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개국동문회 임원 워크샵이 스페인으로 정해졌다고 들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나의 첫 유럽이 예감되었다.
약국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이렇게 길게 약국을 비운 적 없이 약국의 지박령처럼 살다가 10일이나 약국을 비우게 되니 인계할 일이 너무 많아 출발 바로 전까지 아무런 준비 없이 스페인에 대해 백지 상태로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그때 공부해야지 했는데 자다 깨다 하다 보니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공항을 나서는데 살짝 쌀쌀하며 깨끗한 눈부신 햇살느낌? 스페인의 첫인상이었다.
공항에서 첫 번째로 이동한 마요르 광장은 비행기에 오래 갇혀있다 만나니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광장의 느낌이 더욱 배가 되어 다가왔다. 모두 긴 비행의 피로는 광장의 상쾌한 공기와 반짝거리는 햇살에 부서져 날아가 버렸는지 소녀들처럼 재잘재잘 깔깔거리며 모델처럼 폼도 잡아보며 사진을 찍고 노천카페를 둘러보며 유럽을 만끽하였다.
여행 내내 느낀 스페인의 날씨는 해가 비추는 곳은 따뜻하고 그늘에 들어가면 쌀쌀한 전형적인 지중해 날씨였다. 눈부신 광장을 지나 시가지를 둘러보며 산 미구엘 시장으로 이동하여 저녁에 먹을 과일과 간단한 먹거리를 쇼핑해보았다.
여행 사전모임부터 인솔자, 마드리드 도착해 만난 가이드 분까지 소매치기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동원한 엄청난 주의를 들었기 때문에 모두들 주변을 살피며 주의를 늦추지 않았다. 스페인에 과일이 훌륭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게 산 미구엘 시장에 진열된 과일들은 때깔이 예술이었다. 여러 언어로 “만지지 마세요.” 안내가 붙어 있는데 그중에 한국어가 보이니 우습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였다. 스페인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향주언니는 소매치기들을 파리 쫓듯이 쫓아야한다며 흉내를 내서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공금을 맡고 있는 진우언니는 관광 중에도 스타일을 희생해가며 복대를 차고 소매치기를 피해 고생해주셨고 지욱언니는 마요르 광장부터 시작해서 주요 포인트마다 단체사진 찍을 때 플래카드를 펼치시며 관광보다 책임에 더 열성을 보여 주셔서 모두를 감동 시키셨다.
벨라스케스의 명화와 고야의 작품이 소장된 프라도 미술관을 둘러보며 다 보지 못한 아쉬움에 모두들 스페인에 다시 오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축구에 관심이 별로 없어 시큰둥했었는데 실사로 펼쳐진 레알 마드리드 구장은 감동이었다. 모두들 VIP관람석에도 앉아보고 기자회견 흉내도 내어보며 신나했다. 스페인에서의 첫날밤 모두 피곤했지만 한방에 모여 사온 것을 나누며 회의를 하고 수다를 떨며 그렇게 무박2일의 첫날이 저물었다.
다음날 심플함이 특징인 스페인의 아침식사 후 세고비아로 이동해 백설 공주 성의 모델이라는 알 카자르 성을 관람하고 악마가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로마수도교로 향했는데 사진으로는 도저히 실감할 수 없는 그 모습은 전설이 왜 생겼는지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였다. 점심으로 "꽃보다 할배"에서도 보았던 애저(새끼돼지)를 먹었는데 인상 좋은 웨이터(?)께서 TV에서 봤던 것처럼 접시로 애저를 나누고 시원하게 접시를 깨트리셨다.
스페인에서의 식사는 어마어마한 양의 샐러드로 시작해 다 먹으면 메인이 나오는데 첫날 애저부터 소꼬리 찜, 닭고기, 오징어, 대구, 닭 가슴살 ,스테이크, 빠에야, 미트볼을 먹었다.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린 건강식이었지만 연달아 건강식을 먹었더니 자극적인 맛이 그리워진 사람들은 밤에 라면 있는 방으로 몰려가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드리드가 스페인의 수도라면 바르셀로나는 경제의 수도, 톨레도는 종교의 수도라는 말이 와 닿았다.
중세 시대로 돌아간 듯한 톨레도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엘그레코의 명화를 전시하고 있는 톨레도 대성당, 산토 토메 성당을 둘러보고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구 시가지를 산책하였다.
다음날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돈키호테의 마을 푸에르토 라피세스를 들려 코르도바로 이동하였다.
우리나라의 풍경과 달리 창밖의 풍경은 눈을 가로막는 게 별로 없이 키 작은 올리브나무들이 듬성듬성 멀리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풍경처럼 사람들도 여유롭기 짝이 없다. 엘리베이터에 닫힘 버튼이 없어 첨에는 당황스러웠다. 가이드분이 한국 유학생 중에 혈압 올라 쓰러지신 분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농담이 아닌 거 같았다.
코르도바 메스키타(모스크,코르도바 대성당)는 아름답고 슬펐다. 가이드분이 들려주시는 역사는 공존의 아름다움과 배척의 상처를 눈앞에서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아름다운 동거. 다름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지 않고 함께 하는 지혜를 간절히 청해보았다.
세비야로 이동해 밤에 플라멩고를 관람했는데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그저 그런 수준일거라는 내 예상을 깨고 정말 정열적인 무대에 “올레~! 올레~!”를 연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페인은 동서양이 묘하게 섞인 느낌을 많이 주는데 론다 투우장에 전시된 투우사 의상도 그렇고 플라멩고 댄서들도 체구들이 크지 않고 아담해 우리 나라 사람과 체구가 비슷해 보였고 춤도 열정적인 몸짓에도 불구하고 서리서리 한스러움도 같이 느껴졌다.
세비야의 아침은 비가 그치고 해가 반짝이니 날씨가 너무 좋아 모두 신이 났다. 옷도 가볍게 입고 김태희가 CF를 찍었다는 스페인 광장에서 모두 김태희가 되어 멋진 포즈를 취하며 아름다운 광장의 모습을 추억 속에 담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는 세비야대성당에도 역시 연못과 히랄다 종탑이 딸린 현관의 안뜰에서 모스크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종탑에 올라 세비야 전체를 조망해 보았는데 스페인 다른 곳에서도 느낀 것처럼 아무데나 그냥 찍어도 화보처럼 너무나 아름다웠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 등장하는 낭만의 도시 론다는 세계 문호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히 우아한 아름다운 숙녀 같았다. 오전에 세비야에서 더웠는데 해발이 높은 론다는 바람도 불어 많이 쌀쌀했다.
신,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누에보 다리는 밤에 본 걸로는 너무 아쉬워 다음날 아침에 택시를 불러 타고 누에보 다리를 건너 가이드 없이 우리들만의 론다 탐험 여행을 즐겼다. 특별히 선배님들께서 론다에서 1박을 할 수 있도록 여행사와 협의를 해주셔서 아름다운 론다를 맘껏 누릴 수 있었다.
점심 무렵 역시나 스페인답게 이슬람 문화와 카톨릭 문화가 신비하게 섞인 그라나다로 이동하여 알바이신지구에서 맛있는 스페인 맥주도 마셔보고 얼음이 따로 나오는 스페인 아이스커피도 마셔 본 후 알함브라 입장시간에 맞춰 이동하였다.
알함브라는 크게 4개의 지역인 나자리에 궁전, 카를로스5세 궁전, 알카사바 성채, 그라나다 왕의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 궁전으로 나뉘는데 그 중 핵심인 나자리에 궁전. 너무 아름다워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도 소중히 지켜져서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이 궁전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무어족의 보압딜 왕 또한 쫓겨나면서 “그라나다를 잃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알함브라를 못 보게 되는 것이 원통하다” 하며 눈물을 흘렸다 하니 그 마음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여행7일째 우리는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로 향했다. 멋진 지중해 휴양지 컨셉에 맞추어 향주 언니는 너무 예쁜 원피스까지 갖춰 입는 열정을 보여 주셔서 서로 다퉈 언니의 매니저, 코디, 사진사를 자처해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론다에서 산 단체티를 나눠 입고 아름답고 푸른 지중해에 어울리는 숙명의 우애를 네르하에 맘껏 자랑했다.
말라가의 작은 하얀 마을 미하스에서는 모두 마차로 미하스를 일주하고 여유롭게 쇼핑도 즐기다 말라가 공항에서 바르셀로나로 출발했다. 너무 아쉽게도 비가 왔고 구엘 공원에 들어갔을 때 비가 심해져 너무 당황했다. 다행히 비가 그쳐 동화 속 세상을 옮겨 놓은 듯한 구엘 공원을 둘러 볼 수 있었다. 비 그친 하늘과 구엘 공원은 왠지 현실 같지 않고 동화책의 한 페이지가 펼쳐져 있는 듯했다.
스페인에 대해 백지였던 나 조차도 너무 많이 들어본 가우디의 성가족성당은 정말 놀라웠다. 1년365일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성당 앞뒤에 빼곡히 바글거리는 것부터 볼거리였다. 성당의 모든 곳이 경이로웠다. 1882년부터 현재까지 공사 중이며 가우디 서거 100년을 맞춰 2026년 완공 예정이라 했다. 첨탑 전망대를 내려오며 공사 중인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신심이 깊었던 가우디의 신에 대한 사랑이 성당 곳곳이 흘러 넘쳤다.
마지막 날 기암괴석의 바위산 몬세라트는 멋진 여행과 어울리는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흔히 경험해 볼 수 없는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며 보는 경치는 신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드는 것이 기독교의 성지임이 틀림없었다. 시간이 없어 산 호안행 푸니쿨라만 타보고 산타 코바는 가지 못해 너무너무너무 아쉬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몬세라트만 1박2일 정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진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이스탄불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같이 밥을 먹고 멤버를 바꿔 가며 한방에 자보고 같은 경험을 한 우리는 한국을 떠날 때의 그 단체가 아니라 한 가족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여행은 꼭 해보라고 하는가 보다. 인생도 여행 같은 것이라는데 그래서 같이 여행을 떠난 우리는 모두 하나여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