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문수사리현보장경 하권
[문수사리의 신통 3, 마하가섭이 문수사리를 쫓아내려 하다]
그때 현자 대가섭(大迦葉)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나 역시 문수사리의 신통 변화를 보았으니, 그대는 좀 들으시오.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얻으신 지 오래지 않았고, 내가 처음 수염과 머리털을 깎은 그때,
문수사리가 보영(寶英)여래의 국토로부터 이 세계에 와서 세존을 뵙고 머리 조아려 예배하려 하였으니,
그때 부처님께서는 사위(舍衛)의 기수숲 급고독원 정사에 계셨습니다.
문수사리가 여름 석 달이 다 되도록 처음부터 부처님 앞에 나타나지 않았고,
대중 스님들 가운데 있는 것을 볼 수도 없고, 초청하는 모임에 있는 것을 볼 수도 없고, 계(戒)를 설하는 가운데 있지도 않았는데,
이에 문수사리가 여름 석 달을 다 지내고서 계를 설할 그때 새삼스레 대중 가운데 와서 나타나므로
내가 곧 문수사리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석 달 동안 어디에 있었으며,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문수사리는 대답했습니다.
‘가섭이여, 내가 이 사위성에 있으면서 화열(和悅)왕궁의 채녀(婇女)들 속에, 또는 음녀와 소아(小兒)들 속에서 석 달 동안을 즐겁게 지냈습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말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사람이 우리 청정한 대중 스님들과 함께 부처님을 섬기려 할까?’
내가 곧 강당에서 나와 건추(犍搥)를 두드려 문수사리를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는 혹시 마하가섭이 건추를 두드리는 것을 보았는가, 못 보았는가?’
문수사리는 부처님께 대답했습니다.
‘이미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쫓아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문수사리여, 그대 자신이 경계의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가섭으로 하여금 산란한 뜻을 일으켜 그대를 향하지 않게 하여라.’
이에 문수사리가 현일체불급국토(現一切佛及國土)라는 삼매로써 그때를 맞춰 이 삼매에 들었는데,
문수사리가 이 삼매에 들자 곧 시방의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세계에 각각 다 마하가섭이 있어 그 늙은 손으로 건추를 잡고 두드려 문수사리를 쫓아내려는 광경을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엇 때문에 건추를 두드렸느냐?’
가섭은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예, 세존이시여, 문수사리가 여름 석 달이 다 되도록 전연 나타나지 않은 채 가만히 은밀한 안방에 가서 유숙했기 때문에 건추를 두드려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온몸으로부터 큰 빛을 내어 사방을 환히 비추시면서 나에게 타이르셨습니다.
‘가섭아, 네가 시방을 좀 보아라.’
그때 시방을 보니, 셈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마다 그 자신의 몸이 나타나 나이 늙은 내가 시방 부처님 옆에 가서 건추를 두드려 문수사리를 쫓아내려고 하는 것이며, 또 여러 부처님 옆에 각각 문수사리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대가섭아, 네가 어떤 문수사리를 쫓아내려고 하는가?
시방의 셈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처님 옆에 있는 문수사리를 쫓아내려고 하는가?
이 문수사리를 어떻게 쫓아내려고 하는가?’
내가 곧 부끄러워서 잡은 건추를 땅에 놓으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고,
신통의 힘을 다 나타내어도 건추는 땅에 떨어지려 하지 않은 채 바로 멈추어 움직이지 않으며,
이와 같이 기수숲을 비롯한 시방 불국토도 역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세존께서 나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네 스스로가 문수사리에게 귀의한다면 곧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곧 멀리서 문수사리에게 예배하고 나자, 그때야 건추가 땅에 떨어지는지라,
이내 나아가서 부처님 발아래 머리 조아려 아뢰었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가 범한 허물을 용서해 주소서.
하늘 가운데 하늘이시여, 제가 이미 문수사리가 나타낸 것을 보았으니 가령 제가 문수사리가 구족한 지혜를 강설하려 해도 다할 때가 없을 것입니다.
보살 경계의 행이 이렇게도 한량이 없는데 제가 지혜가 없기 때문에 건추를 두드린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의 보는 바로선 시방 불국토 가운데 문수사리가 부처님 옆에만 있는 것 같지만,
문수사리는 모든 불국토에 널리 있기 때문에 석 달 동안 나타나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부처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문수사리는 이 사위성에서 5백 여인을 깨우치고 화열왕궁 안의 채녀들을 교화하여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에 퇴전(退轉)하지 않게 했으며,
또 5백 동자와 5백 동녀들로 하여금 퇴전하지 않는 지위에 서서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얻게 하고 그 밖의 무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성문을 얻거나 천상에 나게 하였다.’
내가 곧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문수사리가 무슨 법을 설하여 인민을 제도하기를 그와 같이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스스로가 문수사리에게 물어보아라.
무슨 법을 설하여 그 사람들을 제도할 수 있었던가를.’
내가 곧 문수사리에게 물었더니,
문수사리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가섭이여, 일체 사람들의 근본에 따라 설법하여 계율에 들어가게 하고,
또 희락(戱樂)으로써 뭇 사람들을 가르치되,
혹은 행동을 같이하기도 하고, 혹은 유행하면서 공양하기도 하고,
혹은 전재(錢財)로써 서로 통하기도 하고, 혹은 빈궁하거나 간탐하는 속에 들어가서 달래기도 하고,
혹은 큰 청정한 행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신통으로써 변화를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제석ㆍ범천의 빛과 모양을, 혹은 사천왕의 빛과 모양을, 혹은 전륜성왕의 빛과 모양을, 혹은 세존 같은 빛과 모양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두려워하는 빛과 모양을, 혹은 거칠거나 부드러운 빛과 모양을, 혹은 허망하거나 진실한 빛과 모양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하늘의 빛과 모양을 나타내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그 근본 행이 여러 가지로 같지 않기 때문에 역시 갖가지 법을 설하여 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가섭이여, 이러한 무리에게 다섯 가지 법을 설하여 참된 진리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나는 물었습니다.
‘그대는 얼마만큼의 사람을 제도 했습니까?’
그는 나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법계와 같습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법계가 얼마나 됩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허공계와 같으니, 모든 법계와 허공계와 인종계(人種界)가 역시 그러한지라,
이 인종계와 법계와 허공계는 두 가지가 없고, 두 가지의 조작도 없습니다.’
나는 또 물었습니다.
‘문수사리여, 내가 부처님 계시는 것을 보았지만, 장차 이익됨이 없지나 않을까요?
또한 사람들을 가르쳐 도탈하게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불법이란 공하여 사람이 없는데 그 누가 가르쳐 도탈할 이가 있겠습니까?’
문수사리는 말했습니다.
‘가섭이여, 마치 열병(熱病)에 걸린 사람이 갖가지 터무니없는 말과 되씹는 말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보고 이르기를,
≺이 사람이 귀신병을 얻었다.≻ 하고,
곧 훌륭한 의사가 와서 병든 사람에게 탕약을 먹이자 그 병이 이내 나아서 다시 터무니없는 말과 되씹는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가섭의 뜻에는 어떠합니까?
어찌 귀신이나 천신이 그 사람의 몸속에서 나왔다 하겠습니까?’
나는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탕약을 마셨기 때문에 그 병이 낫게 된 것입니다.’
문수사리는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가섭이여, 그 의사가 저 사람에게 많은 이익이 있었을까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예, 그러합니다.’
문수사리는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가섭이여, 세간 사람들이 속이고 거짓부리기를 좋아하는 그것이 곧 열병이 되어 탐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나[我] 없는 것을 나 있다고 생각하여 생사에 흘러 떨어지는지라,
이 때문에 여러 불세존께서는 대자대비를 구족하신 행이 있어 세간에 출현하사
두 가지 일과 모든 생각하는 행을 끊기 위해 훌륭한 방편의 법으로써 법문에 들어가게 하되,
나라는 생각과 남이라는 생각을 제거하고,
또 속이거나 거짓부리는 것을 끊으시며,
여러 사람들을 위해 설법함에 있어서도 일체 생각을 제거해 다시 나라든가 남이라는 생각에 들어가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바라밀을 얻어 무위(無爲)를 이룩하게 하십니다.
가섭의 뜻에는 어떠합니까?
저 어찌 나라든가 남이라든가 수명이라든가 열반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대답했습니다.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했습니다.
‘가섭이여, 이 이치를 받아야 합니다.
왜 부처님인가?
그 깨달음이 항상 바른 이치를 나타냄은 무엇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고,
계율을 쓰지도 않기 때문이며,
또 깨달음이 집착을 벗어나 번뇌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