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3(월)
엡4:7-16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준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엡4:11-12)
오래전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떠오릅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것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연합으로 한 편의 설교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와이셔츠를 준비하는 것, 교회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 에배당 입구에서 안내하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한 편의 설교가 이루어진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께서 성도들을 섬기는 일을 준비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은사를 따라 사역자들을 세우십니다. 이는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일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주님의 뜻 안에 있으면 열매도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일이 나는 좋아하는데 주님의 뜻이 다른데 있으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뒤를 따라가세요” “주님의 뜻은 구하셨나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주님보다 앞서가지 마세요”.라는 말을 젊은 시절부터 많이 들은 것 같습니다. 선배들의 경험치이며, 어른들의 말씀에 대한 체험으로 주셨던 조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중요한 말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도로, 예언자로 복음 전도자로 목사로 교사로 세우십니다. 주님이 세우신 직분을 감사함으로 받으며 힘을 다하여 충성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살아왔습니다. 지금의 삶의 영역이 있습니다. 지금 주님이 나를 부르신 뜻이 어느 곳으로 부르셨는지 새롭게 구한다는 것은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을 때 곤란한 문제가 따릅니다. 내가 있는 삶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으로 가라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도 있습니다.안다는 것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주님의 뜻이 있고 그 뜻을 알게 되었는데 그러면 이 나이에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패를 했다는 것, 완전한 실패라는 것은 이 순간까지 살아왔던 모든 것이 파괴되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파괴된 가자지구의 사진이 떠오릅니다.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을 하던지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어느 길로 가던지 지고 가야할 짐이 없어서 그냥 출발하면 됩니다. 실패라는 것이 이런 의미에서는 새로운 출발의 시작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이 많거나 지금 현재의 일이 넓고 깊이가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우리 주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인격적인 분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려 주실것입니다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요즈음 주님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어떤 일을 우리에게 맏겨주실 때 갑자기 “이렇게 해라. 이것을 하라”라고 하시는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의 성향, 성격, 살아온 삶의 경험, 능력, 단점 모든 것을 나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생각과 심지어 숨겨진 의도까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나보다 잘 아시는 분이 나에게 가장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 그 길은 주님이 태초부터 가지고 계신 나를 향하신 계획입니다. 주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기쁨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지난 6월 4일 이후 주님이 저에게 행하신 일들을 돌아봅니다.
『실패라는 것, 좌절이라는 것, 절망이라는 것, 해결할 수 없는 아픔, 고통,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함』 이라는 단어들은 환영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이런 단어들이 나의 주변에서 나비처럼 춤을 추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내 몸 주위를 떠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렸습니다. “내가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인지, 신학으로의 부르심이 있었는가”라는 문제에 함몰되어 있을 때 숨을 쉬게 한 것이 말씀 묵상이었습니다. 사역의 꿈을 꾸게 한 것은 은혜로 기회를 주신 5주간의 말씀 묵상세미나였습니다. 내가 정말 행복하게 할 있는 일과 부르심의 소명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힘들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치료과정에서 숨을 쉬게 되었다는 것은 생사의 기로에서 인공호흡기를 뗀다는 것은 치료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치료가 진행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 신학입문한지 10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6월말이었습니다. “그래 신학입문 10년까지 8개월 남았다. 8개월동안 기도와 말씀에 전념해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6개월 전에 신학입문 10주년 기념 모임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준비기간 6개월 180일 동안 영적각성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며 6개월을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기도모임과 찬양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말씀묵상하며 기도하고 찬양하며 전진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일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대치순복음교회 은퇴한 전도사님에게 “부르심은 있으셨나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영적각성운동 50일째에 주님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신학으로의 부르심의 소명”을 확인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3장6절 말씀으로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날의 묵상을 통하여 “신학 입문 10주년 기념대회”가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인도하심 따라 한 걸을 한 걸음 나갈 것입니다. 내 마음에는 그동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했었습니다. 피해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꺼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껴안고 가겠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껴안고 갑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수치, 수군거림, 민망한 표정등을 기꺼이 감당하려 합니다. 그날에 선포될 『주님의 영광을 기대』하면서 오늘 기꺼이 두려움을 감당하며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