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1,034m)은 전북 무주군 적상면 동쪽에 병풍을 두른 듯이 서있는 한국 백경 중 하나로 손꼽히며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적상산은 지대가 높고 일교차가 심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이 유달리 곱고 아름답다.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하다고 하여 붉은'적'(赤) 치마'상'(裳)자를 써서 적상산(赤裳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고 하나 사실은 정상의 치마바위 절벽돌이 퇴적암으로 붉게 보여 적상산이라고 지어 졌다고 한다.
적상산은 대전-진주간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무주근처에 다다르면 정면에 산 허리위로 붉은 바위벽이 층층이 병풍을 드리운 항아리 모양을 하고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요새처럼 보이는 산으로, 이 산은 향로봉(1,029m)을 거느리고 천일폭포, 송대폭포, 장도바위, 장군바위, 안렴대 등의 명소를 간직하고 있다. 향로봉에서는 예로부터 하늘에 제를 지냈다. 비록 지척에 있는 백두대간 덕유산(1614m)이 더 높지만 옛 선조들은 적상산의 기운이 하늘과 더 가까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산에 오르면 사적 146호로 지정된 적상산성을 구경할 수 있다. 석축 둘레는 1만6920자(5,127m), 높이는 7자(2.1m)에 달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고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축조를 건의했다고 전해지나, 조선시대의 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세종때 체찰사(體察使) 최윤덕이 이곳을 답사하고 반드시 산성을 쌓고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건의했으며 인조때 산성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장도바위는 성인 하나가 겨우 통과할 정도로 쪼개져 서 있는 데, 고려 말 공민왕 때 최영장군이 제주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고 서울로 오르는 길에 적상산을 지나게 되었는데,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암벽을 만나자 칼로 내리쳐서 바위를 쪼개고 그사이로 산을 올랐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산성 안에 국내 5대 사고(史庫·나라의 역사기록과 문서를 보관하는 곳)의 하나인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또 안국사와 호국사를 세워 승병을 주둔시켜 1614년부터 건립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게 하였다. 세계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국보 제151호)이 일제의 강압으로 서울의 왕실규장각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300여년간 이곳에 보관됐다.
임진왜란 당시 평지에 있던 4대 사고가 전란으로 소실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전주사고의 실록을 임진왜란 이후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마니산 등 5대 사고에 설치하여 각각 실록을 보관했다. 병자호란 당시 묘향산사고 실록의 보관에 어려움이 있자 무주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1634년 묘향산 실록을 옮겼와 300여년간 보관하였으며, 1910년대에 일제에 의해 사고가 폐지되자 적상산의 실록은 왕실 규장각으로 옮겨 보관해오다가 6·25 때 북한으로 반출됐으며 김일성 종합대학 도서관에 보관 중이다. 1992년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립으로 사고지가 수몰되자 사고 건물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돼 있다.
사고를 지나 산 정상 근처에는 안국사로 가는 길 300여m는 적상산 낙엽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짙어가는 단풍과 뒹구는 낙엽이 한 데 어우러져 필설을 비웃는 장관을 이룬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 월인화상이 건립했다고 하니 천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고찰로 겉모습은 여느 사찰과 다르지 않지만 이곳에는 호국(護國)의 역사가 깃들여 있다. 거란족과 몽골족에 맞서 산을 지켰던 승려들의 영혼이 서려 있는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승병을 주둔시켜 1614년부터 건립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게 하였다. 안국사는 원래 적상산 동쪽 북창리에 있었지만 댐 공사로 현재 자리로 이전을 하였으며, 현재 자리는 호국사가 있던 자리였으나 6.25전쟁 때 무주 사찰주임이 빨치산의 근거지가 된다고 하여 불태웠다고 한다.
안국사에서 300m 가량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산의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슬아슬하게 한다. 안렴대란 명칭은 고려 당시 거란의 침입이 있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붙여졌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해발 850m의 산중턱에 350만톤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저수지 적상호가 있다. 1995년 양수발전소가 들어서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산 아래 무주호에서 끌어올린 물을 호수에 담은 뒤 다시 떨어뜨려 전기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아담한 호수 주변을 에워싼 단풍나무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돋우고, 저수지를 가둬버린 거대한 돌댐도 눈요기 거리다. 호수 옆 전망대의 계단 105개를 오르면 덕유산, 두문산, 봉화산, 조항산 등 인근 산을 비롯, 무주 시내 전경이 한 눈에 잡힌다.
산행지도 및 참고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