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세비야(Sevilla)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 1,2 / 히랄다 탑은 보수 중
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세비야 성당과 히랄다 탑은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성당 안에 있는 종탑이었다.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은 1248년 카스티야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후 가톨릭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1401년부터 가톨릭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의 이슬람 사원보다 몇 배나 크게 짓는 바람에 100여 년이나 흐른 뒤인 1519년에야 완공되었다고 하며 개축보다는 신축 건물이 많아 옛 이슬람 사원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성당의 외부는 고딕(Gothic) 양식으로, 내부는 르네상스(Renaissance) 양식과 바로크(Baroque) 양식이 혼합되어 있는 등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클뿐더러 역사적 가치도 크며 세비야의 상징이자 자랑이다.
콜럼버스의 관(묘) / 화려한 성당 박물관 1,2
히랄다탑(Torre de la Giralda)은 정상에 높이가 3.5m나 되는 풍향계가 있는데 이 종탑은 원래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첨탑인 미나레트(Minaret)였다고 한다.
그런데 정상의 돔(Dome)을 떼어내고 종루(鐘樓)를 설치하여 28개의 종과 가톨릭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다고 하며, 1568년에야 오늘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탑의 이름인 ‘히랄다(Giralda)’는 풍향계를 뜻하는 스페인어라고 하는데 이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 런던의 성 바울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하며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입장권을 사면서 다른 성당이나 비슷하겠지 하고 들어갔는데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우선 들어가는 입구의 조그만 마당에 첨탑 꼭대기의 여인이 바람개비를 잡고 있는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입장하고 보니 미사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고 박물관인데... 전시된 미술품, 조각들이 엄청나게 크고 화려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내부에는 그림은 물론, 조각품, 목조 조각 등 훌륭한 예술 작품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플라테레스크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모두 수천 점이나 될 것 같은 소장품들은 모두 황금색이라 흡사 황금궁전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청동으로 제작한, 네 사람이 들고 있는 콜럼버스 관이다.
이 콜럼버스 관(棺)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는 금과 향료가 무진장인 인도(India)를 찾아 대 항해를 시작한다.그러나 금과 향신료를 얻지 못하고 아메리카대륙(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자 이사벨은 크게 실망하고 콜럼버스에게 냉랭하게 대했던 모양이다. 크게 실망한 콜럼버스는 자신이 죽으면 ‘절대로 스페인 땅에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결국 자신이 발견한 쿠바에 묻혔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은 훗날 그들의 잘못을 깨닫고 콜럼버스의 시신을 스페인으로 모셔오는데 그의 유언을 거스를 수 없어 땅에 묻지 못하고 대 세비야 성당에 모시면서 지금처럼 공중에 붕~ 떠 있게 설계했다고 한다.
17. 그라나다(Granada) 대성당과 왕실예배당(Capilla Real)
예수 십자고상 / 내부모습 / 그라나다 대성당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고대도시 그라나다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딪히던 역사의 장소로 수많은 볼거리들이 있는 관광명소인데 이슬람(무어인)들의 건축인 화려한 알람브라(Alhambra) 궁전과 그 궁전을 지키는 알카사바(Alcazaba) 요새, 그리고 술탄(Sultan)들의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Generalife) 정원 등이 있는데 다로(Daro)강을 사이에 두고 그 건너편 언덕은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알바이신(Albaicin)’ 지구와 ‘사크레몬테(Sacro Monte)’ 언덕이 있다.
그라나다 대성당(Catedral de Granada)은 도시의 중앙에 있는데 대성당 앞 광장과 주변은 온갖 상점들이 모여 있고 대성당 자체도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원래 이슬람 사원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1523년부터 1703년까지 180여 년에 걸쳐 성당건물을 지었다는데 탑은 아직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고, 초기에는 고딕 양식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이슬람교도들의 영향으로 내부 장식은 무슬림 양식도 활용되었다. 대성당의 주 예배당은 에스파냐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에 속하는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황금빛 내부 장식이 특징이며, 창문의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신약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도시 가운데에 있는 대성당과 붙어서 이사벨 1세 여왕 부부의 유해를 모신 왕실예배당 ‘카피야 레알(Capilla Real)’이 있다.
대성당과 붙어서 바로 옆에는 왕실예배당(Capilla Real)이 있는데 1504~1521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화려한 건물로, 예배당 안에는 스페인 통일의 주인공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부부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이사벨 여왕 가족 묘실 / 화려한 왕실예배당 내부 / 왕실예배당 입구 / 산타페 협약
그라나다를 이슬람의 손에서 되찾은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그라나다를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들의 묘소를 이곳으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둘 다 사망했다. 그러나 1521년 준공식과 함께 부부의 유해는 결국 이곳에 안치되었으며 나중 차녀 후아나 1세와 사위 펠리페 1세도 이곳에 묻히는데 내부에는 이사벨라 여왕의 수집품과 다양한 성화들로 장식하여 대성당보다 더 화려하고 오래되어 오히려 역사적인 가치가 더 높다고 한다.예배당 한가운데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있는데 열 계단쯤 내려가면 극히 소박하게 꾸며진 이사벨 여왕 부부의 관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은 모두 다섯 개인데 나머지 하나는 포르투갈 왕실로 시집간 장녀 이사벨의 아들 미겔 왕세자의 관인데 왕세자는 두 살 때 죽었다고 한다.
대성당 앞은 ‘이사벨 라 카톨리카 광장(Plaza Isabel la Catorica)’인데 중앙에는 이사벨 여왕을 찾아와 대항해의 꿈을 밝히고 지원을 요청하는 콜럼버스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이 서 있다.
당시, 콜럼버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허황한 꿈이라고 미치광이 취급을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이사벨 여왕은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패물까지 처분하여 과감히 돈을 대주며 계약서를 쓰는데 그것이 바로 ‘산타페 협약’이다. 이런 이사벨 여왕의 과감한 투자로 스페인은 해양대국, 스페인 무적함대, 중남미에 광활한 식민지를 거느리는 강대국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사벨은 1496년 바티칸 교황청(교황 알렉산드르 6세)로부터 ‘가톨릭의 왕(Los Reyes Católicos)’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이후 이사벨은 ‘가톨릭교도 이사벨(Isabel la Católica)’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