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갈 때마다 내 옷을 산다.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이 늘어나는데도 입성에 마음이 쓰이는 건 웬일일까? 청사에 출근할 때도 그저 남 보기 거북하지만 않으면 되는 차림이었다.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지면서부터 최근까지는 츄리닝과 개량한복 반바지 정도가 근무복이면서 잠옷도 되고 집 앞에 나갈 때 외출복도 되어 주었다. 아직 어려 보이는 아내 탓인가 보다. 집에 틀여박혀 있는 남자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해 안달났다는 동기들 마누라와 달리 나랑 집에 같이 있는 게 좋단다.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걸핏하면 곁에 와서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내 글 쓰는 걸 지켜 본다. 밥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 보는 일도 잦다. 저런 여자 앞에서 봉두난발에 츄리닝 바람이란 당치 않다. 책상 앞에 있을 때는 모던한 반바지에 산뜻한 디자인의 티를 입고. 아내랑 티브이 앞에 있을 때는 모시는 못 입어도 상쾌한 풍기인견 개량한복을 입고. 아이 친구들 엄마들이라도 찾아 올 것 같으면 하얀 긴바지에 단추 달린 셔츠를 갖춰 입고. 잠잘 때도 츄리닝에서 벗어나 패션이 곁들여진 잠옷으로 갈아 입는다. 공직에 있을 때 국민들 눈길을 이처럼 의식하며 살아 왔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 이런 호사를 누릴 기회를 잡지 못했으리라. 아내의 나에 대한 지극관심이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