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설수진천자경 제3권
5. 무외품(無畏品)
수진천자가 다시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보살은 무엇을 좇아 도의 뜻을 일으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보살은 일체의 욕망으로부터 도의 뜻을 일으킨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바로 이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보살은 애욕 가운데서 애욕과 더불어 종사하여 도를 이루니, 애욕을 따르지 않는다면 보살은 무엇을 인연하여 일체의 도의 뜻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마음은 어느 곳을 좇아 도를 건립(建立)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모든 불법 가운데서 도의 뜻을 건립한다. 왜 그런가? 천자여, 도의 뜻은 본래 모든 불법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일체 불법은 어느 곳에서 일어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일체의 불법은 본래 없는 것이어서 일어나는 바가 없다. 왜 그런가? 천자여, 마치 허공이 본래 없는 것과 같으니, 허공으로부터 일체의 불법이 일어난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일체의 불법(佛法)이 얼마나 됩니까? 그 수를 알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모든 법과 같이 불법 또한 그러하다. 왜 그런가? 일체의 법과 같이 여래가 이 최정각(最正覺)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자여, 모든 법과 같이 불법의 수도 이와 같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다시 불법이라고 하는 겁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음란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바로 불법이 된다. 왜 그런가? 애욕은 깨달음[覺]이 없으므로 도(道)로써 가르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장차 일체가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일체가 모두 마땅히 부처가 되기도 하고 부처를 구하기도 할 것이니, 그대는 의심하지 말라. 왜 그런가?
천자여, 일체가 마땅히 여래의 정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모두 부처가 될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적정(寂靜)에 들고 공(空)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적정과 공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공을 얻지 못한다면 무엇을 좇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공은 짝할 수는 없고 강함도 없고 약함도 없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여래는 공을 깨우쳐 도를 얻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말한 바와 같이 공이 곧 도(道)이니, 부처님께서 ‘공을 알면 곧 도에 든다’고 말씀하셨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공과 같은 행(行)은 마땅히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색욕(色欲)이 없는 행이 바로 공의 행이니,
욕계(欲界)에서 불위정행(不爲情行)을 행하고, 또한 불향행(不香行)을 행하며,
또한 불색행(不色行)을 행하고, 또한 불무색행(不無色行)을 행하며,
또한 불신행(不身行)을 행하고, 또한 불심행(不心行)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행을 행하지 않는 것이 또한 공이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여래가 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본래 공을 행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여래의 공 또한 이 공과 같아서 저도 가진 바가 없고 나도 그러하니, 만일 행한 바가 없다면 곧 여래의 행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만일 가진 바가 없다면 마땅히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만일 가진 바가 없다면 마땅히 가진 바가 없음을 행해야 하니, 다른 나머지 행이 다른 나머지 것에 이르지 않는 것도 가진 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행이 바로 또한 가진 바가 없는 것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만일 가진 바가 없다면 무엇을 가지고 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음욕에 이르러 욕망을 여의면 곧 이름하여 가진 바가 없다고 하고, 음욕 가운데서 가진 바가 없음을 익혀[習]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의 욕망에 대해 욕망하지도 욕망하지 않음도 없으니, 그런 까닭에 이름하여 가진 바가 없다고 한다.
욕망을 익히지 않음을 이름하여 가진 바가 없다고 하고, 나와 내 몸으로 공(空)의 행에 머무는 것을 이름하여 가진 바가 없다고 하니, 이 가진 바가 없음을 익히는 것도 가진 바가 없는 것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엇을 익혀야 가진 바가 없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적정(寂靜)을 익히면 가진 바가 없다.
이것은 공(空)이며, 이것은 한가함[閑]이며, 이것은 나지도 않고 일어남도 없으니, 적정이 곧 가진 바가 없음을 익히는 것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엇을 하는 것을 이름하여 익힌다[習]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파괴됨이 없음을 이름하여 익힌다고 하고,
모든 소유를 밝혀 더러움이 없음을 이름하여 익힌다고 하며,
한도(限度)를 지을 수 없어서 마치 허공과 같음을 이름하여 익힌다고 하고,
잘난 체함을 여의고 항상 일체를 비추어 밝힘을 이름하여 익힌다고 하며,
많지도 않고 또한 적지도 않음을 이름하여 익힌다고 한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엇이 이 익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법을 익힘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익힘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엇을 이름하여 익힘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법을 익힘을 아는 것이 바로 곧 익힘을 아는 것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뜻이 망령되이 믿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 그 모양(相)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모든 걸림 없는 행이 바로 그 모양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뜻이 망령되이 믿지 않는 보살은 어떻게 믿음으로 베풀어준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뜻이 망령되이 믿지 않는 이를 이름하여 ‘눈으로 일체의 모든 법을 보았다’고 하니,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따라 믿고 따르는 바가 없으며, 뜻이 망령되이 믿지 않는 이는 믿음으로 베풀어준 은혜를 되갚지 않는다. 왜 그런가?
처음부터 다 청정하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은 보살은 기꺼이 대중 가운데 들어가지 않으며 그 가르침을 따르지도 않습니까?
이것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마땅히 어떻게 응대해야 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수염과 머리를 깎은 보살은 기꺼이 대중 가운데 들어가지 않으며 다른 가르침을 따르지도 않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세간에서 가장 후(厚)하다’고 한다. 왜 그런가?
천자여, 무위(無爲)를 짓는 것을 이름하여 승가[衆僧]라 하는데, 보살은 무위에 머물지도 않고 무위에 그치지도 않으니, 그러므로 이름하여 ‘세간에서 가장 후한 이’라고 한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가령 보살이 무위에만 머문다면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가령 보살이 무위에만 머물러 일체를 이익되게 함이 없다면 곧 소승(小乘)의 익힘에 떨어져 멸도(滅度)할 것이니, 이것이 그 허물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위는 8도(道)의 자리이며, 유위(有爲)는 범부의 자리인데, 보살은 범부의 자리에 머무는 까닭에 세간에서 가장 후한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보살은 무위의 자리에 머물지도 않고 또한 유위의 자리에 머물지도 않으니, 그런 까닭에 이름하여 ‘세간에서 가장 후하다’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보살은 행을 일으키는 자이니, 때마침 유위에 그쳐서 무위에 머물지도 않고 무위를 짓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에 세간에서 가장 후한 이가 되는 것이다.
유위에 머물러서 옳고 그른 곳을 다 알고, 무위에 머물러서 모든 지혜로운 곳을 알며, 이미 유위의 옳고 그른 것을 알기에 곧 그 가운데 머물고, 이미 무위의 지혜를 알기에 그 가운데 그치지 않는다.
천자여, 비유컨대 용맹스러운 사나이가 활을 들고 화살을 먹여 허공을 향해 쏜다면, 화살이 공중에 머물지도 않고 또한 아래로 떨어지지도 않는 것과 같다.”
문수사리가 천자에게 말했다.
“이것은 어려운 것인가?”
천자가 대답하였다.
“매우 어렵고, 매우 어렵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보살이 하는 것은 이 보다 더 어려우니, 왜 그런가?
유위 가운데서 버리고 떠나지 않으면서도 곧 무위를 얻고, 무위에 머물면서도 유위 가운데서 일체를 길러 보호하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보살의 두려워함은 유위로부터 이른 것입니까, 무위로부터 이른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보살의 두려워함은 두 가지 인연으로부터 이른 것이니, 유위를 따르기도 하고 또한 무위를 따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유위를 따르는 중에는 애욕을 두려워하고, 무위 가운데 있어서는 애욕이 없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이미 애욕이 없다면 어째서 다시 두려워합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3계(界)를 가까이 하지 않음이 바로 두려움이 되니, 3계를 가까이 하지 않으면 소승의 자리에 떨어지게 된다.”
천자가 다시 물었다.
“문수사리여, 어떻게 보살은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었을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천자여, 보살은 유위 가운데서도 항상 지혜다운 지혜로 훌륭한 방편의 지혜를 행하여 무위에 떨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일체를 위한 까닭에 유위를 버리지 않고, 불법(佛法)을 위한 까닭에 무위에 떨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이 소유한 복 보시[福施]의 인연은 유위에 가깝고, 소유한 부처님 지혜[佛慧]의 인연은 무위에 떨어지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유위에 머물면서도 이미 선정을 세우고, 방편의 지혜에 머물러 선정을 좇아 돌아오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도의 뜻에 머물러 곧바로 공덕을 일으키고, 큰 비(悲)에 머물러 널리 일체를 보호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텅 비어 한가한 곳에 머물러 마군의 일을 깨달아 알고, 이미 훌륭한 방편에 머물러 마군의 행을 항복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큰 자(慈)에 머물러 널리 법을 말하고, 큰 비(悲)에 머물러 온갖 보시를 행하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생사에 머물러 열반의 근본을 심고, 열반에 머물러 생사의 근본을 심으니,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또한 천자여, 보살은 나지 않는 가운데서 이미 태어나고, 유위 가운데서 이미 태어남을 벗어나며, 본 바의 법을 나타내어 5음(陰) 6쇠(衰)를 칭찬하여 기리지 않고, 여의어서 생겨날 것이 없음을 다 보아 알며, 고요하게 이미 고요해져서 불타거나 타오르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가운데에도 생겨날 것이 없으며, 애욕을 다 가지고도 애욕에 더럽혀지지 않고, 배운 자나 배우지 않은 자가 모두 복종하며, 소승의 해탈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고, 사람 몸에 들어가도 법신(法身)을 버리지 않고 마계(魔界)에서 법계를 나타낸다.
방일함이 없이 지혜로써 무위에 들어가고, 방편으로써 무위를 좇아 돌아오며, 모든 옳고 옳지 않은 것을 숱하게 나누어 나타내도 모두 참아내서 부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것은 항상 즐겨 보기를 생각하고, 법이 나타내 보인 것은 여우같은 의심을 하지 않는다.
천자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두려워하는 바가 없음을 얻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