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아가라 폭포수가 온타리오 호수로 흘러가는 그 줄기에 해밀턴(Hamilton)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마거릿 클라크((Margaret Clark 1841~1865)는 이 마을에서 조섭 버니 클라크와 엘리자베스 벨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의 제재소와 농사가 잘 된 데다 가족이 늘어나 비교적 큰 규모의 석조 농가주택을 짓고 생활하였다. 이곳은 현재도 클라크 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인근의 글렌포드의 학교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18세의 아리따운 여학생이었으며 그는 20세의 젊고 잘 생긴 영어교사였다. 그 또한 이웃 마을인 빈브룩(Binbrook) 태생으로 이제 막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첫 부임한 조지 존슨(George W. Johnson 1839∼1917)이란 젊은 교사이자 시인이었다. 그곳에서 둘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하였기에 마을 합창단에서 함께 활동했다고도 전한다.
둘은 온타리오 호수가 바라다 보이는 양지바른 금잔디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거나 시냇가에 줄지어 선 단풍나무 길을 따라 산책하곤 했다. 그들이 즐겨 거닐던 곳이 노래에서 부르던 추억의 장소인 것이다. 호수와 개울, 꽃밭과 물레방앗간, 숲을 품은 목가적인 자연 등. 나중에 “메기의 추억”이란 시가 포함된 시집의 제목이 "단풍잎(Maple Leaves)"이 된 것은 추억의 장소에서 연유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매우 사랑했기에 약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둘의 앞날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메기가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 있었기에 둘의 사랑은 더 절실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병마로 쇠약할 때면 울적해진 그는 혼자 동산을 오르곤 했다. 그곳이 바로 노래에서 말한 데이지 꽃이 처음 피어난 동산으로 존슨은 거기에서 시를 구상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몇 년간 떨어져 살기도 한다. 그때는 메기의 병세가 호전되던 무렵으로 그녀는 웨슬리안 대학으로 진학하고 존슨은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던 때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미 깊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1864년 10월 21일 글렌포드 마을의 감리교회에서라고 전한다. 시집 "단풍잎"이 나온 것은 결혼하기 직전의 일로 메기의 추억은 그중의 하나이다.
나 오늘 홀로 언덕에 올랐다오, 동산 아래 풍경을 보려고 말이오. 낡고 오래된 물방앗간은 우리가 함께 놀던 시냇가와 함께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오,
언덕위의 푸른 숲은 사라지고 없다오, 데이지꽃이 처음 피었던 그 숲 말이오. 하지만 낡은 물방앗간은 여전히 있었다오, 그대와 내가 어릴 때부터 있어왔던 그대로.
I wandered today to the hill Maggie, to watch the scene below The creek and the creaking old mill Maggie, as we used to long long ago
The green grove is gone from the hill Maggie, where first the daisies sprung The creaking old mill is still Maggie, since you and I were young
결혼을 한 그들은 미국의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로 이주하여 신혼살림을 차리고 존슨은 인근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폐결핵을 이기지 못한 메기는 안타깝게도 그만 죽고 만다. 이는 1865년의 일로 메기는 23세, 존슨은 25세 때의 일이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존슨은 결국 그녀의 죽음이 서려있는 클리블랜드를 떠나 캐나다로 향한다. 그의 슬픈 귀향길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한다.
그가 고향을 향한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화물칸에는 그녀의 관도 함께 실렸으며, 그리고 그의 품엔 그녀와의 사이에서 난 아기 또한 함께였다. 그런데 안겨 있던 아기가 자꾸만 소리 내어 우는 것이었다. 객차 안에는 많은 다른 승객들도 함께였기에 불편을 끼칠까 정성을 다해 달래 보았으나 아기는 끝내 그치지 않고 계속 큰소리로 울고만 있었다. 승객들에게 죄송한 그는 아기를 안고 일어서 큰소리로 울먹이며 사과하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이 아이가 엄마를 찾느라 울고 있는데 애 엄마는 지금 화물칸의 관 안에 누워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제 어미를 찾는 모양이니 여러분 조금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아내를 고향의 언덕에 묻어 주기 위해 그녀의 관과 함께 고향으로 가고 있는 중입니다. 승객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객차 안의 승객들은 숙연해지며 모두 눈물지었다고 한다.
그녀는 마운트호프 마을 근처의 화이트처치 공동묘지에 있는 가족묘원에 묻혔다. 다음 해인 1866년, 존슨은 디트로이트에 사는 음악가이자 친구 제임스 오스틴 버터필드(James Austin Butterfield)에게 슬픈 추억이 담긴 자신의 시에 알맞은 곡을 붙여 줄 것을 청한 결과, 태어난 노래가 세계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는 "메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이다.
이후 존슨은 캐나다에서 교직에 복귀하고 학업을 계속하여 명문 존 홉킨스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모교인 토론토 대학의 언어학 교수가 되었으며, 노후에는 은퇴하여 여러 곳을 여행하다 1917년 겨울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향인 해밀턴 공동묘지에 묻혔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는 그가 배재학당에서 공부할 때 영어를 가르치던 여선교사가 들려준 노래가 바로 이 “메기의 추억”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이 노래를 듣고 감명을 받은 그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동산수풀은 없어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않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메기야 희미한 옛 생각 지금 우리는 늙어지고 메기머린 백발이 다 되었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메기 내 사랑하는 메기야
이후 1925년 국내 최초의 소프라노인 윤심덕과 테너 안기영이 일본 음반사에 의해 발표하였으나 이 노래의 가사는 원곡이나 현재의 곡과도 전혀 다르다.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한글곡은 윤치호(1865~1945) 선생이 '옛날의 금잔디'로 번역 편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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