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론 제2권
4. 변상분(辯相分) ①
1) 자체상품(自體相品)
다시, 불성의 모든 종류의 모습에 열 가지 의미가 있음을 마땅히 알라.
열 가지란,
첫째 자체상(自體相)이고,
둘째 인상(因相)이고,
셋째 과상(果相)이고,
넷째 사능상(事能相)이고,
다섯째 총섭상(總攝相)이고,
여섯째 분별상(分別相)이고,
일곱째 계위상(階位相)이고,
여덟째 편만상(遍滿相)이고,
아홉째 무변이상(無變異相)이고,
열째 무차별상(無差別相)이다.
첫째 자체상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부분의 모양이고,
두 번째는 전체의 모양이다.
부분의 모양에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 번째는 여의공덕성(如意功德性)이고,
두 번째는 무이성(無異性)이고
세 번째는 윤활성(潤滑性)이다.
여의공덕성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을 말하는 것으로 다섯가지 종류가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여래장이니, 자성(自性)이 바로 그 ‘장(藏)’의 의미이니, 일체 법이 여래의 자성을 벗어나지 않는 것은 무아(無我)로써 그 모양을 삼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일체의 모든 법을 여래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법장(正法藏)이니, 원인이 그 ‘장’의 의미이다. 일체 성인은 사념처(四念處) 등의 정법으로써 이 법을 취하여 경계를 삼기 때문에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은 생기게 되고, 이미 생긴 것은 원만하게 되니, 이 때문에 정법장이라고 한다.
셋째는 법신장(法身藏)이니, 얻음에 이르는 것이 그 ‘장’의 의미이다. 이것은 모든 성인은 바른 성품을 믿고 즐거워하고 믿고 즐거워하며 듣기를 원하는 이 신락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인으로 하여금 네 가지 덕성에 대하여 강가의 모래알보다 많은 일체 여래공덕을 얻게 하기 때문에 이 성품을 법신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 출세장(出世藏)이니, 진실함이 이 ‘장’의 의미이다.
세간에는 세 가지 잘못이 있으니,
첫째는 대치(對治)하여 아무것도 없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고, 이 법은 대치가 없기 때문에 출세간이라고 한다.
둘째 고요히 머물지 않기 때문에 세간이라 하고 허망한 마음의 과보로 말미암아 찰나찰나에 사라져 머물지 않기 때문에 세간이라 한다. 이 법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출세간이라고 한다.
셋째 전도된 견해 때문에 마음이 세간에 머물과 항상 전도된 견해에 빠져 있으니, 마치 사람이 삼계에 머물면서 마음에 결코 고법인등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허망함 때문에 세간이라 하는 것이다.
이 법은 능히 세간을 벗어났기 때문에 진실하여 세간을 벗어난 장이라고 한다.
다섯째는 자성청정장(五者自性清淨藏)이니, 비밀이 이 장의 의미이다.
만약에 일체 법이 이 성품을 따르면, 이를 곧 안(內)이라 하고,
이것이 바르고 삿된 것이 아니면, 청정이라 하고,
만약에 일체 법이 이 이치를 어긴다면 이것을 바깥(外)이라 하니,
이것은 삿되고 바르지 않기 때문에 오염되고 혼탁하다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자성청정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승만경(勝鬘經)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불성이란 것이 바로 여래장이고, 정법장이고, 법신장이고, 출세장이고, 자성청정장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다섯 장의 이치를 설함으로 말미암아 여의 공덕이 나타나게 되나니, 부처님께서 이 이치를 나타내기 위해 여의보배(如意寶)를 설하신 것이다.
마치 사람이 지난 세상의 업 때문에 여의보주를 얻는데, 이 구슬을 얻고 나서는 뜻대로 즐겨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성취되는 것처럼,
불성도 그러한 것이어서 선지식(善知識)을 잘 섬겨 모든 복덕과 지혜를 닦음으로 말미암아 이 성품을 얻어 수행자의 뜻을 따라 각각 스스로 삼승의 과(三乘果)를 얻으니, 이 때문에 여의공덕이 바로 별상(別相)이다.
둘째의 무별이성(無別異性)이라는 것은,
범부나 성인이나 모든 부처님은 분별적 심성과 과실과 공덕이 없고, 구경청정처에서 평등하게 두루 가득함이 마치 허공과 같고, 또 흙이나 은이나 금 그릇 같기도 하며, 이 세 그릇이 비록 다르지만, 그 성품들은 모두 공한 것이다. 공의 곳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무별이성이라고 한다.
≪해석≫
이른바 과실이란, 범부를 말하고,
공덕이란, 곧 유학의 지위에 있는 성인이고,
구경청정이란, 곧 모든 부처님이다.
이 셋이 비록 다르긴 하지만 그 성품은 다르지 않다.
이는 곧 흙으로써 범부에 비유하고, 은으로써 유학의 지위에 있는 이를 비유하고, 금으로써 부처님에 비유한 것이니,
비록 세 그릇이 차이가 있지만, 그 공한 성품은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청정하고 편만한 것 등에 세 가지 의미가 있으니,
있다는 것은 무위의 뜻을 나타내고,
청정하다는 것은 더러움이 없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두루 가득하다는 것은 걸림이 없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시기를,
“중생의 경계가 법신과 다르지 않고 법신이 중생의 경계와 다르지 않다”고 하셨으니,
이러한 의미 때문에 둘이 없고 분별이 없으면서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불성이 세 계위 가운데에 평등하게 두루 가득함은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않는 종류들이 다 변하지 않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허공과 같은 성품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셋째의 윤활성이란,
여래의 성품이 중생들 속에서 인과(因果)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중생에 대한 대비(大悲)로 중생들에게 윤활한 것으로써 그 모양을 삼기 때문이다.
대비란 것이 세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체(體)이고,
둘째는 큰 것이고,
셋째는 다른 것이다.
첫 번째의 체의 의미는 반야(般若)로써 체를 삼는다.
반야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분별이 없는 참된 지혜이고,
두 번째는 분별이 있는 세속의 지혜이다.
이제 분별이 있는 지혜를 취하여 대비의 체로 삼는 것은 대비로써 중생들을 반연하여 일으키기 때문이며,
둘째의 큰 것의 의미에는 다섯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자량(資糧)이고
두 번째는 상이며
세 번째는 행처이고
네 번째는 평등이며
다섯 번째는 최극(最極)이다.
첫 번째 자량이라는 것은 능히 큰 복덕과 지혜 이 두가지 자량을 만들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상이라는 것은, 능히 세 가지 괴로움(三苦)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보고 모두 구제하기 때문이고,
세번째로 행처라는 것은 삼계(三界)의 중생들을 통하여 그 경계를 삼기 때문이고,
네번째로 평등이라는 것은, 모든 중생처에서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다섯째 최극이란 이 수행을 벗어나서 그 밖에 다시 뛰어난 행이 없기 때문이다.
셋째의 별이(別異)란 여덟 가지 뜻이 있으니,
첫 번째 자성차별에 대해 말하면, 자비가 무량한 것은 성냄이 없는 것을 성품으로 삼고, 대비는 무치로써 성품을 삼는다.
두 번째로 상의 차별에 대해 말하면, 자비는 고고(苦苦)로써 상을 삼고 대비는 삼고(三苦)로써 상을 삼는다.
세 번째로 행처의 차별에 대해 말하면, 자비는 욕계를 경계로 삼고, 대비는 삼계 전체로써 경계를 삼는다.
네 번째로 계위의 차별에 대해 말하면, 자비는 사선으로 그 지위를 삼고, 대비는 무류(無流)의 여래과로써 그 지위를 삼는다.
다섯 번째는 경계의 차별이니 자비라는 것은 범부 및 이승(二乘)으로 경계를 삼고, 대비는 오직 보살과 부처로써 경계를 삼는다.
여섯 번째로 덕의 차별에 대해 말하면, 자비는 욕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덕이며, 대비는 삼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덕이다.
일곱 번째는 구제에 차별이 있는 것이니, 자비는 고통을 제거하려는 마음만이 있고 고통을 제거하는 일은 없으며, 대비는 마음도 있고 그러한 일도 있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구경(究竟), 불구경(不究竟)의 차별이니, 자비는 잠시는 구제하지만 진실로 구제할 수는 없는 것이며, 대비는 능히 영원히 구제하여 버리지 않는 것이다.
윤활(潤滑)이란,
윤(潤)으로써 능히 포섭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내고 활(滑)은 잘못을 등지고 덕(德)으로 향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니, 마치 물의 경계와 같이 두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능히 흩어진 물건을 섭수하고 미끄러워서 깔깔하지 않음이 그것이다. 윤택함으로써 포섭할 수 있고, 미끄럽기 때문에 깔깔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윤택한 것을 그 원인으로 삼고, 미끄러운 것으로 그 결과를 삼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인과의 이치를 나타낸 것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자성청정은 바로 그 전체 상의 의미이다, 라는 것은, 앞서 진실과 공과 수계 등의 비유와 같이 자성청정은 그 전체 상이기 때문이다.
여래의 성품은 번뇌 속에 있으면서도 더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상은 네 가지 번뇌의 장애가 되기 때문에, 네 사람이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네 가지 덕의 근본을 짓기 위해서이고, 네 가지 전도를 여의기 위해서이고, 생사를 멸하고 대치하기 위해서, 때문에 네 가지 상을 설하는 것이다.
전체는 하나이고 부분은 세 가지이니, 전체 상이란, 오직 자성청정의 상이고 세 가지 부분적 상이란, 첫째는 불가사유이고, 두 번째는 마땅히 얻어야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무량한 공덕이다. 이것을 자체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