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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미리 알려주며 시작한다.
'실화'라는 사실에 실리는 힘의 무게는 이제는 영화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과연 이 영화는 어떤 실화를 얼마나 극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는지 내심 기대를 하게 되니까.
영화 제목인 체인질링(Changeling)은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라는 뜻이 있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남몰래 바꿔치기한 어린애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여자의 모성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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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가 아이를 바꿔치기 했는가?
혼자 몸으로 아들을 키우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는 크리스틴 콜린스(안젤리나 졸리역)에게 어느날 닥친 일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 사라진 것.
아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끝에 몇 달만에 경찰에서 아들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을 마중나갔지만
자신 앞에 서 있는 아이는 자신의 아들이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숨기려는 경찰에게 자신의 아이를 찾아줄 것을 호소한다.
그렇다. 크리스틴의 아들을 바꿔치기한 장본인은 바로 경찰이다.
별 성과없이 시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차에 언론에까지 알려진 크리스틴의 실종된 아들을 찾아 내어
시민들의 호감을 얻고자 경찰이 한 짓은 바로 아이를 바꿔치기 해서라도 성과를 올리는 것. 자신들의 공을 내보이고자 한 것이다.
경찰이란 조직의 왜곡된 성과주의의 결과가 바로 체인질링이다.
시민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직업의 본질을 잊는 순간 경찰은 시민의 지팡이가 아니라 시민을 향한 칼이 될 수 있다.
오늘 김석기 경찰총장 내정자가 용산 사태에 책임을 느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내가 보기에는 언론 무마용 쇼로 밖에 보이지 않긴 하다만... 듣자하니 다른 내정자는 김석기보다도 더 한 인물이라던데.. 음~~~
수장이 성과만을 중시하면 그 아랫사람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내야하는 것이 성과이다.
경찰조직에서 성과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시민들이 피해 볼대로 본 후 경찰을 찾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 이것이 최고의 성과가 아닐까.
경직된 상하구조의 조직에서 참된 경찰이 되고자 해도 될 수 없는 시스템. 이것이 경찰의 가장 큰 문제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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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코드12. 왜 그들은 정신병자가 되어야 했는가?
크리스틴은 경찰이 찾아준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끝까지 밝혀내려 노력한다.
그리고 언론에까지 이 사실을 밝힌 크리스틴을 존스 반장은 절차도 무시한 채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코드12라는 암호와 함께..
코드12. 그것은 바로 경찰의 뜻을 거스르거나 경찰에 대항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부패한 경찰에 대항하던 약자들은 결국 정신병자가 되어 어떠한 적접한 절차도 없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약자의 정의는 강자 앞에서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짓밟힌다.
내가 알기론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입원 절차도 허술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위 사람들(강자)에 의해 하루 아침에 정신병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 너무나 잔인하고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수많은 민초가 바로 진정한 강자로 거듭날 때 우리는 정의란 것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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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론, 과연 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크리스틴이 경찰이 찾아낸 실종되었던 아들을 만나는 자리에는 수많은 언론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현장에서 일어났던 상황과 경찰에서 발표한 내용을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신문에 실었다.
또한 크리스틴이 찾은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부른 사람들도 언론인들이다.
그저 언론인들은 보여지는대로 들리는대로 사실 여부의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기사로 만들어 버린다.
눈에 보여지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는 것은 언론인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들은 보여지는 사실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파헤치 의무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무를 태만한 채 그저 언론이란 이름으로 거짓을 버젓이 진실이라고 세상에 내놓는다.
끔찍하게 사랑하던 아들을 만나던 크리스틴의 모습을 조금만 자세히 관찰만 했더라도
그리하여 그 속사정을 알아내기 위해 기자정신을 발휘만 했더라면 과연 크리스틴이 그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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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연쇄살인범 그리고 사형제도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는 바로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어 실종된 것이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은 잡힌 후 결국 사형을 선고 받고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영화에서는 살인범의 교수형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그런데 왜 하필 교수형이었을까? 그리고 줄에 매달려 발버둥치는 교수형 장면을 감독은 왜 굳이 영화에 삽입한 것일까?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사형폐지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종교 색채가 강한 나라. 또한 인권을 중시하는 이미지의 나라. 그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런 미국에서 아직까지도 사형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스트우드감독은 혹시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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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재미만으로 넘길 수 없는 시대극
영화에는 봄과 가을의 평온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 나른한 오후, 평온한 마을의 분위기, 한껏 여성미를 드러내는 그 시대 여자들의 옷차림
이런 부드럽고 잔잔한 그 시대의 전체적인 이미지와는 대조되는 극적인 이야기의 전개는 그래서 더욱 가슴에 오래 남는다.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한 엄마의 원초적인 모성이 세상의 어둠을 밝혀내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문득 나의 닉네임인 설해목이란 말의 의미가 생각난다.
한없이 가벼운 눈도 거대한 나무를 꺾을 수 있다는 진실... 미미한 힘도 모이면 거대한 권력을 이길 수 있다는 진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진실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