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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 하권
[5악함, 5아픔, 5불태움과 큰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악함이고,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아픔이고,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불태움인가?
또한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악함을 소멸시키고 다섯 가지 선한 일을 지니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과 공덕과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 악함과 큰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첫 번째 악함은 이러하다.
여러 천신과 인민과 그 아래로 금수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온갖 악한 일을 지으려고만 한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억누르고 다시 서로 찌르고 도적질한다. 스스로 서로 간에 죽이고 해치고 서로 물고 뜯어먹는 상황이다.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악하고 거역하니 올바른 도란 없다.
그리하여 뒤에 재앙과 벌의 길로 자연히 가게 된다. 마땅히 갈 곳을 향하여 가게 되니 천지신명이 있어 기록하고 식별하여 죄악을 범한 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 것처럼 악한 일을 저지른 것은 다른 곳에 넘겨주지 못하니 돌아가며 이어지고 상속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빈한한 자가 되고, 또는 궁핍한 자ㆍ하열한 자ㆍ비천한 자ㆍ구걸하는 자ㆍ흉측한 자ㆍ고독한 자가 되며, 그런 까닭에 귀머거리ㆍ장님ㆍ벙어리ㆍ우둔한 자ㆍ어리석은 자, 그리고 패악무도한 자가 된다. 나아가 왜소한 자ㆍ미친 자ㆍ정상에 미치지 못한 자의 무리에 드는 데에 이른다.
또한 그러한 까닭에 존경받는 자와 비천한 자, 부호인 자ㆍ귀한 자ㆍ고명한 자ㆍ재능 있는 자ㆍ명철한 자ㆍ통달한 자ㆍ지혜 있는 자, 그리고 용맹한 자가 있다.
이들은 모두 전세 과거의 삶에서 선한 마음과 우정의 마음과 효성심을 지니고 보시를 실천하고 은혜와 복덕을 쌓은 것에 말미암은 결과이다.
세상에는 관청의 일과 왕의 법률이 있다. 이 법에 의해 마련된 감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근신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악을 짓고 그 죄 때문에 법으로 정한 감옥에 들어가 재앙과 무거운 벌을 받고 극형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풀리어 벗어나기를 구하고 희망해도 제도되고 나오는 것을 얻기란 어렵다.
지금 세간에서 그러한 일이 있으니 눈앞에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목숨이 다하더라도 저 깊고 어두운 곳에 들어가 이리저리 태어나는 곳을 옮기며 여러 몸을 받는다. 그럴 때 받는 고통은 비유하면 왕의 법 중에서 고통이 지극한 극형과 같다.
그러므로 자연히 니리ㆍ금수ㆍ벽려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몸을 이리저리 옮기고 그 형태를 바꾸면서 악하고 쉬운 길을 가는 것이다. 그곳에서 받는 수명의 길이가 어떤 경우는 길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짧기도 하다.
하지만 영혼[魂] 또는 정신(精神) 또는 심식[識]은 자연히 그곳을 향하여 가면서 형태를 받으며 모태에 의지한다.
그리고 마땅히 홀로 가고 향할 경우도 있고 서로 따르다가 함께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돌고 돌면서 서로 보복하거나 보상하며 마땅히 다시 되돌려 되풀이한다.
그들의 재앙과 악한 일과 앙화와 벌이 가지가지여서 다하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로 떨어질 수조차 없으니, 이리저리 그 가운데서 돌고 돌면서 세세생생 겁을 거듭하지만 벗어나는 것을 기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곳에서 해탈한다는 것은 얻기 어려우니,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다.
천지 사이에는 자연히 이러한 도리가 있다. 일에 임하였을 때 즉시에 갑자기 그 상응하는 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 그 결과를 취하는 것은 자연의 도이니, 선과 악의 도는 그 결과를 만나서 반드시 그것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것을 첫 번째의 큰 악함 또는 첫 번째의 아픔 또는 첫 번째의 불태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슬픔의 독에 빠져 큰 소리로 탄식할 뿐이다. 비유하면 극한 불이 일어나 사람의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람이 능히 스스로 그 가운데에 있어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여러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건너고 해탈하여 그 복덕을 얻고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천상에 나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는다.
이것을 첫 번째의 큰 선이라고 한다.”
[두 번째 악함과 큰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두 번째 악함이란 이러하다.
세간의 제왕ㆍ장자ㆍ관리ㆍ인민들이 어버이와 자식 사이, 형과 동생 사이, 가문의 권속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가 뜸해서 의리가 없고 바른 것을 따르지 않는다.
사치와 사음과 교만을 지니고 각자의 뜻만을 유쾌하게 만들고자 한다.
방자하게 마음대로 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문득 상대방을 속이고 상황을 조절하며 죽음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마음과 입이 각자 달라서 말하고 생각한 것에 진실함이 없다.
왜곡되고 아첨할 뿐 충실하지 않아서 말을 교묘하게 꾸며놓고 있지만 행동은 단정하지 못하고 순서가 없으며, 다시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돌아가며 서로 비방하여 원한 맺힌 관계에 들어가 서로를 모함한다.
임금이 밝지 못하여 마음으로 뚜렷이 살피지 못한 채 신하를 임용한다. 그 신하가 자기 뜻대로 일하되 능수능란하게 행동하니 임금의 형세를 아는 것이다.
임금이 자리에 앉아서 정치를 베풀되 올바르지 않으면 그 신하에게 속아 망령되이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를 물리치니, 마땅히 천심(天心)에 부합되지 않고 도리를 심히 위배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하는 그 임금을 속이고, 자식은 그 어버이를 속이며, 동생은 형을 속이고,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그리고 가족 안팎에 면식이 있는 사이에도 서로 싸우게 된다.
각자가 탐욕과 음심과 표독스러움과 화냄과 분노를 품고 몽롱하고 우둔하며 어리석어 욕심만을 더하게 된다.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높은 자이든 낮은 자이든 똑같이 그러하고,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른이든 젊은이든 마음은 모두 똑같이 그러하니, 욕심으로 스스로를 두텁게 할 뿐이다.
또한 가정을 파괴하고 몸을 망치면서도 앞뒤를 돌아보거나 살피지 않는다. 가족과 친척들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파멸된다.
어떤 때는 가문의 안팎에 있는 사람들 또는 면식 있는 사람들 또는 벗과 친구들 또는 고향 사람들 또는 개인적인 모임의 사람들 또는 시읍이나 마을의 우둔한 사람들 또는 시골 사람들이 이리저리 섞이어서 함께 일에 종사하다가 문득 서로 이익과 손해를 따지다가 재물 때문에 다툰다.
그리고 싸우고 소송하고 분노를 드러내고 원수를 맺으며 돌아가면서 다투어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또한 부유하면서도 인색하여 마음을 졸이며 결코 베풀거나 주려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지키고 애착하고 보호하고 탐착하여 인색하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고 상념하니, 마음은 괴롭고 몸은 고달프다.
그러나 그와 같이 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믿고 기댈 만한 것은 없다.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가니, 어느 하나도 따르는 것이란 없다. 선함과 악함의 결과로 나타나는 복덕과 재앙 및 화와 처벌 등이 목숨을 따라서 일어날 뿐이다.
그리하여 혹은 즐거운 곳에 있고 혹은 표독스러운 괴로움에 빠진다. 그러나 뒤에 후회한다 하여도 언제 어떻게 마땅히 되돌릴 수 있겠는가?
세간의 인민들은 마음이 어리석고 지혜가 모자라서 선한 것을 보고도 미워하고 비방할 뿐 결코 연모하여 그것에 이르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망령된 짓을 하려고만 하니, 도 아닌 것만을 지을 뿐이다.
단지 훔치고 뺏으려고만 하니 항상 표독스러운 마음을 품고 타인의 재물과 용품을 얻어 자기 것으로 만들어 공급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소멸하고 흩어지고 완전히 다한 뒤에는 또다시 구하고 찾는다.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올바르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 뛰어난 색을 지니고 있으면 그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어떤 시기에 이르러 헤아리지도 못한 일이 다가오면 곧 후회할 뿐이다.
금세에 현실적으로 관리와 감옥이 있으니 자연히 갈 곳으로 향하여 재앙과 벌을 받는다.
세간에는 빈궁한 자와 구걸하는 자와 흉측한 자와 고독한 자가 있으니, 그들은 오직 전세 과거의 삶에서 부처님 도덕을 믿지 않고 결코 선한 일을 실천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금세에서 악한 일을 저지르니, 그러면 천신이 그 호적에 따로 기록해 두었다가 목숨이 다하면 악도에 들어가게 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니리ㆍ금수ㆍ벽려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서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세세생생 겁을 더하면서도 벗어날 기약은 할 수가 없다. 곧 그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은 어렵고 그 고통도 말할 수 없다.
이것을 두 번째 큰 악함 또는 두 번째 아픔 또는 두 번째 불태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불이 극하게 일어나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
사람이 능히 스스로 그 가운데에 있어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여러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건너고 해탈하여 그 복덕을 얻게 되고, 그리고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천상에 나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는다.
이것을 두 번째의 큰 선이라고 한다.”
[세 번째 악함과 큰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세 번째 악함이란 이러하다.
세간의 인민들은 서로에게 기대고 기생하며 함께 하늘과 땅 사이에 의지하여 거주한다. 그러나 세간에 거처하는 수명은 몇 세라고 셀 만한 것이 못 된다.
위로는 부호인 자ㆍ고귀한 자ㆍ장자ㆍ현명한 자ㆍ선한 자가 있다.
아래로는 빈한한 자ㆍ비천한 자ㆍ불구인 자ㆍ열등한 자 그리고 우둔한 자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불량한 자가 있다.
그는 오직 표독스러운 악함을 품고 기억하며 몸과 마음이 올바르지 못하다.
항상 음심과 질투만을 기억하고 번민이 가슴속에 가득 차 있다.
애욕이 어지럽게 얽혀 있어 앉으나 일어나나 편안하지 않다.
탐착하여 뜻마다 인색하니, 단지 갑작스럽고 헛되이 얻는 것만을 구한다.
섬세한 미색을 갖춘 이를 곁눈질하고 사악한 태도를 지니고 음탕하고 질투한다.
자신의 아내를 싫어하고 미워하여 사사로이 망령된 곳에 드나든다.
집안을 지탱하기 위해 소유물을 베풀어 줘야 하거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임을 엮어서 음식을 낭비하고 오로지 함께 악한 짓만을 저지른다.
병사를 일으켜 도적질을 하고, 성을 공격하여 전투를 벌인다.
겁을 주고 죽이고 자르고 강제로 빼앗으니 패악무도하다.
타인의 재물을 취하되 도둑질로 취하니, 그렇게 얻은 것으로는 결코 삶을 다스리지 못하거니와 마땅히 구한 것도 결코 그를 위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악한 마음은 바깥에 있는 것이어서 전적으로 일으킬 수 없는데도, 애욕에 계박되어 일을 이루되, 두렵게 하고 위세를 피우고 협박하고 위협하여 얻으려고 한다.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에게 공급하고 그것으로 서로 함께 생활한다. 그리고 방자한 마음으로 자신의 뜻을 유쾌하게 하고 자신을 극도로 즐겁게 만들고자 한다.
다른 사람의 부녀자에 대한 행동이 난잡하며, 혹은 친족을 대할 때 존귀한 자이든 비천한 자이든 연장자이든 노인이든 피하지 않으니, 모든 사람이 미워하고 싫어한다.
그리하여 가족의 안팎에 있는 사람들이 근심하고 그에게 화를 내게 된다. 그는 또한 관청의 법령조차 두려워하지 않으며 피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와 같은 악은 자연히 감옥에 갇히니, 해와 달이 밝게 식별하며, 신명(神明)이 밝게 기록하고 취하며, 여러 신들이 포섭하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니리ㆍ금수ㆍ벽려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서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세세생생 겁을 더하면서도 벗어날 기약은 할 수가 없다. 곧 그로부터 해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그 고통도 말할 수 없다.
이것을 세 번째 큰 악함 또는 세 번째 아픔 또는 세 번째 불태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불이 일어나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
사람이 능히 스스로 그 가운데에 있어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여러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건너고 해탈하여 복덕을 얻게 되고, 그리고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천상에 나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는다.
이것을 세 번째의 큰 선이라고 한다.”
[네 번째 악함과 큰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네 번째 악함이란 이러하다.
여러 사람들은 선한 일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여 스스로 또는 서로 파괴하고 패배시킨다. 오히려 돌아가며 서로 가르치고 명령하여 함께 온갖 악한 짓을 저지른다. 주로 말을 전하면서도 오직 이간질하고 험담하고 욕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려고 한다. 서로 질투하고 다시 서로 투쟁하고 교란한다.
선한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슬기롭고 착한 사람을 패하게 하고 파괴한다. 곁방에서 쾌락을 누리고 부모에게 효순하지도 공양하지도 않는다. 스승과 벗과 선지식을 가볍고 쉽게 여기고 신망이 없어 성실함을 인정받기가 어렵다. 스스로 위대하다고 여기고 존경받고 고귀하며 자기야말로 올바른 도를 행한다고 주장하면서 느닷없이 위세와 무력과 권력과 세력을 떨쳐 다른 사람들을 침해하고 자극하고 쉽게 여긴다.
스스로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니 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스스로 강력하고 건전하다고 여기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뒤따르고 섬기고 장하게 여기고 공경하게 만든다. 그는 천지신명과 해와 달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니, 결단코 선한 일을 실천하게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하고 항복받고 교화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이다. 스스로에게만 소용되는 자이니, 지나치게 교만하여 항상 자신은 옳다고 주장한다. 걱정하고 애민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므로 두렵고 무서워해야 할 뜻을 알지 못한다. 교만함이 그와 같으니 천신들은 그것을 기록한다.
전세 과거의 삶에서 지었던 복덕에 의하여 조그마한 선한 결과가 있어서 그의 삶을 부조하고 접대하고 영위시키고 보호하여 그를 도와줄 뿐이다. 그러나 금세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으니, 여러 선한 것은 멸진하여 태양이 지는 것을 보는 듯하다. 그리하여 악한 것이 그를 뒤따르니 자신만이 홀로 텅 빈 곳에 선 채 의지할 바 없고 무거운 재앙만을 받게 된다. 수명이 다하여 몸이 끝나면 온갖 악이 둘러싸고 돌아올 뿐이다. 자연히 그를 촉박하게 하고 마땅히 가고 뒤쫓고 따라붙으니 멈추거나 쉬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또한 자연히 온갖 악한 것과 함께 나아가서 문득 핍박한다. 또한 그 이름과 호적은 천지신명의 처소에 있으니, 재앙과 허물이 끌어당기는 대로 마땅히 만나고 서로 얻게 된다.
또한 자연히 갈 곳을 향하여 가다가 과오와 죄에 대한 벌을 받게 된다. 몸과 마음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며, 그 신형(神形)의 괴로움이 극도에 달하지만 떠나거나 벗어날 수 없다. 불타는 가마솥에 들어가 앞에서 행했던 대로 받을 뿐이다. 그 때를 당해서 후회하여도 무슨 이익이 있으며, 마땅히 다시 무엇에 미치겠는가? 하늘의 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차질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히 니리ㆍ금수ㆍ벽려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서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세세생생 겁을 더하면서도 벗어날 기약은 할 수가 없다. 곧 그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은 얻기 어렵고 그 고통도 말할 수 없다.
이것을 네 번째 큰 악함, 네 번째 아픔, 네 번째 불태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불이 일어나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
사람이 능히 스스로 그 가운데에 있어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오로지 여러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건너고 해탈하여 복과 공덕을 얻게 된다.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천상에 나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는다.
이것을 네 번째의 큰 선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악함과 큰 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다섯 번째 악함이란 이러하다.
세간의 인민들은 부질없이 의지하기만 하면서 게으르고 나태하다. 그리고 결단코 선을 짓고 생활을 다스리는 것을 염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아내와 자식들이 배고프고 춥고 부모마저 함께 그러하다. 오히려 그 자식을 꾸짖고 가르치고자 하면 그 자식이 악심을 품어 화를 내고 눈을 부릅뜨고 마땅히 성을 낸다. 말하고 시켰으나 순종하지 않고 위배하고 충돌하고 반항하고 거역하니 야만인보다 극렬하다. 또한 비유하면 원수의 집안을 대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자식은 어버이에게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망령되고 편벽되고 거짓으로 빌리니 무리들이 함께 걱정하고 싫어한다. 더욱이 받은 것이 있는데도 보상할 마음은 애초에 없다. 그러므로 궁핍하고 빈한하고 곤경에 빠지고 핍박받게 되었을 때는 다시 그 어떤 것도 얻을 수는 없다.
허물 있는 놀이와 소리에 빠져 방종하여 모든 것을 노는 데 흩어 버린다. 자주 남의 것을 닥치는 대로 얻어 자기에 소용되는 것에 공급하면서도 그것을 방지하고 금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데 한도가 없으며, 술을 마시고 미색을 즐긴다. 드나드는 데 시기와 한도가 없으며 어리석어 남과 곧잘 충돌한다. 다른 사람의 실정을 알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강제로 억제하려고만 든다.
남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는 미워하고 질투하며 오히려 그것에 화낸다.
의리도 없고 예절도 없으며 스스로에게 소용되는 것만 마땅하다고 인식할 뿐이니, 그에게는 간언하는 것도 깨우쳐 주는 것도 모두 불가능하다.
부모와 처자 등이 지금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에 대해 전혀 걱정하거나 생각하는 일이 없다.
어버이의 은덕을 갚아야 한다는 것을 결코 괘념하지도 않고, 또한 스승의 은혜와 호의에 대해서도 괘념하지 않는다.
마음으로는 언제나 악한 일만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언제나 악한 것만을 말하며, 몸으로는 언제나 악한 짓만을 행하여 하루라도 선한 일을 성취한 적이 없다.
도덕을 믿지 않고 예전에 현명한 성인이 있었음을 믿지 않는다.
또한 선한 일을 실행하고 도를 실천하여 세간을 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또한 세간에 부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아라한을 죽이려 하고, 비구 승단과 싸우려 한다. 항상 사람을 죽이려 하고, 부모와 형제와 처자와 종친과 친구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기에 부모와 형제와 처자와 종친과 친구가 증오하여 그를 보면 그가 죽기를 바란다.
그는 부처님의 경의 말씀을 믿지 않고 사람의 수명이 다하면 죽은 뒤에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선한 일을 지으면 선한 것을 얻고, 악한 짓을 저지르면 악한 것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와 같이 무리지은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마음과 뜻이 다 똑같으니, 위배하고 충돌하고 배반하고 거역한다.
우둔하고 어리석고 몽롱하고 진노하고 자기 욕구에 탐닉하여 식별하는 바도 아는 바도 없다.
스스로만이 쾌활하고 선하고 위대하고 지혜를 가진 것처럼 여기지만 태어날 때 어디에서 오는지 죽을 때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모른다.
결코 우정이나 효성을 지니지 않고 있으니 천지에 대해 나쁘게 거역한다.
그러면서도 그 가운데에 요행을 바라며 오래 살기를 추구하고 죽지 않고자 하지만 결국은 나고 죽는 것으로 돌아가고 나아가니, 힘들여 고생해도 선과 악의 길은 엄연한 것이다.
몸으로 지은 악한 짓에 재앙과 허물의 갈 곳[趣]이 있으니, 그것으로부터 제도되고 해탈하는 일이란 얻을 수 없다.
아울러 그는 항복하고 교화하여 선한 일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정의 마음으로 가르치고 말하고 열어서 죽음의 괴로움으로부터 인도하려고 하고, 선하고 악한 것이 나아가는 곳이 그와 같아도 결단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리하여 고심해서 말해 주어 제도하고 해탈하게 하려고 해도 그 사람에게는 이익 되는 것이 없다. 마음속으로 막고 닫아 놓았기에 그 뜻이 열리고 풀리지 않는다. 크다고 생각한 목숨이 끝내 다하게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이 후회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뒤에 후회한다 하여도 마땅히 다시 무엇에 미치겠는가?
미리 예상하여 선한 일을 지어 놓은 것이 없으니 궁극에 임하여서는 무엇이 이익 되겠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는 5도(道)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곳은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넓고 깊다.
선한 일과 악한 짓은 각각 돌아가며 서로 선한 일과 악한 짓의 표독스러움과 고통을 받게 되니, 오로지 자신 스스로가 받게 될 뿐 누구도 그것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원래 자연의 도리로서 그 행한 바에 따르는 것이다. 그리하여 태어난 목숨을 추적하니 결코 떨쳐버릴 수가 없다.
선한 사람은 선한 일과 우정과 효성을 행했으니 즐거운 곳에서 즐거운 곳으로 들어가고,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괴로운 곳에서 괴로운 곳으로 들어가고 어두운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누가 이러한 도리를 알 수 있겠는가? 오직 부처님만이 알고 계실 뿐이다. 그 부처님께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대하는 자는 드물다. 그리하여 죽고 나는 일은 쉬지 않고, 악도(惡道)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와 같이 세간의 인민들에 대해서 그들의 길을 설하는 것을 모두 다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연히 니리ㆍ금수ㆍ벽려와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고 꿈틀대는 벌레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서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세세생생 겁을 더하면서도 벗어날 기약은 할 수가 없다. 곧 그로부터 해탈한다는 것은 얻기 어렵고, 그 고통도 말할 수 없다.
이것을 다섯 번째 큰 악함 또는 다섯 번째 아픔 또는 다섯 번째 불태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비유하면 불이 일어나 사람의 몸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
사람이 능히 스스로 그 가운데에 있어 한마음으로 뜻을 제어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 행위를 바르게 하며, 말과 행동이 서로 부합하고 하는 일이 지극히 정성스러우며 말한 것을 말 그대로 하여 마음과 입이 겉돌지 않고, 오로지 여러 선한 일을 실천하고 온갖 악한 일을 짓지 않는다면 그 몸으로 홀로 건너고 해탈하여 복과 공덕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오래 사는 것과 세간을 건지는 것과 천상에 나는 것 그리고 니원의 도를 얻는다.
이것을 다섯 번째의 큰 선이라고 한다.”
[마무리]
부처님께서 아일보살 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 무리에게 모두 말한다.
이 세상은 다섯 가지 악함으로 힘들여 고생하는 것이 그와 같다.
다섯 가지 아픔을 일으키게 하고, 다섯 가지 불태움을 일으키게 하여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서로 태어난다.
세간의 인민들은 결코 선한 일을 실천하지 않고 오직 온갖 악한 짓만을 저지르려고 하며, 감히 이 여러 악한 일들을 범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모두 빠짐없이 자연히 그리고 마땅히 갖추어서 다시 여러 악도로 밟아 들어간다.
또는 금세에서 먼저 병의 재앙을 입어 나고 죽으며 얻지 못하니 대중에게 제시하여 그것을 보여 준다. 곧 수명이 끝나면 죽어 태어날 곳으로 들어가니, 지극히 큰 괴로움ㆍ슬픔ㆍ근심ㆍ잔혹함ㆍ표독스러움이 있게 된다.
그것으로 자신과 상대방을 불태우고 돌아가며 서로 불태워 소멸되게 한다.
그것이 오래되어 나중에 이르면 함께 원수의 가문을 이루게 되어 서로 상해하고 죽이게 된다.
작고 미세한 것에서 일어나 크게 곤란하고 극렬한 것에 이르게 된다.
모두가 재물과 미색에 음탕하게 탐착한 것에 따른 것이며, 인욕하고 보시하려 하지 않고 자신만이 유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굽었거나 곧았거나 관계없이 건전한 이름을 얻고자 하지는 않고, 어리석음과 욕망에 압도되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마다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분함만이 가슴 가운데 묶이게 된다. 재물과 미색에 묶이고 속박되니, 해탈이란 있을 수 없고 만족하여 더 이상의 것을 싫어할 줄도 모른다.
자신을 돈독히 하고자 다투니 돌이켜 반성하는 일이란 없다. 혹시 부유하고 고귀하고 영화를 누릴 때에도 인욕한다든지 선한 것을 베풀 줄 모른다. 그러면 위세는 얼마라고 할 것도 없고 악명에 따라 불타 버린다.
한 몸을 살리기 위해 힘들여 고생하지만 오래 지난 후에는 큰 비극을 맞게 될 뿐이다.
자연에는 정확히 따라가는 것은 있되 풀려 버리는 것은 없다.
왕의 법령이 널리 베풀어지면 자연히 지켜지는 것이니, 그와 같이 자연의 기강과 규율도 펼쳐진 그물처럼 위아래가 상응하는 것이다. 의지할 데도 없이 오직 홀로 그곳에 들어갈 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오직 그러했으니 아프고 마음이 상하는구나. 도무지 의리란 없고 바른 도도 알지 못하는구나.”
부처님께서 아일보살 등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에 그런 부처님께서 계시니 모두 그것을 우정과 연민으로 애민하게 여기고 위신력으로써 온갖 악한 여러 가지 일을 부수고 흔들어 버리고 그 모두를 소화시켜 버린다.
그리고 악한 것을 제거하고 선한 일을 하러 나아가게 하고 자신이 의도하여 생각한 바를 포기하여 버리게 한다.
경과 계율을 받들어 지니게 하여 이어받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한다.
경법(經法)을 주고 행하게 하여 위배하거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세간을 건지는 것과 무위(無爲)의 니원을 향하는 길과 쾌활하고 선한 극락을 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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