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딸아이가 임신을 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퇴근하기가 무섭게 태교를 위해서라며 음악회와 전시회를 찾기도 하고, 요가 모임에도 나간다면서 바삐 뛰어다닌단다. 너무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했더니 요즈음은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젊은 애들이 유난도 떤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번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태교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아내가 전해 주었다. 자기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말리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가 집에 오더니 양가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말을 꺼낸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 자연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뱃속의 아기에게 전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돈댁 식구들과 만나 제주도에서 2박3일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사돈댁과 우리들은 서울과 대전에 떨어져 살고 있어서 남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사돈식구들을 만난 것은 결혼이야기가 오고 간 뒤에 상견례 자리에서였다. 두 번째는 결혼식장에서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 뒤로는 바깥사돈과 몇 차례 안부전화만 주고받았다. 결혼으로 인연을 맺었는데도 그동안 적조하게 지낸 것이 미안하던 차에 오히려 잘 된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가에서 여행에 참석할 수 있는 가족이 모두 여덟 명이라기에 자동차도 한 대로 돌아다니고, 같은 숙소에서 함께 묵자고 말했다. 그래야만 사돈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와 딸아이는 사돈끼리라면 어려운 사이이니까 숙소도 따로 마련하고, 자동차도 각각 타고 다니자고 한다. 듣고 보니 여행을 다녀 온 뒤에 혹시나 관계가 불편해 질 수도 있을지 몰라 그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여행 첫날, 10시가 되어 서울에서 내려오는 사돈 식구들과 제주공항에서 합류했다. 사돈 내외분은 공직에서 은퇴하고 두 식구가 지내기 때문인지, 결혼식장에서 뵈었을 때보다 안색이 건강해 보였다. 공항을 나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불어서 여행하기에는 불편했다. 모두들 이른 시간에 출발해서 아침식사를 제대로 못했을 것 같아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비를 피해 시설을 중심으로 관람하기로 했다. 우리 네 식구, 어머니와 아내, 아들과 내가 한 차를 타고, 사돈내외 그리고 딸과 사위가 동승해서 두 대의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제주 시내를 벗어나 동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저녁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침실과 가재도구가 깔끔하고 고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식구들이 잠자리가 편안해서 좋았다며 예약을 맡았던 나를 칭찬하기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정원을 산책하면서 만난 바깥사돈은 벌써 운동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매일 아침 1시간 30분 정도 걷기운동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한다고 얼굴이 좋아진 비결을 알려주었다. 식사시간에 만난 안사돈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며느리를 맞고 처음으로 네 식구가 한 방에서 잠을 자며 행복한 밤을 보냈다.”며 고마워했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을 다녀올 때에도 하룻밤도 시댁에서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시댁에 들려서는 이튿날 출근해야 한다면서 인사만 드린 채 대전으로 내려온 것이 시부모 입장에서는 무척 서운했었나 보다.
딸과 사위가 모두 대전에서 직장에 출근하고, 신접살림을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차려 우리식구들과는 여러 차례 만났다. 자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아내에게는 짐이 될 것이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내는 일주일에 한두 번 사위가 잘 먹는다는 반찬을 만들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나르면서 지낸다. ‘딸을 시집보내면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지어낸 말이 아니었다. 여자들은 시집간 뒤에 친정과 가까운 곳에서 살림살이를 하려고 한단다. 그래서 시집간 딸을 ‘예쁜 도둑’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여전히 아들보다 딸 낳기를 더 바라는 것을 보면 남아 선호사상이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자녀를 많이 낳던 시절에는 사돈의 인연을 맺으면 서로 자녀를 나누어 갖는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지금은 하나 아니면 둘만 낳으니까 자연스럽게 한 가족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그래도 집집마다 자녀들이 둘 아니면 많아야 넷이다. 안사돈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우리 아들에게 선물을 건네면서 매형과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달라고 당부를 할 때에 내 가슴이 뭉클했다.
둘째 날도 비를 피해서 코끼리 쇼도 구경하고, 추억의 박물관인 <선녀와 나무꾼>에 들어가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노년에 접어든 우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물건들을 퍽 많이 소장하고 있어서 지난날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서 밖으로 나왔다. 유채 밭과 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나무를 보면 여자들은 탄성을 지르면서 포즈를 취하기에 바빴고, 남자들은 연신 따라다니면서 카메라의 플래시를 터트리기에 정신이 없었다. 저녁에는 식사를 마치고 안사돈이 케이크를 준비해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딸아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여행만 아니라면 생일상을 잘 차려주고 싶었다는 말씀이 시어머니라기보다는 자상한 친정어머니처럼 사랑이 묻어났다.
셋째 날은 날씨가 좋아 배편으로 우도에 들어가서 섬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우도 해수욕장은 물이 깨끗하고, 모래밭이 아름다워 배를 기다리는 동안 여덟 식구가 백사장을 나란히 걸었다. 여느 해수욕장과는 달리 모래가 굵은 것이 지압효과도 있다기에, 모두들 양말을 벗고 신발을 두 손에 든 채 걷기도 했다. 해변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돈의 인연을 맺게 된 것도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삼일 동안 친형제자매들처럼 지내면서 사돈끼리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낸 것도 남다른 축복이었다.
제주에서 보낸 딸아이의 태교여행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안사돈은 우리들에게 다가와 5월이면 고양에서 열리는 꽃박람회에 꼭 오라고 초대해 주셨다. 그러면서 하룻밤은 자고 가야 된다고 미리 당부하신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이번 여행은 딸아이의 태중에 있는 아기를 위한 나들이였지만, 사돈 간에 친교를 돈독하게 만드는 여행도 되었다. 더구나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님이 동행하셔서 더할 나위 없이 흐뭇했다. 어머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증손주를 직접 길러주시겠다는 약속까지 하셔서 모두들 박수를 보내면서 감사를 표하고,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시와 정신> 2017년 여름호 수록
첫댓글 태교여행에 시어른과 친정부모님까지 챙기는군요. 생각 깊은 따님 덕에 뱃속의 아이는 보나마나 지혜롭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겠네요. 덕분에 훈훈해졌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딸 아이 덕에 사돈간에 정이 깊어졌습니다.
추억에 남을 태교여행입니다.^^ 읽는 이의 마음이 따뜻하고 맑아집니다. 그런 여행을 기획하다니 따님 멋집니다. 가족애가 아름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