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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아유월치차경 중권
8. 무착품(無着品)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무엇 때문에 여래께서는 보살에게 무착(無着:阿羅漢)에 대하여 찬탄하시고 훌륭하게 여기셨는가?
이 보살은 모든 행업[行]을 소멸하고, 살고 있는 국토에서 떠나며,
모든 부처님께 의지하지 않고 중생들을 해탈시키느니라.
조작함도 없고 번뇌[塵勞]의 때[垢]와 괴로움ㆍ즐거움도 없으며,
색욕(色欲)을 멸하여 없애고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는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하느니라.
중생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욕애(欲埃)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탐내지 않음이 이와 같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침범함과 속임을 버리고 처소에 머무는 일도 없으며,
모든 법은 공(空)한 것이어서 적정(寂靜)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고,
모든 생각을 익히지 않아서 여러 가지 생각이 안정되면 모든 생각이 소멸되고 중생이라고 헤아리지도 않아 집착하는 바를 소멸하며,
모든 법은 공한 것임을 지혜로써 깨달아 집착하는 일이 없고 부처님의 도는 생각할 것이 없다고 알며 불호(不怙:菩提)를 원만하게 성취하면
그것을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전적(典籍:菩提法)을 연설하여 갖가지 번뇌[瑕]를 파괴하며,
과거 세계의 등정각(等正覺)의 가르침과 미래ㆍ현재의 부처님 가르침을 찬탄하고 방일하지 않고 청정하여 더러운 때를 여의며,
오직 조용하고 고요[寂然]함을 논하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보살대사(菩薩大士)가 모든 사람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부처님 도에 머물게 하고 성인의 길을 구하게 하며,
모든 법에 대하여 흠모하여 집착함이 없게 하고 자비한 마음 원만하게 갖추며
부처님 같은 어짊을 시행하게 하여 영원히 집착하거나 머물지 않게 하나니
그의 자비가 이와 같은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을 교화하여 성취시키되 중생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알며,
끝내는 큰 자비로써 집착하여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밝게 깨달았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은혜를 베풀고 도법(道法)을 보되 법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와 같이 끊어 없애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깨달음의 힘[覺力]을 찬양(讚揚)하여 원수(願數)가 있음을 헤아려 머무름 없음을 획득하고 모든 감관을 뽑아 제거하며,
중생을 교화하여 청정한 법을 깨닫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도의(道義:菩提)를 성취하게 하여 영원히 의지하지 않게 하는 까닭에
불착(不着:阿羅漢)이라고 말하느니라.
의지할 것이 없는 처소를 보고 탐하지 않는 몸을 만들며,
온갖 물질에 대하여 의지하지 않고 중생의 모임을 구하되 온갖 물질을 훼손하지 않으며,
유위법(有爲法)은 이와 같이 근본이 없음을 강설하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노닐지만 가더라도 이를 곳이 없고 본말(本末)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부처님의 거룩하고 존경스런 모습을 보고 도를 깨달았으나 적멸함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의지할 곳이 있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국토를 건립하여 한량없는 국토에 이 모든 나라가 평등하며,
세계에 대하여 조롱하거나 희롱하지도 않고 청정하되 만족하게 여기지 않으며,
복덕의 경지에 머물되 공(空)하여 모든 국토는 없다고 생각하느니라.
물러남이 없는 경지요 여인도 없으며,
모든 번뇌와 수면(睡眠)의 의지를 놓아 버리며,
부처님의 거룩한 국토를 증득하고 음개(陰蓋)의 국토를 없애며,
마군과 그 권속을 항복받고 모든 원수와 적(敵)을 제거하며,
조용하고 고요한 국토에 들어가 감동을 일으켜 변화시키며,
서원이 있는 나라를 세워 나라와 중생을 구원하느니라.
보살은 부처님의 위엄과 광명을 원만히 갖추고 머무름이 없는 곳에 머물며,
부처님의 의지를 깨달아 획득하고 청정한 법인(法印)으로 중생을 인가하며,
많은 국가를 안락하게 하고 일체의 영락(瓔珞)같은 보배로 장식하는 일과 수많은 번뇌의 티끌을 제거해 버리나니,
이는 최후의 경지인 작용이 없는 지위[無爲地]에 머무는 이로서 모든 중생들 가운데 가장 존귀하니라.
이와 같은 형상과 미묘한 부처님께서 머무는 곳을 성취하면 모든 법은 공(空)한 것임을 깨달아 도행(道行)을 구족(具足)하는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말하느니라.
온갖 즐거움을 다 떨쳐버리고 모든 감관[根]에 대하여 옳게 여기지 않으며,
일체의 법에 대하여 성내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적멸하고 평등한 수레를 타면 그것이 곧 부처님의 지혜이니,
몸과 입과 뜻으로 다함께 최상의 적멸한 경지를 닦으며,
성인의 도를 흠모하여 구하면서도 그 궤적(軌跡)에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모든 중생들을 자비로 불쌍히 여기고
마음이란 없는 것이요 마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무수히 많은 백천억의 중생들에게 권유하고 그들을 교화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큰 도를 머물게 하며,
우매한 중생들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생각하고 모든 중생은 평등한 것임을 깨닫게 하느니라.
수없이 많은 대중을 인도하여 이롭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보리의 마음을 내어 등륜(等倫:이와 비교하여 동등한 것)이 없는 데 머물게 하며,
모든 법은 평등하고 공하여 특별히 다르지 않음을 깨달아 본래 공한 것이요, 지혜도 또한 평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그 생각이 없는 데에 머물게 하느니라.
아라한이 이와 같이 의지할 대상이 없음을 이미 알고 난 뒤에
이와 같이 그 중생들의 반응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되 모든 이익을 흠모하지 않고 경적(經籍)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감관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여의고 이와 같은 법을 강론하되 영원히 말이 없으며,
여러 곳에서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되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도 없으며,
중생들을 구원하여 모든 집착을 끊게 하고 몸을 탐하는 생각을 면하게 하고 교만을 초월하게 하며,
모든 법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되는 것도 아님을 알게 하느니라.
중생들이 온갖 물질의 모양에 집착하면 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물질ㆍ아프고 가려운 느낌[痛痒:受]ㆍ고정관념[思想:想]ㆍ나고 죽는 행업[生死:行]ㆍ인식작용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고 범부를 동요하지 않으면서 해탈케 하여 불법에 머물게 하되 도적(道迹)에 집착하지 않게 하느니라.
의지하지 않도록 교화하여 정진에 힘쓰게 하고 이로움으로 인도하여 의지하게 하되 부처님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하며,
힘써 구제하고 권유하여 보살의 마음을 내게 하느니라.
집착함이 없는 마음을 넓히고 도에 인연 있는 이를 구원하며 온갖 혼란한 생각과 어리석고 속이는 마음을 여의게 하며 삼매(三昧)를 원만히 갖추고 정의(定意)을 성취하게 하여 갖가지 생각을 품지 않게 하느니라.
삿된 지혜를 없애서 중생들로 하여금 바른 지혜를 깨닫게 하며 성문의 마음을 일으켜 삿된 길[反迹]을 사모하는 이를 교화하고 부모ㆍ처자ㆍ사택(舍宅)ㆍ형제ㆍ자매를 의지하여 은애(恩愛)를 일으키지 않게 하며,
국토와 재색(財色)ㆍ온갖 물질[萬物]에 집착하여 탐구(探究)하는 생각과 번뇌[塵勞]에 전도된 이를 제도하느니라.
온갖 물질에 집착하는 모든 중생을 인도하고 교화하여 집을 떠나서 적정(寂定)을 닦게 하고 게으름과 하열한 따위의 모든 모습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국토에 들어가서 욕망과 번뇌의 법으로부터 해탈케 하느니라.
도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고 두 가지 마음을 갖지 않게 하니, 일찍이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 곧 무위법(無爲法)이요 생사법(生死法)이니라.
아무런 인연할 것 없는데 인연하고 세속의 마음을 도의 뜻이라 하며 보호하여 금지하는 계율을 범하는 이러한 무리들을 인도하여 교화하고,
두 가지 모양이 있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이들로 하여금 그런 마음이 없도록 하며,
모든 근본에서 해탈시키기 때문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말하느니라.
중우(衆祐)와 현성(賢聖)께서는 정진(精進)을 게을리 하고 남자와 여인(女人)으로서 미련하고 총명한 이와 밝고 성스러우며 어둡고 막힌 이러한 이들을 모두 인도하여 이롭게 하고 두 가지 마음을 가지지 않게 하며,
중생들을 구원하여 전진시키기 때문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물러남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여 혹 수기[別]를 받더라도 또한 거기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이 모든 보살은 도에 가깝거나 멀거나 간에 이 뜻을 분별해 알아서 두 가지 생각을 내지 않고 성현의 길을 체득하느니라.
다른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반니원(般泥洹:般涅槃)에 이르며, 모든 망상을 여의고 의지하지 않으며,
이 모든 법을 인연해서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고,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으로 모든 법을 깨달아 알며,
근본이 없는 법을 연설하는 까닭에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그때 부처님께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행업 없애고
존중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며
모든 말과 가르침 다 버리면
그런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 하느니라.
모든 진애(塵埃) 뽑아버리고
괴로움과 걱정에서 벗어나며
중생들을 구제하므로
이를 이름하여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살펴보면 중생도 얻을 수 없는 것이요
욕망과 때[垢:번뇌]도 또한 그러하며
모든 법도 다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수많은 뒤바뀐 생각 제거하고
마음 다져 의혹 없는 곳에 머물며
모든 법이 공(空)한 것임을 분별해 아니
그러므로 무착이라 하느니라.
공의 이치 깨달아 알아서
모든 생각과 집착 없으며
일체의 뒤바뀐 견해 제거해버리면
이를 이름하여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생각 다 없애고
중생이라는 생각과 악한 생각까지도 소멸하여
마음 속에 삿되고 혼란함이 없으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공한 이치 깨달아 의지하지 않으니
부처님의 도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것
더더욱 힘써 크게 정진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경(經)의 인연을 강설하고
담담하고 고요하여 조롱하고 희롱함이 없으며
중생들을 권유하여 도덕 세우면
이것을 이름하여 무착이라 하느니라.
참된 사람 자비를 수행하여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되
중생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깨달아 알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본래 없는 것인 경적(經籍) 강설하여
중생들에게 은혜 베풀면서도
일찍이 중생이란 생각 하지 않으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바르고 진실한 근(根)ㆍ역(力)ㆍ각(覺)에 대하여
중생을 위해 밝게 설법해주고
스스로도 이런 지혜 체득하였으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중생들이 적정(寂定) 깨달아
청정한 법으로 보리[道] 이루고
큰 성인의 가르침을 강설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모든 물질 믿지 않고
눈 앞에 나타난 물체를 보되
일체는 허공과 같아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알면
이것을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부처님 국토에 의지하지 않고
국토에 있을 적엔 인의(仁義) 행하며
평등한 깨달음에 머물면서
중생들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느니라.
진인(眞人)의 바른 가르침 깨달아
볼 게 없음을 관찰하고
성현의 깨달음 자세히 살피면
이것을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하느니라.
자연 그대로의 국토를 성취하고
지금 나를 증득하여 깨달으면
최후의 경지엔 본래 비롯함도 없나니
이것을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알음알이 제거해 버리고
마음 속에 성냄과 해칠 생각 없어서
응진(應眞:阿羅漢)과 같아 한스러움 없으면
적연한 도[寂然道:菩提道)를 닦아 성취하리라.
마음 정해져서 멸하지 않고
고요한 데 머물러 일으킴 없으며
도를 생각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인물(人物)에 대하여 더하거나 동요치 않고
중생의 세계에 대해서도 이와 같으며
수많은 중생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알아
그들을 교화하여 도의 이치에 머물게 하네.
중생과 보리의
영원히 생각 없는 데 머물러서
밝은 지혜로 헤아려 평등한 줄 알면
이것을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평등하여 다른 형상 없으며
모든 법 또한 이와 같나니
마음에 진정 이와 같은 도 깨달으면
그런 까닭에 생각이 없다 말하네.
이른 바 응진(應眞:阿羅漢)이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중생들 위해 밝게 분별하여 깨우쳐 주되
모든 법 고요하여 의지할 게 없다 말하네.
중생 위해 법의 이치 설하되
비록 말은 하나 가르침 없으니
널리 한량없는 중생 제도해도
중생 보고 동요하지 않느니라.
중생이라 해도 얻을 수 없는 것
모든 중생의 집착을 끊어주네.
중생 건져 사견(邪見)을 여의게 하고
모든 중생을 고뇌(苦惱)에서 건져주네.
모든 법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요
머무르는 처소도 없고 소멸함도 없네.
중생의 모든 생각 관찰하여
중생들을 곤액(困厄)에서 해탈케 하느니라.
모든 물질은 늘어나거나 무너지지도 않고
아프고 가려운 느낌도 이와 같으며
고정관념과 인식작용ㆍ나고 죽는 행업에서
제도하는 것도 다름이 없느니라.
현성(賢聖)의 법에도 동요하지 않고
범부(凡夫)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같으니
부처님 이치에 머물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느니라.
중생들은 과보(果報)에 대한 생각과
연각(緣覺)의 생각을 품고 있으므로
이 생각 초월하여 각의(覺意)에 머물게 하기 위하여
중생들을 위하여 이 법 설하였다네.
도심(道心)을 일으켜
언제나 보시를 의지하며
지계와 인욕도 이와 같이 하므로
그런 까닭에 의지할 대상 아님을 강설했느니라.
뒤바뀐 견해 깨달아
정진하여 닦고 익혀서
이러한 모든 생각 끊어 없애니,
그런 까닭에 법에 집착하지 말라고 설하느니라.
도의(道意)의 생각 내거나
삿된 지혜 만약 밝아지면
여기에 의지하지 않으리니
그런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이 법은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약간의 그 무엇도 없음을 깨달아서
이와 같은 법 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無着:阿羅漢)이라고 하느니라.
스스로 자신의 몸 헤아리므로
성문은 이런 생각 많이 하나니
이러한 생각 제거하면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모든 법에 대해 생각함 없고
약간의 그 무엇 없음을 깨달아서
이 근본 없음을 연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고 하느니라.
부모와 형제와 아들은
공적(空寂)한 것이건만 있는 것이라 집착하며
나고 죽은 행업을 인정하니
부처님도 이룰 수 없느니라.
아내와 자매(姉妹)를 사모하여
의지한 채 허망함에 쏠리므로
이를 의지해선 안 된다고 설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나고 죽는 일 만들어 내고
친족에 대한 생각 일으키며
인연 따라 정욕(情欲)을 내어
나의 오랜 벗이라 하네.
스스로 제 몸을 나라고 인정하면서
숱한 모든 일에 마음 끄달려
분별심 일으키다가 뒤바뀐 생각에 떨어지나니
기필코 마군의 가르침에 머물게 되리.
나고 죽는 행업과
시종(始終)의 재앙과 환란 다 버리고
니원(泥洹:涅槃)의 덕 찬양하나니
그런 까닭에 무착을 칭찬하여 설하느니라.
번뇌의 때에 대한 법과
흥망성쇠와 다툼을 강설하지만
이 모두는 말소리에 불과할 뿐이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중생들은 대부분 이익 다투고
방일하며 온갖 물질 탐하나니
이러한 중생들 구제하려는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집을 연모하면서도
마음으론 도 배울 생각 내나니
미련하고 아둔한 생각 이와 같기에
무착을 드러내어 찬양하였네.
오직 비천(卑賤)한 법만 보면서
참되고 오묘한 진리는 보지 않으며
갖가지 생각 살피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해탈시켜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네.
범부의 이치 제거해버리고
오로지 불법만을 흠모하여 정진하면서
중생들의 탐욕을 뽑아 없애니
그런 까닭에 무착이라 하느니라.
만약 선악의 행업을 보고도
이와 같이 많은 법에 집착하나니
한량없는 중생들 이렇기 때문에
구원하여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네.
모든 훌륭한 상호 갖추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정진하면서
이와 같은 모양에 집착하지만
어진 이는 여기에서 해탈하였네.
모든 부처님의 국토 장엄하고서
존상(尊上)의 법 성취하고는
바른 깨달음의 이익에 의지하나니
해탈하여 무착의 경지에 이르렀네.
무위법(無爲法)의 이치
얻었건 얻지 못했건 간에
이것은 성인의 도를 수행함이니
바른 서원 세울 수 있느니라.
계를 지키지 못하느니 범하지 않느니 하거나
방일하느니 지혜롭느니 하면서
어둡고 캄캄하고 연약한 사람이
문득 이 세 가지 일에 집착하느니라.
중생들 이런 모습에 집착하여
모든 생각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약간의 생각이라도 덜어 없애야 하므로
그런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거룩하고 많은 복전도 생각하고
또한 덕이 없다는 생각도 내어
범인(凡人)의 법을 분별하나니
그런 까닭에 집착 없는 법을 설하느니라
이와 같은 행업 지어서
남자다 여자다 분별하거나
현성(賢聖)이니 범부(凡夫)니 하고 분별하면
이것은 곧 두 가지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중생들이 이 두 가지 일을 일으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행위로서
이 두 가지 사이에 의지하는 까닭에
해탈시켜 무착의 경지에 이르게 하느니라.
흔들림에 이르러서도 물러남이 없고
조작하면서도 짓는 일 없으니
성인의 도에 가까워지게 하려고
이런 마음 일으켜 이런 생각 하게 하였네.
큰 도를 획득하고서
더 이상 없앨 것 없다는 마음 내지 않네.
마음 속에 항상 이런 생각 품고서
무위(無爲)의 도를 구하느니라.
그들은 중생을 받아들이니
어진 사람이 우매한 중생을 염려하네.
이런 까닭에 무착이라 말하나니
모든 형상을 구하는 중생 제도한다네.
이것은 곧 보살법이니
아라한의 몸으로 나타나되
그런 인해 법인(法忍)을 일으키지 않으며
스스로 무착이라고 말하느니라.
아라한의 법 강설하나니
이것은 마땅히 보살이 하는 일
집착 없는 법에 머물면서
최상의 도[無上道]를 증득한다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보살로서 무착행을 하는 일에 대하여 찬탄하셨으니 이것이 곧 훌륭한 방편임을 마땅히 알아야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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