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문에 비춰진 노화
한 쪽 다리 싱크대에 기댄
실기죽한 설거지
팔꿈치 식탁에 괴고 참외깎는
기운 어깨 죽지
고인 빗물의
물갗이
저리 사랑스럽거늘
겹겹주름 내
살갗도
고왔던 적 있었으리
고개 꼿꼿 세워봤자
구부정 허리와
O자로 휜 다리는
드나드는 유리문에 다 비쳐
소리소문 없는 늙음이여
직행말고
어머니가 즐겨 타셨던
완행버스처럼 천천히
바쁠 거 하나 없이
아주 천천히 오시게
오는 길이 막혀
지연될수록 좋겠네
장독 뒤에 숨어 피할 수 없는
나의 노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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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밭골 석양
개울따라 골짝 깊숙히
들고나고 달랑 두 가구
소 팔아 빈 외양간에
낡은 호미자루랑
나이배기 디딜방아도
같이 살고 있는
돌배나무 섰는 집
태어나 발바닥에 흙 묻히면서 부터
늙도록 손 놀 새 없던
호미질에 이젠
육신 쪼글고 정신 사글어
다 죽는다 했던
우리 할마이
앉아 받아만 먹던
조석 밥상을
구부정히 차려 먹어도
요롷게 둘인 게 그저 고마운 하라바이
ㅡ 바브 먹어야 야그 먹제
ㅡ 이레 살아서 머해
주그므 딱 좋으꺼르
ㅡ 먼 소리야
지브 이레 잘 재 놓고 주그므 우떠해
저 근네 양지 밭도
이짝에 응달밭도
마카 우리 핸데
나 혼자 우떠 하라고
억지로라도 살아보웨*
소는 짚푸르 섞고
사램은 바브 섞어야 살아
국사발에 밥 한 술 섞는
억지로 살아 볼 저녁밥상
사시삼철 고단했던
고냉지 채소밭
겨울 한 철 숙면 중인
두툼한 눈 이불 위로
볼일 없는 고라니
할일 없이 겅중 거린다
*강원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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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老老)캐어*
"선상님, 우리 집에 먼 일이 있어요?
아덜이 왜 마카 왔다 가요?"
"녜, 할아버지 장례식요"
"얄궂어라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는데
할배가 먼저 가노야
참 얄궂제"
그믐달만큼이나 핼쑥한
어르신의 낯빛
잡은 손목에서
팥 주머니 오그르르
속울음 바술리고
요양사의
무릎관절 우두둑
콩주머니 소리가 민망하다
*고령화시대에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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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윤혜숙
강릉 출생
시인 . 시낭송가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
태백문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