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보살장정법경 제4권
[집착]
그런데 저 우치한 사람과 범부들은 저 모든 욕법(欲法)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내나니,
이른바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등이니라.
또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이며,
눈의 경계[眼界]ㆍ물질의 경계[色界]와 안식의 경계[眼識界], 내지 뜻의 경계[意界]ㆍ법의 경계[法界]ㆍ의식의 경계[意識界]와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이니라.
이러한 법 중 욕법에 애착을 내고, 나아가 모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의 명상법(名相法) 중 욕법에 애착을 내느니라.
[취하지 않음]
그러므로 장자들아, 너희들은 모든 욕법에 대해 애착심을 내지 말지니, 이른바 처자ㆍ집ㆍ재보 등에 대해 탐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깨끗한 믿음으로 출가해야 하느니라.
출가하고 나면 낙욕(樂欲)이 생기지 않을 것이니, 낙욕이 없으므로 깨끗한 계율을 원만히 갖추고, 청정한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의 법을 닦아 가지며, 법식과 의범(儀範)이 원만하고 결백하며, 나아가 조그만 죄에 있어서도 크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장자들아, 만일 이렇게 배우면 곧 계온(戒蘊)을 원만히 갖출 것이요,
계율이 원만히 갖추어지기 때문에 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에 대해서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색온(色蘊)ㆍ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ㆍ식온(識蘊)을 취하지 않을 것이며,
눈의 경계ㆍ물질의 경계ㆍ안식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ㆍ법의 경계ㆍ의식의 경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또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에 대해서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통틀어 말하면 저 일체의 법을 전혀 취하지 않을 것이니, 취함이 없기 때문에 곧 잃음이 없을 것이다.
[법을 잃지 않음]
어떤 법을 잃지 않느냐?
이른바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 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또 색온ㆍ수온ㆍ상온ㆍ행온ㆍ식온 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또 눈의 경계ㆍ물질의 경계ㆍ안식의 경계, 내지 뜻의 경계ㆍ법의 경계ㆍ의식의 경계를 잃지 않을 것이며,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를 잃지 않을 것이다.
[경안, 해탈, 진지, 무분별, 삿됨를 떠남, 출리의 법]
이런 모든 법을 잃지 않으면 곧 오염(汚染)이 없을 것이니, 오염이 없기 때문에 경안(輕安)을 빨리 얻게 될 것이다.
어떤 법이 경안해지느냐?
이른바 소견이 없어지는 것이니,
만일 소견이 없어지면 어디로 가거나 조그만 장애도 없을 것이요,
장애가 없어지면 스스로도 해침을 받지 않고 남도 해침을 받지 않아 자타가 다 해침을 받지 않고,
해침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아 곧 무여의(無餘依)의 청정한 열반에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장자들아, 이른바 6입(入)이라는 것은 어디로 들어감[入]인가?
이른바 안소(眼所)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이소(耳所)ㆍ비소(鼻所)ㆍ설소(舌所)ㆍ신소(身所)ㆍ의소(意所)에 들어간다는 것도 아니다.
또 장자들아, 만일 눈이 반연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 집착한다면, 그것은 곧 나와 내 것에 집착함으로써 열반을 떠나는 것이다.
열반을 떠남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탐하기 때문에 열반을 떠나고, 성내기 때문에 열반을 떠나며, 어리석기 때문에 열반을 떠나고, 무지하기 때문에 열반을 떠나는 것이다.
장자들아, 무지한 자는 과거를 떠나지 않고 미래를 떠나지 않으며 현재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정코 무지인 것이니, 그것은 지혜를 떠남에서 생기는 것이다.
어떤 것을 지혜라 하느냐?
이른바 진지(盡智)이다.
진지란 무엇인가?
이른바 과거 무진(無盡)의 지혜와 미래 무진의 지혜와 현재 무진의 지혜이니,
연법(緣法)은 무지와 이지(離智)에서 생긴 것이며,
저 무지와 이지는 곧 눈의 반연을 따라 이지에서 생긴 것이다.
눈은 나[我]가 없는 것이니, 나가 없으면 취함이 없고,
취함이 없으면 버림이 없으며, 버림이 없으면 그것이 곧 해탈이니라.
어떤 것이 해탈인가?
이른바 아집(我執)에서의 해탈이요, 중생집(衆生執)에서의 해탈이며, 수자집(壽者執)에서의 해탈이요, 인집(人執)에서의 해탈이며, 단상집(斷常執)에서의 해탈이요, 일체집(一切執)에서의 해탈이며, 분별집(分別執)에서의 해탈이다.
그가 분별이 없게 되면 곧 능(能)분별과 소(所)분별이 없어져서 법에 분별이 없지만 또한 분별을 떠난 것도 아니다.
어떤 것이 무분별인가?
이른바 나[我]와 내 것[我所]에 대한 분별이 없는 것이다.
만일 나에 분별이 없으면 곧 취사(取捨)가 없을 것이요, 취사가 없어지면 곧 해탈에 들게 될 것이요,
만일 법이 매임을 떠나거나 매임을 떠나지 않거나 다 출리(出離)를 얻게 될 것이다.
사(邪)를 떠남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일체의 고통을 떠나는 것이다.
장자들아, 부디 이런 출리의 법을 구하라.
그렇게 되면 아무 법도 취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취하는 것이 있으면 곧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때 세존께서는 이런 이치를 거듭 밝히기 위하여 게송을 설하셨다.
법을 취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고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장차 악취(惡趣)에 떨어지나니
만일 두려움이 일어나는 그 원인을 본다면
법을 분별하기 때문에 취(取)가 생김을 알리라.
만일 능히 이치답게 바른 법을 관찰하면
지혜의 광명이 밝게 나타나 어두움을 부수리.
광명이 나타남으로써 곧 훌륭한 지혜의 광명을 얻나니
알아야 하네. 다른 성품은 얻을 것이 없음을.
부디 자세히 관찰하라. 모든 것이 텅 빈 것을.
움직임은 헛되고 거짓이어서 진실함이 아니네.
이 가운데서 편하고 즐거운 문을 짓지 말라.
간절한 애욕이 허망하고 거짓임은 이 세간 때문이다.
모든 것이 텅 빈 법임을 사실대로 깨닫는다면
모든 법이 텅 비어 진실 아님을 비로소 알리라.
나는 편하고 즐거워 근심을 떠난 문을 알고
또한 움직이지 않는 최상의 즐거움을 얻었나니
만일 이와 같이 바로 깨달아 알 수 있다면
그는 곧 일체의 법이 텅 비었음을 알리라.
이 모든 괴로움이 원인을 벗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때문에 서로 다툼이 설 땅이 없어졌다.
갖가지 애욕으로 말미암아 거기에 집착 생기고
그 집착으로 말미암아 온갖 번뇌 생기네.
집착이란 바로 취(取)의 다른 이름이며
그 취로 말미암아 또 3유(有)가 생긴다.
그 유(有)로 말미암아 생(生)이 있어 윤회하나니
3유(有)가 그쳐지면 곧 생(生)이 없어지네.
늙고 병들고 죽는 법도 또한 무(無)를 따르나니
필경에는 무상(無常)의 괴로움을 받지 않도다.
그러므로 알아야 하나니, 욕심 없으면 취(取)가 없고
취가 없기 때문에 곧 3유(有)도 없어지네.
유(有)가 만일 그쳐지면 곧 생(生)이 없어지고
늙음ㆍ병듦ㆍ죽음도 모두 다 받지 않네.
그러므로 너희들 여러 장자들은
집착을 버릴 마음 다 같이 내어야 하네.
탐욕의 원인이 되는 모든 권속 다 버리고
빨리 필추의 모양을 원만히 갖추어야 하리.
그리하여 재리(財利) 등의 모든 욕망 깨달으면
그들은 모두 서로 기쁨과 만족한 마음 내리.
어디로 가거나 겸허하고 공손하고 하심(下心) 일으켜
가는 곳마다 남을 위해 좋은 이익 늘리어라.
스스로 계율을 잘 지킨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남이 계율 깨뜨리는 것 부디 보지 말라.
계율의 모양을 가지거나 범하는 그 가운데서
남이 범했다 해서 그것을 헐뜯거나 비난하지 말라.
비유하면 들사슴이 그물에 걸리는 것 같나니
알아야 하네. 그것은 스스로 취한 손해거니
악마의 밧줄이 마음을 묶는 해악도 그와 같나니
남을 헐뜯어 해(害)를 부르는 것 또한 그와 같아라.
어리석은 사람은 남을 해칠 갖가지 마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어 큰 죄를 짓네.
계율을 깨뜨린다고 비방하는 말도 안 해야 하겠거늘
하물며 깨끗한 행으로 계율을 지키는 자이겠느냐.
선중(仙衆)의 용기와 지혜를 갖추고 배운 사람은
언제나 멀리 떠나 고요한 행을 닦나니
몸도 목숨도 버려 탐심 없는 마음으로
번뇌를 벗어난 고요한 법을 애써 구하라.
저 외도(外道)의 무리와 또 그들의 전장(典章)은
아무 이익의 근본이 없나니 모두 멀리 버리고
그리고 매우 심오한 바른 법문을 즐기어라.
그 법은 진실한 공(空)의 이치를 두루 말하고 있느니라.
마음의 근본 되는 곳, 그것 알아야 하네.
그것은 이른바 안과 밖의 12처(處)이네.
그로 말미암아 온갖 업의 원인이 일어나고
그 업이 오래 머무는 곳을 사법(思法)이라 하네.
안근(眼根)과 색경(色境)의 두 가지 반연과
안식(眼識)이 반연을 내어 3사(事)가 된다.
만일 그것이 합해지지 않고 다 흩어질 때는
섶이 없는 불과 같나니 그 이치도 이와 같네.
이와 같이 생긴 바의 일체의 그 법들이
서로 화합(和合)하기 때문에 생(生)이 있지만
지은 이와 받는 이 둘 다 없어지면
언제나 바른 도(道) 모든 지은 바에 나타나리.
안과 밖의 여러 법으로 이루어진 이 몸
이 가운데는 나[我]가 없다는 것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착각으로 거기에 집착하나니
그것은 나와 내 것[我所]을 모르기 때문이다.
눈 안에는 있을 수 있는 아무 법 없고
바깥에도 또한 얻을 바 아무것도 없다.
나가 없고 지은 이 없고 수자(壽者)도 없나니
모든 법이 모두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네.
눈[眼] 아님과 치우친 생각[遍思]과 욕심에서 해탈하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또한 그와 같다.
색(色) 등은 변함이 없고 지을 바도 없나니
모든 법이 모두 이와 같음을 보아야 하네.
마치 큰 바닷물이 일어나 모일 때에는
잠깐 물거품이 생기나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과 같다.
자세히 관찰하면 눈 등도 또한 그와 같아서
견고함과 힘없음이 마치 저 거품 같네.
5온(蘊)의 자성은 잠깐 서로 어울려
저 모인 물거품 같아 단단한 힘이 없다.
저 일체의 번거롭고 괴로운 문과
또 저 나고 늙는 등의 고뇌를 해탈하라.
너희들은 내 가르침 안에서 출가했거니
일체의 법이 꼭두각시 같음을 깨달아 알라.
신도들의 보시하는 마음을 헛되이 받지 말고
다시 시방의 부처님께 두루 잘 공양하라.
그때 5백 장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매우 깊은 바른 법을 듣고 곧 그 길가에서 번뇌를 멀리 떠나 법안이 청정하게 되었다.
마치 더럽혀지지 않은 새하얀 옷이 물감을 쉽게 받는 것처럼
이 5백 장자들이 그 길가에서 번뇌를 멀리 떠나 법안이 청정하게 된 것도 또한 그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