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상권
8. 용사범지경(勇辭梵志經)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석 달을 머물며 기수급고독원에서 한 때를 보내고 계셨다. 타사국(墮沙國) 장자(長者)의 아들들이 용사(勇辭)라고 하는 한 범지에게 품삭을 주어 부처님과 논쟁을 벌여 이기면 금전 오백 냥을 주겠다고 했다.
범지 역시 부처님과 같이 석 달 안거 중이었는데, 오백여 가지나 되는 어려운 질문거리를 가지고 있는데다 각각의 질문 중에는 변통(變通)할 수단이 준비되어 있어, 논쟁에 관한 한 자기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자처하는 터였다.
부처님께서는 석 달의 안거를 마치고 비구들을 거느리고 타사국을 향해 출발하셨다. 그리하여 이 고을 저 고을 다니며 경전을 말씀하시다가 타사국 원숭이 시내[猿溪] 곁에 있는 높은 누각에 이르셨다.
장자의 아들들은 부처님과 비구들이 자기 나라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백여 명이 함께 모였다.
이때 범지가 말하였다.
“부처님이 이미 우리나라에 당도하였다니, 어서 가서 질문을 하여 꼼짝 못하게 해야겠다.”
범지는 곧 장자의 아들들을 데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았다.
장자의 아들 중에는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는 이도 있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는 이도 있고, 묵묵히 있는 이도 있었다. 장자의 아들들이 모두 자리에 앉고, 범지가 부처님을 자세히 보니 위신력(威信力)이 매우 크고 우뚝하여 도저히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에 범지가 두려운 마음이 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니, 부처님께서 범지와 장자의 아들들의 음모를 모두 아시고 『의족경』을 말씀하셨다.
스스로 말하기를, 으뜸가는 맑은 법을 얻어
아무 것도 나의 밝은 진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아는 바에 집착하여 쾌락만 추구하고
진리를 찾는답시고 삿된 학문에 빠져 있네.
항상 남들을 모두 이기기를 바라나니
어리석은 말로 도리어 서로를 불태우네.
마음에는 뜻을 생각하나 본래 할 말을 잊고
도리어 남을 골탕먹일 말만 하고 만다네.
많은 사람들 중에는 뜻을 알기 어려워
뜻을 어렵게 하고자 온갖 말을 동원하네.
사람들은 대답 못하면 화를 내나니
난해한 문제를 사람들은 훌륭하다 하네.
자신의 소행에 대해 문득 의심하여
스스로 잘못이라 생각하고 나중에는 후회한다네.
말이 차츰 머뭇거리고 생각이 나지 않아
사도로는 정도를 골탕먹일 수가 없구나.
할 말이 막히자 슬픔ㆍ근심ㆍ고통에 빠져
앉아서는 괴로워하고 누워서는 끙끙 앓는다네.
본래 삿된 학문으로 말만 번지르 꾸미더니
말이 꿇리자 도리어 뜻조차 낮아졌네.
이미 이를 알았으면 입을 다물어야 하거늘
급하게 입을 여닫아 어려운 질문 던지네.
어려운 질문할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여
사람들에게 뽐내기 위해 훌륭한 질문을 하네.
달콤하고 좋은 말에 기쁜 마음이 생기나니
환희에 차지만 상대는 아랑곳 하지 않네.
스스로 옳다 여겨 번뇌에 빠지고 말지만
상대방이 배우지 않는데 무슨 소용 있으랴.
이미 이를 알았거든 부질없는 언쟁 말지니
이런 짓을 하지 않으면 훌륭한 해탈일세.
많고 많은 생을 두고 고통에 시달려 왔나니
뜻을 같이할 동료를 구하여 함께 질문하고자 하네.
용감히 행동하며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누구를 시켜 그대와 대화하게 하랴.
어리석은 소견으로 어려운 말만 하려 하니
너는 삿된 이치로 어리석음만을 고집하는구나.
너는 꽃만 보았지 열매를 보지 못했으니
말을 할 적엔 모쪼록 뜻을 잘 찾도록 하라.
삿된 생각 극복하면 점차 밝음이 열리나니
뜻이 같건만 진리를 공연히 서로 해치는구나.
선한 법에 대하여 용감히 무슨 말을 하리.
저 선과 악을 받아들여 근심하지 말아야지.
행동과 생각이 이르면 명성은 나게 마련
마음 속에서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네.
대장과 함께 군대의 일을 의논하니
반딧불이 온 세상을 비추려 하는 것과 같네.
부처님께서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