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땅 중동(中東/Middle East)
<5>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의 약사(略史)
아프가니스탄은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문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만나는 서남아시아의 요충으로 BC 6세기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BC 4세기에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3세, 일명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를 받게 된다.
BC 2세기에 들어서는 중국민족의 후예인 쿠샨왕조(Kushan dynasty)에 정복되었다가 이어 이란(Iran)의 사산왕조(Sasanian dynasty)를 거치면서 힌두교(Hinduism), AD 9세기 사파르(Saffar)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슬람(Islam) 문화가 뿌리내리게 되는 등, 혼란의 땅이었다.
AD 13세기에는 칭기즈칸에 정복되었다가 이후 작은 제후국(諸侯國)들로 분리되면서 인도 무굴(Mughul)제국과 페르시아(Persia)의 영향을 받는다. AD 18세기 들어 아흐마드 샤 두라니(Ahmad Shah Durrani)에 의하여 독립국가형태를 갖추게 되나 각 지역 제후(諸侯)들과 주변 강대국(영국, 러시아 등)들의 극심한 간섭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지켜냈다.
이후 정당정치가 붕괴(崩壞)된 후 좌익(左翼)이 들어서는데 1973년 소련의 지원을 받은 좌익정당 파르캄(Parcham:깃발이라는 뜻)이 정권을 거머쥐며 공화국으로 바뀐다.
그러나 정파(政派) 간 분쟁이 일어나고 농촌을 중심으로 큰 반란이 일어나자 기존정권 수호라는 명분 아래 1979년에 소련의 침공을 받는다. 이후 10년간 내란(內亂)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인명 피해는 물론, 해외로 도피한 사람도 엄청 많았는데 1988년, 소련군이 퇴각하고 혼란을 겪은 후 1992년 마침내 소련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14년간의 전쟁 끝에 독립을 되찾게 된다. 이 전쟁으로 200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해외(주로 이란, 파키스탄)로 탈출한 난민들은 5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가슴 아픈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다.
<6> 정국 혼란과 탈레반 (Taleban)의 출현
소련이 물러간 후 라바니(Rabbani)가 정권을 잡게 되지만 라바니는 오직 이슬람교도에게만 정부 일을 맡겼고 비(非) 이슬람 기구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방송도 오로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하도록 하자 반발을 사게 되어 또다시 엄청난 정쟁(政爭)에 휘말리게 된다.
1994년 1월에는 반군이 카불(Kabul)을 공격하여 인구 200만 중 150만이 카불을 떠나 다른 곳으로 탈출했다고 하며, 라바니는 1994년 6월에 임기가 끝났는데 다시 6개월 연장하는 횡포를 저지르고....
이때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파키스탄 서부에서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들고 일어서 독재 타도를 부르짖으며 단체를 결성한 것이 바로 탈레반(Taleban)이다.
탈레반은 무장투쟁 2년 만인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라바니 대통령을 축출해 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극단적인 근본주의를 바탕으로 여성 인권의 극단적인 제한, 비이슬람 문화에 대한 배격과 문화유물과 유적의 파괴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특히 2001년 3월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미얀(Bamiyaan) 동굴 석불(石佛)을 파괴하는 만행(蠻行)을 저지르기도 했다.
<7> 미국 9.11 테러의 비극
화염에 휩싸인 뉴욕 쌍둥이 빌딩 /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 미국국방부(Pentagon/펜타곤)의 피해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시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쌍둥이 빌딩)건물과 워싱턴에 있는 미국국방부(Pentagon) 건물을 이슬람 과격분자들이 미국 민간항공기를 납치, 충돌시켜 미국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어이없는 테러를 당하자 미국은 우사마 이븐 라딘(Usāmah ibn Lādin:일명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지명, 그가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그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으나 탈레반이 거부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습, 전쟁에 돌입한다.
미 뉴욕의 9.11 테러의 피해를 살펴보면, 경제적인 손실은 접어두고, 인명 피해를 보면 사망자만 쌍둥이 빌딩 2,600명, 미국국방부 125명, 항공기 탑승객 256명, 뉴욕 소방관 343명, 뉴욕 경찰 84명, 뉴욕 항만국(港灣局) 직원 23명으로 총 3,130명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 본토가 최초로 공격당한 것으로,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日本)에 의한 하와이 진주만(珍珠灣) 공습 때 사망한 2,330명보다 800명이나 더 많았다고 하니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씻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미국 주도(主導)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대한 공격은 일부 서방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반(反) 탈레반 세력인 북부 동맹까지 이 전쟁에 합세한 끝에 탈레반 주권은 결국 붕괴되어 수도 카불(Kabul)에서 도주하고, 2001년 11월에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를 수반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내각을 구성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주변국에 난민들이 흩어져 주변국들의 정치개입문제, 이곳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마약(痲藥) 거래로 인한 각국의 미묘한 이해(利害)문제, 비록 전쟁에서 밀려났지만, 그 잔당(殘黨)들인 탈레반 세력의 호시탐탐 복귀를 엿보고 있는 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있다.
미국은 9.11 테러 주범인 우사마 이븐 라딘(Usāmah ibn Lādin)을 수개월에 걸친 은밀한 작전을 펼쳐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의 외곽 아보타바드(Abbottabad)에 은신해 있던 라딘을 만 10년 만에 드디어 찾아내어 2011년 5월 1일, 미군 특수부대와 총격전 끝에 마침내 사살(射殺)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2014년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이 집권하여 정권이 안정되자 미군은 철군한다.
<8> 휴전협정(休戰協定)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 각 종파 간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무고한 국민들에게 무자비한 살육이 이어지자 미국이 끼어들어 분쟁의 종식을 위해 힘써 보지만, 너무나 많은 희생자가 속출한다.
2020년 2월, 미국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슬람과의 줄다리기를 끝마치기로 마음을 굳히고 탈레반과 휴전협정을 맺는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의 결단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
2021년, 미군의 철수 계획 발표한 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대한 경비는 강화했으나 8월 15일 탈레반의 카불 입성이 임박하자 아프가니스탄 정부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하겠다고 밝혔으나 목숨의 위협을 느껴 카불을 탈출하였고, 탈레반의 횡포에 질린 카불시민들은 탈출을 위해 공항으로 몰려드는데 미군과 군속(軍屬) 및 외교관들도 미처 대피하지 못해 대혼란에 빠지고....
결국, 8월 30일 미군이 철수를 완료하면서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다.
바로 엊그제 우리가 TV 화면으로 생생하게 보았던 장면들이다.
이후, 가지가지 소문이 떠돌았는데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이 현금 2천억 들고 아랍에미리트(UAE)로 도주했다는 설, 현금을 자동차 4대에 꽉 차게 싣고 도주했다는 설 등인데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그의 딸 마리암 가니(Mariam Ghani)는 뉴욕 맨해튼(Manhattan)의 브루클린(Brooklyn)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데 현재 예술가이자 영화 제작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