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소감
시인이 쓰는 현대선시
권 현 수
지난 2년 반 동안 불교문예는 기획특집으로 [현대선시연구]를 연재 하였습니다.
작금 문단의 화두로 회자되고 있는 선, 그리고 선시에 대한 문학적 자리매김을 해보려는 의도로 계속되었던 특집은 문단의 앞선 사유를 짚어가며 많은 학자님들과 교수님들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주간인 고영섭 교수님과 함께 이 기획을 추진하였다는 공로로 이렇게 귀한 상을 받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 앞섭니다. 감사합니다.
‘선禪’은 오늘날 글로벌 시대, 양자역학의 시대, 뇌과학의 시대에 더 이상 불교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참선(Chamseon), 禪, 위빠싸나(Vipassanā), Zen, Meditation, 명상, 묵상, 마음챙김 등으로 불리어지면서 동양과 서양을 넘어 힌두교도도 회교도도 기독교인도 하고 있는 보편적인 정신수양의 한 방편입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행복학’이라는 이름으로, 중앙대학교에서는 ‘내마음 바로보기’라는 이름으로 젊은 대학생 사이에 인기 있는 교과목이 되었으며, 스티브 잡스도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도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도 매일 일정한 시간 자리 잡고 앉아 명상을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카이스트 이상아교수는 미국 성인의 8%정도가 꾸준히 명상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만해스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선은 누구든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따라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일이다. 선은 신앙도 아니요, 학문적 연구도 아니며, 고원한 명상도 아니고, 침적한 회심도 아니다. 선은 전 인격의 범주가 되는 동시에 최고의 취미요, 지상의 예술이다. 선은 마음을 닦는 정신수양의 대명사이다.”
현대선시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님의 침묵]의 시인이자 행동하는 선사이신 만해 한용운 스님의 가르침입니다.
‘깨달음’ 또한 더 이상 불교 수행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최상승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인류의 스승이 되신 석가모니 붓다와 같은 수준의 깨달음은 없다 하여도 예수님도 회교의 성인 루미도 깨달은 분이십니다. 달라이라마는 물론이고 1981년에 열반하신 힌두교 성인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리지님은 제가 아침마다 읽는 책 중에 하나인 [I AM THAT] 라는 책을 통하여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수많은 수행자들의 스승이라고 불리어집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어떤 종교적인 수행을 한 적이 없는 독일인 에크하르트 톨레(1949~ )는 서양인이면서도 천수백년 전 중국선종의 6대 혜능스님처럼 깨달음의 천혜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스승이 없는 그는 우리 시대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대중의 인가(?)를 받아 책으로 영상으로 2천5백 년 전의 붓다와 같은 가르침을 펼치고 있어서 참으로 묘한 것이 진리의 세계임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은 시대와 문화와 학식과 수행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그 정도도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시는 바로 그 선과 깨달음의 결과를 시적언어로 나타낸 것입니다.
중국 선종사를 수놓은 빛나는 선사님들의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그 모태로 하는 고전선시는 엄격한 한시의 율격을 따라 한문으로 씌어졌으며 그 깊은 선적 향취에 반한 시인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시선(詩仙) 이백도, 시성(詩聖) 두보도, 왕유도 백거이도 선향기 은근한 선시풍의 시, 선취시들을 많이 남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중국 선종의 맥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한국 선가의 큰 스승님들 서산대사 휴정, 경허스님, 만공스님, 근세의 만해스님, 성철스님의 선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려시대, 1227년 최고의 문필가 이규보는 [선문 염송집] 을 집대성하였으며, 조선시대 추사 김정희도 초의 의순도 주옥같은 선취시들을 남겨 후대의 시인들이나 선승들의 귀감이 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시심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전선시의 원류를 따르고 있는 현대선시는 우리글인 한글로 선적인 깨달음을 표현한 시라고 볼 수 있으니 그 효시는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라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오랜 수행자 생활 중에 떠오른 단상들을 옛시조의 율격에 맞추어 노래한 조오현스님은 한글 선시조의 창시자로서 뒤를 잇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대선시의 대중화를 이끈 것은 아무래도 석지현스님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승려로서 시인이기도 한 그는 1975년 [선시(禪詩)]를 출간하면서 고전선시를 표집하고 편집하여 시적인 정서가 넘치는 번역과 해설을 덧붙여 선시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난 십여 년 동안 문단의 선시 열풍을 리드하고 있는 송준영(宋俊永, 법명 醉玄, 당호 越祖)시인은 고전 선시에서 표출되는 선시의 수사법을 적기수사법(賊機修辭法)이라고 명명하고 선시의 반상합도反常合道, 선시의 무한실상(無限實相), 선시의 초월은유(超越隱喩)로 수사법을 정의하였습니다. 또한 한글로 표현한 선시를 현대선시라 하고, 이를 다시 전위선시(Avant garde-Zen poetry)로 분류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1월에 원적하신 이승훈시인. <조선일보> 부고 란에 “국내 대표적인 전위주의 시인으로 불교적 선사상에 심취해 이른바 ‘현대선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라고 소개된 이승훈 시인은 송준영 시인의 스승으로서 시와 세계 지면을 통하여 “알기 쉬운 선시”를 연재하면서 마지막 유고까지 그것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불교문예는 이와 같은 문단의 흐름에 발맞추어 “현대선시 연구”를 지난 2년 반 동안 특집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앞선 선행 연구를 짚어가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보자는데 뜻이 있습니다. 이미 많이 연구된 ‘전위선시’가 시어의 기표(시니피앙)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어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고 보여 지는 시어의 기의(시니피에)에 비중을 두어보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선시의 전위성과 함께 선시의 서정성도 주목해서 시의 영원한 본성인 서정시적 세계도 살펴보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앞으로도 관심 있는 학자들과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여 세계문학사에 의의 있는 하나의 시론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선은 이미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정신수양의 한 방편이고 깨달음 또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으니 우리 시인들 역시 그 범주 안에 들것입니다. 시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순간순간에서 시적 오브제를 포착하고 그의 독특한 정서로 시를 엮어냅니다. 바로 그 순간순간이 깨달음의 현주소라고 할 것입니다. 다만 그 깨달음이 닿는 지평이 일상생활의 부분적인 성찰에 그친다면 그것을 굳이 선시풍의 시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그 지점이 바로 달라이라마가 전하는 깨달음의 의미 즉 ‘공과 자비’를 통하여 삶의 지혜를 배우고 마음의 평화와 업으로 부터의 자유를 얻는 단계에 까지 이른다면 그것이 바로 선시풍의 시가 되고 선취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여름 만해축전의 불교문예 세미나에서 외국어대학 박치완교수님은 “깨달은 시인이 바로 선사이다. 그런 시인이 쓴 시가 선시”라고 갈파하였습니다.
인류문화를 화려하게 수놓는 천재시인들, 그 시인이라는 이름을 함께 얻은 행운의 우리 시인들에게 저의 작은 깨달음을 전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교수님은 플라톤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세미나에서 “과학, 명상을 말하다”라는 주제의 강의를 하였는데 명상의 의의를 최신 과학적 시각으로 풀이해 주셨습니다.
우주에는 원칙적으로 다른 2개의 존재가 있는데 물질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만 존재하고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이 분명히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뇌는 물질이며 나의 의식은 비물질인데 우리는 약 30%정도의 비물질인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하였습니다. 초심리학자들은 그 물질의 무게가 21g이라고 까지 계산하였습니다.
그런데 물질인 우리의 뇌가 사물을 인식하는 패턴은 오감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근거로 통합하여 결론을 내리는데 이와 같은 패턴으로 만들어진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로봇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새’라고 인식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그 그림을 ‘새’라고 말한다면 정신이상자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우리 인간이 기계와 다른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 그림을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예술적 가치로 인식하는 우리는 그것을 새로 인식하는 기계적인, 즉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를 보는 정신즉 의식, 영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지요.
김교수는 슈레딩거의 유명한 고양이실험을 인용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정신이고 물질은 환상일 뿐이니, 감각너머에 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금의 깨달은 스승님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최고 과학자의 전언입니다. 그리고 김교수님은 우리의 뇌가 인식하는 드러난 물질의 세계, 외면의 세계를 잠재우고 우리안의 수많은 의식 그 실재를 만나는 것이 명상이라고 결론적으로 말하면서 명상의 의의를 전하였습니다. 일상에서의 순간순간 작은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하여 멋진 시로 만들어 내는 우리 시인들은 이미 선사입니다. 우리 시인들이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명상, 선을 통하여 우리 안의 ‘실재’를 만나서 선시풍의 시, 선취시를 많이 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수상소감을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제 3회 작가상 수상소식이 제 4회작가상 보다 뒤에 올려져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