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아비달마론 상권
4.1. 상응행(3), 결(結)
결(結: saṃyojana)에는 아홉 가지가 있는데, 애결(愛結)ㆍ에결(恚結)ㆍ만결(慢結)ㆍ무명결(無明結)ㆍ견결(見結)ㆍ취결(取結)ㆍ의결(疑結)ㆍ질결(嫉結)ㆍ간결(慳結)을 말한다.
애결(anunaya-)이란 삼계의 탐(貪)을 말하는데, 이것은 마치 아교나 옻이 달라붙는 것처럼 염착(染着)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애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가 바로 결박[結]이기 때문에 애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에결(pratigha-)이란 5부의 진(瞋)을 말하는데, 유정 등을 해치어 괴롭히기[損苦]를 즐거이 하여, 마치 쓰디 쓴 씨앗처럼 불요익(不饒益)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에라고 한다. 그리고 에가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에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결(māna-)이란 삼계의 만(慢)으로,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모든 덕을 차별하는 마음의 오만한 상(相)을 만이라고 한다. 즉 오만 방일한 자가 타인을 능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다시 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만(卑慢)ㆍ사만(邪慢) 등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 만이란 가문ㆍ재산이나 지위ㆍ용모ㆍ힘ㆍ행동거지[持戒]ㆍ지식ㆍ기예 등이 자신보다 열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高擧] 심리작용을 말한다.
둘째, 과만이란 자신과 동등한 자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셋째, 만과만이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넷째, 아만이란 오취온이 나[我]다, 나의 것[我所]이다라고 집착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다섯 번째, 증상만이란 아직 예류과(預流果) 등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면서도 이미 증득했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여섯 번째, 비만이란 가문 등이 자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일곱 번째 사만이란 실제로는 덕이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함으로써 마음을 높이 들어올리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상과 같은 일곱 가지의 만을 만결이라고 한다.
무명결(avidyā-)이란 삼계의 무지로서, 마치 장님처럼 이해하지 못함을 특징으로 한다. 즉 명(明: vidyā)에 반대되기 때문에 무명이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반대말은, 이를테면 친구(mitra)가 아닌 이를 원수진 이[怨家: amitra]라 하고, 진실(satya)이 아닌 것을 거짓말[虛誑語: asatya]이라고 하듯이 상반되는 의미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그리고 무명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무명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견결(dṛṣṭi-)에는 유신견(有身見)ㆍ변집견(邊執見)ㆍ사견(邪見) 세 가지의 견이 있다.
여기서 유신견(satkāya-)이란 오취온은 나[我]나, 나의 것[我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나나 나의 것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신(身: kāya)은 바로 취(聚)의 뜻으로, 그 같은 오온의 취인 신을 실재하는 것(sat)이라고 하기 때문에 유신(有身)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취온 상에서 일으키는 견해이기 때문에 유신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오취온은 단멸[斷]하는 것도, 항상[常]하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단멸ㆍ항상의 두 가지 견해에 집착하는 염오혜를 변집견(antaragraha-)이라고 한다.
바로 두 가지 양 극단[邊]에 집착[執]한 것이기 때문에 그같이 말한 것이다.
나아가 만약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도 없고, 업의 과보도 없으며, 해탈도 없고 해탈을 획득하는 실천도도 없다고 결정코 주장하여, 그 같은 존재 자체의 실재성을 부정해 버리는 염오혜를 사견(mithya-)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의 견해를 견결이라고 한다.
취결(parāmars´a-)에는 견취(見取)와 계금취(戒禁取) 두 가지가 있다.
앞서 설명한 유신견ㆍ변집견ㆍ사견 세 가지와 오취온은 실제로는 뛰어난 존재가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것으로 취하는 염오혜를 견취(dṛṣṭi parāmarśa)라고 한다.
취(取)란 뭔가를 추구하고 강하게 집착한다[堅執]는 뜻이다.
그리고 계금취에 있어
계(戒: śila)란 여러 가지 파계의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행위규범을 말하며[非道計道],
금(禁: vrata)이란 새ㆍ닭ㆍ사슴ㆍ개와 같은 생활형태를 취하거나 나체로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단식하고, 탄더미 속에서 잠을 자는 등의 생활형태를 말한다.
[비도계도(非道計道), 즉 5계ㆍ10계 등 참된 열반의 도가 아닌 것을 무루열반의 도라고 주장하는 것.]
혹은 복을 낳고 죄를 소멸한다고 망령되이 주장하여 강이나 연못에서 자주 목욕하기도 하고, 혹은 나무뿌리나 과실ㆍ풀이나 채소ㆍ약물을 먹고 살아가며, 혹은 재를 온몸에 칠하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등의 일을 모두 금이라고 한다.
[비인계도(非因計道), 즉 생천의 올바른 근거가 아닌 것을 생천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계와 금 두 가지는 청정한 수행의 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청정도라고 잘못 견취하는 염오혜를 계금취라고 한다.
여러 바라문 중에 지식 있는 자는 대개 이러한 수행법을 청정도라고 주장하니, 그들은 결국 청정함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두 가지 취를 취결이라고 한다.
의결(vicikitsā)이란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 사성제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의혹을 갖게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갈림길에 이르러, 풀이 무성하여 갈길을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것처럼 고제에 대해 마음에 의혹이 생겨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 나아가 집ㆍ멸ㆍ도제에 대해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하고 의심하는 것으로, 의혹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의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질결(īrṣya)이란 타인의 뛰어난 일에 대해 마음으로 참지 못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여기서 ‘참지 못한다[不忍]’고 함은 타인이 획득한 공경ㆍ공양ㆍ재산ㆍ지위ㆍ지식 내지 그 밖의 뛰어난 법에 대해 마음에 투기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즉 질투가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질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간결(mātsarya)이란 자신이 획득한 법이나 재물에 대해 마음으로 인색하게 아끼는 심리작용으로, 자신의 소유물이 타인에게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인색함이 바로 결박이기 때문에 간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결(結)은 바로 속박[縛]의 뜻으로, 이는 바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즉
“눈[眼]이 색을 결박[結]하는 것이 아니며, 색이 눈을 결박하는 것은 아니다. 즉 그것을 결박하는 것은 바로 욕탐으로, 여기서 욕탐을 바로 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검은 소와 흰 소가 하나의 멍에에 묶여 있을 경우 검은 소가 흰 소에 묶여 있는 것도 아니며, 흰 소가 검은 소에게 묶여 있는 것도 아니다.
[두 소를 묶고 있는 것은 멍에이듯이, 눈과 색 등을 묶고 있는 것은 욕탐이라는 속박인 것이다(『잡아함경』권9).]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이렇듯 결은 바로 속박(bandhana)의 뜻이기 때문에, 앞서 설명한 결(結)이 바로 속박인 것이다.
그런데 계경에서는 다시 세 가지 속박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모든 탐을 말하는 탐박(貪縛)으로, 그 특징은 애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둘째는 모든 진을 말하는 진박(瞋縛)으로, 그 특징은 에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셋째는 모든 치를 말하는 치박(癡縛)으로, 그 특징은 무명결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