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유마힐경 하권
8. 여래종품(如來種品)
[보살이 도달하는 처소에 불법이 흥한다는 것]
문수사리가 물었다.
“족성자여, 보살이 도달하는 처소에 불법이 흥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유마힐이 말했다.
“오고 가고 주선(周旋)하는 데 지혜가 있으면, 불법이 흥합니다.
보살이 오고 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5무간(無間)의 처소에 이르더라도 능히 다툼이나 성냄을 없게 할 수 있고,
지옥의 처소에 이르더라도 능히 죄와 번뇌를 없앨 수 있고,
축생의 처소에 이르더라도 우매함을 제거하고 교만을 없앨 수 있고,
아귀의 길을 찾아서 들어가더라도 일체 복의 차례에 따라 합해지고 만나고,
지혜가 없는 처소에 이르더라도 함께 돌아가지[同歸] 않아서 능히 도를 알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냄으로 해치는 처소에 있더라도 인의(仁意)를 나타내서 중생을 해치지 않으며,
교만의 처소에 있더라도 다리[橋梁]를 나타내서 제도할 사람을 한데 모으고,
번뇌의 처소에 있더라도 모든 청정함을 나타내서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마도(魔道)에 있게 되면 능히 그 각(覺)으로 하여금 반연한 바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성문의 도에 있으면 아직 들어보지 못한 법을 사람이 듣도록 하고,
연각의 도에 있으면 능히 대비를 행해서 앉아서도 사람을 교화하고,
곤궁함 속에 들어가면 다함없는 재물로써 베풀고,
비천함 속에 들어가더라도 위상(威相)으로 그 종성(種姓)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이학(異學) 속에 들어가면 세간의 일체로 하여금 의지하게 하고,
일체의 모든 길에 두루 들어가도 능히 정요(正要)를 해설하고,
열반의 도에 이르러도 생사에서 벗어나도록 함이 마치 끊어지지 않는 듯하니,
이것이 보살이 오고 가고 주선(周旋)함으로써 모든 길에 들어가 불법을 흥하는 것입니다.”
[여래의 종자]
그러고 나서 유마힐이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종자라 합니까?”
문수사리가 답했다.
“몸이 있는 것이 종자가 되고, 무명과 은애(恩愛)가 종자가 되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종자가 되고,
4전도(顚倒)가 종자가 되고, 5개(蓋)가 종자가 되고,
6입(入)이 종자가 되고, 7식주(識住)가 종자가 되고,
8사도(邪道)가 종자가 되고, 9뇌(惱)가 종자가 되고, 10악(惡)이 종자가 되니,
이것이 부처의 종자입니다.”
유마힐이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문수사리가 말했다.
“무수(無數)한 허무(虛無)가 출현해서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켜 머물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번뇌의 사(事)에 있으면서 진리를 보지 못한 자는 곧 이 대도의 뜻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족성자여, 높은 고원의 육지에서는 청련(靑蓮)이나 부용(芙蓉) 또는 형화(蘅華)가 피지 못하고, 낮고 습한 더러운 곳에서나 이 꽃이 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무수한 허무로부터는 불법이 출생하지 못하고, 번뇌 속에서나 비로소 중생을 얻어서 도의 뜻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도의 뜻이 있으면 불법을 낳습니다.
스스로 몸의 쌓임이 수미산 같음을 볼지라도, 능히 겸하여 보아서 도의 뜻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불법을 낳습니다.
이 같은 요체에 의거하면, 일체 번뇌의 범주가 여래의 종자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비유하면 사람이 거대한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서 야광보(夜光寶)를 건질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번뇌의 사(事)에 들어가지 않은 자가 어찌 일체지(一切智)의 뜻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현자 대가섭이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여. 진실한 뜻을 정말로 잘 설하셨습니다.
번뇌의 범주가 여래의 종자가 되니, 다만 신견(身見)만이 위없는 정진의 도를 닦을 뜻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비록 5무간(無間)을 갖출지라도, 이 대도의 뜻을 능히 일으켜서 불법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미 아라한을 얻어서 응진(應眞)이 되면, 끝내 다시는 도의 뜻을 일으켜서 불법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근(根)이 망가진 선비처럼 5락(樂)에 대해서 다시는 이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제자가 갖가지 행을 이미 끊었다면, 불법에 대해 즐기지도 않고 이익도 없어서 다시는 지원(志願)이 없습니다.
따라서 범부는 불법에 대해 반복이 있게 되지만, 성문은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범부는 불법을 듣고서 능히 대도를 일으켜 삼보(三寶)를 끊이지 않게 할 수 있지만,
저 성문은 종신토록 불법과 역(力)과 무소외(無所畏)를 들어도 다시는 대도를 일으킬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무리 중에 앉아 있던 중상견(衆像見)이라는 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거사여, 부모ㆍ처자ㆍ노비ㆍ집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친구ㆍ친척ㆍ시종은 누구입니까? 권속이 소유한 코끼리ㆍ마차ㆍ수레는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장자 유마힐이 중상견에게 게송으로 답했다.
지혜바라밀[智度無極]이 어머니요,
권도(權度)의 방편이 아버지라네.
보살은 이로부터 나와서
부처님의 일체견(一切見)을 얻네.
법을 즐김은 아내가 되고
사랑과 연민은 남자와 여자가 되네.
진리[諦]를 받들어서 조화롭게 다스리고
거처하는 곳에선 공(空)의 뜻을 사유하네.
일체의 번뇌가 생기는 것은
욕망에 따름을 배워서 알고
최상의 도는 벗이 되어서
깨달음의 뜻으로 집착하지 않네.
나는 용기와 과단성이 있고
바라밀은 권속이며
네 가지 은혜는 여자의 일에 해당하니
도덕(道德)을 노래함을 음악으로 여기네.
총지(總持)는 동산이 되고
깨달음의 꽃은 매우 기이하며
이 열매는 해탈의 지견(知見)이고
저 나무는 커다란 법의 숲이라네.
여덟 가지 해탈의 연못에는
정수(正水)가 그 못에 가득하고
청정한 잎이 무성히 번식해서
이 더러운 티끌을 씻어 없애네.
수레의 말은 5통(通)으로 달리고
대승(大乘)은 넘어서기가 어렵다네.
도(道)의 뜻으로 다스리고 제어해서
8정도(正道)에서 근심을 잊노라.
상(相)을 갖추어서 용모를 장엄하고
온갖 호(好)로써 그 자태를 장식하네.
부끄러움은 벗어나는 행을 이루고
꽃다발은 의심하지 않음을 말한다네.
7보(寶)는 광대한 재화이지만
구하는 자는 법을 더불어 겸비하며
과보를 얻는 이익이 넓고 많지만
이 도의 분포(分布)에 따른다네.
여(如)를 지키는 선(禪)과 가르침을 이해하니
청정한 도에는 근심이 없구나.
이로써 모든 부처님께 의지하니
언제나 용감한 의지는 흔들림이 없구나.
이 감로(甘露)를 먹은 자는
다시 해탈로써 장(漿)을 삼나니
교만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음은 청정함이고
계품(戒品)은 바르는 향[塗香]이 된다네.
저 온갖 번뇌에 있긴 하지만
용감함과 굳건함을 누를 수 없구나.
일체의 마(魔)를 항복받아서
모두 다 도량에 이르게 한다네.
그 수반하는 바에 따라 태어나면서도
이제는 도무지 미혹의 뿌리가 없구나.
모든 찰토(刹土)에 나타나셔서
거느리고 보호하면서 온갖 티끌을 제도하시네.
억(億)의 여래께 공양하고
모든 삼계의 장(將)을 받들어도
아(我)가 아니어야 부처를 위한 것이니
태어나면 곧 양육을 성취함에 힘쓰네.
불국토의 청정함을 닦고 다스려서
모든 군생(群生)을 깨우치고 교화하니
이로 말미암아 최상의 이익을 얻어도
사람 사람마다 행하는 바가 없다네.
일체의 백성과 맹류(萌類)의
소리와 메아리와 온갖 변화를
일시에 능히 다 나타내기에
보살은 즐거이 정진한다네.
삿된 행(行)을 순조롭게 나타내시고
욕망에 따라 어울려 가면서
방편의 바라밀로
일체의 궤의(軌儀)를 나타내시네.
뛰어난 말씀의 가르침을 나타내기 위해
몸의 마침을 죽음처럼 보이시니
이는 모든 인물을 돕고 교화하는 것이지만
자못 환법(幻法)과 다름이 없네.
겁이 다하도록 하늘이 타버려도
다시 지형(地形)이 생김을 나타내시니
뭇 사람들의 상(常)이라는 생각을
무상으로 알게 하려 비추시네.
억천(億千)이나 되는 중생들이
하나의 읍이나 마을로 나오면
능히 다 방안에 들여 놓아서
편안히 도로써 베풀어 주시네.
가령 금기나 주술의 말이 있는
험한 골짜기의 무리들이라도
모두 다 피안에 이르게 되니
보살은 두려운 바가 없도다.
세간의 온갖 도술(道術)에 대해서도
일체를 쫓으면서 배우긴 하지만
의심이 나는 견해는 따르지 않아
그로 인한 사람들의 의혹을 풀어 주시네.
혹은 해나 달, 천인이 되고
혹은 범천 중의 존귀한 이가 되고
혹은 땅이 되어 덕으로 주재하시니
풍신(風神)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라네.
겁 중에는 질병도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의약(醫藥)을 시설하시니
부지런히 구호하고 안락함을 길러 주어
병을 없애고 모든 독을 제거하시네.
겁 중에서 기근이 들게 될 때면
음식과 장(漿)을 베풀어 주시니
우선은 굶주림과 목마름을 구원하시고
나중엔 법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친다네.
겁 중에 만약 군사가 일어난다면
이미 지어 놓은 자비의 이익으로
그들을 다투지 않도록 교화해서
만백성이 휴식과 구원을 얻도록 하네.
만약 커다란 전쟁 중이라면
나는 거대한 무리를 얻어서
항상 평화와 안락함으로 협조를 하니
보살의 힘과 세력은 강건하다네.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이
불국토에 한량없어도
문득 그곳에 도달하셔서
온갖 중생들을 편안하게 하시네.
가는 곳마다 교화하시니
5도(道)가 두루 분명하다네.
일체 중생들이 나타나기를 찾으므로
이 때문에 보살이 태어난다네.
욕망을 실컷 누리더라도
버림[捨]을 나타내고 선(禪)을 행해서
능히 마수(魔首)를 금제(禁制)하시니
누가 집착하는지 알지 못하네.
불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건
드믄 일이라 말할 수 있으며
비할 바 없는 커다란 횃불이 되는 건
욕망이 능히 그러함에 존재한다네.
민중이 모이게 되면
농사의 이익을 일으키고
탐욕이 없는 것으로써 인도하고
부처의 지혜로써 세우신다네.
세간의 장수와 종가의 어른이 되고
혹은 황제의 스승이 되길 구해서
윗사람을 돕고 아랫사람을 품으니
이로써 뭇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시네.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두루 은혜로우니
베푸는 재물에 한도가 없네.
이로 인해 보시를 하여
권려(勸勵)로 도덕을 일으키시네.
교만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역사(力士)가 됨을 나타내셔서
모든 교만과 우쭐됨을 조복 받아서
부처님의 바른 길을 세우게 한다네.
사람에게 위기와 두려움이 있는 걸 보면
먼저 겪으면서 위안하시니
이미 베푼 것으로 두려움이 없게 하고
도의 참됨으로 교화하시네.
5통(通)의 선인(仙人)이 되면
범행(梵行)의 일을 닦고 다스려서
청정한 계율과 인욕과 손의(損意)로써
중생들을 세우신다네.
백성들을 공경하고 양육함으로써
견자(見者)는 즐거이 정진을 하고
소유한 동복(童僕)의 노비는
가르치고 배워서 그 믿음을 세우게 한다네.
방편을 그대로 따르게 하여
사람들에게 즐거운 법을 얻게 하시고
일체의 최상을 나타내고자
훌륭한 방편으로 반드시 배움을 깊게 하시네.
이것이 소위 끝[際]이 없는 행이니
이 때문에 경계가 없는 데서 노니신다네.
가없는 지혜를 모두 회통하여서
법을 설함이 한량없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