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의 메카로 거듭나는 G밸리, 서울디지털산업단지
테마 1. 구로디지털단지의 첫문을 열다.
▲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은 현재 서울디지털단지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침 여덟시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린다. 거의 출근하는 사람들의 인파 속에 떠밀려 내리다시피한다. 2호선은 항상 붐비지만 아침 출근길이라서 그럴까? 이 역에서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온다. 1번 출구 밖으로 나오면 바로 이곳이 한국산업의 산실이라고 불렸던 구로산업단지의 시작이 되는 시점이다. 물론, 지금은 이 역의 이름처럼 산업단지에서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하였다.
그래도 공단인지라 사방팔방 눈을 돌려가면서 공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굴뚝들을 찾아봤지만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디지털 32나 길을 따라 오 분여를 걷는 길 주변은 온통 먹거리 식당가들이고, 골목길에 끝에 다다라 디지털32라는 큰 도로 만나자마자 오른편으로 돌아 쭉 길을 따라 걸어본다. 신기하게도 내 앞에 가장 먼저 우뚝 선 건물은 ‘코오롱사이언트밸리 2차’ 라는 고층 빌딩과 ‘이마트’ 라는 대형마트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과거 공장들은 온통 오간데 없고, 20층 높이의 최신식 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고 있었다.
▲ 디지털 1단지 사거리에서 디지털로 방향으로 그 주변에 들어선 고층 빌딩들은 중소 IT기업들이 입주하고 있다.
테마 2. 한국 경제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공장터
서울디지털단지라고 이름으로 탈바꿈한 구로디지털단지는 30년 동안이나 구로산업단지로 명성이 얻었던 곳이다. 오히려 지금의 서울디지털단지보다도 더 큰 역할을 담당했었고 그 명성 또한 대단했었다. 그 당시로 잠시 돌아가 본다. 1960년대 산업의 기반이 전무했던 우리나라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하고 노동집약적인 경공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당시 여건이 좋지 않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일교포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여 운영하고 토지 이용이 쉬우며, 노동력을 확보하기 좋은 구로동으로 선정하였다. 당시, 구로동은 경부선과 경인선 철도가 통과하고 인천항이 가까워 공장들이 입지하기가 좋은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1964년 수출산업공단지조성법이 만들어지고, 한국수출산업공단이 설립되어 수출산업공단을 조성할 수 있었다. 당시 구로구에 수출산업공단 제 1단지를 세웠고, 사람들은 쉽게 구로 공단이라고 불렀다.
1965년 착공을 시작한 1단지는 2년 후 준공까지 13만 8000평에 달했고, 이듬해 11만 9000평의 제 2단지 준공됐다. 1973년 제3단지(34만4000평)이 준공된 이후 섬유ㆍ 봉제 등 우리 나라 제조업을 이끌었다. 신기하게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가발 산업이 섬유산업과 더불어 1~2위를 다툴 정도로 가발산업이 주요 산업이었다는 점이다. 구로산업단지는 고도의 성장을 이루었고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저렴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과 더불어 세계적인 공업 구조에서 분업의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중화학 공업 수출 육성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연관 효과가 큰 철강, 기계, 조선, 전자, 비철금속, 석유화학 등이 6개의 전략 산업으로 집중 투자되었다. 물론, 1980년대까지 구로공단은 계속 성장하였고, 80년대 중반에 들어서 섬유에서조립금속업종으로 순위가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1985년 노동력 착취로 인해 ‘구로동맹파업’ 사태가 벌어지고, 이후 임금상승과 3D 업종 기피현상의 확산 및 산업이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변화되면서 구로공단은 침체기를 겪게 된다. 심지어, 1995년에는 근로자 수가 4만여 명까지 감소하였다.
아무튼 산업 단지의 형성과 더불어 단지 주변 구로 3동과 가리봉동에는 돈을 벌러 온 농촌의 노동자들이 집단촌까지 이뤄 항상 북적였다. 특히, 봉제 공장 여성 근로자들이 살았던 집들은 작은 방 하나에 조그만한 부엌이 딸린 쪽방이었다. 이런 쪽 방들이 모여 있던 곳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벌집촌’이라고 불렸다.
▲ 디지털 1단지에 입주한 부동산 업체 앞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현황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테마 3. 한국 IT의 메카로 거듭나는 G밸리, 서울디지털산업단지
2000년 12월 14일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의 생일이다. 그동안 구로산업단지라는 이름을 버리고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걸맞게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고층빌딩, 즉 아파트형 공장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각 단지별로 특화된 산업을 발전시켜나가게 된다. 1~3단지 대규모 빌딩들도 채워지고 있다. 제조업 공장과 굴뚝으로 가득찼던 모습을 이제는 찾아볼 수 조차 없다. 특히 아파트형 공장은 1999년 4개, 2001년 5개, 2003년 9개, 2005년 29개가 지어지면서 급속히 늘었다. 이후 2007년 13개, 2009년 18개, 2010년 14개나 준공됐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을 끼고 있는 1단지는 IT 및 소프트웨어산업 특화지구, 가산디지털단지역을 양분하는 2단지와 3단지는 각각 패션·기업지원 서비스지구, 연구개발·생산복합지구(IT·메카트로닉스·정밀기기 등)의 기반제조업 특화지구로 형성해나간다.
▲ 1~3단지별로 입주 업체 현황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 서울디지털단지는 1만1100여 IT 정보통신업체와 패션업체가 입주하고 있다. 공장 터에도 첨단 패션몰, 인텔리전트 빌딩, 첨단 아파트형 공장들이 즐비하다. 이 중에서 약 80%가 가동 중이며, 나머지는 현재 건설 중에 있다. 60~70년대 우리나라 총생산에 약 10%를 차지했던 생산액에서 현재는 그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디지털 단지에서 주로 생산되는 제품은 전기 전자와 섬유 의복이 74%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전기전자 산업의 경우 약 51%로 총 생산의 절반이 넘는다. 이를 통해 첨단산업으로 이 지역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