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료 넣고 물 바꾸고…'소주 맛' 경쟁 치열
알코올 도수 낮추기 경쟁…16.5도까지 낮아져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역사적인 사건에는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역사책의 내용이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꼭 역사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늘 우리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많은 제품들에도 결정적인 '한 끗'이 있습니다. 그 한 끗 차이가 제품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비즈니스워치는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들에 숨겨져 있는 그 한 끗을 알아봤습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제품의 전부를, 성공 비밀을 함께 찾아보시죠. [편집자]
단맛 vs 쓴맛…소주 맛 전쟁
국내에는 여러 소주 브랜드가 있습니다. 다들 고유의 맛을 지니고 있죠. 하지만 또 각각의 특유의 맛이 있습니다. 미묘하지만 브랜드마다 맛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들의 취향도 제각각이고요. 누군가는 '참이슬'만을 고집하고, 또 누군가는 '처음처럼'만 찾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어차피 다 같은 소주 아니냐며 '아무거나' 마시는 분들도 있고요.
소주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런 미묘한 차이를 경쟁력 있게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소주 고유의 맛을 살리는 동시에 자사 제품만의 차별화를 꾀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소주 업계에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맛 대결'이 벌어져 왔습니다. 새로운 제조 공법을 도입하거나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등 지속적인 변화 끝에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소주가 탄생한 겁니다.
1960년대 진로(위)와 삼학(아래)이 일간지에 게재한 인쇄 광고. 진로는 '술맛이 달다고 좋은 소주가 아니다'고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자료=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소주 맛을 둘러싼 최초의 전쟁은 1960년대에 시작됐습니다. 당시 국내 소주 시장은 진로와 삼학의 양강 구도였습니다. 당시에도 소주는 씁쓸한 맛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삼학이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소주에 인공감미료를 넣어 '단맛'을 강조합니다. 출시 초기에는 너무 들큼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습니다. '맛깔스럽지 않게 달다'는 거죠. 하지만 소비자들도 점차 이 맛에 익숙해지면서 삼학은 업계 1위로 올라섭니다.
하지만 진로는 반격에 성공합니다. 특히 지난 1973년에는 알코올 도수를 기존 30도에서 25도로 내린 진로를 출시하면서 시장을 꽉 잡았습니다. 쓰고 독했던 소주를 순하게 만들어 많은 소비자들이 소주를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한 전략이 통했던 겁니다.
1도 더…'순한 소주' 경쟁
이후 진로는 오랜 기간 국내 소주 시장을 안정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1998년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알코올 도수를 다시 2도 낮춰 23도의 신제품 '참이슬'을 출시한 겁니다. 당시 국내 소주 시장에서는 두산경월(두산)이 내놓은 '그린'이라는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었는데요. 최초로 초록색 병을 사용해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한 전략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진로도 참이슬을 초록 병으로 내놨습니다. 또 국내 최초로 대나무숯 여과를 통해 제조했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잡미와 불순물을 제거했다는 겁니다. 대나무에서 나오는 미네랄을 통해 숙취가 적다는 점도 강조했고요. 참이슬은 제품 이름부터 제조법, 더 낮아진 알코올 도수까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주 역사상 최단기간 최다 판매 돌파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단숨에 주목받았습니다.
참이슬 인쇄 광고. 1998년 출시(왼쪽) 당시 '깨끗함'을 강조한 문구와 2006년 참이슬 후레쉬를 출시하면서 19.8도의 알코올 도수를 강조한 문구가 눈에 띈다. / 자료=하이트진로.
이후 국내 소주 시장에서는 '도수 낮추기 경쟁'이 본격화합니다. 소비자들이 갈수록 부드러운 소주를 원하면서입니다. 지난 2001년 두산 주류가 22도짜리 '산(山)'을 내놓습니다. 그러자 참이슬도 곧장 22도로 낮춥니다. 이어 두산주류는 2006년에 '처음처럼'이라는 신제품을 내놨는데요. 당시 처음처럼은 20도였습니다. 진로 역시 같은 해 19.8도로 순해진 '참이슬 후레쉬'를 출시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도 소주 도수낮추기 경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주요 제품의 알코올 도수는 16.5도까지 내려갔습니다.
2006년 당시 진로와 두산이 소주 제조에 쓰는 '물'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던 점도 흥미롭습니다. 두산은 처음처럼을 '몸에 좋은 알칼리 수'로 만들었다는 점을 내세워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웰빙' 바람이 불었던 시대의 흐름에 맞아떨어지면서 인기를 끌었고요. 그러자 진로는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냈습니다. 두산의 처음처럼은 전기 분해로 만든 (알칼리) 소주지만 참이슬은 천연 대나무 숯으로 정제한 '천연'의 소주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단순하지만 미묘한 소주의 '맛'
소주는 물과 알코올, 첨가물로 구성돼 있습니다. 소주 맛 전쟁은 이 세 성분에 변화를 주면서 벌어졌습니다. 물은 대나무숯으로 정제하거나 알칼리 수를 쓰면서 맛을 달리 했고요. 알코올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지속해 조금씩 도수를 낮춰왔습니다. 첨가물 역시 지속해 바꿔왔습니다. 실제 지난 2007년에는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에 설탕이나 액상과당이 아닌 핀란드산 순수 결정과당을 넣어 맛이 깔끔하다고 마케팅을 벌인 바 있습니다. 그러자 경쟁사는 우리도 설탕은 쓰지 않는다며 반발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하이트진로 이천 공장 참이슬 생산 라인. /사진=하이트진로 제공.
관건은 소주 고유의 맛을 지켜내는 동시에 특유의 경쟁력 있는 맛을 찾는 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도수를 무작정 낮췄다가는 물맛이 지나치게 강해질 수 있습니다. 물 탄 소주 맛이 되고 마는 겁니다. 소비자들이 익숙해하는 소주의 '쓴맛'을 잃을 수도 있고요. 하이트진로는 참이슬의 '깨끗한 맛', 롯데주류는 처음처럼의 '부드러운 맛'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숙제인 셈입니다.
소주 제품을 만드는 연구원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일일 듯합니다. 더욱이 소주는 첨가물이 단순해서 마음껏 맛의 변주를 주기도 어렵습니다. 작은 차이로 경쟁력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알코올 도수를 1도 낮추는 데에도 수십 가지의 맛을 만들어 테스트한다고 합니다. 참이슬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송진환 하이트진로 주류개발2팀 수석연구원님께 직접 물어봤습니다.
"깔끔한 맛에 부드러운 목 넘김 더 했다"
송진환 하이트진로 주류개발2팀 수석연구원. /사진=하이트진로 제공.
-본인 소개를 부탁합니다.
▲현재 증류주를 개발하고 있는 송진환 수석연구원입니다. 참이슬, 진로와 같은 희석식 소주 개발이 주요 업무입니다. 그 외 증류 기술과 오크통 숙성 등 증류주 전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소주 관련 업무를 담당한 지 10년 정도 됩니다.
-참이슬 맛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소주 맛은 다 비슷한 것 아니냐는 소비자들도 있는데요.
▲참이슬은 깨끗함과 깔끔한 맛이 좋은 소주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서 깔끔한 맛은 더 강조되면서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은 음용감이 더해진 것이 주요 특징입니다. 대부분 소주는 회사마다 여과나 숙성 등의 콘셉트가 있습니다. 첨가물도 다르고요. 소주를 즐겨 드시거나 맛에 예민하신 분들은 어느 정도 차이를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 참이슬은 지속적인 '맛'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참이슬은 어떻게 맛을 내는 건가요.
▲주정과 물(정제수)이 주요 원료인 희석식 소주는 주정의 알코올 감과 감미료 등으로 부드러움이 어우러지는 대한민국 대표 술입니다. 현재는 주정 품질평가를 통해 주정을 관리하고 있으며, 대나무 활성숯으로 불순물을 제거해 더욱 깨끗하게 정제하고 있습니다. 첨가물로는 4종의 감미료(결정과당, 에리스톨, 효소처리스테비아, 토마틴)를 섞어 깔끔한 단맛, 청량감, 부드러움, 쓴맛이 조화되게 합니다.
-지금 판매되고 있는 참이슬 제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참이슬은 대나무 숯으로 네 번 걸러 더 깨끗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특징이 있습니다. 대나무 숯을 활용해 주정과 물(정제수)을 따로 정제할뿐만 아니라 다른 제조 공정 중에도 사용돼 더욱 깨끗합니다. 정기적인 품질관리를 통해 엄선된 첨가물을 사용해 더욱 깨끗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도주 인기 트렌드에 맞춰 참이슬 도수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도수를 낮추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선 참이슬의 도수 선호도 소비자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사 결과 참이슬 도수 인하를 선호하는 경향성이 나타나면 연구소에서 알코올 도수 인하를 위해 시제품을 준비합니다. 도수를 낮추었을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소주다움이 적어지고 물맛이 나거나, 첨가물과의 밸런스가 깨져 기존의 깔끔함과 부드러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낮아진 알코올 도수에 맞춰 레시피를 재조정해 기존보다 더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부담입니다.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에피소드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지난 2019년 참이슬 후레쉬를 리뉴얼할 때 꽤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 참이슬은 깨끗함이 강조된 반면 경쟁사 제품은 부드러움을 강조할 때였습니다. 부드럽게 만들면 참이슬 고유의 깔끔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소주답고 깔끔하게 만들면 목 넘김이 거칠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소주답고 깔끔한데 목 넘김은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시제품 번호가 50번을 넘어갔습니다. 주정에 물을 타면 된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소주가 첨가물이 단순해서 생각보다 첨가물 종류, 품질, 함량에 따라 맛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최근 진로이즈백이라는 제품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참이슬 후레쉬와 맛의 차이가 있나요.
▲진로가 처음 출시되었을 때는 참이슬 후레쉬와 도수가 다르니 소비자 반응에서 의문이 없었던 것 같은데 현재는 두 제품의 도수가 동일해서 그런지 이런 질문이 생기나 봅니다. 두 제품 모두 깔끔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갖고 있는데 특별히 차이를 둔다면, 참이슬 후레쉬가 참이슬 기존의 소주다움과 깔끔함에 부드러움이 추가되었다고 하면, 진로는 젊은 층을 위해 순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으로 깔끔한 맛을 구현한 소주라고 생각됩니다. 자세히 맛보시면 단맛의 특징이나 알코올 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평소 소주를 자주 드실 것 같습니다. 얼마나 자주 드시나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소주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집에서 먹게 되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줄었습니다. 코로나19로 다들 술 먹을 기회가 적은데 업무시간 중에 조금씩 먹을 수 있으니 지인들이 항상 부러워합니다. 소주 개발 업무를 맡은 초기 너무 열정적이어서 생긴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목 넘김이 부드러운 소주가 콘셉트여서 계속 먹어봐야 해결될 줄 알고 실험실에서 앉아서 조금씩 먹으면서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취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니 어지러워 점심도 먹지 않고 점심시간 내내 푹 잔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