 주위에 유기농 식당이 들어서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 식당은 유기농을 제대로 하는지 의사들이 감시를 한다. 직장에서 유기농을 먹으면서 상황이 역전이 되었다. 집에서 먹은 것들이 유기농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씩 발견된 것이다. 딸의 피부가 좋아지자 집사람은 마음이 풀어졌는지 유기농으로 하는 것에 대하여 의식이 약해졌다. 이 시대에 유기농을 먹는다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기농(우리집에서 일반음식을 칭하는 말)으로 먹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맛이 있는지 유혹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사람은 집에서 동네 아주머니를 대상으로 요리를 가르친다. 그 덕에 신혼 때 어리버리했던 요리 실력은 많이 좋아져서 제법 맛깔난 밥상을 차린다. 문제는 맛있는 요리를 하는데 재료가 문제이다. 맛있는 요리수업을 하기 전에 시범으로 우리 식구에게 먼저 먹인다. 다행히 재료가 유기농이면 문제가 없는데 이상한 재료가 들어가면 잘 먹었는데 잠자면서 고생을 한다. 밤새 빡빡 긁는 것이다. 이것을 수차례 반복한 집사람은 이제는 거의 모든 재료를 유기농으로 바꾸었다. 사춘기에 딸이 재발할 수 있다고 겁을 잔뜩 준 것도 효과가 있었다. 방심하면 당한다 5년 전 장을 비우고 유기농을 철저히 한 덕에 피부가 완전히 깨끗해진 적이 있다. 아토피가 몸에 한 점도 없이 사라졌고 피부는 아이 피부처럼 뽀얗게 되어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받는 것이 일이었다. 그 해 겨울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렸는데 후라이 치킨이 얼마나 맛있게 보이던지 한 번 사먹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와! 이제 완벽하게 치료가 되었구나 싶어서 조금 지난 후 오뎅을 사먹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외도를 시작하였다. 다음 해 봄, 피는 속이지 않았다. 먹은 음식이 피가 되고 그 피가 피부가 된다는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피부가 뒤집히더니 완전히 도루묵이 되었다. 그 피부가 다시 어느 정도 정리되는데 1년 반이 걸렸다. 몸은 망가지는데 한 순간이다. 그런데 그 몸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오염된 강을 정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먹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는 많다. 사기꾼 M 아이스크림 회사 구하기 힘든 유기농 아이스께끼를 계속 구해서 집으로 가져갔다. 내가 사온 것은 질렸는지 어느 날 집사람이 유기농 아이스크림이라고 M회사의 것을 사가지고 왔다. 나도 의심이 없이 같이 먹었다. 다른 원인으로 가려움이 있었던 터라 전혀 눈치를 못챘다. 1년 반 후 집사람은 경악을 하였다. 아이스크림의 무게가 줄었고 실제로 무게로 달아보니 양이 표기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집사람이 대리점에서 따졌더니 또 발견된 것은 한 종류만 유기농이고 지금까지 먹은 것은 유기농이 아니라고 한다. 나도 다시 가서 물었더니 대답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제대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고객을 물로 생각하고 속여먹은 것이다. 지금 시중에는 유기농이 많아졌지만 어느 것을 믿을 수 있는지 심각한 상황이다. 농약녹차 사건
이번에 농약 녹차사건은 녹차에는 농약을 치는 줄 몰랐던 소비자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웰빙이라는 단어에 속아서 맛있게 먹었던 녹차가 농약 궁물이었다는 사실은 속이 뒤집히는 일이었고 티백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만들었다. 식약청도 일을 멍청하게 처리하여 제시된 기준도 없고 애매하게 결정을 지어 녹차의 이미지만 망가뜨렸다. 웰빙이라면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가야했다. 상술과 맞물리면서 터질 일이 터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KBS 이영돈 PD의 프로에서 농약녹차와 비교되는 유기농녹차로 나온 보성 몽중산 다원의 녹차를 사용한다. 그 녹차는 땅을 유기농으로 할 뿐아니라 공기나 환경도 생각하는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재배하는 곳이고, 간호대교수를 하신 분이 사장을 하고 있어서 위생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가서 확인을 했다. 이번 사건으로 농약녹차, 문제가 있는 무늬만 유기농인 녹차,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제대로 된 유기농이 구분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기농 자세 유기농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유기농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혹이 너무 많다. 이번 녹차파동에도 확인되었듯이 농약을 쳐도 기준치 이하로 나오기 쉽다. 수확을 더 할 욕심으로 농약을 쉽게 치고 유기농으로 속이면 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유기농을 먹어 자신의 골을 유기농으로 만들지 않으면 양심을 지키기 어렵다. 유기농을 먹고 실천을 해야 유기농의 가치를 알고 상대방을 속이지 않는다. 유기농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기농을 먹는 사람끼리 농사를 지어서 먹고 나머지를 같이 유통하는 구조이다.
내가 유기농을 먹게 된 것은 아토피가 아니었으면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토피로 고생한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내 피부 덕에 온 몸이 덕을 보고 있으니까. 지금까지 고생하고 지켜 보아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한 편으로 집에 아토피가 있을 경우 제대로만 대처하면 집안 모든 식구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나름대로의 강변으로 나와 결혼해서 건강해졌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아내에게 윽박지른다. 병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느 유행가 가사가 생각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사족보다 좋은 족발 : 명박이 병은 아픈만큼 성숙해질까? 그렇게 되려면 병을 인정해야 하는데. 병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픈만큼 곪아터지는데 이를 어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