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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입문 상권
제20장 통명관通明觀
통명관通明觀이란 호흡ㆍ색ㆍ마음의 세 가지를 통틀어 관하여 마음의 눈을 밝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명이라고 한다.
또한 육통六通과 삼명三明을 속히 얻는 것을 말한다.
[육통은 천안통天眼通ㆍ천이통天耳通ㆍ타심통他心通ㆍ숙명통宿命通ㆍ신경통身境通ㆍ누진통漏盡通이고,
삼명은 생사지명生死智明ㆍ숙명지명宿命智明ㆍ누진지명漏盡智明이다.]
이 선정을 단박에 성취하고 점진적으로 성취하는 차이는 사람의 근기에 달렸다.
비록 수행계위의 순서는 없지만 지금은 선문의 순서에 따라 먼저 초선에 의거한 통명관의 모습을 밝힌다.
[초선의 5지]
초선의 오지는 곧 각覺ㆍ관觀ㆍ희喜ㆍ안安ㆍ정定이다.
『대집경大集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무엇을 각이라 하는가?
여심如心ㆍ각覺ㆍ대각大覺ㆍ사유思惟ㆍ대사유大思惟ㆍ심성을 관함(觀於心性)을 각이라 한다.
무엇을 관이라 하는가?
심행心行ㆍ대행大行ㆍ변행徧行ㆍ수의隨意를 관찰하는 것을 관이라 한다.
무엇을 희라 하는가?
여진실지如眞實知ㆍ대지大知ㆍ마음이 움직일 때 마음에 이는 것(心動至心)을 희라 한다.
무엇을 안이라 하는가?
심안心安ㆍ신안身安ㆍ수안受安ㆍ즐거운 감촉을 느낌(受於樂觸)을 안이라 한다.
무엇을 정이라 하는가?
심주心住ㆍ대주大住ㆍ대상에 동요되지 않음(不亂於緣)ㆍ잘못되지 않음(不謬)ㆍ전도되는 일이 없음(無有顚倒)을 정이라 한다.”
이것이 오지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각]
여심如心이란 곧 초선의 미도지정이다. 수행자가 처음 마음을 안정시킬 때부터 호흡ㆍ색ㆍ마음 세 가지가 모두 분별이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세 가지를 관함에 있어 먼저 반드시 호흡을 관찰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앉아 호흡을 조절하고 온몸에 들고 나는 호흡의 모습을 한마음으로 잘 관찰한다.
만약 지혜와 마음이 밝고 예리하다면, 숨이 들어와도 쌓이지 않고 숨이 나가도 흩어짐이 없으며 들어와도 지나간 곳이 없고 나가도 자취가 없어 허공에 부는 바람처럼 성품이 없다는 것을 곧바로 깨닫는다.
이것을 호흡이 마음과 같음을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흡은 몸을 의지하고 몸을 떠나서는 호흡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면 곧 한마음으로 몸의 색이 여여함을 잘 관찰해야 한다.
이제 이렇게 관찰한다.
“이 색신은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생의 망상이 인연이 되어 금세의 사대四大를 불러온 것이다. 이 사대로 이루어진 색이 허공을 둘러싼 것을 몸이라고 부르지만 머리 등 여섯 부분과 서른여섯 가지 물질, 사대四大와 사미四微 어느 하나도 몸이 아니다.”
이때 마음의 분별이 없어지고 곧 색의 여여함을 통달하게 된다.
다음은 마음의 여여함을 관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관한다.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몸의 색이 있어 오가고 움직인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색이 무엇을 인하여 생기고 또 누가 분별하겠는가?
다시 관찰해 보면, 이 마음은 인연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신속하게 생겼다 사라지기에 머무는 자리를 볼 수 없고, 또한 형체도 없다. 단지 이름만 있을 뿐이나 이름 또한 공하다.”
이것이 곧 마음의 여여함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할 때 (호흡ㆍ색ㆍ마음) 세 가지의 성품의 차이를 찾을 수 없으니, 이것을 여심如心이라고 한다.
호흡을 관할 때 이미 호흡을 얻을 수 없었다면, 몸과 마음 역시 공적함을 곧바로 통달하게 된다. 왜냐하면 세 가지 법은 서로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 가지가 이미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일체법 역시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세 가지가 화합하여 음陰ㆍ입入ㆍ계界와 온갖 고통과 번뇌를 일으키고, 선행과 악행의 업으로 다섯 갈래의 세계를 오가며 쉼 없이 윤회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 가지가 본래부터 자성이 없음을 깨달으면 일체 모든 법이 그 자리에서 공적하다.
이것을 여심을 관하여 수행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관할 때 그 마음은 저절로 진여에 머물게 되고, 다 없어진 듯이 밝고 깨끗해진다.
이를 욕계정欲界定이라 한다.
이 선정을 얻고 나서 마음이 진여에 의지하고 진여와 상응하여 진여법으로 마음을 유지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게 되며, 몸ㆍ호흡ㆍ마음 세 가지 법의 차이가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고 허공처럼 한결같게 된다.
따라서 여심이라고 하니, 이것이 곧 통명관의 미도지정이다.
각覺과 대각大覺을 설명하겠다.
각이란 초선에서 감촉이 생기는 모양을 지각知覺하는 것이다.
대각이란 활연히 마음의 눈이 밝게 열려 (호흡ㆍ몸ㆍ마음) 세 가지를 밝게 보는 것이니, 이것을 대각이라 한다.
또한 각은 세간世間의 모습을 지각하는 것이고,
대각은 출세간의 모습을 지각하는 것이다.
세간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근본세간根本世間이니, 한 생애 동안의 정보正報인 오음五陰이 그것이다.
둘째는 의세간義世間이니, 근본법과 그 외 일체법의 뜻과 이치의 상호관계를 아는 것이다.
셋째는 사세간事世間이니, 오신통이 생겼을 때 일체중생의 종류 및 세간의 현상을 모두 보는 것이다.
출세간出世間 역시 세간과 상대하여 세 가지로 나뉜다.
초선이 일어날 때 이 몸이 공하고 성근 것과 모든 모공으로 두루 호흡하는 것, 그리고 서른여섯을 활연히 보게 되어 분명하게 깨닫는다.
[물질털ㆍ머리카락ㆍ손발톱ㆍ이빨ㆍ표피ㆍ진피ㆍ힘줄ㆍ살ㆍ뼈ㆍ골수ㆍ지라ㆍ콩팥ㆍ심장ㆍ간ㆍ허파ㆍ작은창자ㆍ큰창자ㆍ위ㆍ태의ㆍ쓸개ㆍ대변ㆍ소변ㆍ때ㆍ땀ㆍ눈물ㆍ콧물ㆍ침ㆍ고름ㆍ피ㆍ핏줄ㆍ누렇고 흰 가래ㆍ멍ㆍ비계ㆍ기름ㆍ뇌ㆍ막 등을 말한다.
이 서른여섯 가지 중 열 가지는 몸 밖의 물질이고, 스물여섯 가지는 몸 안의 물질이다.
또 스물두 가지는 지대地大에 속하는 물질이고, 열네 가지는 수대水大에 속하는 물질이며, 따뜻하고 뜨거운 것은 화대火大, 움직이고 바뀌는 것은 풍대風大이다.]
이 사대를 관찰해 보면 마치 네 마리의 뱀이 한 상자에 있는 것과 같이 그 성질이 각각 다르다. 수행자는 이를 보고 나서 마음으로 크게 놀라게 된다.
이 서른여섯 물질은 사대가 임시로 화합한 것으로 더럽고 혐오스럽다고 볼 뿐만 아니라,
다섯 가지 더러움(五種不淨)에 대한 생각도 알게 된다.
첫째, 열 가지 바깥 물질의 더러움을 본다.
둘째, 자기 몸 안의 스물여섯 가지 물질의 더러움을 보는데, 이것이 자성의 더러움(自性不淨)이다.
셋째, 이 몸이 부모의 정액과 피가 화합하여 몸이 된 것임을 스스로 알게 되니, 이것이 종자의 더러움(種子不淨)이다.
넷째, 이 몸이 태 안에 있을 때 생장生臟과 숙장熟臟 두 장기 사이에 있었음을 알게 되니, 이것이 태어난 곳의 더러움(生處不淨)이다.
다섯째, 이 몸이 죽은 뒤에는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길 것임을 알게 되니, 이것이 최후의 더러움(究竟不淨)이다.
이 몸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더러운 것으로 이루어져 즐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매우 혐오스러운 것임을 알아야만 한다.
나는 지난날 이 더러운 몸에 집착하여 갖가지 악업을 지으면서 무량겁을 지내다가 지금 비로소 깨닫고 보니 슬픔과 기쁨이 교대로 몰려든다.
또 선정 가운데 심식이 온갖 대상을 반연하여 찰나찰나 멈추지 않고, 모든 마음작용이 연달아 일어나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고 또한 한 가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 다음에 삼매가 점점 깊어지면 오장 안에서 호흡하는 모양이 각기 다름을 지각하게 된다.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것 등으로 장기마다 각기 색깔이 다르고, 빠져나와 모공에 이른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도 색깔이 역시 다르다.
또 이 몸의 피부와 막이 각각 99겹으로 되어 있고, 크고 작은 뼈가 360개이며, 나아가 골수가 각기 98겹으로 되어 있고, 뼈와 살 사이에 각종 벌레가 있어 머리가 네 개인 것, 입이 네 개인 것, 꼬리가 아흔아홉 개인 것 등으로 각각 모양이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나아가 이 벌레들이 들고 나며 오가는 것과 소리와 언어까지도 모두 다 지각하게 된다.
뇌에는 네 부분이 있고, 오장은 연꽃처럼 조각조각이 서로를 덮고 있으며, 몸의 구멍은 비고 성글어 안팎이 서로 통한다.
또 몸 안의 모든 핏줄을 지각하게 된다. 심장의 핏줄이 중심이 되고, 심장의 핏줄로부터 네 개의 큰 핏줄이 생겨나며, 네 개의 큰 핏줄에서 각각 열 개의 핏줄이 갈라지고, 그 하나하나가 또 아홉 개의 핏줄을 갖춰 모두 404개의 핏줄을 이룬다.
이 핏줄에는 모두 바람의 기운이 있어 피의 흐름이 서로 뒤섞이며, 또한 모든 핏줄에는 미세한 벌레들이 혈관에 붙어살고 있다.
이와 같이 이 몸은 파초처럼 안팎으로 알맹이가 없음을 지각한다.
또한 마음의 작용이 대상을 따라 일어날 때 모두 수ㆍ상ㆍ행ㆍ식의 네 가지 마음으로 차별됨을 관찰한다.
또한 호흡이 잘 조화되어 파란색도 노란색도 빨간색도 흰색도 아닌 유리그릇처럼 한 모양으로 같아지는 것을 본다.
또한 호흡의 출입도 생멸이 무상하여 모두 공적함을 본다. 또한 몸의 형상이 신진대사로 늘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음식은 밖의 사대로서 이것이 배 속에 들어와 몸의 자양분이 될 때 새로운 사대가 생기고 옛 몸은 따라서 소멸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초목에 새잎이 나면 옛 잎은 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몸의 형상이 무상하여 늘 새롭게 나고 없어지며 공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색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지각해 알아차린다.
또 한 생각이 생길 때 60찰나의 생멸이 있을 정도로 바뀌고 달라짐이 신속하다. 이렇게 공하여 자성이 없으므로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다시 호흡이 여덟 가지 모습으로 변천함을 지각한다.
여덟 가지 모습이란 나고(生), 머물고(住), 변하고(異), 소멸하는 것(滅)과 나게 하고(生生), 머물게 하고(住住), 변하게 하고(異異), 소멸하게 하는 것(滅滅)이다. 호흡이란 바람이다. 풍대만 이런 게 아니라 사대가 모두 이렇다.
이처럼 색과 호흡과 마음 세 법을 분별해 보면 임시로 붙인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의 법은 체가 같으므로 ‘같다(如)’고 말한다.
똑같이 무상하게 생멸함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으므로 ‘같다’고 하고,
생멸은 곧 공과 다르지 않으므로 ‘같다’고 한다.
색ㆍ호흡ㆍ마음 세 법의 낱낱의 차별상을 지각하는 것을 각覺이라 하고,
그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체가 같은 것을 대각大覺이라 한다.
무상하게 생멸함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은 것을 대각이라 하고,
모든 상은 본래 공적하여 다르지 않은 것을 대각이라 한다.
사유思惟와 대사유大思惟를 설명하겠다.
처음 마음이 참과 거짓의 모습을 지각해 알아차리는 것을 각과 대각이라 하고,
뒤의 마음이 거듭 사려해 관찰하는 것을 사유와 대사유라 한다.
각에 대비되는 것이 사유이고 대각에 대비되는 것이 대사유이니, 앞의 설명을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성품을 관찰한다(觀於心性)는 것은 곧 사유의 주체인 마음을 돌이켜 관찰하는 것이다.
지금 관찰하고 있는 이 마음은 마음을 관찰함에서 생긴 것인가, 마음을 관찰함에서 생긴 것이 아닌가?
두 가지 모두 성립할 수 없으니, 마음도 끝내 공적함을 알아야 한다.
[관]
심행과 대행을 관찰하는 것(觀心行大行)을 설명하겠다.
성문인聲聞人은 사제四諦를 대행大行이라고 한다.
즉 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무명을 깨닫지 못해 온갖 결박과 업을 짓는 것을 집제라고 한다.
집제를 인연으로 미래의 명색名色과 괴로운 과보를 반드시 초래하는 것을 고제라고 한다.
마음의 성품을 관하면 계율ㆍ선정ㆍ지혜를 모두 갖추고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을 실천하게 되므로 도제라고 한다.
바른 도가 있으면 현재에서는 번뇌가 생기지 않고 미래의 괴로운 과보 역시 소멸하므로 멸제라고 한다.
연각인緣覺人은 십이인연으로 대행을 삼는다.
보살인菩薩人은 곧 생멸이 없는 바른 도와 바른 관에 들어가 적정유리삼매寂定瑠璃三昧를 증득한다.
변행徧行이란, 관찰하는 도가 조금씩 예리해지면 각종 대상을 두루 섭렵하며 사제를 관찰하고 열여섯 가지 관법(十六行觀)을 낼 수 있다. 따라서 변행이라 한다.
수의隨意를 설명하겠다.
변행은 선정에 들었을 때는 온갖 대상을 볼 수 있지만 선정에서 나오면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의는 선정에 들어가건 나오건 간에 일체법에 대한 관찰이 작의作意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수의라 한다.
[희]
희지喜支에서의
여진실지如眞實知와 대지大知를 설명하겠다.
앞에서 설명한 마음의 성품과 사제의 진리에 대한 관찰에 의거하여 관을 행하고 진리를 살피면 대상 안에 머무르다가 관에 부합해 알게 된다. 따라서 진실지라고 한다.
만일 확 트이듯이 깨달음이 열려 이치에 부합해 알게 되면 마음에 법희法喜가 생긴다. 따라서 대지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일 때 마음에 이르는 것(心動至心)을 설명하겠다.
법희를 얻고 나면 마음이 동요하게 되는데 만일 이 기쁨을 좇는다면 전도되고 만다.
이제 이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곧 기쁨의 성품을 얻게 된다. 따라서 ‘마음에 이른다’고 한다.
[안]
신안身安이란 무엇인가?
몸의 성품을 깨달아 몸으로 짓는 업에 동요되지 않으면 곧 몸이 안정된다.
심안心安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성품을 깨닫기 때문에 마음으로 짓는 업에 동요되지 않으면 곧 마음이 즐거워진다. 따라서 마음의 안정이라 한다.
수안受安이란 무엇인가?
관찰하는 주체인 마음을 수受라 한다. 수가 곧 수가 아님을 알아 모든 수를 끊어 버리기 때문에 느낌이 안정된다.
즐거운 감촉을 느낌(受於樂觸)이란, 세간과 출세간 두 가지의 즐거운 법을 성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정]
심주心住와 대주大住를 설명하겠다.
세간의 선정법에 머물러 마음을 산만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을 ‘머묾(住)’이라고 하고,
진여의 선정법에 머물러 마음을 산만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을 ‘크게 머묾(大住)’이라고 한다.
대상에 동요되지 않음(不亂於緣)이란, 비록 한마음에 머무르고 있지만 세간의 모습을 분별하며 어지럽지 않은 것이다.
잘못되지 않음(不謬)이란, 진여를 확실히 깨달아 망령된 취착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도되지 않음(不顚倒)을 설명하겠다.
만일 마음이 세간의 모습만 편벽되게 취하면 곧 있다는 견해를 따르게 되어 해탈을 얻지 못한다. 반대로 편벽되게 진여의 모습만 취하면 공이라는 견해를 따르게 되어 세간의 인과를 파괴하고 선한 법을 닦지 않게 되니, 이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이제 참과 거짓을 잘 통달하여 이 양극단을 여의면 이것을 ‘전도되지 않음’이라 한다.
또 이승인二乘人은 이 마음을 얻어 네 가지 전도를 깨뜨리면 ‘전도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보살은 이 마음을 얻어 여덟 가지 전도를 깨뜨려야 ‘전도되지 않았다’고 한다.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계탁하고, 무상한 것을 영원하다고 계탁하며, 무아를 아라고 계탁하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계탁하는 것을 범부의 네 가지 전도라 한다.
영원한 것을 무상하다고 계탁하고, 즐거움을 괴로움이라 계탁하고, 아를 무아라 계탁하고, 깨끗한 것을 더럽다고 계탁하는 것을 이승의 네 가지 전도라 한다.
합해서 모두 여덟 가지 전도이다.
[근본 세간과 의세간]
수행자가 처음 초선을 얻어 근본세간根本世間의 모습을 보고 나면 이로 인해 그 뜻을 알게 되니, 이를 의세간義世間이라 한다.
이때 삼매 가운데서 마음과 지혜가 밝고 예리해져 몸 안의 사대와 오음이 어떤 인연으로 존재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관찰한다.
그러면 이 몸은 모두 전생에 오계五戒를 닦은 업력이 중음中陰에서도 단멸되지 않고 유지되다가 부모가 교합할 때 업력이 식識으로 변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즉 크기가 작은 콩알만 한 부모의 정혈 두 방울을 자신의 소유라 여겨 식이 그 가운데 의탁하는 것이다.
이때 곧바로 신근身根ㆍ명근命根ㆍ식심識心의 세 가지 법이 모두 갖춰진다.
식 안에는 오식五識의 성품이 갖춰져 있는데 이레마다 한 번씩 변화하면서 점차 자라 모든 법이 다 갖춰지게 된다.
이에 간장은 혼魂을 간직하고, 폐장은 백魄을 간직하고, 신장은 의지(志)를 간직하고, 심장은 신神을 간직하고, 비장은 뜻(意)을 간직한다.
사대가 화합하여 오행五行이 성취되면 뼈로 기틀을 잡고, 골수로 기름칠을 하고, 힘줄로 봉합하고, 핏줄로 관통하고, 피로 윤택하게 하고, 살로 감싸고, 피부로 덮는다.
이러한 인연으로 곧 머리ㆍ몸ㆍ손ㆍ발의 여섯 신체 부위가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근본세간과 의세간이다.
[사세간과 신통]
또 이 몸은 관찰하면 하늘과 땅을 본뜬 것이니, 만법을 구족하여 외부 사물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초선의) 오지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수행자는 초선에서 육신통六神通을 얻어 세상사를 손바닥 위의 물건처럼 또렷이 보게 되니,
이것이 사세간事世間이다.
상근기인 사람은 복덕과 지혜의 힘 때문에 다섯 신통을 얻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치가 있다.
첫째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고,
둘째는 수행하여 얻는 것이다.
저절로 생긴다는 것은, 색계의 사대가 청정하게 만든 색을 얻어 천안이 성취되면 이 청정한 색의 심안心眼으로 시방 모든 색의 일과 형상을 투철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천이통ㆍ타심통ㆍ숙명통ㆍ신족통 역시 이와 같다.
수행하여 다섯 신통을 얻는다는 것은, 전일한 마음으로 선정에 들어 몸이 완전히 공한 것을 보아 색의 형상을 멀리 여의면 곧 신족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신통도 이와 같다.
이처럼 점차 사선四禪과 사공처四空處에 이르는 것을 모두 통명선通明禪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