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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출생에서 성장까지(BC 5년 가을 ~ AD 27년 가을)
▣ 나사렛(Nazareth)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 산간 지방을 거쳐 북으로 약 134km지점에 있고, 텔-아비브(욥바)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10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물을 포도즙으로 만드신 가나가 이곳으로 부터 약 6km 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 380m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인구가 약 44,800명 정도인데 대부분이 아랍인들이고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이들 관계는 모든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바램이 되고 있다.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동네는 분리되어 있는데 윗 동네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아래에는 아랍인들이 산다. 옛 아랍인들이 거주할 때는 80%가 기독교인이었으나 유대인들이 들어오고 인구가 늘면서 현재는 39% 정도가 기독교인들이다.
이곳은 요셉과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수태를 고지(告知)받은 곳이며 헤롯을 피해 애굽에 갔다 돌아온 요셉과 마리아가 이곳에 정착함으로서(마 2:23; 눅 1:28, 2:4, 39) 예수님은 이곳에서 성장하셨다(막 1:9; 눅 4:16). 예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신 후 나사렛을 방문하여 회당에서 메시야임을 선언하셨으나 배척 당하였다(눅 4:28~31, 13:54~58, 막 6:1~6). 현재 이 마을은 감람나무와 잣나무가 우거져 있으며, 마을에는 교회가 산재해 있어서 예수님의 고향답다는 평을 들을만하다. 매우 번화하여 교통 체증이 심하고 가게 간판들은 아라비어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교류를 증명해 주고 있다.
▣ 성 수태 고지 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
성읍 중앙부의 동쪽 끝에 있으며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해 준 장소(눅 1:26~38)에 세워진 가톨릭 프랜시스코파 교회이고, 현재 성지에 있는 교회 중 최대이다. 1955년 건축을 시작하여 1969년 완성되었는데 이태리 건축가 죠반니 무치오(Giovanni Muzio)가 설계한 것이다. 동편에는 1099년 십자군 시대의 벽이 보이는데 돔은 마리아의 순결을 나타내기 위해 백합꽃 모양으로 지어졌다. 교회 지하층에는 마리아가 살던 곳이라고 하는 장소가 있는데 정면에는 라틴어로 “여기서 말씀이 육신으로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교회 담에는 각 나라들이 보내온 수태고지의 그림들이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각기 자기 나라 사람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우리 나라 공주사대 이남규 교수가 그린 것도 있는데 마리아가 한복을 입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 예수께서 우리나라에서 탄생하셨다면 이런 모습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을 것이다.
▣ 마리아 방문 교회(Church of the Visitation)
예루살렘 서쪽 끝 부분에 속하는 아인-케렘(Ein Karem)에 있는데 “아인”은 우물이고 “케렘”은 포도밭이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산중에 있는 유대 한 동네”(눅 1:39)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도 층계식으로 된 옛 포도밭 터들과 시원한 물이 솟아나는 우물들을 볼 수 있으나 현재는 예술인 마을로 변해있다.
이 교회는 마리아가 침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지은 것이다(눅1:39~56). 교회가 세워진 곳은 침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와 그 아내 엘리사벳의 여름 별장 자리였다고 한다.
이충으로 된 교회 아래층은 1862년에 지어 졌고 위층은 1955년에 건축되었다. 아래층 교회에 들어가면 정면에 동굴이 있고 그 안에는 우물이 있다. 그리고 한쪽 벽에는 직경이 약 80cm되는 원판형 돌이 있는데 이 돌은 헤롯 대왕이 두살 이하의 남자 아이를 죽일 때에 침례 요한이 숨어 있던 동굴을 막았던 돌이라 전해 온다. 교회의 세 벽에는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장면과,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장면, 군인들이 남자 아이들을 잡아 죽이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 마리아의 찬송
교회 마당 벽에는 눅1:46~55에 나오는 마리아의 찬송이 45개국 이상의 말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말로 된 것도 맨 윗 부분에 걸려 있다.
▣ 침례 요한 탄생 교회(The Church of St. John the Baptist)
아인 케렘에 있는 이 교회는, 말라기 이후 첫 선지자인 침례 요한이 태어난 동굴 위에 세워졌다(눅 1:57~80). 이 자리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주후 5세기인데 현재의 바닥 밑에 그 유적인 모자이크 바닥이 보존되어 있어서 바닥 일부를 열어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교회의 제단 북쪽에 침례 요한이 태어났던 동굴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이 시작하는 곳 위에 아취가 있고 이 아취에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 보사 속량하시며(눅1:68)”라는 성구가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 동굴이 나타나는데 동굴 정면에는 작은 제단이 있고 그 옆에 있는 대리석 판에는 “여기에 구주보다 앞서 온 자가 태어났다”고 라틴어로 기록되어 있다.
▣ 베들레헴(Bethlehem)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성 욥바문에서 약 10km 남쪽 지점에 있고 해발 777m의 유대 지방의 한 산악 지방에 속하며 현재 약 25,000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이다. 이곳이 성경에 처음 언급된 것은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오던 중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어 장사될 때이다. 그리고 사사기 19장의 비극적인 사건이 기록될 때 이곳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 곳은 후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의 고향이며 다윗이 어렸을 때 양을 치던 곳이 베들레헴 주위 유대 지방이다. 또한 룻기의 보아스의 밭이 베들레헴 옆에 있는 벧자훌에 있다. 미 5:2에 이곳이 메시야의 탄생지로 예언되었고, 예수께서 이 마을 한 마굿간 구유에서 출생하셨다(눅 2:1~7).
▣ 라헬의 무덤
라헬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데 창 35:19에는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예수님 탄생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이 교회는 예수께서 탄생하신 마구간 위에 세워졌는데 주후 339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다. 그러나 약 200년 후 민란 때 파괴되었다가 6세기 경 유스티니안 황제에 의해 재건 되었는데 그 때의 모자이크 바닥이 아직도 남아 있다. 현재의 건물은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다시 지은 것인데 현재는 희랍 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 겸손의 문
구유의 광장이라고 불리는 넓은 광장을 지나 교회 입구에 도달하면 탄생교회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문의 높이가 1.2m, 폭이0.8m 밖에 되지 않아 일명 “겸손의 문”이라고 불린다. 이 문은 십자군 당시 아랍인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교회에 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작게 줄였다고 하는데 그 후로는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장소를 방문하려 할 때는 반드시 겸손히 머리를 숙인 후에야 가능하게 되었다.
서기 1100년 크리스마스날, 이 교회에서는 이색적인 왕위 즉위식이 거행 되었다고 한다. 십자군이 성지를 점령한 후 예루살렘 기독교 왕국이 수립되었을 때 첫번째 왕인 볼드윈 1세는 예루살렘이 아닌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루살렘에서 인간의 왕이 황금 왕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 탄생교회 내부
좁고 낮은 문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11개의 돌기둥이 양편에 둘씩, 모두 4줄로 늘어선 바실리카 형태의 교회 내부가 나타난다. 교회 내부에는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대리석 돌계단이 있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 가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작은 동굴이 나타난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은 동굴 외양간이었다고 한다.
▣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
예수님이 탄생하신 동굴 바닥에는 은으로 만든 별 모양의 장식이 아기 예수의 탄생 지점을 알려준다. 그 옆에는 말 구유 제단(The Holy Manger)이 있는데 구유는 마초를 두던 곳으로 추정되며, 말 구유 제단 옆으로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예수께 경배하던 자리에도 세 동방박사의 제단을 만들어 놓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곳 옆에는 유명한 고행주의자요, 성자로 일컬어지는 제롬이 30년간 은거하며 주후 400년경 벌게이트(Vulgate)라는 라틴어 성경을 번역해낸 방이 있다. 탄생교회 옆에는 가톨릭 교회에 속하는 성 캐쓸린 교회가 있는데 성탄절 전야의 베들레헴 예배가 바로 이곳에서 드려진다.
B. 초기봉사(AD 27년 가을 - 28년 봄)
▣ 요단강
요단강은 사철 눈이 녹지 않는 헬몬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를 거쳐서 사해까지 이른다. 갈릴리 북쪽의 강을 북 요단강, 남쪽의 강을 남 요단강이라고 부른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까지 직선거리 104km를 구불 구불 굽이쳐 흐르기 때문에 그 총 길이는 256km 가 되며 평균 폭은 약 30m 이다.
▣ 시험산(The Mt. of Temptation)
여리고의 엘리사의 샘에서 옛 여리고인 텔술탄을 넘어 서쪽으로 바라보면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산이 보인다(마 4:1~11).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요단강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있다. 해발 600m이며 산 중턱에는 1896~1904년에 완성한 동방정교 수도원이 있다. 예수께서 첫번째 시험에서 승리하신 후 약 30km 떨어진 예루살렘에 이끌려 가셔서 두번째 시험을 받으셨다.
▣ 가나(Cana)
가나는 나사렛에서 티베리아로 가는 길의 약 6km지점에 있다. 현재 동네 이름은 크활 가나(kefar-kana)라고 한다. 가나 동네에는 아랍 기독교인들과 러시아에서 온 회교 인들이 주로 산다. 이 동네에는 몇 개의 교회가 있는데, 그 중에 동네 가운데 있는 천주교 소속의 교회가 가장 오래된 유적을 가지고 있다. 이 교회 안에 있는 한 모자이크 바닥은 주후 3세기경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고 지하실에는 옛 포도주 항아리가 있다. 가나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장소인 것은 예수께서 가나 동네에서 있었던 혼인 잔치 집에서 어머니인 마리아와 참석 했다가 제일 첫 번째 이적을 베푸신 곳이기 때문이다.(요2:1~11)
또한 이곳에서 가버나움에 병들어 있는 아이를 말씀으로 고치신 이적을 베푸셨다. 안내인에 따르면 전에는 기독교인이 주민의 70% 였으나 지금은 30%이고,나사렛동네 사람들 처럼 회교인과 기독교인 사이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C. 유대에서의 봉사(AD 28년 첫번째 유월절 - AD 29년 두번째 유월절)
▣ 예루살렘 성전(황금사원)
옛날 성전이 있던 장소이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산이다(창22:2). 이 모리아산의 이름은 그 어원이 두가지로서, 한가지는 “경외”의 뜻인 “모라”이고 다른 한가지는 “빛”이라는 뜻의 “오라”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브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대하3:1)”. 모리아산은 해발 744m이며 동쪽에는 기드론 골짜기가 있고, 서쪽에는 치즈 골짜기가 있다. 지금은 솔로몬의 성전터 위에 회교의 높이 54m 8각형 돔형태의 건물이 들어 서 있다. 가운데 돔의 직경이 23.7m이다. 이 안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렸던 바위가 있다.
현재 이곳은 회교도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는데 바위 위의 움푹 파진 곳은 마호멧이 승천한 자리라고 하며 아브라함이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삭이 아니라 장자인 이스마엘을 드렸다고 주장한다.
▣ 베데스다 못 (BETHESDA POOL)
이 못은 예루살렘성의 동쪽 문인 스데반 문에서 약 80M 성안으로 들어온 곳이고, 모리아 산의 성전 뜰 문인 지파문에서는 약 100M 북서쪽에 있다.
이 못은 현재 성 안네교회(THE CHURCH OF ST. ANNE)의 마당에 있기 때문에 교회 뜰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 안네 교회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태어난 곳의 기념교회로 마리아의 어머니인 안네의 이름을 딴 교회인 것이다.
베데스다 못은 안네 교회 건물에서 서쪽에 있는데, 현재는 못이 흙으로 거의 메워져 있고. 단지 북쪽의 못의 한 부분에서 약간의 물을 볼 수 있다.원래 이 못의 길이는 120M나 되는 긴 못으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베데스다 못에서 예수께서는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치셨다(요5:1~9). 예수님 당시에는 이 못 가까이에 양문(Sheep Gate)이 있었다. 이 양문 밖은 성전에 제물로 바칠 짐승, 특히 양을 사고 팔던 곳이다.
D. 갈릴리 봉사(AD 29년 두번째 유월절 - AD 30년 세번째 유월절)
▣ 가버나움(Capernaum)
갈릴리 북쪽 해변에 있는 동네로 지금은 유적만 남아있다. 이 곳은 예수께서 나사렛 동네를 떠나서 사신 곳(마 4:13)으로 “예수님의 본 동네”(마 9:1)라고 기록되어 있다. 회당 터가 남아 있는데 예수께서 바로 이 회당에서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고(막 1:21~28) 오른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다(마 12:9~13). 회당 남쪽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마 8:14,15) 베드로의 집터가 있다. 이 집에서 지붕을 뚫고 내려온 중풍병자도 고침을 받았다(마 9:2~8).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을 고친 곳도 이곳이다(마 8:5~13).
▣ 회당과 베드로 집터
현재 가버나움에는 동네가 없고 주후 2~3세기 경 지어진 회당의 유적과 베드로의 집터가 유적지로 보호되고 있는데 회당을 지었던 돌들에는 바퀴달린 법궤가 새겨져 있고, 일곱 촛대, 포도송이, 기름틀과 맷돌, 종려나무, 다윗의 방패 조각들이 유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 갈릴리 바다(The Sea of Galilee)
성지 이스라엘에서 자연 경관이 가장 수려한 곳은 갈릴리 호수지역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50km북쪽에 있는 갈릴리 바다는 오랜 역사동안에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 왔는데 구약 시대에는 긴네렛(민34:11; 수13:27) 혹은 긴네롯(수12:3)이라고 했다. 그것은 갈릴리 바다가 하프(harp)같이 생겼다고 하여 히브리어의 “하프”인 긴놀(Kinnor)에서 따온 것이다. 신약에서는 갈릴리 해변(마4:18;)디베랴(요6:1)와 게네사렛(눅5:1) 등으로 나온다.
갈릴리 바다는 해저 280m이고 주위의 산들이 갈릴리 바다 수면보다 약 400m 이상 높이로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겨울에 춥지 않아 휴양지로 좋다. 특히 동쪽은 해발평균 1000m나 되는 골란 고원이다. 갈릴리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21km동서의 폭(넓은 쪽)이 14km,넓이는 170km2나 된다. 호수 둘레는 약 50km이다. 수심은 50~60m정도 이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께서 고기잡이 하는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부르셨고(마4:18~22; 막1:16~20; 눅5:1~11) 산상보훈,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르치셨으며(마13장, 5장)이며, 광풍을 잔잔케 하셨고(마8:23~27),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었다(마14:22~33).
현재 갈릴리는 이스라엘 전역에 물을 공급하는 생명줄로, 갈릴리 바다 서북쪽 언덕 위에서 끌어 올린 물을 남쪽에 있는 네게브 사막의 브엘세바까지 공급하고 있다.
▣ 디베리아(Tiberias)
갈릴리 바다의 서쪽 중간 지점의 해안에 현대 갈릴리 지방의 중심 도시로, 좋은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인구는 약 28,200명이다. 이 도시는 헤롯 안티파스가(침례요한의 목을 벤 헤롯) 건설하였고 그 당시의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 이름을 지었다.
▣ 막달라(Magdala)
디베리아에서 북쪽으로 약 6km지점의 해변으로,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이며 막달라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자로 예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심으로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닌 사람이다(눅8:2~3).
▣ 팔복교회(The Church of the Beatitudes)
막달라에서 해변을 끼고 북쪽으로 6km 올라가면 타브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4km 정도 산 위로 오르면 산 언덕에 예수께서 팔복을 선언하신(마 5:1~12) 장소에 여덟 가지 복을 상징해서 세워진 팔각형의 팔복교회가 있다. 이 자리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주후 5세기였고, 현재 있는 교회는 1936년~38년에 세워진 것이다. 교회 중심부 위에 있는 둥근 천정 내부는 금색 모자이크로 메워져 있고 그 밑에는 여덟개의 유리창에 팔복이 라틴어로 하나씩 새겨져 있다. 이 교회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 사방을 내다볼 수 있는데 갈릴리 바다, 오병이어 교회, 베드로 교회가 있는 타브가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내려다 보인다.
▣ 오병이어 교회( The Church of the Multiplication)
팔복 교회에서 내려오면 갈릴리 호숫가에 세워진 또 하나의 유명한 교회에 도달하게 되는 데 이곳이 오병이어(五餠二魚)교회이다. 예수께서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5000명이상 먹인 곳이다. 교회 바닥에는 비잔틴 시대의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있다. 이 모자이크는 1930년 초 독일 고고학자들이 발굴하였다.
▣ 나인성
나인성은 모레 산의 북쪽 기슭에 있다. 나인성은 아풀라에서 약 7km 동북쪽으로 다볼산(Mt,Tabor)을 향해 가는 길 중간에 있다. 이곳은 예수께서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려주신 기쁨의 장소이다.
나인이란 이름은 히브리어의 “즐겁다”, “좋다”는 뜻을 나타내는 “나임”에서 나온 말이다.(눅7:11~17), 이곳에 기념교회가 서 있다.
E. 공중봉사에서 은퇴(세번째 유월절, AD 30년 - AD 30년 가을)
▣ 가이사랴 빌립보(바니야스, 마 16:13~20)
북 요단강을 거슬러 올라가 단의 약간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헤르몬산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물은 매 초에 20m3 씩 솟아나와 북 요단강으로 흘러간다. 처음 이곳에는 바알(Baal)의 신전이 있었고 희랍 통치 시대에 희랍의 신 중에 “목자들의 신”인 “판 신”(Pan god)을 섬기던 곳이어서 “파니야스”(Pameas)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랍인들은 “프”(P) 발음을 하지 못하고 “브”(B)로 발음하여 현재 바니야스라고 불리운다. 시내가 시작되는 언덕 옆에는 절벽에 판신의 동굴이 있고, 그 동굴 옆 절벽에는 신사를 모셔 두었던 벽감 세 개가 남아 있다.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의 통치 구역이었으며 빌립의 수도였기 때문에 가리사랴 빌립보로 불리웠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묻는 질문을 하셨고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고백이 있었다(마 16:13~20).
▣ 다볼산(Mount Tabor)
이스르엘 계곡의 북쪽 끝 부분에 있는 해발 588m의 산이다. 주위의 이스르엘 계곡보다 약 450m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네안데르탈인 시대부터라고 한다. 호세아 당시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그릇된 예배를 드렸다(호 5:1). 예수께서 이 산에서 사랑하는 세 제자가 보는 앞에서 변화되셨다(마 17:1~8). 이것을 기념하여 비잔틴 시대에 교회가 세워졌으나 1113년 터키군에 의해 파괴되고 교회를 지키던 수도승도 죽임을 당하였다. 그 후 십자군시대에 다시 큰 규모의 교회가 세워졌으나 13세기 아랍왕이 군사적 요새를 짓기 위해 허물었다. 정상에 도착하여 바람문이라는 돌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비잔틴시대 교회터와 십자군 교회터 위에 세워진 두 교회가 있다.
다볼산은 그 정상에서 사방이 멀리 까지 보이는 요새지 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 드보라와 바락이 하솔 왕의 군대를 이스르엘 계곡에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삿4장) 이스르엘 계곡이 진흙이어서(겨울 장마철 인 것 같음) 가나안의 병거가 움직이기 어려웠을 때에 이스라엘 군사 10,000명이 갑자기 다볼산으로 부터 내려와 가나안 군대를 진멸한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시대에는 유대인들이 이 다볼산에서 그릇된 예배를 드렸다(호5:1).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었던 변화산으로 중요성을 갖게 한다(마17:1~8;막9:2~8;눅9:28~36).
다볼산은 산의 둘레가 좁고 높이는 주위의 평지보다 약 450m나 높기에 길이 매우 심한 경사이고 29회 정도의 급커브가 있어 택시와 같이 작은 차만이 올라갈 수 있다. 다볼산 중턱에 있는 다브리야(Dabburiya)동네는 여호수아19:12에 나오는 다브랏 동네로 보고 있는데 이 동네는 예수님이 아이가 귀신 들어 고생하는 것을 고쳐주신 곳(눅9:37~43)으로 전해 오고 있다.
▣ 이스라엘의 화폐(세겔)
성서에 나타난 최초의 주화는 에스라 2:69에 나오는 주화로 주전 6세기에 나온다. “다릭”은 금화이고 마네는 은화이다. 그 뒤 주전 4세기에 희랍식 주화인 은화를 만들어 썼다.“유대”라고 새겨져 있다.
주전 110년경 나온 최초의 순수한 유대인 주화는 청동화 인데 십계명의 제2계명을 지키기 위해 이전에 사용하던 황제의 두상대신 글자를 새겨 넣었다.
성경에 자주 나온 주화는 로마의 “데나리온”은화이다. 이 주화는 공세를 바칠 때 사용되었다(마22:21), 동전에 티베리우스 가이사의 두상이 새겨져 있다. 그밖에 주화는 “세겔”은화가 있고 주화에 성전에서 사용하던 잔 모양이 새겨져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화폐의 단위도 역시 세겔이다. 하지만 전에 사용하던 것과 구별하기 위해 새 세겔(New Shekel)이라고 한다.
F. 사마리아와 베레아에서의 봉사(AD 30년 가을 - AD 31년 유월절)
▣ 여리고(Jericho)
여리고 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약 35km 되는 지점에 있는 오아시스이다. 여리고는 사해 북단으로 부터 약 10km북쪽이고 요단강으로부터는 약 7km서쪽 요단 계곡에 속해 있는 해저 250m되는 곳이다. 여리고는 낮은 지역이라 여름에 매우 덥다. 그러나, 겨울에는 춥지 않아 겨울 별장들이 많고, 엘리사의 샘으로부터 충분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어서 옥토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종려나무, 바나나, 오렌지, 향료, 등의 열대성 식물이 많이 자란다.
현재는 이스라엘의 점령지로 약 10000명의 아랍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삭개오를 만나 구원하셨으며 두 소경의 눈을 고쳐 주셨다(마20:29~34).
▣ 베다니 마을(Bethany)
베다니 마을은 감람산 동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예루살렘성에서 약 5리가 된다고 요한복음 11:18에 있고, 희랍 성경에는 15스타디아(약 2.7
km)라 했는데 새로 만들어진 자동차 길은 돌아가기 때문에 약 5km가 된다. 베다니 마을은 현재 아랍인들이 사는 동네이고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점령지에 속하는 곳이다. 그러나 관광객들을 태운 차가 지나면 아랍인들이 돌을 던진다하여 관광코스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구약 시대에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머물던 동네 중 한 곳인 아나냐로 나온다(느 11:32). 베다니 마을은 신약 성경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베다니 언덕 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는 문둥이 시몬(마26:6~16)의 집은 그 자리가 아직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 나사로 교회
베다니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가에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가 살던 집터에 나사로 교회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 귀한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어 드리던 사건(마 26:6~16; 요 12:1~11), 마리아가 언니 마르다의 식자 준비도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청종하던 일, 죽은 나사로가 사흘만에 부활한 사건들이 있었던 곳이다(요11:38~44).
▣ 나사로의 무덤
나사로의 무덤은 나사로 교회에서 약 20m북쪽에 있으며 무덤의 입구로 부터 24계단 밑에 사방 3m정도의 방이 나오고 그 방에서 허리를 굽히고 3계단을 더 내려가면 사방 2m 정도의 조그마한 방이 있는데 이곳이 나사로가 죽어 있을 때 누워 있던 곳이다.
▣ 삭개오의 뽕나무
현대 여리고의 북쪽에 삭개오의 뽕나무(신번역-돌 무화과 나무)로 기념되고 있는 나무가 있는데 그 키가 10m가 넘는다. 그 나무의 잎은 뽕나무와 같이 생겼고 열매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 나무로, 무화과 나무 종류로 품종이 좋지 않은 과일을 맺기에 돌 무화과라고 하는 것이 나무를 보아 맞는 말이다(눅19:1~10)
▣ 기혼샘(The Spring of Gihon)
옛 다윗성의 동쪽인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샘이다. “기혼”이란 “넘쳐 나오는 샘”이라는 뜻이다. 샘의 입구에서 약 20계단을 내려가면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계속 흘러 나온다. 이 샘 하나만으로도 약 2500명이 살아갈 수 있다.이 기혼 샘은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된 곳이다.
(왕상1:38~39)“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 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 만세를 부르니라.”
히스기야왕이 다윗성에서 물길이 먼 기혼 샘으로 부터 굴을 파서 다윗성 밑을 통과 하여 성의 남쪽 성문에 가까운 실로암 못까지 연결 했는데(대하32~30) 그 수로(533m)를 “히스기야 터널”이라고 하며, 지금도 항상 시원한 물이 허리 정도의 높이로 흐르고 있다. 이 터널을 통과 하려면 등을 준비하고서 그 수로를 따라 30분 정도 터널을 걸으면 통과 할 수 있다. 굴의 폭은 한 사람이 넉넉히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이고, 높이는 낮은 데는 허리를 조금 숙이고 지나야 하는 곳에서부터 약 5m 정도 높은 곳도 있다. 현재 아랍 사람들 지역에 있기 때문에 성지 관광 코스에서 빠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꼭 한번 다녀오면 깊은 인상을 얻을 수 있다.
▣ 실로암 못(The Pool of Siloam)
기혼 샘에서 나온 물이 히스기야 터널을 따라 실로암 못에 모인다. 이 못은 옛 다윗성의 남단에 있는데 현재는 못의 주위가 돌로 쌓여서 그 일부분만 볼 수 있기에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줄어들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요9:1~12).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의 히브리어이다.
▣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The Inn of the Good Samaritan)
예수님의 강도 만난 사람에 관한 비유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여관 터가 예루살렘에서 사해나 여리고로 가는 길의 거의 중간 지점에 있다. 길 오른 쪽에 돌로 된 울타리가 있는데 이곳에 처음으로 교회가 선 것은 비잔틴 시대이고 지금 남아 있는 울타리는 십자군 시대의 것이다.
▣ 주 기도문 교회(The Church of Pater Noster)
예수님 승천하신 곳에서 남쪽 산등성으로 약 100m되는 지점에 있는 교회로 현재 교회 벽에는 우리 말을 비롯하여 80개 이상의 말로 주기도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예수께서 눅 11:1~4의 기도를 가르치신 곳으로, 또한 잡히시기 전 유월절 이틀 전에 제자들에게 “세상의 끝”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치신 곳(마 24:3~26:2)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파테르 노스테르 교회」라고도 하는데 주기도문의 첫 글자인 “우리 아버지”의 라틴어 발음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곳에서 약 100m 떨어진 지점에 있는데 주후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이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감람산 동굴 위에 폭 30m, 길이 65m나 되는 큰 교회를 짓게 하였다. 그 후 614년에 파괴되었다가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 재건되었고, 다시 회교도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875년 프랑스 왕족과 결혼한 한 여인의 집념어린 노력에 의해 까르멜 수녀원과 함께 현재의 교회가 재건되었다.
예수께서 주 기도문을 가르치신 곳은 현재의 교회 옆에 붙어 있는 동굴 속의 예배소라고 하며 그 동굴에는 예수님 당시에 쓰이던 아람어로 주기도문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이 동굴은 초대교회 교인들이 숨어서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린 장소라고 하며 교회 안에는 약 80여개의 언어로 기록된 주기도문이 있는데 우리나라도 가톨릭 부산교구에서 보낸 주 기도문이 걸려있다.
산상보훈 147(1981년)에 의하면 예수께서 주 기도문을 가르치신 것은 두 번인데 첫 번째는 산상보훈을 가르치실 때이고 두 번째는 몇 달 후 오직 제자들만 있을 때이다. 두 번째 기도를 가르치실 때의 시기와 장소는 분명치 않으나 누가복음 순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베다니에 있는 마리아 집을 방문한 직후(눅 10:38~42)이다. 재림교 성경주석(영문) 5권 199쪽에 있는 「복음의 조화 A Harmony of The Gospels」 도표에 의하면 예수님은 베다니의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후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수전절에 참석하셨다. 그리고 유대 동편 베레아로 가셨다가 다시 베다니로 돌아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후 에브라임으로 물러가셨다(SDABC 223, 지도 참조). 누가복음 11장의 주의 기도문은 예수께서 베다니의 마리아의 집을 방문한 이후로부터 나사로를 살리시기 이전에 가르쳐졌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아니면 아마도 베다니에 계실 때 가르쳐졌을 것이다(SDABC 788). 「복음의 조화 A Harmony of The Gospels」에서는 베다니에 있을 때로 배열하였다.
▣ 사해(The Dead Sea)
예루살렘 동쪽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가면 해면(Sea level)이라고 쓴 표지판이 나온다. 이곳부터는 바다면 보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계속 내려가다 보면 해면 보다 398m나 낮은 사해가 나온다.
사해는 남북의 길이가 75km, 둘레가 200km이고, 동서의 폭은 긴 곳이 18km, 넓이는 950km2이다. 사해의 염도는 25%로 보통 바다보다 7~8배가 높아 어떤 물고기도 살 수가 없다. 사람이 들어가 누우면 손을 젖지 않고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둥 둥 뜬다.
현재 사해 주변에는 병원 겸 호텔이 많이 들어서 있는데 이는 피부병 환자들이 이곳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바다에서는 각종 광물질이 많이 생산되고 있어서 오늘날은 보물창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여기서 나는 진흙과 비누는 피부 미용에 좋다고 하여 세계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G. 유월절 주간(네번째 유월절, AD 31년)
▣ 감람산(Mt. Olives)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인데 히브리어로 하르-하제이트(Har Hazait)라고 부른다. 해발 약 800 m 정도이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작은 산맥의 남단 부분을 말하고 북부로는 핫소핌 산이 있어 그 위에는 히브리 대학이 50년 전에 세워져 유대 민족의 고등교육을 맡아온 요람지가 되었다. 예루살렘보다 약 90m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 올라서면 예루살렘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 산에 자주 와서 명상과 기도를 하셨으며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시기도 하였다. 수난 주간 첫날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벳바게와 베다니를 지나 이 산을 넘어 금문을 통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고(눅 19:28) 예루살렘 입성 후에도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이 산에서 쉬셨다(눅 21:37)
▣ 벳바게(Bethphage)
벳바게는 감란산 동쪽 부분의 한 산등성이에 속한다. 벳바게는 여리고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 때에 거치게 되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이곳을 지나가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에 벳바게는 그 출발점이었다(마 21:1~11, 막 11:1~11, 눅 19:28~40). 또한 마르다가 나사로를 살리러 오시는 예수님 마중 나간 곳이기도 하다(요11).
▣ 예수님 탄식 교회(The Chapel of Dominus Flevit)
성전이 똑바로 건너다 보이는 감람산의 중턱에 아름 다운 검은 색 지붕을 가진 작은 예배소가 예수님 탄식 교회이다. 그리고 이곳의 정원은 그늘에 모여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고, 가까운 거리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볼 수 있어 매우 깊은 감명을 준다. 이곳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최후를 생각 하시고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신 것을 기념하여 교회를 세운 것이다.
(눅19:41~42)“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마23:37~38)“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처음 교회는 주후 5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현 교회는 1955년에 아름답게 다시 지은 것이다. 검은 색의 지붕 네 귀에는 항아리모양의 조각이 얹혀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눈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교회 안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다보는 쪽에 제단이 있는데, 제단의 모자이크는 암탉이 여러 마리의 병아리를 품고 있는 그림이다. 제단을 넘어 창을 통해 예루살렘 성을 보게 되면 회교의 성전인 황금색의 둥근 지붕이 정면에 보인다. 아마 예수님께서 바로 제단자리에 서 계셨더면 성전이 이렇게 가까이 보였을 것이다. 이교회의 창살의 무늬는 매우 아름다운데 그 모양은 예수님의 가시관을 상징하는 것이다.
▣ 성만찬 장소 - 마가의 다락방
(The Upper Room, The Hall of the last Supper, The Cenacle)
시온산에 있는 이 다락방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곳이다(눅 22:7~38). 다락방의 크기는 마가복음 14:15에 큰 다락방이라 하였고, 사도행전1:15에 의하면 약 백이십 명이 모일만한 방이었다. 예수께서 부활 후 나타나셔서 손과 발을 보이시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신 곳(눅24:33~43), “오순절날 성령 충만함을 받은 곳”이다. 그러므로 이 다락방을 “교회의 시작” 혹은“교회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the Church)"라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4세기에 천주교에서 사이프러스의 예술가와 협조하여 세운 것이다. 이 다락방은 성경에서와 같이 위층에 자리한 방으로 그 크기는 가로가 15.3m이고 세로가 9.4m이며 14세기 건축양식인 고딕식의 창문이 있다. 이 다락방에서 동쪽 벽에 붙어 있는 8개의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조그마한 방이 두개 나온다. 그 중에 동남쪽에 있는 방은 기도실로서 오순절에 성경이 강림하셨던 것을 기념하는 방이다.
▣ 다윗의 무덤(The Tomb of David)
시온산에 있는 다락방과 같은 건물인데 이것은 아래층이다. 이 다윗왕의 무덤은 유대인이 관리하고 있는 성역이므로 방문객은 유대교 식으로 모자를 쓰고 방에 들어가야 하고, 여자는 어깨가 나오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한다.
▣ 겟세마네(Gethsemane)
“겟세마네”라는 이름은 “기름을 짠다”는 뜻의 히브리어이고, 이곳은 예루살렘성에서 스데반문으로 나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넌 후 감란산이 시작되는 초입이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예루살렘 성내에서 드시고(눅 22:10), 다같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동산에 들어 가셨는데(요18:1), 그곳은 감람산에 있는(막 14:26, 눅 22:39) 겟세마네 동산이고(막 14:32),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던 곳으로, 예수를 판 가룟 유다도 아는 곳이었다(요 18:2).
겟세마네에는 중심부에 예수님이 피땀 흘려 기도하신 정원이 있고, 그곳에는 겟세마네교회(천주교회, 일명 만국교회)와 약간 언덕 위 동쪽에 러시아 정교회가 있다. 천주교회가 있는 곳에서 언덕 밑으로 돌을 던질만한 거리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졸며 예수님을 기다리던 곳이 있고,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의 무리에게 잡히셨다(눅 22:39~53). 이 자리에 동굴 식의 예배소가 있고, 그 동굴로 들어오기 전 북쪽 건물이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다.
▣ 겟세마네 동산(The Garden of Gethsemane)
(눅 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마 26:39)“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위의 성경에서 보듯이 예수님이 자기의 죽음을 앞에 두고 인간적으로 가장 괴로웠던 수난의 시간을 보낸 겟세마네 동산은 예루살렘성의 황금 문이 마주 보이는 곳으로 감람산의 초입이며 많은 감람나무가 우거진 곳이다.
이 겟세마네 교회(만국교회) 정원에는 2000년이 넘은 감람나무가 8그루 있는데, 이것들은 예수님이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돌이 교회의 제단 앞에 있다. 그 돌 주위에는 약 20cm 높이의 쇠 울타리가 가시나무 모양으로 되어있다. 처음 이곳에 교회가 지어진 것은 주후 390년경이고 그것이 614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무너진 것을 십자군시대에 다시 지었고, 이것 역시 무너진 것을 1924년에 새로 건축한 것이 현재 교회이다. 이 교회를 설계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바를루치(Barluzzi)인데 교회 건축에 상징적 의미를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교회는 4개의 돌기둥이 전면을 받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4권의 복음서를 뜻하는 돌기둥이다. 이 4개의 돌기둥 위쪽에는 복음서를 기록한 네 분의 전도자들, 즉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석상이 서 있는데 각기 자기들이 기록한 복음서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어서 순례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의외로 내부는 어둡고 컴컴하다. 다만 천장에 그려진 수많은 별들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다. 교회 내부의 어두움과 천장의 별들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던 그 깊은 밤을 상징한다.
▣ 겟세마네 동굴(The Cave fof Gethsemane)
겟세마네 동산에서 30~40m떨어진 곳에 동굴 하나가 있다. 입구의 높이가 약 3m, 길이가 약 15m 쯤되는 비교적 큰 동굴이다. 이 동굴을 겟세마네 동굴이라 부른다. 예수께서 기도할 때 제자들이 잠들었던 곳이라 한다. 교회 안에 정면 제단 쪽의 벽화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매우 슬퍼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림이다.
▣ 베드로 통곡 교회(The Church of St. Peter in Gallicantu)
이 교회는 시온산의 남쪽 언덕에 있어서 힌놈의 골짜기와 치즈 골짜기와 기드론 골짜기가 만나는 곳을 동남쪽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이다. 특히 피밭이라는 아겔다마를 내려다보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무리에게 잡히신 후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을 기억하게 하는 뜻으로 세워진 교회이다(막14:53~72).
실지로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집터는 이 교회보다 훨씬 북쪽인 시온문 바로 밖인데, 이곳에 기념 교회가 세워진 것은 이 교회 터에 예수님 생존시와 비슷한 연대인 헤롯 대왕 시대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마굿간, 물 저장소, 지하실이 있었기에 주후 333년경 기록에 의하면, 이곳을 가야바의 집터로 믿기 시작했으며 주후 457년에는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주후1010년에 하킴 왕에 의해 파괴된 것을 십자군시대인 1102년에 다시 세웠다. 그 후 1320년경에 다시 파괴된 것을 1888년에 발굴하여 1931년 9월 11일에 현재의 교회를 봉헌하였다.
이 교회에는 지하실에 예수님이 갇히셨던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굴과 예수님이 천장에 매달리셔서 고문을 받으셨던 것으로 알려진 고문 장소가 있다.
▣ 피밭, 아겔다마(Aceldama)
힌놈의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의 서쪽 언덕에 아겔다마라고 있는데 즉 “피밭”이라는 뜻이다(행1:15~19).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받은 은 30을 대제사장에게 돌려주었을 때, 대 제사장들이 그 돈은 피값이므로 성전고에 넣을 수 없다 하며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는데 (마27:3~10)그 밭을 산돈이 “피 값”이라 하여 그 밭을 피밭이라 한다.
현재 희랍 수녀원이 세워져 있다. 그 교회 내에 있는 큰 지하실을 “사도들의 동굴”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이 유다의 무리에게 잡히셨을 때 제자들이 이 동굴에 숨어 있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근방에는 토기장이의 밭과 그들이 토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동굴들도 있다.
▣ 성전 서쪽 벽(통곡의 벽)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1,2).
주후 70년 로마의 공격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이 멸망할 때 유일하게 남은 성전의 서쪽 벽으로 현재 유대인들의 성지이다. 바로 위가 성소가 있던 장소이나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던 장소라고 해서 통행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아랍인 지역으로 회교도들이 점령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 틈 사이에 그들의 소원을 기록한 쪽지를 끼워 넣고 기도하는데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직통 전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 십자가의 길, 슬픔의 길 (Via Dolorosa)
처음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신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예수님 무덤 교회가 있는 골고다 언덕까지로 라틴말로 “비아 돌로로싸”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이 길을 걸으신 날은 금요일이었다.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발길을 멈추는 14군데가 있다. 오랜 전통에서 생겨난 이 14곳의 장소에서 발길을 잠시 멈추고 그곳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읽고 머리 숙여 기도한 뒤 다음 장소로 옮겨간다.
▣ 예수님 무덤 교회, 성묘교회(The Church of Holy Sepulcher)
성묘교회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성지중의 성지가 되는 곳이다. 이 성묘교회는 비아 돌로로사의 종착점에 있다. 오늘날에도 예루살렘을 찾아온 성지 순례자들은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현재 이곳은 너무 웅장한 건물 때문에 옛 골고다 언덕과 예수님 무덤이 있던 동산과 같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곳 건물 역사를 보면 주후 135년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왕이 기독교인들을 모욕하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 위에 비너스 신전을 세우고 주피터 상을 세우고, 무덤 위에는 비너스의 제단을 지었다. 주후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십자가 고난의 장소인 골고다 언덕과 무덤을 찾으려고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헬레나가 이 비너스 신전의 지하실 물 저장소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매달리셨던 십자가를 발견하고, 아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부탁하여 그 자리에 교회를 짓도록 하였다. 황제의 명령으로 비너스 신전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성묘교회가 세워졌다. 이때가 서기 336년이다. 현재의 건물은 페르시아와, 이슬람교도들과, 애굽의 폭군 하킴에 의해 파괴된 것을 1048년에 모노마추스에 의해 재건되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전체적인 모양은 십자군 시대의 것을 보수한 것이다. 예수님의 무덤 교회의 관리는 여섯 교파가 공동으로 하고 있다. 교회입구로부터 약 7~8m내부의 정면 바닥에 침상과 같이 된 돌은 돌아가신 예수님의 몸을 내려 몸에 기름과 향료를 바르고 세마포로 몸을 감쌌던 곳이다. 교회 정면 입구에서 문 안쪽의 오른 쪽에 붙어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해골 언덕”이라는 뜻의 골고다 정상이다. “골고다”는 예수님 당시에 쓰던 아람어이고, 희랍어로는 “크라니온”(Kranion)이며, 라틴어로는 “칼바”(Kalva)인 것이 영어로 “갈보리”(Calvary)가 된 것이다. 현재는 성안에 이 교회가 있지만 예수님당시는 성 밖이었다.
H. 부활에서 승천까지(AD 31년 봄)
▣ 엠마오(Emmaus, Ammaws)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는데(눅 24:13~35) 아직까지도 그 엠마오 동네를 찾지 못하고 있어 학자마다 주장이 다른 네 곳의 엠마오가 있다. 이 네 곳은 모두 예루살렘 서쪽에 있다. 현재 엠마오로 이름이 되어있는 곳은 주전 2세기 경부터 중요지였고, 엠마오 동네로 알려진 것 중에서 역가가 가장 길고 많은 유적이 있었으나 예루살렘으로부터의 거리가 약 75리(약 30km)너무 멀기에 학자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장소이다. 이곳은 기브온을 지나 아얄론 골짜기를 거쳐 내려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간의 국도와 만나는 지점의 동북 코너인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옛 욥바, 현재 이스라엘 제일 큰 도시)로 가는 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차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
▣ 베드로 수위권 교회(St.Peter's Church, The Primacy)
이 교회는 타브가에 있고, 오병이어 교회의 바로 동남쪽에 있으며, 검은 색의 현무암으로 지어진 자그마한 교회로 갈릴리 바닷가에 붙어 있다. 이 교회는 예수께서 부활 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곳이다. 제자들과 같이 떡과 생선으로 아침 식사를 하신 곳이다.
(요 21:15~17)“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위의 말씀을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이기에 베드로 교회라고 부른다. 이 교회의 제단 앞에 있는 큰 바위를 “예수님의 식탁”이라 하여 부활 후 제자들과 같이 식사하신 것을 기념하고 있다.
▣ 예수 승천 교회(Chapel of Ascension)
감람산 정상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있으며 이곳은 베다니 마을과 예루살렘 성의 거의 중간 지점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장소에서 사도행전 1:9~12의 말씀을 하신 후 하늘로 승천하셨다. 이 교회는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남기셨다는 발자국이 있는 바위돌을 중심으로 주후 387년경 성지 순례를 온 로마의 귀부인(Poemenia)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나 7세기경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12세기 초 십자군이 이곳에 거대한 승천교회와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이 거대한 교회 안에 승천바위를 중심으로 8각형의 작은 건물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기 위해 천장을 만들지 않았다. 그 후 약 80년이 지난 1187년에 아랍 세계의 강자로 부상한 살라딘은 십자군을 몰아내고 승천교회와 수도원을 완전히 파괴하였으나 교회 안에 있던 8각형의 소형 건물은 부수지 않고 그 위에 둥근 돔을 씌워(1537년경) 예수의 승천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현재는 이 건물만이 남아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예수 승천의 돔”이라고 부른다. 살라딘 이후 지금까지 이곳은 이슬람교도들인 아랍인들이 관리하고 있으나 모든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고, 예수님의 승천 기념일에는 기독교 많은 종파들이 구내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 보통 때도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잠깐 동안 예배를 드린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는 19세기 말에 러시아 정교회가 그들 나름대로의 예수 승천교회를 세우고 옆에 높이 60m나 되는 종탑을 세웠는데, 이곳은 예루살렘 전경을 조망하기가 매우 좋고 멀리 사해까지 보인다고 하나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이 주위는 에-투르(Et-Tur)라는 아랍 회교인 동네이다.
I. 예루살렘 성의 문들
예루살렘성은 시대에 따라 성의 위치와 크기와 성문의 자리가 많이 변해 왔다. 현재의 성벽과 성문은 전부가 주후 1537년에서 1542년 사이에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성벽의 총 길이는 4018m이다. 예루살렘성은 8개의 성문을 가지고 있다. 동쪽에 스데반문과 황금 문이 있고, 남쪽에 분문과 시온문이 있으며, 서쪽에 욥바문이 있고, 북쪽에 새문, 다메섹문과 헤롯문이 있다. 그 중에 황금 문은 돌로 막혀 있기에 현재 사용되는 문은 7개이다.
이 8개의 성문은 그 모양이 서로 다르고 각 문마다 그 문의 건축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성문 주위에 꽃모양의 둥근 것이 조각되어 있다. 성벽의 위 부분은 요철 모양으로 되었고, 성내에서 성밖은 관찰할 수 있도록 상하로 된 긴 틈들을 만들어 놓았다.
▣ 스데반문(St.Stephen's Gate)
이 성문은 성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 문을 나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과 감람산으로 가게 되고, 여리고로 가기도 하는 문이다.
이 성문은 스데반문, 사자문, 마리아문이라는 세 가지 이름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 문을 스데반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의 첫 순교자 스데반이 이 문 밖 가까운 곳에서 순교를 당했다. 이 문밖 약 200m동남쪽 기드론 골짜기에 희랍 정교회 소속인 스데반 교회가 있다.
(행 7:54~60) 유대인들은 이 성문을 사자문(Lion Gate)라고 하는데 이 성문 밖의 양쪽 성벽에 두 마리씩의 사자가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교 인들은 성모 마리아가 태어난 곳(성 안네교회)이, 이 성문 가까운 곳이라 하여 이 문을 마리아문이라 한다.
▣ 황금문(Golden Gate)
이 성문은 성전뜰 동쪽에 있는 문으로 감람산이 정면으로 쳐다보이는 지점에 있는 문이다. 이문은 쌍문으로 8개의 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인데 지금은 돌로 막혀있다. 유대인들은 이 성문을 자비의 문(Mercy Gate)이라고 부른다.
이 황금문이 막힌 것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다른 전설이 있다.
(겔 44:1~2)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지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둘 지니라.”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과 신자들이 마지막 날에 종려가지를 흔들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문이라 하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입성할 문이라고 믿고 있다. 메시아가 오실 때 이 성문이 열리면 죽었던 영혼이 메시아를 따라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기 위해 많은 유대인의 무덤들이 황금문 바깥의 감람산 언덕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황금문 바로 바깥에 있는 무덤은 아랍인들의 무덤이다. 회교 인들은 황금 문이 닫힌 이유가, 회교의 성전이 건립된 후 황금문이 성전 건물과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성전 뜰을 더욱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직접 황금문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다.
▣ 분문(분뇨문, Dung Gate)
뜻이나 영어발음이 우리나라 말과 비슷한 이 성문은 성의 남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 문 가까운 성밖에 옛 다윗 시대의 다윗성이 있다. 이 분문의 위치는 언제나 그때의 성 남쪽이었고, 그 사용 목적이 쓰레기를 내다버리던 문이었다는 점에서 그 위치는 변해도 언제나 분문 이라고 불려 졌다. 이 분문은 성내의 유대인 지역과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기에 가까워 유대인과 외국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는 성문이다.
지금은 잔디로 심겨져 있지만 이 문 밖은 힌놈의 골짜기 또는 게헨나로 불리우는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에서 유다왕 아하스가 바알에게 분향하였고,(대하28:1~3)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던 곳(렘7:31~32)이며 또 왕이 몰록에게 그 자녀를 불로 지나게 하지 못하게 한 곳(왕하23:10)이다.
▣ 시온문(Zion Gate)
이 성문은 성의 남서쪽에 있다. 이 성문 밖이 현재의 시온산이다. 이 성문 바깥쪽에 있는 많은 총알 자국은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전쟁 때에 성 내부에 있던 유대인들이 성 밖의 아랍 군과 대치해 싸울 때 아랍 군이 쏜 총알 자국이다. 이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을 포기하고 떠났다.
▣ 욥바문(Jaffa Gate)
이 성문은 성의 서쪽에 있는 유일한 성문이다. 이 성문에서 연결되는 거리가 욥바를 향하는 “욥바 거리”이다. 이 성문에서 남쪽으로 연결되는 거리는 베들레헴을 거쳐 헤브론으로 가기에 한때는 이 성문을 헤브론문 이라고도 했다.
이 욥바문의 남쪽에 높이 솟은 탑은 다윗의 망대이다. 현재는 욥바문 남쪽의 성벽이 헐려서 요즈음은 자동차들이 헐려진 성벽 자리로 다니고 있다.
▣ 새문(New Gate)
이 성문은 성의 북서쪽에 있고 주후 1889년부터 열렸다. 이 성문의 안쪽에는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다.
▣ 다메섹문(Damascus Gate)
이 성문은 성의 북쪽 가운데 문이고 현재로는 가장 번잡한 문이다. 이 성문을 유대인들은 세겜문, 혹은 나블러스문이라고 한다. 이 성문은 주후 2세기의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가장 중심이 되는 성문으로 쓰였다.
▣ 헤롯문(Herod's Gate)
이 성문은 성의 북동쪽에 있고. 꽃문 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이 성문은 회교인 지역에 가까운 문이므로 회교인이 특히 많이 이용하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