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入隊 얘기를 다시 써 보기"
나의 셋째 형님은 나와 일곱살 차이지만,군대는 8년 선배이다. 형님의 친구분들은 대부분 형님보다 한살씩위로 1~2年 먼저 입대 영장을 받았고 친구들이 입대하는 장소에 갔었다. 당시는 기피자들이 많아서 입영날자에 오지않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구청 직원이나 장병들을 인솔하러온 기간병들도 이문제로 상당히 난처 했었는데,여러명이 모자르니까 기간병이 환송나온 입영 친구들을 향해서.
"혹시?지금 이자리에서 지원할 사람 없습니까?" (지금은 그런일이 없겠지만) 이런 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형님은 다섯명의 친구들이 입영하는데 너무도 서운해 바라만 보고 있다가,그소리를 듣고 지원을 해서 갑자기 지원서를 쓰고 2년먼저 입대를 하게 됐다. 그때가 57년 9월달로 그곳에서 집에 "입대한 경위를 말하고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식으로 갑자기 입대를 하게 된거다. 형님의 군번은 1022...로 원래의 정축년 소띠는 59년 군번이 통상 108로 되는데 덕분에 형님은 같은 나이들 보다 군번이 2년 빠르다.
형님은 양구에서 근무를 하셨고,60년도인, 4.19 때 쯤 제대를 했다.그때의 친구분들과는 지금도 친분이 두텁고 (그러나 내형님도 떠나시고 두분 남았음)그우정은 본받을만 하다. 내밑에 동생도 나보다 세살 아래인 정해년생으로 66년 4월 8일에 지원 입대해서 논산과 부관학교 졸업후,육군본부에 근무했다.
그당시에 난,9사단에 배치돼 근무했는데, 파병 결정이나자 9사단부대는 소란했다. 또 ,그당시엔 9사단 본부는 동두천에 있고,28사단은 양평에 있었다.9사단은 덕정리와 초성리를 비롯해 전곡.백의리.진상리.대광리 .신망리.옥계리와 3.8선 철책이 있는 GOP 까지의 지역이고 28사단은 양평과 지평 일대에 있었다.
兩 부대는 2년이나 3년에 한번씩 부대를 위치를 바꾸어가며 근무 했었다.그러니까 9사단과 28사단은 형제부대이며 가까웠다. 나는 형님이나 동생과는 달리 제나이인 22세에 입대를 했다. 65년 6월1일 입대일인 한양대학에서 집합한 우리 모두는 서울 일대의 애들만 소집된 상태로 내가 아는 애들이 여럿 있었다. 엇그제 수원서 만난 김의성.조종학 그리고 이강한.송순복.김현덕 등이다.
우리는 왕십리역에서 경부선 군용열차를타고 영등포역에서 같은날 입대하는 인천 애들과 합류,그리고 열차는 느릿느릿 떠나기 시작해 월2일 새벽 한시에 강경역에 도착을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걸어서 수용연대로 향했다. 시간이 새벽두시로 향하니만큼 수용연대 막사에는 먼저온 애들이 모포를 둘둘 감은채 자고 있었는데 어딘지 처량해 보이고 낯설은 풍경이다.
연대 연병장에서 "앉아번호" 서서번호"를 몇번씩 해가며 인원파악이 끝난후, 약-10여명씩 지정된 막사로 들어갔다. 막사 안에는 먼저온애들이 20명정도 있었고 그애들이 고참이라고 우리를 침상 3선에 세우곤 군기를 잡기 시작했다.고참 이라고 해봤자,군번도 받지 않은 애들이니 우리와 입장이 같고 우리가 그애들에게 질질맬 필요가 없다. 난, 수용연대서 부터 제대할때 까지를 형님이나 친구분들한테 너무도 소상히 들어 사정을 알고 있었고 우리 동기들도 대부분이 그 사정을 알지만 그냥 첨부터 고분고분 그애들의 말대로 했다.
우리가 얌전히 말을 들어 주니까 그애들이 기고만장,제멋대로 행동하는데,군생활 2년정도 고참노룻을 하는거다.웃기는 일이다. 우리들에게 빤쓰까지 벗게하고 소지품을 전부 꺼내게했다.그애들이 우리들 사타구니까지 들여다보고 낄낄 거리고 좋아라 했다.기분이 몹시 언잖고 분했다. 먼저온 애들도 처음와서는 그런 과정을 했었기에 우리에게 군기를 잡을려고 했겠지만,
그러나,너무나 지나치게 하니까 우리도 반발하기 시작했고,시간이 지날수록 말을 듣지 않으니까 상당히 고압적으로 나왔다.우리가 말을 잘 안듣는다고, 드디어 그애들이 뭉둥이를 들고 위협하기 시작해서 사태가 악화됐다. 우리 동기 애들 두명이 그애들에게 엉덩이에 빳다를 맞았다.우리가 현역도 아닌 그애들에게 주먹과 빳다를 맞을 이유가 없는거다.
참다못한 우리 동기 몇명이 통로로 내려섰다.나도 신고간 농구화를 신었다.고참이란 애들은 나중에 알고보니 제주도 애들이 열명정도,나머지는 경상도와 전라도 애들로 우리들과 숫자가 비슷했고 그애들은수용연대에온지 10 일 이나 되도록 군번을 받지못한 애들이다. 그러나 그애들이나 자금 막 도착한 우리들이나 똑같은 그냥 장정들일 뿐이다. 또항 그애들은 고향도 입대 날자도 다 다르니
나도"이놈의 시키들 혼좀나봐라.!" 그러며 신발끈을 조여맸다.우리가 즈희들 명령없이 통로에 내려왔다고 그애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는 순간,"짐승들도 숫놈끼리 모이면 싸운다고"했던가.! 우리 동기들은 모두 싸움에 가담했고 그애들은 절반정도 구경만 하고 있는 상태였으니 순식간에 상황이 꺼꾸로 변했다.나는 애들 다섯명을 막사 밖에 배치했다. "기간병이 오면 알리라'고,그애들은 뺏은 몽둥이 하나씩을 갖고 나갔다.
우리는 기선 제압하고 먼저온 애들을 통로에 무릎을 꿇게하곤 당한만큼 분풀이를 시작했다. 이걸로 끝났으면 별 문제가 없었는데,밖에서 일이 벌어졌다.파수를 보러나간 애들이 한남동 일대에서 순-깡패 똘마니 노릇을 한 애들인지를 몰랐었다. 급히 달려온 기간병 몇명을 일어나지도 못하게 줘-패놨는데 그중에 중위 한명이 있다. 그 장교인 중위는 뒷통수를 맞고 기절해 쓰러졌고,그런데 그런일이 우리 막사에만 벌어진게 아니고 다른 전체가 다- 그런 상황였다.수용연대에 비상이 걸리고 숫자가 모자른 기간병들을 지원하러 교육연대 기간병들까지 몇대의 트럭으로 달려왔다.
내가 생각해봐도 우리 동기애들 전부가 경찰에 잡혀갈 상태가 됐다. 그래도 거기가 군대니까 다행일 정도였다.하지만 군번을 받았으면 우리전부는 입창깜이다. 드디어 곤히 잠자고 계시던 수용 연대장이 등장,우리는 꼼짝없이 연병장에 도열했고 기간병들이 둘러쌌다. 분위기가 살벌했다.그때가 대략 새볔 네시이니,깜깜한 밖에서 벌어진 일들은 누가 그랬는지 알수가 없다. 하늘이 얕다고 방방뛰던 연대장이, "이놈의 시키들을 날이새면 즉시 교육 연대로 보내서 xxx,gg 해라.'!!
직사하게 기압받고 내무반에 들어와 그래도 한시간쯤 잤다.기상이 되고부터 우리는 숨도 쉴 시간없이 머리박박 깍고 신체검사 하고 팔뚝에 完字 도장을 받았을때, 저녘식사 시간이 됐고 그리고,막사인 내무반에 들어오니 교육연대에서 온 기간병이 이름을 부르며 각자의 기록 카드를 주는거다.그러니까 군번이 나온거다.
그곳엔 벌써 각자의 군복 내의 양말 군화 등이 한벌씩 지급됐고 입고온 사복을 한장씩준 양회 종이에 싸서 겉에 주소를 쓰게 하고는 그길로 교육연대로 향했다. 그러니까 만 하루가 되기전에 교육연대로 넘어간 거다. 그당시 그렇게 빨리 교육연대로 간게 수용연대 역사상,사상 우리가 처음이고"기록을 깼다."고 했다.
그것도 우리는 교육이"제일 쎄다"는,30 교육연대로 갔는데 나는 13중대 훈련병이 됐다.지금도 그렇겠지만 훈련병도 향도와 분대장이 있다.향도는 연대 정외과 2년 다니다가 입대한 정의훈이가 됐고 나는 1분대장 였는데 그것은 이상하게도 월남에서 올때까지 계속 1분대장을 했다. 어쨋던,수용연대장 특별지시로 우리는 잠을잘때까지 고달프게 훈련을 받았다.교육장도 멀고 맨날 뛰여 다녀 야하고 사소한 일에도 전체가 기합받고 배고프고 졸립고 거기다가 교육은 철저했다.그러니 죽을 맛이다.
그런데 웃으운 얘기가 하나 있다. 하여튼 그애 때문에 취침전 점호때 기합 받느라고 한시간 정도 잠을 못잤었다.취침 전에는 주번사관이 주번하사를 대동하고 내무사열을 한다. 그러면 우리는 침상 3선에 서서 인원 파악인 번호를 하게 된다. 우리의 고참병장인 내무반장이 주번사관앞에 차렷 자세로 경레를 하고는,
"제 13 중대 1소대 내무사열 인원보고 총원 41명,현재원 41명.!"하고는 돌아서서 "번호!!" 한다. 그러면,향도부터 하나!.나는 1분대장 이니까,둘,-그렇게 훈련병들이 차례로 번호를 불르게 돼 있다. 그런데,서른 일곱째에 번호를 부르는 애가 문제다. 즉- 그애앞에 애는 서른여섯째이니 당연히 자기 차례에 "서른여섯.!" 그러면,그다음 훈련병은 "서른일곱" 해야한다.그런데 그애가 경상도애다,경상도애는 "서른일곱" 그러지를 않고 "삼십일곱!"그런다. 그다음 훈련병은 "서른 여덟"을 준비하고 있다가 앞에 훈병이 삼십일곱 하니까 우물쭈물......
그러면 반장이 "번호다시!!" 다시 번호를 하면,경상도 애는 반드시 "삼십일곱"한다. 주번 사관이 인상을 쓰고 돌아서서 다른 중대로 간다.다시올때까지 우리는 원산폭격 한강철교 상태로 번호 연습을... 그걸 며칠 동안이나 그랬다. 그런일이 반복되어 우리가 피해를 입으니까 그애도 죽을맛이다.그래서 다음날부터 휴식 시간에 애들 몇명과 그애를 끼워놓고 번호 연습을 시켰다.하여튼 내무반장은 사소한 일에도 성질을 내는데,그런일이 반복되니 우리는 가버시끼로 기합받기 일쑤였다.
그런데다가 어느 훈련병은 집안에 장군(별)이있어 중대장이 골치를 썩었다.그런일이 많아 중대는 항상 우리를 좋지않게 보고있고,있을때, 어쨋던 훈련병이 된지 8일쯤 밖에 안됐는데 사건도 많았다.그러니까 그때쯤,일과를 마치고 내무반에서 훈련 장구를 풀어 정돈하고 있는데,내무반장이 들어섰다.
말없이 허리에 양손을 짚고 우리들을 째려보고 있는데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뭔가 큰일이 벌어진거다. 우리는 하던일을 중단하고 긴장상태로 반장을 지켜봤다. "참내--도대체 이번 훈병들은 뭐이래!! 서울 인천 놈들은 다-그래!!??빽 소릴 지른다 그리곤 느닷없이......"김영배가 어떤 시키야 !! 앞으로 나왓..!!
그때는 날자가 얼마 안되서 반장이 우리들 이름을 다 모른다. 사법고시 1차 합격을 하고 입대한 동기가 있다.거의 국졸이거나 아예-글을 모른는 애들이 있는데, 그런애들 틈에,그정도면 그애는,학력이 높은거고 똑똑한 놈이고 군대생활도 잘 할걸로.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한다.그런데 짜식들이 순-고문관이다.m.1 노리쇠를 잃어버리질 않나 군화를 ..... 어느날은 울쌍을 지으며 우무쭈물 하기에 ,그애는 뭘 잃어버리면 그런 표정이다. "뭐야 임마! 또 뭘 잃어 버린거냐?"
".......요대가 없어졌어.. " 뭐? 요대를 잃어 버렸어?" 참내- 잃을걸 잃어야지, 그애가 뭘 잃어버리면 거의 내가 다- 해결해 줬었다.(무슨뜻인지 아실거다) 이건 분명히 나에게 그런걸 뺏긴 다른 내무반 녀석이 고자질을 했거나 발각이 된게 분명하다. 나는 빳다맞을 각오를 하고 엉거추츰 통로로 내려가 반장앞에 섰다.
반장은 주머니에서 흰봉투를 꺼내 마구 휘저으며, "너 !..집에 언제 편지 보냈어? 모포부대야!! 빵 사먹으며 보냈어.!!" 난 짐작이 갔다.그러나 편지를 보낸적이 없어서," "집에 편지 보내적이 없습니다." '그럼 ..시키야 !! 김창배가 누구야?" "네 제 형님입니다."(셋째 형님에게서 편지가 온거다)" (나는 제대하신 내 형님과 친구분들 한테 그런 얘기를 여러번 들은적이 있다.)
"시키야 ! 네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으면 집에서 주소를 어찌알고 편지가 왔냐말야! 나참-조교생활 하다가 이런 일는 첨이고 귀신 곡하겠네 서울 놈들은 다 이래?.. 바른대로 말 안해!!" 나는 며칠전 번개 콩 구워먹듯이 바쁘게 눈을 부라리며"입고온 사복을 빨리싸고 집 주소를 써라." 할때, 그 바쁜 순간에도 가로 세로 2센티쯤 되는 엄지 손톱만한 종이에 얼핏들은 "30교육중대로 갑니다. 그렇게 쓰고는,돌돌말아 혁대위 바지 재봉선 사이로 넣었었다.
1.4후퇴때,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 전사 통지서만 받고,어디서 어떤 전선에서 죽었는지 아무소식도 없는 아들들을 생각하며 우시는 어머니들을 어릴때부터 보아왔고,들렀고, 나라에서도 "나몰라라"하는 몰염치를 나는 잘 안다. 그래서 혹여 내가 입대하자마자 북괴군이 쳐들어오면,전쟁이 나면"나도 그짝이 난다. 30 교육 연대로간다는 증거라도 남기자 그런 뜻에서 몰래 그렇게 했던거다.
그때는 입고온 사복을 보낼때,군우 153 논산 제2훈련소,라고만 부대서 적어 보냈다. 근데 아직 훈련소서 그런 편지를 안보냈을 때이고 보냈다해도 우리들은 모른다.그런데 30 교육 연대 군우과에서 편지를 받고 수소문해보니 13중대에 내 이름이 있으니까 13중대로 편지를 보낸거다.사연이 그렇게 됐다. 집에선 어머님이 입고간 나의 사복을 받으시고 우신것은 안봐도 뻔했고 퇴근해 오신 형님이 내옷을 꼼꼼히 살피시다가 쪽지를 발견 하신게 틀림없다.
"중대장님이 뭐라 그러시는지 아냐!! 참내--어긋난 일이지만,편지 내용이 좋으니까 당사자에게 기합주지 말고 내무반 애들에게 읽어주도록..하시곤 이런 말은 논산 훈련소장님도 하신적이 없다...는.....! 중대장이 그렇게 말했다며,반장이 읽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도 그 내용을 기억한다. 그래서 몇구절을 써본다.
"""내가 이런 편지를 보내서 군대의 특성상 아우가 곤란을 겪을줄 안다.어머님이 저렇게 우시니 어머님을 안심 시켜 드리기위해 이글을 썼고 지금의 군대는 엣날과 다르다며 어머님을 위로해 드리고 어머님 앞에서 내가 쓴 이편지 내용을 읽어 드리고 아우에게 보낸다. 이미 부대장님께서 다- 말씀 하셨겠지만,지금 아우가 받는 교육이 전쟁이 나면 바로 전쟁터에 나아가 적과 싸워 이길수 있는 육군 최정예 교육이다.훈련을 가르치는 조교들은 아우보다 먼저 군에 갔고 그만큼 경험이 많다. 적과 싸워서 이길수있는 교육이니 만큼,조금의 무리가 있더라도 조교가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교육을 받아라.그러면 아우는 나라를 지키는 용감한 군인이 된다. 나는 아우가 군에 입대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옆에 전우들과 다투면 안된다. 전쟁터에선 그들이 아우의 전우이고 생명까지도 지켜줄수 있고 그것은 아우도 마찬 가지다. (나는 사실 월남에서 전우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형님 말씀을 실감했다.) 교육받는 도중에 조교의 말을 잘듣고 행하되 매사에 실수 없기를 바란다.언젠가 날짜가되면,모범적으로 만기 제대하여 아우가 환한 웃음으로 가족들 앞에 나타날것으로 가족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특히 건강에 조심해라. 형 씀."""
나는 내 조카들이 군에 갈때마다 형님이 나에게 보냈던 편지내용을 인용해 이런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물론,그날 기합을 받지 않았다.그대신 중대장이나 조교나 내행동을 많이 살폈다.그러나 난, 형님 말씀대로 정말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제식훈련이나 홍검술 등 등,
(다음 2편으로 계속)
(전에 썼던글 다시편집해 올린겁니다. 틀린글자 맞춤법 확실히 일곱번 디시읽고 고쳤습니다. 그래도 틀린글자 있을겁니다. 이해 바랍니다. 아 근데 맞춤법 틀린 글자가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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