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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2권
1.2.7. 보은연(報恩緣)
『선공경경(善恭敬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 번 네 구의 게송을 듣고서 혹은 초(抄)하거나, 혹은 대나무와 비단에 베껴 써서 약간 겁(劫)동안 명자(名字)를 지닌 적이 있으면 그 화상(和上)과 아사리(阿闍梨) 등을 어깨 위에 얹어가지고 다니거나 혹 때로는 등에 업기도 하거나. 때로는 정수리에 받들어 이고서 항상 받들어 모셔야 하느니라.
수행하는 사람은 또한 일체의 악기를 가져다가 이 스승에게 공양해야 하느니라.
이와 같은 일을 하여도 오히려 스스로 스승의 은혜를 다 갚았다고 할 수 없느니라.
또한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스승인 화상의 처소에서 공경스럽지 못한 마음을 일으켜서 항상 스승의 허물을 말한다면, 나는 저 어리석은 무리들이 지극히 많은 괴로움을 받아서 다가오는 미래 세상에서는 틀림없이 악한 세계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겠노라.
그러므로 아난아,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치노니 항상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행해야 하느니라.
그러면 마땅히 이와 같이 뛰어나고 훌륭한 법을 얻을 것이니 소위 삼보와 매우 심오한 법을 사랑하고 중하게 여겨야 하느니라.’
또 『범망경(梵網經)』에서 말하였다.
“불자들아, 너희는 대승의 법사와 지견이 같고 수행이 같은 이가 승방(僧坊)이나 사택(舍宅), 그리고 성읍(城邑)에 오되 만약 백 리에서나 천 리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곧 맞아들여야 하고 전송하여 보내되 예배하고 공양해야 하느니라.
매일 같이 세 때를 공양하되 하루에 금 석 냥 값어치의 맛있는 온갖 음식을 차려 공양하고 앉을 평상을 법사에게 공양해야 하며,
그 밖에 필요로 하는 물건이면 무엇이든 다 공급해 드리고 항상 법사에게 세 때에 설법해 주기를 청하되,
매일 세 때마다 예배하고 성내는 마음과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마음을 내지 말며,
법을 위해서는 몸을 멸해가면서까지 법을 청해야 하나니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가벼운 죄 [輕垢罪]를 범하는 것이 되느니라.”
또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우바새가 여섯 가지 무거운 계율[重戒]을 받아 지닌 뒤에 사십 리 안에 법을 강론하는 처소가 있는데도 능히 가서 듣지 않으면 뜻을 잃은 죄[失意罪]를 얻는다.”
또 『대방등다라니경(大方等陀羅尼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부모와 처자가 있어서 이 사람이 도량에 이르고자 할 때 놓아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마땅히 부모 등의 앞에서 갖가지 향을 사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이렇게 말해야 하느니라.
〈제가 지금 도량에 이르고자 하니 불쌍하게 여기시어 청허(聽許)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또 마땅히 갖가지 말로 간청하여 깨닫도록 적절하게 설법하되, 역시 세 번 간청해야 하느니라.
그래도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마땅히 사택(舍宅)에서 묵묵히 스스로 생각하거나 경전을 읽고 지녀야 하느니라.”
또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법을 설해주는 법사에게 공양하면 이 사람은 곧 현재의 세존을 공양하는 것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이 사람은 이와 같아서 공양한 바를 따라 원하는 바를 성취할 것이며 나아가 아녹보리(阿耨菩提)까지도 증득할 것이다.
그것은 법을 설해주신 법사를 공양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법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을 조복(調伏)하고,
마음을 조복하였기 때문에 지혜가 없어 캄캄한 세계를 유전(流轉)하던 것을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법 듣기를 여의면 어떤 법으로도 능히 마용을 조복할 수 없느니라.”
또 『승사유경(勝思惟經)』에서 말하였다.
“죄업(罪業)을 일으키지 않고 복업(福業)도 일으커지 않으며 무동업(無動業)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곧 부처님을 공양한다고 말한다.”
또 『화수경(華手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꽃과 향과 의복ㆍ음식ㆍ탕약 따위로써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은 참다운 공양이라고 말하지 않고 여래께서 앉아 계시는 도량에서 미묘한 법을 얻어 그 법을 따라 닦고 배우는 것을 곧 참다운 공양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게송에서 말하였다.
만약 꽃과 바르는 향이며
옷과 음식과 탕약,
이런 것으로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여도
참다운 공양이라고 말하지 않네.
여래께서 앉아 계신 도량에서
미묘한 법을 얻어서
만약 어떤 사람이든지 닦고 배우면
이것을 진정 부처님을 공양한다 말하네.
또 『십주바사론(十住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이 향과 꽃을 내린다 해도 여래를 공양하고 공경한다고 말하지 않고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일심으로 방일(放逸)하지 않고 성인의 법을 친근히 하고 닦아 쌓는 것을 곧 부처님을 참으로 공양한다고 말하느니라.’”
또 『보운경(寶雲經)』에서 말하였다.
“재시(財施)로써 부처님께 공양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의 법신(法身)은 재시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법시(法施)로써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처님의 도를 구족하여 법으로써 공양하는 것이 제일이 되느니라.”
또 『선공경경(善恭敬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비구가 비록 또한 번의 하안거를 지냈다 하더라도 능히 이와 같은 법구(法句)를 익혀 말지 못하면 그는 마땅히 다른 사람을 따라서 의지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자신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다른 사람에게 주고자 하는 의지사(依止師)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일백 번 하안거[百夏]를 지낸 나이 많은 비구라고 하더라도 사문(沙門)의 비밀한 일을 알지 못하고 법률 따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마땅히 의지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느니라.
만약 어떤 비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법을 받으면 그를 비구는 그 스승에게 마땅히 존경하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법을 받으려고 할 때에는 마땅히 스승의 앞에서 경솔하게 웃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를 드러내지 않아야 하느니라. 다리를 꼬고 앉아서도 안 되며 발을 보 여서도 안 되고 발을 움직여서도 안 되며, 다리를 넘어다녀서도 안 되느니라.
스승이 묻지 않으면 문득 말하지 않아야 하고 무릇 시키는 것이 있으면 명령을 어기지 말아야 하며, 스승의 열굴을 빤히 보지 말고 스승으로부터 삼주(三肘)쯤 떨어질 것이며, 앉으라고 명하면 가르침을 어기지 말아야 하고 그 스승의 처소에서는 자비한 마음을 꼭 내어야 하느니라.
만약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먼저 마땅히 여쭈어 보아서 스승의 허락이 있은 연후에 결단을 청해야 하느니라.
마땅히 하루 세 때씩 스승의 안부를 여쭈어야 하는데 만약 세 번 안부를 여쭈지 않으면 그 스승은 마땅히 법대로 다스려야 하느니라.
만약 제자가 스승에게 나아갔는데 스승이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흙덩이나 혹은 나무, 때로는 풀로 표시하여 두어야 하느니라.
만약 스승이 방 안에 계시는 것을 보거든 이 때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지극한 마음을 일으켜서 방을 세 번 돌고 스승을 향하여 이마를 대어 예를 올리고 비로소 돌아와야 하느니라.
만약 스승을 보지 못했으면 모든 일을 다 중지하고 하지 않아야 하는데, 대소변 보는 일만은 제외된다.
그리고 또 제자는 그 스승의 처소에서 거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스승이 꾸짖거든 반항하거나 오히려 보복해서도 안 되느니라. 스승이 앉고 눕는 평상은 마땅히 먼저 펴놓고 닦아 먼지와 때와 벌레나 개미 따위가 없게 해야 하느니라.
만약 스승이 앉거나 눕거나 나아가 스승이 일어나거나 해도 마땅히 독송(讀誦) 업을 닦아야 하느니라.
그 때 저 배우는 사람은 동방에 해가 떠오르면 곧 스승이 계신 곳에 이르며 때를 잘 알아서 자주 스승의 주변에 가서 필요한 것이 있는가를 묻되
‘제가 무슨 일을 할까요?’라고 해야 하느니라.
또 제자는 스승의 앞에 있으면서 코를 풀거나 가래를 뱉지 않아야 하고 만약 절 안에서 걸어디닐 때에는 스승을 공경하기 때문에 가사(袈裟)로 어깨를 덮지 말아야 하며, 머리도 싸매서는 안 되느니라.
만약 날씨가 더우변 날마다 세 때에 부채로 스승을 부쳐드려야 하고 세 차례 물을 올려 씻고 목욕하게 해야 할 것이며, 또 세 때에 꼭 시원하게 마실 것을 드려야 하느니라.
또 스승이 경영하는 일을 몸과 힘을 다하여 도와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미래 세계에 모든 비구들이 혹은 스승의 처소에서 공경하는 마음은 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사승(師僧)의 장단점을 말한다면 그 사람은 곧 수다원(須陀洹具足)이 아닐 것이요 또한 범부도 아니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리니 마땅히 이와 같이 다스려야 하느니라.
스승에게 정말 허물이 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말을 해서는 안 되거늘 더구나 아무 허물도 없는 것이겠느냐?
만약 어떤 비구가 그 스승의 주변에 있으면서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나는 말하리라. 따로 한 작은 지옥이 있으니 그 이름은 퇴박(推撲)인데 그는 마땅히 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곳에 떨어진 뒤엔 몸은 하나인데 머리는 넷으로서 신체 모두가 불이 타서 그 형상이 마치 불더마처럼 크고 맹렬한 불꽃을 내면서 치열하게 타올라 꺼지지 않을 것이니라. 그것이 그치고 나면 다시 되풀이하여 그렇게 되곤 하리라.
그 지옥에는 또 여러 가지 곤충이 있는데, 그 이름을 구시(鉤嘴)라고 한다.
그 모든 독충(毒虫)들이 항상 혀의 뿌리를 먹어 들어가느니라.
그 때 저 어리석은 사람이 거기에서 몸을 버리면 축생(畜生) 속에 태어나나 니, 그것은 모두 지난 옛날 스승을 꾸짖고 욕했기 때문이다. 설근(舌根)하느니라.
비록 사람의 몸을 얻기는 하였으나 피부가 일반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사람의 형색(形色)을 원만하게 갖추지 못해서 항상 남에게 깔보이고 천시되거나 비방(誹謗)과 능욕(陵辱)을 당하며, 불세존(佛世尊)을 떠나 있어서 항상 지혜가 없이 지내다가 거기에서 죽고 나면 도로 지옥에 떨어져서 다시 한량없고 끝없는 고통과 걱정의 법을 얻게 되느니라.’
1.2.8. 방법연(謗法緣)
삼가 생각해 보면 지금은 말법 시대라서 법이 사람을 쫓아 잘못되어 가고 있다.
도인(道人)과 속인(俗人)이 서로 침범하여 오류(誤謬)를 전하고 참된 것율 저버린 채 한곳에 뒤섞여 동행(同行)한다.
내전內典:佛經)은 배우지 않고 오로지 속서(俗書)만을 숭상하면서 비록 내전을 발췌해 베껴도 마음이 지극히 정성스럽지 못하다. 이미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지 않고 또한 어긋나고 들린 것이 많으며 공동으로 간직하되 혹은 문이나 처마 밑에 두고도 바람 불고 비 뿌리거나 벌레들이 갈아먹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경전들로 하여금 영험(靈驗)의 공이 없게 하고 외워도 괴로움을 구원하는 이익이 없게 되리니, 이것은 실로 조작(造作:행위)이 정중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또한 아인(我人)이 지나치게 교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복경(敬福經)』에서 말하였다.
“선남자야, 삶을 경영하는 법으로 전도(轉倒)되어서는 안 된다. 을(乙)자에 거듭 점을 찍은 것[乙字重點:心]이 오백 세상 동안 미혹한 길에 떨어져서 바른 법을 듣지 못할 것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지나간 과거 세상에 온갖 악업(惡業)을 지어 혹은 법을 헐뜯거나 때로는 성인을 비방하거나 법을 설하는 사람에게 장애가 되는 일을 했거나, 혹은 경법을 발훼해 베낄 때에 문자를 빠뜨렸거나 때로는 남의 법을 헐뜯고 무너뜨렸거나, 혹은 다른 경전을 몰래 숨겨두었으면 그는 이런 업연(業緣)으로 말마암아 이제 장님의 과보를 얻게 되리라.”
또 『대반야경(大般若經)』[제440권에 있는 내용임]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선남자나 선여인 등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매우 심오한 경전을 베껴 쓸 때 얼굴을 찌푸리거나 하품을 하거나 무단히 장난치고 희희덕거리거나 서로서로 업신여기거나 몸과 마음이 조급하고 시끄러워 문구가 거꾸로 뒤바뀌고 뜻음 미혹하여 재미[滋味]를 얻지 못하거나 뜻밖의 일이 갑자기 일어나 베껴 쓰기를 끝내지 못하면, 그것은 보살에 대한 마군의 일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또 『대승연화장경(大乘蓮華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의 금계(禁戒)를 받고도 장래에 보호하지 않고 각각 말하기를
‘나는 곧 대승법에 대하여 마치 캄캄한 밤과 같아서 알 수 없다’고 하거나
각각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법을 증득하였다’고 자처하면
철장(鐵鏘)지옥에서 받을 괴로운 일들을 이루 다 기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도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장님이 되어 바른 법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
또 「아난정계율론(阿難請戒律論)』에서 말하였다.
“승니(僧尼)와 속인 등이 경ㆍ율ㆍ논 등을 읽을 때에 말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면서 책을 뒤적거리면 그는 도리천(忉利天) 세수(歲數)에 의하여 중한 돌 갈라(突吉羅) 죄를 범하는 것이며, 이억 년 동안 방보(傍報:畜生報)를 받아 노루나 사슴의 무리 속에 떨어져서 항상 동을 맞아 그 괴로움과 아픔을 참기 어 려울것이다.
기록 할 수 없는[無記]농담의 말을 하변 경ㆍ율ㆍ논을 읽었다 할지라도 또한 앞의 것과 같은 과보를 초래한다.
혹 경전이나 불상을 방이나 마루나 처마 앞에 두면 도리천 세수에 의하여 팔 백 년 동안 중한 돌길라죄를 범하는 것이고, 이억 년 동안 방보를 받아 돼지나 개의 무리 속에 떨어져 짐승으로 태어날 것이다. 만약 어쩌다 사람의 몸을 얻어도 일억 년 동안 항상 나그네의 몸으로 분주하기만 하고 자재(自在)로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
또 『대품경(大品經)』에서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를 비방하고 법을 파괴한 업장의 인연이 쌓였기 때문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년 동안 큰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법을 파괴한 사람은 한 큰 지옥으로부터 다른 큰 지옥에 가게 될 것이고 거기에서 만약 화겁(火劫)이 일어날 때에는 다시 다른 곳에 있는 큰 지옥에 이르게 되며 거기에 태어나서도 한 큰 지옥에서 다른 큰 지옥에 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서도 만약 화겁이 일어날 때에는 다시 다른 큰 지옥에 이르게 되고 거기에 태어나서도 한 큰 지옥으로부터 다른 큰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시방에 있는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거기에서 만약 화겁이 일어나면 그런 이유로 그곳에서 죽고 말 것이다.
뱀을 파괴한 업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그 사이에 큰 지옥으로 온 것이다. 이 사이에 있으면서도 또한 한 큰 지옥에서 다른 큰 지옥에 이르는 동안 한량없이 많은 괴로움을 받는다. 여기에서 화겁이 일어나기 때문에 다시 시방 세계 다른 국토에 이르러 축생들 속에 태어나며, 법을 파괴하여 받는 죄업의 괴로움은 지옥편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한 죄가 점점 업어지면 혹 사람의 몸을 얻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맹인(盲人)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전다라(旃陀羅)의 집안에 태어나거나 화장실 청소하는 집 또는 송장을 메는 사람의 집안에 태어나는 등 갖가지 하천한 집에 태어나게 된다. 그렇게 태어나도 눈이 멀거나 또는 외눈이거나 흘겨보는 눈을 가지거나 또는 혀가 없거나 귀가 없거나 손이 없으며, 부처님도 안 계시고 법도 없으며 부처님의 제자도 없는 처소에 태어나게 된다. 왜냐 하면 법을 파괴하는 업을 심어 두럽게 쌓아 모았기 때문이다.”
또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이 경전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현세(現世)에서 마땅히 한량없는 병의 고통으로 시달림을 받고 해를 입게 되며, 대부분 중생들에게 꾸지람과 욕을 먹게 될 것이다.
목숨을 마친 뒤에는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고 얼굴 모양이 추하고 더러우며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항상 풍족한 공급이 없고, 비록 또한 조금 얻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추하고 악한 것이며 항상 처지가 가난하고 궁색하며 하천(下賤) 하고 바른 법을 비방하며 삿된 견해를 일으카는 집안에서 살게 된다.
만약 임종(臨終)할 때엔 혹 흉년을 만나든지, 난리가 나거나 전쟁이 일어나는 일을 당하거나 포학(暴虐)한 제왕(帝王)을 만나거나 원수나 적의 침략으로 핍박을 받게 된다.
비록 착한 친구가 있더라도 만나지 못하고 생활의 근본이 되는 필수품을 구하더라도 얻지 못하며, 비록 조그만 이익을 얻었다 하더라도 항상 굶주리고 목마를 것이다. 오직 하천한 범부들과만 친해지고 국왕이나 대신들은 모두 돌봐주지 않을 것이다. 설령 또한 어떤 사람이 설법하는 것을 들어 그것이 이치에 맞더라도 끝내 믿고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날개 부러진 새가 날아갈 수 없는 것과 같다. 이 사람도 그리하여 미래 세상에 인간이나 천상의 좋은 곳에 가지 못할 것이다.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러한 대승 경전을 믿으면 본래 받은 형체가 아무리 추하다 하더라도 이 경전의 공덕으로 곧 단정해질 것이며 위엄스런 얼굴색과 힘이 날로 더욱 늘어나고 많아져서 항상 사람과 하늘이 즐겁게 볼 것이고 공경하고 사랑하며 연모하는 정으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국왕과 대신들과 집안 친척들도 그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모두 다 공경하고 믿을 것이다.
만약 내 성문 제자들 가운데 제일 희유(希有)한 일을 행하고자 하면 마땅히 이 세간을 위하여 이와 같은 대승경전을 널리 펴야 하느니라.
선남자야, 비유하면 안개나 이슬이 그 세력을 아무리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도 해가 뜨기 전까지만 있을 수밖에 없나니, 해가 이미 뜨고 나면 남김없이 사라지느니라. 따라서 선남자야, 이 모든 중생들이 간직한 악한 업도 또한 이와 같아 세상에 머무는 세력이 큰 열반의 해를 불 때까지 밖엔 더 지나갈 수가 없어서 그 해가 이미 떠오르면 모든 악한 업이 다 사라져 없어지느니라.”
또 『법화경(法華經)』에서 말하였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거나 또는 멸도(滅度)하신 뒤에 그 누군가가 이런 경전을 비방하여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베껴 쓰거나 하는 사람을 보면 그를 업신여기거나 천하게 보며 미워하고 원한을 품을 것이다.
이 사람의 죄의 과보를 너는 지금 다시 들어보아라. 그 사람은 목숨을 마치고 나면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가 한 겁을 채울 것이고, 이 한 겁이 다 지나고 나서도 다시 거기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전전하여 수없이 많은 겁을 지내 야 하며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면 축생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생을 수없이 많은 겁 동안 세상에 태어나지만, 곧 귀머거리나 벙어리 등 모든 감관이 갖추어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을 비방하는 사람의 그 죄를 만약 말한다면 겁(劫)이 다하도록 말해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아침에 듣고 나면 진실로 기쁨이 있어
저녁에 죽는다 해도 잠으로 근심 없으리.
허공[空]을 보고 청간(靑簡)을 찾았는데
어떻게 이것으로 현류(玄流)들 씻겠는가.
피를 뿌려도 진실로 방해하기 어렵나니
몸을 태운들 어찌 쉽게 구하랴.
부량(浮涼)은 층액(層液)만 띄우고
비경(飛景)은 어둠을 밝힌다.
뭇 기러기 미래의 경사를 열고
한 마리 새 앞에서 닦은 것을 바꾸네.
비로소 기뻐 보배 상자 열었으나
마침내 법의 배[法舟垢眞如]만 어지럽네.
팔장(八藏)은 더욱 알기 어려워
삼기(三祇:三阿僧祇劫)를 지냈어도 아직 그치지 않네.
스스로 마음의 때[垢]정계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진여(眞如)를 알 수 있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