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요설교] 사랑의 본질 - 김대성 목사
도대체 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는 주제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요한일서 4장 7절과 8절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매우 중대한 의미가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지난 한 시간에 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 성경 전체가 다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성경 전체를 구체적이면서도 가장 적은 단위로 축소해 놓은 것이 10계명입니다.
10계명을 확대하면 성경이고 성경을 축소하면 10계명입니다. 그 10계명을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두 마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만 이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포함된 성경절이
284절이 나옵니다. 신약 전체가 7천967절인데 나누면 평균 28절 중에 한 절에는 반드시 사랑이라고 하는 단어가 포함이 되어서 나옵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27권 가운데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없는 책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1장밖에 없는 빌레몬서나 요한이서나 요한 섬서 혹은 유다서는 1장밖에 없지만 그 속에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에 대하여 정의를 내립니다. 이 어릴 때 머리에 입력된 것은 좀처럼 잘 지워지지 않는데
제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그 노랫말 중에 하나에 그런 노랫말이 기억이 납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이 사람은 사랑을 눈물의 씨앗이라고 정의했는데 그건 자기 나름대로의 정의지 올바른 정의는 아닙니다. 사전에서 사랑이라는 말을 찾아보면은 한 네 가지 의미가 나오는데
두 가지만 추려서 말씀을 드리면 첫째는 상대를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마음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동정하여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사랑이라고 하는 말에 근접된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랑은 원래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려고 마음의 결심을 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하실 때
우리 사람의 마음에도 가장 고상한 정서적 감정을 하나 불어넣어주셨는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가 사랑은 만져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제가 제 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면서 이 사랑에 대하여 좀 분석을 해 본 결과가 이것입니다. 사랑 속에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정서적인 심리적인 요소가 들어 있고 또 다른 한쪽에는 행동적인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으로 나타나는 사랑이 있고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이해와 용서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가르침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희생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말씀이 사람들에게 내 것을 잘라서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이 사랑 속에 들어 있습니다. 먼저
마음으로 나타나는 사랑 이 이해와 용서라고 하는 내용으로 잠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나와 갖지 않은 나와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면서 다른 사람이 나와 같아지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맞추어 살기를 원하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나 위주로 삽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는 것은 나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과 같지 않으면 이해를 잘 못합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람을 좋지 않게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이 많을까 귀후해서 꼭 여우 같다. 좋게 말하는 겁니까 나쁘게 말하는 겁니까 나쁘게 말하는 거예요. 그게 말이 많은 게 나쁜 거 아닙니다.
그러나 말이 적은 사람은 말이 많은 사람에게 대하여 안 좋게 말합니다. 또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말을 적게 하는 사람에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을 안 할까 꼭 곰같다. 좋게 말하는 거예요 안 좋게 말하는 거예요 안 좋게 말하는 거예요 저런 사람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가깝할까 자기 경험과 자기의 형편에 맞추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삽니다
그 사람이 밥을 못 먹었대 하는 말을 딱 가지고 생각하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해석은 구국학색입니다. 밥을 못 먹었대라는 말을 가지고 부자가 그 말을 들으면 입맛이 없구만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환자가 들으면 어디가 아픈가 보다
배고픔을 경험한 가난한 사람이 들면 없는 것보다. 돈이 다. 자기의 경험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우리가 정말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또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잘못된 것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영어는 참 표현이 멋집니다. understand
이 언덜이라고 하는 것은 밑에라고 하는 말이에요 스텐드라고 하는 말은 서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언더스탠드라고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입장에 서 본다는 뜻입니다. 자기 감정과 자기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보고 판단하는 것을 이해라고 합니다
이 한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해서 나타나는 것이지 단순하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한 사람이 어떤 말이나 행동에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유전적 요인입니다. 부모로부터 타고나는 속성이 상당히 많이 깔려서 행동으로 말로 나타납니다
거기에 성장 환경 가정 교육 학교 교육 또 살아 나오면서 만난 주변 사람들의 영향력 친구들의 영향력 그리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관심사 거기에 우리 같은 경우는 신앙심 이런 것들이 아주 복잡하게 작용을 해서 말이 되고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정과 건강 319페이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격과 습관과 교육에 있어서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사물을 관찰하는 우리의 방법도 다양하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 생활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모든 면에서 동일하지 않다
모든 특수한 점에서까지 꼭 같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우리 모든 각자 각자 한 사람은 이 지구상에 거하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나와 똑같은 환경 나와 똑같은 유전 나와 똑같은 교육과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산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입니다
내가 그렇듯이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시험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시험이 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가벼운 의무가 다른 사람에게는 가장 큰 어려움과 난관이 된다. 집에 10명 손님이 올 때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까지껏 하고 덤벼듭니다. 어떤 사람은 두 달 전부터 고민합니다. 이것을 어쩔까 사람마다. 다. 모든 면에서 반응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판단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지를 정말 쉽게 바꿀 수 없는 그
기질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한 형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살면서 닥쳐오는 수많은 문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나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개인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필요합니다. 그것을 잘 알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 기질이나 형편을 충분히 이해하기 전에는 우리는 함부로 사람에 대하여 이해하게 할 자격이 없습니다. 알고 나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문제를 잘 몰라서 오해하거나 비난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느 한 학교에 한 여학생이 있었는데 아주 모범생입니다
공부도 잘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 학생입니다. 이 학생이 언젠가부터 자꾸 이렇게 학교 와서 아침 첫 시간부터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있어요 선생님이 한두 번 보다가 어디가 아픈가 보다. 하고 했는데 자주 그런 일을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화가 났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술 냄새가 나요 이 선생님이 충격을 받았어요 이야 이 아이가 이렇게 모범생인 아이가 술을 먹다니 그것도 아침부터 술을 마시다니 이건 도무지 학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번 다구쳤지만 울기만 하지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할 수 없이 학생이 선생님께 실토를 했습니다. 선생님 저희 집에
아버지 안 계시고 어머니 아프시고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없어가지고 그동안 여러 나를 굶었습니다. 굶다. 굶다. 누가 그걸 가르쳐줘서 그 술공장 가서 술을 빼내고 남은 그 곡식 찌꺼기를 그거라도 먹으면 좀 배가 살 것 같아서 아침에 그걸 좀 먹고 오는데 그거 먹고 오면 이렇게 자꾸 어지럽고 술이 취한 것 같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그 겉으로 나타난 행동만 봐가지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알고 나면 그렇게 비난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이러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 의해서 내 개인적 주한 판단에 의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게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자는 자기 자신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남들의 감정이 곧 그의 감정이다. 그는 선에는 선으로서 대하며 악에 대해서도 선으로 대한다. 정말 훌륭한 사람 다듬어진 사람은 자기 감정을 갖지 않고 매사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입장과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3절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우리는 현미경을 가지고 관찰합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해서는 마원경을 가지고 봅니다
자기의 큰 실수는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적은 실수를 가지고 따집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복음 23장 34절에 사랑이 뭔지 이해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서 지금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향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이다. 자기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한 그리스도의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이해를 넘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해와 용서라는 것이 일시적인 감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합니다
진정한 이해와 용서에 바탕은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가질 때 우리는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굉장히 고상한 높은 이상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는 좀처럼 잘 실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바로 이 사랑을 실천하고 연습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전반에 걸쳐서 사랑을 연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훈련 연습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어떤 특수한 개인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사랑을
만인을 사랑하고자 하는 정신 상태가 사랑입니다. 그러한 상태에 들어갈 때 정말 내가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그것이 내가 과연 하나님께 속했느냐 인간에게 속했느냐를 결정하는 단서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3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더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그 모습이 그 사랑하는 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면서 사람들이 저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출입하는 모든 새로우신 분들이
이 교회의 분위기와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느끼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은 희생과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정서적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은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은 열매와 결실이 맺히는 것입니다. 여기 마태복음 오장 39절로 4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 밤을 치거든 맨 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선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거듭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심리를 동행하고 내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내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이것은 행동으로 보여지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사에 희생하고 양보하고 손해 보며 살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희생이나 양보나 손해 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돈을 쓰고 난 다음에 손해 봤다고 생각합니까 아깝다.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어떤 재물을 쓰거나 수호를 하거나 헌신할 때 우리는 그것을 보람으로 생각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생각하지 그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사업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 힘들거나 부담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들을 위해서 밥을 짓고 빨리 하는 일이 결코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이라도 사랑이 식어지면 그들을 위해서 하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고 짜증스러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서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을 위한 우리의 모든 희생과 양보와 손해는 우리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 기쁨 속에 놀라운 에너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배운 사랑의 본질은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생명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아낌없이 내버리셨습니다. 여기 또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여기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을 잘 안 밝힙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밝히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평소의 생각 때문에
그 말에 대한 그 감화력을 소멸시켜버려요 자기가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의 이름이 나와서 말이 나오면 그 말이 아무리 좋아도 싫어합니다. 그래도 제가 누구라고 말은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그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말의 내용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에요 항상 우리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내용이 오르냐 그르냐가 문제지 그 말을 한 사람이 좋으냐 싫으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항상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이 사람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베푸는 자에게 정신적이며 내면적인 기쁨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 생활을 무상의 기쁨으로 만들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잘 들으셨습니까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배푸는 사람이 사랑을 배푸는 사람에게 그러한 기쁨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글도 있습니다. 신은 우리를 사랑을 주는 구조물로 만들었다. 사랑을 줄 때에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
세상은 우리의 행복이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된 생각이며 그러한 생각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행복은 사랑 받음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받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남들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늘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으로 얻는 기쁨과 행복을 체험적으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줄 때에 거기에 놀라운 생명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생물입니까 무생물입니까 어려운 질문입니까
태양이 생물입니까 무생물입니까 생물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데 이상하게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태양 빛이 그 속에 살게하는 생명력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태양빛이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 못 삽니다. 식물은 다. 죽습니다. 짐승도 조만간 다. 죽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생물이지만 태양광선 그 속에 생명력이 들어 있듯이 사랑이 무슨 생명이 있는 물체는 아니고 생물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사랑이 쏟아지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이상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치료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1993년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이러한 실험을 하게 됐습니다. 흰쥐를 세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한쪽에는 한 마리만 집어넣어서 자기가 스스로 음식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다섯 마리를 집어넣고 동료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게 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동료들과 사람이 직접 먹이를 집어넣고 먹이를 먹여주고 쓰다듬어주고 이렇게 했어요 결과는 이렇게 나왔습니다.
혼자 밥을 먹던 쥐는 600일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거의 같은 상태로 출발했어요 동료들과 어울려서 함께 음식을 먹던 쥐는 700일을 살았습니다. 동료들의 사랑과 사람이 이렇게 쓰다듬어주고 먹여 주던 쥐는 950일을 살았습니다. 똑같은 조건인데 사랑과 정이 포함된 음식을 먹은 쥐는 오래 살았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랑 속에 뭔가 우리가 헤어려낼 수 없는 에너지와 생명력과 치유력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무뚝뚝하고 그러나 성실한 남자가 나이가 돼서 결혼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나갑니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워낙 말이 없어가지고 잘 저녁 먹고 경상도 사나이가 집에 돌아오면
“먹자.” “자자” 두 말하면 된다고 그러더니 저녁 묵자 자자 그러고 이제 끝난다고 그러는데 이 남자가 별로 말이 없었습니다. 아주 사람은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집안이 뭐 다. 넉넉했습니다. 워낙 성실하게 일을 하니까 결실이 풍성하고 집 안에 아무 걱정이 없는데 이 여자가 병이 들었습니다. 증세가 꽤 심각해서 병원에 가면 아무런 병명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또 그냥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너무 심각해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어요 근데 의사가 이게 이게 무슨 마음에서 온 병이지 육체적 병이 아니다. 해가지고 서서히 이제 유도를 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까 사랑 결핍증이에요 사랑 결핍증 남자가 말썽 부리고 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닌데
사랑의 표현을 못하여서 그게 굶주려가지고 병이 된 것입니다. 근데 이 말은 하지 않았어요 작전을 썼습니다. 남자를 불렀습니다. 당신 아내를 사랑하십니까 아예 사랑합니다. 근데 아내가 지금 병이 심해서 수요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당신 피검사를 좀 해보고 피가 맞으면 아내에게 피를 좀 줄 수 있겠습니까 아이고 물론이죠 피 검사 형식상 했겠죠
그리고 이제 피를 넣게 됐습니다. 근데 이제 이 아내가 이제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아마 했는지 아내가 이렇게 잠이 들어 있고 남자는 이제 옆에서 자기 혈관에 피를 하나 꽂고 그다음에 의사는 부인에게도 꽂기 꽂았지만 그건 헛꽃을 꽂아놓고 그 피는 다른 병에다가 이제 뚝뚝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널 필요가 없는 병이니까 여자가 이렇게 눈을 떠보니까 남자가 옆에서 같이 누워 있어요 당신이 웬일이에요 당신에게 피가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내 피를 좀 주러 왔다고 그랬더니 여자가 눈이 똥글해졌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 나를 사랑해요 사랑하지 그 순간부터 그 여자의 병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건강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놀라운 에너지가 들어 있어요 우리가 피차 간의 사랑을 주고받을 때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건강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갖지 않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도들 간에 진정한 사랑이 오고 가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성경 절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굳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부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을 깊이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오.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하리라 천국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사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 다. 사랑을 배우십시다. 그리고 함께 천국에서 만나서 영원히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