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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집 제4권
상량문(상량문)
취향당 상량문〔취향당상량문〕
난리 중에 이리저리 옮겨가며 살다보니, 오랫동안 집이 없는 근심을 품었네. 세월이 태평해진 뒤 풍년 들고 시절이 조화로워, 비로소 편안히 살 곳을 정한 즐거움을 이루었네. 거북점과 시초점이 모두 길하고, 제비와 참새들도 낙성을 축하하네. 장엄하고 찬란하며, 완전하고 아름답구나. 다만 생각건대, 주인 부사야부(부사야부)는 태평시절에 버려진 노인이요, 성스러운 시대의 어리석은 백성이네. 한 대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로 산 안연(안연)의 생애는 누항(누항)에서의 세월이었고, 다섯 아들의 생계를 꾸리며 산 도연명(도연명)의 삶은 율리(율리)에서의 전원생활이었네.
맹호연(맹호연) 같이 대궐에 글 올리는 일 그만두고, 제갈공명(제갈공명) 같이 남양(남양)의 집에 누웠다네. 몇 년 동안이나 터를 구하며 집 지을 곳을 물었던가. 오늘에야 띠풀을 베고 재목을 모았네. 앞에는 매화 언덕이고 뒷쪽은 대나무 뜰이니, 그윽한 향기와 성긴 그림자가 서로 이끄네. 왼쪽은 긴 강이고 오른쪽은 넓은 들이니, 흰 비단 같은 물결과 누런 구름 같은 이랑이 둘러 있네. 정자에는 ‘부사(부사)’란 편액이 걸려 있고, 집에는 ‘지은(지은)’이란 당호가 걸려 있네. 구동(구동)의 옛 집이 매몰된 것을 통탄하고, 용강(룡강)의 묵은 풀이 황량함을 슬퍼하네. 고향땅에 의지하여 한 언덕을 차지하니, 선대가 남긴 은택이 아님이 없구나. 소나무와 국화를 헤치고 몇 이랑 밭을 개간하니, 은일의 한가로운 정취와 같은 점이 있네. 마음은 원대하나 땅은 구석진 곳이니, 계획은 졸렬하고 집은 작다네. 남쪽 처마를 높여 햇빛을 들어오게 하고, 북쪽 문을 틔워 찬바람을 들어오게 하네. 무릎을 펼 만하면 충분하니, 어찌 깊고 넓은 큰 집을 짓겠는가. 마음에 맞으면 괜찮을 따름이니, 바야흐로 뇌락한 장부임을 알겠네. 이 산천의 신령에게 자문하니, 우리의 상량하는 송축을 들어보시게.
아랑위,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 아랑위포량동
한 줄기 긴 강이 푸른 바다로 통하네 / 일대장강벽해통
주야로 넘실넘실 쉼 없이 흐르니 / 일야탕탕류불식
공부가 어찌 너와 함께 무궁치 않으리 / 공부기여이무궁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 포량남
푸른 절벽 붉은 언덕 크게 은둔할 바위로세 / 취벽단애대둔암
어찌하면 세속 밖으로 벗어나 고요히 살면서 / 안득정서초물외
몇 칸의 집에서 구름을 벗하며 노년을 마칠까 / 반운종로수간암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 포량서
신선 같은 방장산이 하늘과 나란하네 / 방장선산천여제
가을 달과 봄바람 구경에 지팡이는 짧아졌고 / 추월춘풍려장단
홍류동과 청학동엔 붉은 구름 자욱하네 / 홍류청학자하미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 포량북
밤마다 높은 누각에서 북두성과 북극성 바라보네 / 야야위루첨두극
작은 정성 쌍 오리 날아오름을 뒤쫓지 못하였으니 / 미성미진쌍부비
누가 만 리의 하늘에 오를 날개를 빌려 줄까 / 수차충천만리익
들보를 위로 던지니 / 포량상
창공에 구름 걷히고 아침 해가 밝아오네 / 벽허운렴조일랑
학문은 모름지기 고명을 극진히 해야 / 위학요수극고명
그런 뒤에 바야흐로 덕업이 넓어짐을 본다네 / 연후방간덕업광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 포량하
집 밖을 나가지 않아 나를 아는 이 적구나 / 불출호정지아과
은거하여 나의 참됨을 보전하기 충분하니 / 유정족이보오진
어찌 굳이 명예와 이익에 구구하게 얽매이리 / 하필구구명리야
엎드려 원컨대, 상량한 뒤에 많은 복이 냇물처럼 이르고, 온갖 복록이 산처럼 높아져 자자손손 크게 번성하여 가문에 장수와 재상이 난다면, 어찌 당나라의 최씨(최씨) 집안과 노씨(노씨) 집안을 부러워하겠는가. 대대로 공(공)도 되고 경(경)도 되어 진(진)나라의 왕씨(왕씨) 집안과 사씨(사씨) 집안 같이 되게 하십시오.
종미당 상량문〔종미당상량문〕 박민(박민)의 집이다.
깃과 털 없이 춥고 더운 곳에 살면, 이미 토병(토병)과 나무 꼭대기에 사는 것을 근심한다네. 집이 있어 비바람을 막을 만하면, 반드시 마룻대를 올리고 서까래를 얹어야 하네. 집은 성인이 제정한 것이고, 군자가 편히 거처할 곳이다. 저 하늘이 내린 특별한 구역을 보니, 이 땅이 감춘 뛰어난 경치인 줄 알겠네.
빙허대(빙허대)와 능허대(릉허대)가 마주하고 있으니 천 길의 푸른 절벽이며, 일곱 굽이 아홉 굽이 돌고 도는 것은 만 길의 붉은 언덕일세. 광탄(광탄)은 맑은 소리를 내며 북으로 흐르고, 청천(청천)은 거울을 펴 놓은 듯이 동으로 흐르네. 곤명뢰(곤명뢰)의 근원은 덕천(덕천)에서 발원하고, 영영현(영영현)의 지맥은 지리산에서 갈라져 나왔네. 망진산(망진산)의 층층 산봉우리 푸르게 솟구쳐 구름 위에 솟아났고, 촉석성(촉석성)의 나는 듯한 누각은 붉게 흐르며 아래로 안개 낀 물가에 임해 있네.
적당하게 깊숙하고 탁 트인 한 언덕에 자리하여, 만세토록 자손에게 전할 곳을 정하였네. 주인 능허보선(릉허보선)은 수려하고 향기로운 난초 숲속에서, 은거하여 빛을 감추었네. 붓을 휘둘러 주옥 같은 문장을 지으니, 자자한 명성이 구름 위로 치솟은 것보다 화려하였네. 복심(복심)을 드러내 충직한 간언을 올려, 대궐에 큰 공적을 세웠네. 정려는 증조부에게 있고, 포증은 선대부에게 미치었네. 복을 받아서 가문에 빛이 나고, 천운이 정해져 조야에 기쁨이 넘쳤네. 가업을 이어받아 발전시켜서 난간 기둥은 옛 제도를 고친 것이 없었고, 선조의 뜻을 잘 계승하여 효성스런 생각 후손에 더욱 삼갔네. 옛날에는 집을 낙천와(악천와)라고 했고, 지금은 당 이름을 종미당(종미당)이라고 하였네. 선대 훈계에 복응하기를 부지런히 하여, 백행(백행)의 근원에 거슬러 올라갔네. 자손에게 가르침을 물려주기를 부지런히 하여, 모든 성인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했네. 영화도 없고 치욕도 없음이 뚜렷하고, 해치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음이 매우 많았네. 지팡이는 침류(침류)의 물가에 이르고, 노새는 은둔한 늙은이의 농막에서 노니네. 비단 비늘 같은 물고기 낚시줄에 걸리고 은빛 북 같은 물고기 그물에 걸리니, 밥상을 대하여선 장협(장협)의 노래가 없고, 푸른 물결 허공에 출렁거리고 누런 구름 같은 곡식은 들판을 덮으니, 곡식을 수확하는 농기구엔 풍년의 노래가 있네. 죽을 먹어도 한가로운 지경에서 절로 넉넉한데, 부침하는 요직에 어찌 참여하겠는가. 때로는 반구옹(반구옹)과 옷깃을 나란히 하여, 해마다 청학동에서 놀지 않음이 없었네. 밝은 달 뜨는 쌍계사와 맑은 바람 부는 팔영루에서 최 학사(최학사)가 남긴 자취를 찾아보았고, 안개 낀 만 이랑의 물결과 구름 위로 솟구친 천 그루 나무 숲에서 정 선생(정선생)의 옛집을 찾아갔었네. 몸은 이익 좇는 것에 부림을 당하지 않았으니, 어찌 이름 훔치는 것에 뜻을 골몰하겠는가. 입으로는 복희(복희) 황제의 풍교를 읊고, 마음은 아득한 태곳적 세상을 노니네. 애오라지 짧은 노래 지어, 들보 올리는 일을 거들까 하네.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 량지동
자다 깨니 창가엔 날이 이미 밝았네 / 수각창허일이홍
만사를 적막하고 고요한 밖에서 구하지 않으니 / 만사불구요정외
완전한 맑은 세상에 한가로운 한 명의 노인일세 / 만연청세일한옹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 량지서
방장산과 곤륜산이 바라보이는 가운데 있네 / 방장곤륜망리저
하늘에서 왕모가 내려오는 줄 아니 / 지유릉허왕모강
한 쌍의 청학이 사람을 향해 우네 / 일쌍청조향인제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 량지남
와룡산 높은 봉우리 맑은 남기에 둘러싸였네 / 와룡산준쇄청람
영웅의 출처는 고금에 다름이 없으니 / 영웅출처무금고
〈양보음〉을 노래함에 한을 이기지 못하겠네 / 량보음래한불감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 량지북
상서로운 봉황이 날아와 오색 나래를 치네 / 서봉비래박채익
덕을 보고 내려와 어느 때 기산에서 울련가 / 람덕하시기악명
어진 인재가 배출됨이 기ㆍ용ㆍ익이로다 / 현재배출기룡익
들보를 위로 던지니 / 량지상
고요하고 현묘하며 높고 또 넓네 / 유묵현허고차광
바람과 구름 변하는 모습 누가 궁구할까 / 풍운변태수능궁
솔개와 물고기를 보는 것 위아래에 있네 / 유견연어재부앙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 량지하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며 차례로 노래하고 화답하네금슬갱연질창화
다시 아들과 손자들 눈앞에서 희롱하니 / 경유아손희안전
한혈마와 연성처럼 값지지 않음이 없네 / 무비한혈련성가
엎드려 원컨대, 상량한 뒤에 황하에서 용마가 나오고, 산에서 신백(신백)과 중산보(중산보)를 내리며, 남산으로 축수를 올리고 북해(북해)처럼 항상 술항아리가 차 있으며, 대대로 계승하여 우씨의 대문 같이 점점 커지고, 성대하게 계속 이어져 서경(서경) 같이 공후가 나서 능히 창성하게 하소서.
의령객사 상량문 경오년(1630, 인조8) 〔의녕객사상량문 경오〕
지방관을 임명하여 백성을 기르게 하니, 군에는 군수가 있고 현에는 현감이 있네. 집을 지어서 비바람을 막으려면, 위에는 마룻대를 올리고 아래에는 서까래를 얹어야 하네. 더구나 명을 받든 관리가 이를 적에 영접할 장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아득히 생각해 보건대, 의령 고을은 영남 우도의 웅장한 울타리이고, 낙동강 서쪽의 명승지이네. 토산물은 모시ㆍ옻ㆍ감ㆍ닥나무이고, 인물은 여씨(여씨)ㆍ옥씨(옥씨)ㆍ심씨(심씨)ㆍ남씨(남씨)이네. 넓은 들판 끝없이 펼쳐져 동쪽으로 파산(파산)의 경계에 접하고, 긴 강은 넓고 아득하여 북쪽으로 낙동강 물가로 흘러 들어가네. 가재(가재)를 기울여 용사들을 모집한 것은, 곽 장군이 왜적을 토벌하는 의리를 중시한 것이네. 재앙의 기미를 보고 가르쳐 이끌기를 원한 것은, 이도구(리도구)가 명철하고 풍모가 높았기 때문이네. 이들 모두 한 고을의 영웅호걸이니, 천추의 훌륭한 명성이 될 만하네. 다만 병화로 인해 한 번 불타버린 뒤, 공관(공관)을 다시 경영할 여가가 없었네. 전패(전패)를 받들고 사신을 엄숙히 맞이하려 하지만 이미 그럴 만한 장소가 없고, 화려한 자리 설치하고 지나는 손님 머물기를 권하고자 하나 또 그럴 만한 집이 없었네. 보는 자들 한탄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고, 듣는 자들 모두 탄식을 하였네.
지금 태수 김공은 영양(영양)의 명망 있는 가문의 사람이고, 영가(영가)의 이름난 공경이네. 효성과 우애가 능히 가정에 극진하니 사람들은 이간질하는 의논이 없었고, 충성과 신의가 능히 향당에서 돈독하니 사람들 그의 뜻을 어김이 없었네. 나이 40세에 처음으로 정사에 참여하여, 궁궐의 은명을 공손히 받들고 천 리의 남쪽 고을에서 부절(부절)을 찼네. 선정을 폈던 옛 수령 중 장창(장창)과 조광한(조광한)을 본받으니, 백성들은 수령이 어찌 늦게 왔는가를 한탄하네. 탁무(탁무)와 노공(노공)의 업적을 능가하려 하니, 아전들은 공이 갑자기 돌아가지 않기를 빌었네.
공무를 돌본 뒤 여가와 한가한 틈이 생길 때, 객사의 옛터를 배회하면서 옛날 초석을 두루 살폈네. 비뚤어진 주춧돌과 무너진 담을 어루만지며 유허가 무성한 풀밭이 된 것을 개탄하였네. 들보를 올리고 기둥 세울 것을 헤아리며, 중건을 도모하여 백성들에게 자문하였네. 다투어 계책을 올리고 즐거이 달려와서, 마음을 열고 기쁘게 일을 하였네. 더는 늦출 수 없었으니,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이미 거북점과 시초점이 이에 화답하고, 또 나무와 돌도 모두 갖추어졌네. 톱질하고 도끼질하여 기획하고 경영하였네. 신보산(신보산)의 측백나무이고 조래산(조래산)의 소나무인데, 큰 것은 들보로 삼고 작은 것은 서까래를 만들었네. 이루(리루) 같은 눈 밝음과 공수(공수) 같은 공교한 솜씨로, 수준기로 평평하게 하고 먹줄로 곧게 하였네.
사치와 검소함은 중도를 얻었고, 너비와 길이는 법칙에 맞았도다.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장엄하고 빛나는구나. 우뚝한 큰 집이 깊고 넓으니, 장함(장함)의 옛집에 부합되도다. 높이 솟은 용마루가 날아갈 듯 웅장하니, 낙성한 새집을 모두들 기뻐하네. 낭무(낭무)는 에워싸고 있고, 대청은 단정하고 탁 트였네. 산의 모습은 채색을 더하였고 물의 모양은 빛을 더했도다. 짧은 노래로 낙성을 따라, 들보를 가지런히 들고자 하네.
아랑위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 아랑위포량동
한 줄기 맑은 강이 바다와 통하네 / 징강일대해문통
천고의 정암은 부딪쳐도 꺾이지 않고 / 천고정암충불절
우뚝히 급류 가운데 장구하게 서있네 / 흘연장립급류중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 포량남
동네는 덕으로 이름하고 재는 남으로 이름하였네 / 동명기덕령명람
또 호음의 십완당이 있는데 / 경유호음당십완
정자의 주인은 없고 안개만 둘러싸고 있네 / 정대무주쇄연람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 포량서
자굴산 뭇 봉우리 검푸름이 가지런하네 / 도굴군만대색제
서왕대에 서왕모가 내려왔다 하니 / 대유서왕왕모강
청학이 사람을 향해 우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 여문청조향인제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 포량북
한양을 우러러봄에 돌아오는 길 곧네 / 첨망장안귀로직
충성은 원대하여 섭선과 더불어 같아서 / 충성원여엽선동
마음은 두 마리 오리 쫓아 궁궐에 조회하네 / 심축쌍부조자극
들보를 위로 던지니 / 포량상
푸른 허공의 구름 쓸어버려 하늘이 깨끗하네 / 벽허운소천용랑
날마다 일월은 아름답게 빛나니 / 일월광화조부조
삼광의 현란함이 태평의 상징이네 / 삼광현란태평상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 포량하
백성들이 뛰고 춤추며 다투어 와서 하례하네 / 제민도무쟁래하
동자와 노인들 공관의 뜰에 가득하여 / 수초대백만공정
기뻐하며 봄바람에 술잔을 모두 올리네 / 흔연공헌춘풍가
엎드려 원컨대, 상량한 뒤에 시절은 평화롭고 한 해 농사는 풍년들며, 물산은 풍부하고 백성들은 편안하게 하소서. 송사 끊어진 매화 핀 뜰에 어찌 촉군(촉군)의 찬송만 있겠는가. 청량한 바람결에 누각에서 거문고 타면, 거의 무성(무성)의 노래를 들으리라.
부사정 상량문 포암〔부사정상량문 포암〕 [이흘(이흘)]
봉악(봉악)의 맑은 기운이 수려한 곳에 모였는데, 이미 명성 있고 현달한 사람을 구하지 않네. 구동(구동)의 늙은 나무는 강을 의지하고 있는데, 오히려 편안히 누워 쉬는 무궁함을 자득하였네. 눈앞에 우뚝 솟은 곳이 곧 마음에서 경륜할 곳임을 누가 알겠는가.
일찍이 정자와 누대를 살펴보았는데, 그 마음에 딱 들어맞는 것이 드물었네. 넓게 트인 곳에 알맞고 깊숙한 곳에 알맞은 것으로는 유자후(류자후)가 용흥사(룡흥사)를 억지로 칭찬하였고, 그 지형에 따라 천연으로 만들어진 것을 온전히 한 것으로는 왕중서(왕중서)가 연희정(연희정)을 과찬하였네. 그러나 이는 모두 객지의 우거하던 곳에 지은 것이니, 어찌 고향에서의 편한 바와 같겠는가. 그 누가 어렸을 때 놀던 언덕에서, 선인이 남긴 터의 가까운 곳을 얻었던가. 송씨(송씨)는 꽃과 대나무에 회포를 부쳐 한 골짜기를 독차지하여 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고, 유공(류공)은 자손들에게 흥성하기를 바라 별장을 지어 아이들이 부(부) 읽는 것을 들었네. 이는 먼 옛날의 일로 겨우 들은 것인데, 이제야 친히 이를 보게 되었네.
부사정 주인은 마음의 웅대함은 만 명의 장부 같고, 신장은 팔 척이네. 붓글씨는 당당하고 질서 정연하여 천 명의 군사를 쓸어버리며 구름이 몰아치듯 하고, 글솜씨는 넓고 끝없이 펼쳐져 삼협(삼협)의 물을 거꾸로 쏟는데 낭화(낭화)를 말아 뿌리는 듯하네. 의리를 행함이 돈독하고 신중함은 관서(관서)의 부자(부자)와 같고, 빼어난 재주가 수려하게 드러남은 낙양(락양)의 소년과 같네. 문학가의 명성을 떨칠 것이라 여겼고, 장차 벼슬하던 세업을 물려받을 것이라 했네. 어찌 한 번 전쟁을 하여 패자(패자)가 될까마는, 열 번 과거길 오르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했네. 봄 물결에 복사꽃이 넘실넘실 할 때 몇 번 과거를 보았으나 낙제하였고, 가을바람 불 때 사마시를 보아 만년에 사방(사방)에 올라 이름을 드날렸네. 맹호연(맹호연)처럼 낡은 집으로 돌아갔고, 문중자(문중자)처럼 분강(분강) 굽이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네.
이 금산(금산)의 큰 마을을 돌아보니, 실로 진양(진양)의 이름난 구역일세. 사기(사기)가 조정에 진동했으니 이 상공(리상공)은 참 군자였고, 지용(지용)은 오랑캐를 물리쳤으니 정 장군(정장군)은 훌륭한 남아였네. 호걸이 태어남은 때가 있는데, 연못과 누대를 세운 곳은 몇 곳이던가. 그러나 이도리(리도리)의 풍토가 빼어난 곳에는, 백낙천(백낙천)의 물가 대숲 속 거처가 있었네.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뱀이 서린 듯 이무기가 달리는 듯하고, 산은 남쪽에서 내려와 북쪽에서 솟았는데 호랑이가 걸터앉은 듯 용이 웅크린 듯하네. 임포(림포)의 고산(고산)인 듯 계진(계진)의 경호(호경)인 듯하네. 부로(부로)들은 남성(남성)의 옛 이름을 전하고, 길가의 사람들은 부사정의 기이한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네. 하물며 다섯 이랑 비탈진 고향의 언덕에, 백 척의 높고 큰 교목이 있음에랴. 자르고 베어서 누가 보내리, 껍질 벗겨 태산의 명당을 떠받칠 수 있겠구나. 넓고 커서 용납되기 어려우니, 박망후(박망후)처럼 부질없이 은하수를 거슬러 올라가도 될 듯하네.
이 몸은 구부정한 듯 비틀거리는 듯하여 봄날 안색은 예쁜 복사꽃과 다투기 부끄럽고, 자세는 비뚤어지고 구부러졌으니 괴로운 마음 어찌 작은 개미집에 용납 되겠는가. 장수(장수)에 지리(지리)를 맞추듯이 그대 집에 큰 집을 짓네. 개오동나무가 무성한 한유(한유)의 집이 아니라면, 바로 녹나무가 서리어 웅거하고 있는 두보(두보)의 집이라네. 평소 정건(정건)의 띳집에 뜻을 두니 거북점과 시초점이 이에 화답하고, 노홍(로홍)의 초당 같은 특색 드러내니 나무와 돌이 모두 갖추어졌네.
톱질하고 도끼질하여, 이를 경영하였네. 신보산(신보산)의 측백나무 같고, 조래산(조래산)의 소나무 같아서 큰 것은 대들보하고 작은 것은 서까래로 하였네. 이루(리루)의 밝은 눈과 공수(공수)의 정교한 솜씨이며, 수준기로 평평하게 하고 먹줄로 곧게 하였네. 너비와 길이는 마음에 딱 맞고, 크게 하고 작게 함은 힘을 헤아렸네. 남쪽 창을 넓게 틔워 햇볕을 들인 것은 이미 큰 추위를 근심해서이고, 북쪽 문을 통하게 하여 찬바람 들어오게 한 것은 또 무더위를 막기 위해서라네.
완전하고 아름다우며, 장엄하고 빛나는구나. 사물이 형상을 빌려서 기이함을 드러내고, 사람은 주위 나무를 고려하여 집을 짓는구나. 늙은 줄기는 홀로 고고(고고)하여 하늘로 솟아 까마득하고, 새로 나온 가지는 왕성하게 퍼져 네 모퉁이를 덮을 만큼 무성하네. 눈서리를 지붕 모서리에서 터니 들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자주 머물고, 피리와 퉁소 소리가 처마 끝에서 흘러나오니 길가는 사람이 지나치지 못하네. 매우 기뻐하여 마치 때를 잘 만난 듯하고, 밝고 환하여 한가히 기거할 만하네. 갠 날에는 일산을 쓰지 않아도 되고 비 오는 날에는 수레를 타지 않아도 되니, 집안사람의 왕래가 매우 편하구나. 산에서는 나물을 캘 수 있고 물가에서는 물고기 낚을 수 있으니, 은자의 소요하며 노닐기가 즐거우리라.
만가(만가)의 마을을 내려다보니 뽕나무와 삼대가 가랑비에 은은히 비치고, 십 리 들판을 바라보니 어부와 나무꾼이 석양에 서로 응답하네. 호사가는 망천(망천)의 전원을 그리고자 하고, 지기(지기)는 눈 내리는 달밤에 섬계(섬계)의 벗을 찾듯 찾아오네. 아득한 사물의 모습은, 이 천기(천기)와 같네. 어풍자(어풍자)가 빙허대(빙허대)에 가까이 있으니, 어찌 아름다움을 함께 하겠는가. 강가에 임해도 신선은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함께 할 만한 이 없네. 양지동(양지동)은 어찌 그 헛된 이름 취했겠는가. 무심정(무심정)은 그 아름다운 명성을 실제로 계승하였네. 이곳에 거처하며, 자고 또 일어나네. 어찌 단지 오래도록 바라보기만 하는 곳이겠는가. 진실로 은거하며 학문하는 곳이라네. 부자(부자)가 여기에 있고 형제가 여기에 있어 집안의 법도로 넉넉히 하며, 거문고와 노래가 여기에 있고 《시경》과 《예기》의 가르침이 여기에 있으니 명예로운 점이 여기에 있네. 문장을 전공하고 경술을 일 삼아 글 읽는 소리 서로 이어지고, 보는 것을 존엄하게 하고 의관을 바르게 하여 방자한 습관이 움트지 않네. 내면에 덕을 갖추고 외면에 절조를 행하는 말을 반복하고, 뿌리를 배양하고 가지를 무성하게 하는 공부에 힘쓰네. 아부함이 결코 없으니 소가(소가)의 세 봉우리와 완연히 같고, 학문을 모두 좋아하니 도연명(도연명)의 다섯 아들처럼 어찌 책망하겠는가. 진실하게 함양함이 있으면, 반드시 발휘하기를 크게 할 것이네. 비에 젖은 뿌리와 가지를 수십 아름의 나무처럼 오히려 공손히 공경히 하고 지선(지선)에 머물며, 구름에 닿을 듯한 천 만 칸의 누각 같은 기개는 모든 것을 포용함이 있는 듯하네. 시비와 영욕은 모두 다 잊었고, 거친 음식 먹고 사는 빈궁한 생활에도 절로 즐거움이 있네. 말로는 부족하여 시를 지어 드러내노라.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 포량동
한 줄기 내달리는 강은 바다와 통하네 / 분강일대해문통
천 길의 정암은 부딪쳐도 깨지지 않고 / 천인정암충불절
우뚝히 만 이랑 물결 속에 장구하게 서 있네 / 흘연장립만파중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 포량남
밝고 아름다운 월아산은 남기에 둘러싸였네 / 월아명미호청람
다시 검호에 거울을 펼치니 / 경유검호개일감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와서 비치네 / 천광운영공래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 포량서
두류산은 창공을 받치고 뭇 봉우리 그 밑에 있네 / 두류탱벽중봉저
옥 같은 용모 당년에 산과 함께 우뚝하여 / 옥색당년산공립
사람들로 하여금 앙모하고 다시 생각하게 하네 / 령인경앙경사제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 포량북
자굴산의 여러 봉우리 높이를 다투네 / 도굴군만쟁줄률
고상한 이 평소 도연명의 창 같은 집에 누웠으니 / 고인유소와도창
복희 황제의 상고 시대에 소요하는 나그네라 / 희황상세소요객
들보를 위로 던지니 / 포량상
아름답게 빛나는 일월은 태평의 상징이네 / 일월광화태평상
푸른 구름과 흰 구름이 절로 많이 일어나니 / 창구백의자다반
고요히 보면 단지 무심한 생각만 일어나네 / 정관지작무심상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 포량하
쌍쌍의 백옥은 연성의 가치로다 / 쌍쌍백벽련성가
충신과 효자는 본래 같은 문에서 나오니 / 충신효자본동문
정히 명성 있는 후손 있어 천하에서 알려하리 / 정유성명만이하
엎드려 원컨대, 상량한 뒤에 파리한 선비는 길이 건강하고 아버지는 근심하지 않으며, 경치는 사계절이 같지 않으나 흥취는 무궁하고, 술잔은 비지 않아 객이 항상 가득하며, 장수하면서 부유하고 부자이면서 장수하여 천세 백세토록 창성하며, 자자손손 억만 년을 잘 계승하게 하소서.
포암이 〈부사정상량문〉을 지어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사포암제송부사정상량문〕
이루(리루)의 밝은 눈과 공수(공수)의 공교한 솜씨, 신보산(신보산)의 측백나무와 조래산(조래산)의 소나무가 매우 많으니, 이미 좋은 재목과 훌륭한 장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유(한유)의 비문과 유종원(유종원)의 기문처럼, 황정견(황정견)의 아름다운 문사와 두보(두보)의 골격 있는 시처럼 글이 잘 조화되니, 기쁘게도 웅장한 문장과 웅장한 문사가 눈에 찬란합니다. 이 글을 읽은 나는 두 번 절하였고, 이 글을 본 사람은 세 번 감탄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부사노옹(부사로옹)은 가죽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이 쓸데없는 재목이고, 노루 새끼 같은 거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찍이 집 안에서 부친의 훈계를 받고서, 《시경》과 《예기》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갔으며, 뒤늦게 숨김이 없는 스승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제사나 지내는 말단적인 예절에 종사하였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공부하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장부의 일을 생각하였고, 해볼 만한 남아의 사업을 해 보리라 꿈꾸었습니다. 10년 동안 자굴산(도굴산)에서 채소를 먹으며 이백(이백)이 광려산(광려산)에서 깊이 궁리한 자취를 따랐고, 3년 동안 두류산(두류산)에서 굶주림을 참으면서 소강절(소강절)이 백원산(백원산)에서 정밀히 연구한 것을 본받았습니다. 다섯 수레의 책을 두루 보지는 못하였으나, 3년 동안 사서(사서)는 오히려 충분히 보았습니다. 성인의 경지를 엿보지도 못하였으나, 과거(과거)의 학업은 오히려 넘보았습니다. 검주(검주) 당나귀의 짧은 재주를 드러내니 졸렬함은 진실로 감추기 어려웠고, 평범한 요동(요동)의 돼지를 바치니 부끄러움을 어찌 끝내 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리석게도 한갓 얻기만을 구하였으니, 심히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럭저럭 세월이나 보내면서 유유히 재주는 못 펴고 나이만 먹었습니다. 마음이 하고자 함을 따를 수 있었지만, 어찌 지향하는 바를 힘쓸 때가 있었겠습니까. 이로부터 청운의 꿈을 끊고 인간사를 길이 사절하였고, 이로부터 몸을 띳집에 숨기고 끝내는 물외(물외)에서 마음껏 노닐었습니다. 귀동(귀동) 남쪽의 우뚝한 언덕을 보고서, 이에 제가 은거할 곳으로 정하였습니다. 선대의 유허가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매화나무와 대나무가 못가에 황폐하게 묻혀 있으며, 긴 구릉이 그 남쪽에 인접해 있는데 소나무와 개오동나무가 선영에 쓸쓸히 서있습니다. 이는 모두 선친께서 남기신 유택으로 소자로 하여금 귀의할 곳을 삼게 하신 것입니다.
한 칸 방이 얼굴을 활짝 펴게 하고, 몇 칸의 집은 무릎을 용납할 만하였습니다. 왼쪽에는 여윈 아내가 있고 오른쪽에는 어린 아들이 있는데, 춥다고 부르짖고 배고프다 울어대는 소리가 어지러웠으며, 앞에는 경사(경사)를 쌓아두고 뒤에는 도서를 두었는데, 들어 앉아 공부하고 휴식을 취할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이랑의 비탈진 언덕을 닦아서 세 칸의 정사를 짓고자 하였습니다. 문 앞에는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곱고 아리땁지만, 도연명의 다섯 그루 버드나무는 없습니다. 호숫가에는 우뚝한 일산처럼 나무가 무성하여, 두릉(두릉)의 녹나무 한 그루엔 짝할 만하였습니다. 이 정자를 이름하여 ‘부사정(부사정)’이라 하니, 당호가 신선이 사는 선경에 알맞았습니다. 울퉁불퉁하여 규구(규구)에 맞지 않는 것은 반구옹(반구옹)이 우활하고 엉성하기 때문이며, 너저분하여 가지런히 다듬지 않은 것은 시골 노인이 그냥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천 그루 나무의 가지는 왕성히 자라 울창하고, 만 가지 잎은 넓게 퍼져 흔들립니다. 띠풀을 베어 내고 거처할 곳으로 정한 것은 다른 뜻이 아니고, 거북점을 쳐서 터를 고른 것이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용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 듯한 두류산이 동쪽으로 뻗어내려 월아산(월아산)의 푸른 병풍이 되었고, 규룡이 내달리고 뱀이 서린 듯한 청천(청천)의 물은 북쪽으로 흘러들어 연우계(연우계)의 명경지수가 되었습니다. 서쪽에는 높은 어풍정(어풍정)이 있고, 남쪽에는 화려한 읍벽당(읍벽당)이 있습니다. 형림정(형림정)은 배자장(배자장)이 편액한 것이고, 봉학대(봉학대)는 김이정(금이정)이 이름 붙인 것입니다. 저 네 곳에는 각각 네 가지 명승이 있어 본래 이름난 지역으로 일컬어졌지만, 이 한 곳은 한 칸의 정자도 없어 집을 짓고자 한 것입니다. 나무와 돌이 겨우 갖추어지니 긴 것과 짧은 것이 알맞고, 공인과 장인도 또한 구비되니 톱질하고 도끼질이 법도에 맞았습니다. 오직 상량문을 짓는 일에 있어서는, 대가의 솜씨로 재단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포암(포암) 주인은 만 권의 책을 가슴속에 품고, 붓 끝으로 삼장(삼장)을 드러내는 분입니다. 넓고 끝없는 것이 긴 강과 큰 바다 같아 감히 그 끝을 볼 수 없고, 맑게 울리는 소리가 패옥과 금장(금장) 같으니 누가 그 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사돈의 정이 두터운 것은 숙도(숙도)가 고정(고정)에게 있어서와 같고, 빈곤한 사귐에 의리가 깊은 것은 창려(창려)가 동야(동야)에게 있어서와 같습니다. 근래에 우리 집 아이를 보내어 간절함을 진달하고, 이제 새집이 완성되어 광채가 나기를 청하였습니다. 패철을 가지고 방위를 정하여 손자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구상하였고, 명귀(명구)를 하여 아들이 붓을 잡고서 글씨를 썼습니다. 잠깐 사이에 푸른 무지개가 신기루처럼 뜨는 듯하였고, 오래지 않아 맑은 물에 부용이 솟아나는 듯하였습니다. 구법(구법)이 웅장하고 기묘한 것은 문문산(문문산)이 새로 살 집을 칭송한 것도 이보다 낫지 않을 것이고, 말의 뜻이 노련하고 힘찬 것은 유 유주(류류주)가 용흥사(룡흥사)를 기록한 것도 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백옥과 명주(명주)로도 보답할 수 없고, 황금과 화려한 비단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방자하게 거칠고 졸렬함을 잊고서, 억지로 계사를 올립니다. 장님이 일관봉(일관봉)에서 그 형체를 보려는 것과 같으니 구리 동이를 두드린들 무슨 유익함이 있을 것이며, 귀머거리가 뇌문(뇌문)에서 그 소리를 흉내 내려는 것에 비유되니 베로 만든 북을 두드리더라도 기롱을 받을 것입니다. 청컨대 심정을 너그럽게 하시어, 저의 충심(충심)을 살펴주십시오.
잠(잠)
학일잠 병술년(1586, 선조19) 〔학일잠 병술〕
성현의 가르침이 / 성현지훈
책 속에 펼쳐져 있으니 / 포재방책
안연의 사물과 증자의 삼성 / 안물증성
맹자의 양과 자사의 정일이다 / 맹양사일
밝고도 분명하여 / 소연적연
나의 마음과 눈을 비춘다 / 조아심목
생각을 집중하고 가지런히 하여 / 응사제려
아침에 배우고 저녁에 복습하라 / 조익모습
밝은 창가에서 낮에는 고요히 하고 / 명창주정
정결한 책상에서 밤에는 한적하게 하라 / 정궤야적
나의 천군을 섬겨서 / 사아천군
주일무적하라 / 주일무적
만오잠 정미년(1607, 선조40) 〔만오잠 정미〕
너의 나이 비록 많으나 / 이년수고
네 덕은 아름답지 않고 / 이덕불소
너의 형체 갖추어졌으나 / 이형수구
네 모습은 불초하다 / 이모불초
조용히 그 이유를 생각하면 / 정사궐유
마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 유심미조
마음잡기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 조지하이
성인의 지극한 가르침이 있구나 / 성유지교
박약 이 한 말씀은 / 박약일어
의미가 있고 또 긴요하네 / 지이차요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공부하고 / 척계자자
시간을 아껴 독실하게 하라 / 석음조조
게을리 하거나 거칠게 하지 말고 / 무태무황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 / 비례물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되니 / 조문석사
그러면 나의 일이 끝나리라 / 오사이료
성성재잠 병서○갑인년(1614, 광해군6) 〔성성재잠 병서○갑인〕
나의 다섯째 아들이 황(황)인데, 기상도 있고 국량도 있어 원대한 그릇이 될 듯하지만, 지기(지기)가 어둡고 게을러서 안이하고 나태하다. 썩은 나무는 조각할 수 없다는 것은 재여(재여)에게 배울 수 있고, 게으르기 천고에 비할 데 없는 것은 도연명(도연명)의 자식을 본받을 수 있으니, 내가 일찍이 이를 걱정하였다.
아들이 하루는 나에게 고하기를 “종이를 얻어 한 권으로 묶어서 아이들이 지은 시를 써서 그 성취하고 전환하는 계기를 살피고자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라고 하여, 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좋구나, 네가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여! 네가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이여! 날마다 그 공부한 바를 점검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진실로 능히 학문의 진취와 퇴보 및 미숙과 성숙의 절차를 고찰하여 결점은 고쳐주고 미치지 못한 것은 나아가게 한다면, 뒷날 성취할 바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종이 한 묶음을 내어 손수 한 권의 책으로 묶고서, 그 제목을 “성성재사고(성성재사호)”라고 썼다. 성성(성성)이란 글자는 참으로 게으른 자의 약이 된다. 인하여 잠(잠)을 지어 스스로 성찰하게 하였다. 그 잠은 다음과 같다.
한 몸의 주인은 / 일신지주
오직 마음이요 / 왈유심의
한 마음의 주인은 / 일심지주
오직 경뿐이다 / 왈유경이
마음은 몸의 주인이 되고 / 심위신주
경은 마음의 주인이 된다 / 경위심주
주인으로서 주인 노릇을 하면 / 주이위주
빛이 문호에서 나고 / 광생문호
주인으로서 주인 노릇을 못하면 / 주이실주
풀이 집에 가득하리 / 모새당우
그 마음을 지키는 법은 / 수지지법
오직 성성일 뿐이다 / 성성시이
큰 손님을 대하듯 큰 제사를 받들듯 / 빈언제언
의관을 바로하고 보기를 존엄하게 하라 / 정관존시
닭과 개를 잃었을지라도 / 방여계견
구하면 반드시 내게 존재하리라 / 구이필재
몹시 취한 것처럼 혼미하여도 / 혼약침취
불러 깨워서 잠들지 말게 하라 / 환이물매
고요할 때는 모름지기 존심양성하고 / 정수존양
움직일 때는 반드시 성찰하라 / 동필성찰
닭이 알을 품고 있듯이 / 여계복란
고양이가 쥐구멍을 지키듯이 / 여묘수혈
반드시 삼가고 반드시 경계하여 / 필근필계
잠시라도 그침이 없게 하라 / 무간식식
이를 돌아보고 부지런히 힘써 / 고시자자
짐승처럼 되지 않기를 기약하라 / 기면주육
아비가 잠언을 지어서 말하니 / 부작잠고
네가 선하게 되기를 힘쓰라 / 면이식곡
찬(찬)
동방제현찬 임신년(1632, 인조10)○20수 〔동방제현찬 임신○이십수〕
최문창찬(최문창찬)
풍모와 위의가 수려하며 / 풍의수려
정밀하고 민첩하여 학문을 좋아하였네 / 정민호학
신선의 풍치는 풍진을 초탈하고 / 선풍초진
도인의 풍골은 세속을 벗어났네 / 도골탈속
열두 살에 당나라에 들어가 / 십이입당
스승을 찾아 학업을 물었고 / 심사문업
열여덟 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 십팔등제
화려한 관직에 두루 제수되었네 / 력수화직
고변의 군막에서 격문을 지으니 / 초격고막
늙은 도적은 넋이 달아났다네 / 로적치백
문장은 세상에 빛나고 / 문장요세
이름은 중원에 떨쳤네 / 명진중국
조서 받들고 신라로 돌아오니 / 봉조동환
당시 나이 이십 팔세였네 / 년이십팔
시대를 만난 것이 혼탁하여서 / 조시혼탁
자취를 맡길 거처가 없었네 / 무처기적
천 길 높은 가야산에 들어가고 / 야산천장
만 겹 깊숙한 두류산에 의탁했네 / 두류만첩
어지러운 속세에서 허물을 벗고 / 선태진분
구름 낀 골짜기에서 시를 읊었네 / 소영운학
시를 새긴 바위는 오래되었고 / 제시석고
넉 자 새긴 석문은 우뚝하구나 / 사자문촉
남긴 풍도와 신선의 자취 / 유풍선적
천 년이 지나도 어제 일 같구나 / 천재여작
정포은찬(정포은찬)
타고난 자질이 지극히 높아서 / 천분지고
호탕하고 고매하여 무리에서 뛰어났네 / 호매절륜
충효의 큰 절개는 / 충효대절
천성에서 나왔네 / 출자천진
배우길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은 / 호학불권
그 옛날 성인을 본받았네 / 전성시식
성리학을 정밀히 연구하여 / 정연성리
깊이 터득한 바 있었네 / 심유소득
불교를 통렬히 배척하고서 / 통척이교
예법으로 풍속을 교화했네 / 화속례법
재주는 왕을 보좌하기에 알맞아 / 재칭왕좌
베풀어 설치한 일이 많았다네 / 다소장설
불행하게 운이 다하여 / 불행운거
나라가 마침내 망하였다네 / 방국운망
인을 이루고 의를 취하여 / 성인취의
삼강오륜을 일으켜 세웠네 / 부식강상
모진 바람 속의 굳센 풀과 같았고 / 질풍경초
눈 속의 소나무와 대나무 같았네 / 설리송황
송나라의 충신 문천상과 / 송실천상
길이 함께 전해지리 / 동여류방
길야은찬(길야은찬)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것은 / 불사이군
의리가 열렬했기 때문이고 / 의지렬야
세상을 피해도 근심이 없었던 것은 / 둔세무민
뜻이 고결했기 때문일세 / 지지결야
밥 짓는 여종도 시를 익혀서 / 찬비습시
서로 방아질하며 주고받았네 / 상저상칭
이웃집 부녀들도 그 덕에 교화되어 / 린부화덕
십 년 동안이나 수절하였네 / 십년수등
금오산이 우뚝하게 서있는데 / 오산흘립
만 길 높이 푸르고 푸르구나 / 만장창창
봉계의 시내는 동으로 흘러 / 봉수동류
천 리를 끝없이 흘러가누나 / 천리양양
선생이 남긴 풍도는 / 선생지풍
산처럼 높고 물처럼 장구하리 / 산고수장
서 장령찬(서장령찬)
숭산에는 상서로운 구름 다하고 / 숭산운진
한강에는 물결이 높았네 / 한수파장
옛 도읍을 보고 상심하니 / 상심구도
기장만 무성하여 황량하였네 / 서리황량
시골에 묻혀 은둔하였는데 / 둔거향곡
충성심이 시에 드러났네 / 충견시장
고사리 캐는 그 노래 소리 / 채미가성
수양산 백이숙제보다 애절하였네 / 처단수양
이 참의찬(리참의찬)
은나라 옛 터엔 보리만 패었고 / 은허맥수
주나라에 천명이 새롭게 내렸네 / 주명유신
이때 육룡을 타고 오른 이 / 시승륙룡
용릉의 고인이었다네 / 용릉고인
시골 언덕에 은둔해 살면서 / 둔거촌오
여러 번 징소해도 나아가지 않았네 / 루징불기
간의대부 직책이 더해졌지만 / 간의수가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굳게 했네 / 견불사지
임금이 직접 찾아와서 / 룡어친림
초야의 복장으로 절을 했네 / 배이야복
거문고와 술로 매우 환대하니 / 금주환심
평소의 마음을 빼앗기 어려웠네 / 소심난탈
부춘 엄광의 천추의 절개 / 부춘천추
그 절개보다 더 우뚝하구나 / 탁호기절
김농암찬(금롱엄찬)
여러 대 벼슬에 종사하였고 / 루세종사
지위는 이품에 올랐네 / 위지이품
나를 영화롭게 하며 나에게 벼슬을 내리고 / 영아관아
나의 봉록도 넉넉하게 주었네 / 우아록름
교서를 받들고 황도에 가서 / 봉서황주
하절사로 천자를 조회하였네 / 조천하절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 / 언선언귀
행차가 압록강에 이르니 / 행지압록
고국에는 임금이 없고 / 고국무군
산하는 예전과 달랐네 / 산하이석
이 강을 건너면 어디로 가나 / 도차하왕
강가에 나아가 통곡하였네 / 림강통곡
조정 신하의 복장과 신발을 / 조복조화
본가의 부인에게 부쳐 보냈네 / 송기부인
부인이 살아 있을 적에는 / 부인재세
자신의 몸을 보듯이 하고 / 여견오신
부인이 세상을 떠났거든 / 부인하세
합장하여 무덤을 만들게 했네 / 합장위분
부인이 임신을 하였으니 / 부인유신
아이 태어남을 보아야 마땅했지만 / 응견탄생
아들을 낳을 경우 딸을 낳을 경우 / 생남생녀
각각 이름을 지어서 보냈네 / 각명이명
강가에서 편지를 보내는 날을 / 강상발서
바로 자기의 제삿날로 하라 했네 / 시아휘일
묘지문을 쓰지도 말고 / 물용지문
묘갈을 세우지도 말라 했네 / 이수묘갈
표연히 수레를 돌리니 / 표연반철
형주 남쪽 초나라 북쪽이었네 / 형남초북
아! 선생이시여 / 희희선생
큰 절개는 뺏기 어려웠네 / 대절난탈
청풍이 서늘하게 불어 / 청풍삽상
나의 머리카락 흩날리네 / 취아모발
천 년 뒤에 아득히 생각을 하며 / 천재하상
백 번 절을 하고 탄식을 하네 / 백배차돌
원 진사찬(원진사찬)
몸이 쇠미한 말세를 만나서 / 신제쇠계
기미를 보고 자취를 감췄네 / 견기회적
몸소 농사지어 어버이 봉양하며 / 궁경양친
오로지 숨는 데에 뜻을 두었네 / 일의도닉
자기 이름이 군적에 오르자 / 명록군부
시를 지어 자신을 위로했네 / 시이자관
한 번 진사가 된 뒤에는 / 일거진사
초야에 물러나 한가히 지냈네 / 렴퇴거한
사물에 의탁해 회포를 일으키고 / 우물흥회
시대를 상심하며 개탄하였네 / 상시개탄
〈영국〉 한 수를 읊어 / 영국일절
자신을 도연명에게 견주었네 / 절비연명
탕왕이 이윤을 초빙하듯 빈번했으나 / 탕빙수근
굳센 의지 영화를 좇지 않았네 / 지불추영
임금의 행차 친히 이르자 / 성가친림
담장을 넘어서 피하였네 / 유원이피
세속을 떠나 초연히 은거하여 / 고도초연
한 점의 누도 없이 끊어버렸네 / 절일점루
청풍이 천년토록 전해져 / 청풍천재
그 의리를 빛나게 하네 / 렬렬기의
살펴보건대, 문창후(문창후)는 우리나라 문장의 시조로서 그 명철하고 고상한 풍취는 세속을 초탈하여 속세의 사람이 아니었다. 포은(포은)ㆍ야은(야은) 두 선생은 도학(도학)을 계승하고 열어 삼강오상을 일으켜 세워서 성대하게 우리 동방 이학(이학)의 종장이 되고 충절의 근본이 되었다. 서 장령(서장령)과 이 참의(리참의)가 시를 지어 충성을 보이며 초야의 복장으로 뜻을 굽히지 않은 것, 농암(롱암)이 압록강 강가에 이르러 강을 건너지 않고 편지를 부쳐 안사람과 이별한 것, 운곡(운곡)이 담을 넘어 피해 숨고서 세속의 더러움을 받지 않는 것들은 별도로 열전(열전)을 세워 역사에 빛나게 할 만한데도 아직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깊이 개탄하고 삼가 《동사찬요(동사찬요)》를 상고하여 병기하면서 그 분들의 덕을 찬송한다.
점필재 김 선생찬(점필재금선생찬)
바르고 곧은 것은 그의 본성이었고 / 정직기성
단정하고 정성스러움은 그의 행실이었네 / 단각기행
학문은 정밀하고 깊어서 / 학문정심
성현을 본받아 따랐다네 / 식준현성
문장은 고상하고 고풍스러워 / 문장고고
한유와 맹교를 좇았다네 / 추종한맹
남 가르치기를 게을리 않으니 / 회인불권
제자들이 매우 성대했다네 / 문사취성
높은 산처럼 우러르니 / 고산앙지
큰 행실을 공경하네 / 경행시경
한훤당 김 선생찬(한훤당금선생찬)
효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 사친이효
경으로써 몸을 단속하였네 / 지기이경
학문은 깊고도 두터웠으며 / 학문연독
현인을 벗하고 성인을 스승삼았네 / 우현사성
후진들을 인도하고 보살피니 / 유액후진
성취한 자들이 많았네 / 성취자다
좋지 못한 시대를 만나서 / 조시불숙
유배되어 〈복조부〉를 읊었네 / 부복장사
화가 귀양지에 미치니 / 화급적소
아! 저 무심한 하늘이여 / 오호피창
차분히 죽음을 맞이했으니 / 종용취진
천년토록 아름다운 명예 전해지리 / 천재류방
일두 정 선생찬(일두정선생찬)
학문은 독실한 데 힘쓰고 / 학무독실
행실은 강퍅함이 없었네 / 행무참절
점필재 문하에서 수업하여 / 유점필문
도의를 강론하고 말하였네 / 도의강설
발분하여 산속에 들어가 / 발분입산
성리학을 탐구하였네 / 탐성리학
어머니가 병들자 대변을 맛보았고 / 모병상리
어머니 돌아가신 뒤 죽만 먹었네 / 모몰철죽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 행원기경
그윽한 곳을 찾아 집을 지었네 / 심유축실
그러나 마침내 참소를 당해 / 필경조참
유배가서 관북에서 돌아가셨네 / 척사관북
한 구역 도탄의 유적 / 일구도탄
사람들을 탄식하게 하네 / 사인차석
정암 조 선생찬(정암조선생찬)
아! 선생께서는 / 의여선생
타고난 자질이 매우 특출했네 / 천분절특
윤택한 옥과 정련한 금과 같아 / 옥윤금정
난새가 머물고 고니가 서 있는 듯하였네 / 란정곡립
풍운을 만날 것에 감격하여 / 감우풍운
뜻은 오로지 개혁에 있었네 / 지전잔혁
《소학》으로 사람들을 단속하고 / 률인소학
향약으로 풍속을 교화시켰네 / 화속향약
사방의 사람들이 바람에 휩쓸리듯 교화되어 / 사방풍동
더러운 풍속을 혁신할 만하였네 / 가신오속
그런데 소인이 군자를 모함하여 / 청승지극
흉계로 임금의 총명을 가렸네 / 부운폐일
밀서를 누가 만들었나 / 밀서수위
신무문이 밤에 열렸네 / 신무야벽
오호 통재라 / 오호통재
말을 하자니 답답하구나 / 언지어읍
모재 김 선생찬(모재금선생찬)
타고난 자질은 준수하였고 / 천품준수
총명함은 출중하였네 / 영오출류
경서와 역사서에 널리 통하였고 / 박통경사
성품은 효성과 우애에 독실하였네 / 성독효우
밝은 시대를 만나서 / 조우명시
청요직을 두루 거쳤네 / 력양청요
지초가 불타고 혜초가 꺾이니 / 지분혜최
시골 언덕에 물러가 은거하였네 / 퇴처촌오
학문이 옛 사람에 비견되었으니 / 학방고인
여공저와 채원정이 그의 무리였네 / 려채기오
사랑하며 길러 주신 은혜 추모하여 / 추념국육
종신토록 슬퍼하고 사모하였네 / 종천애모
평생토록 잊지 못하여 / 불망평생
그 뜻을 집 이름에 부쳤네 / 우지재호
탁월한 행실 우뚝하여 / 탁행외연
천고에 크게 추앙하네 / 경앙천고
회재 이 선생찬(회재리선생찬)
대인의 큰 뜻을 / 대인지지
어릴 때부터 갖추었네 / 초츤이성
평생 고아 됨을 애통해 하여 / 종천고통
문을 닫고 부르짖으며 울었네 / 폐호호황
좋지 않은 옷을 어찌 부끄러워하리 / 악의하치
도학에 진심을 다해 힘썼네 / 도학시조
주렴계의 성과 정이천의 경으로 / 주성정경
대체를 기르며 몸소 행했네 / 체양궁도
밝은 시대를 만나서 / 조우명시
붉은 충정을 다하였네 / 경갈단곤
〈일강십목소〉를 올리니 / 일강십목
《서경》의 〈열명〉과 〈이훈〉이었네 / 설명이훈
두 대비전에서 수렴청정을 하니 / 량전청렴
백관들이 누구에게 들을 지 미혹되었네 / 백료미시
옛날 제도로 증명하여 정하니 / 증정고제
위태하고 의심스러운 때의 지주였네 / 지주위의
백성들의 선각자였고 / 천민선각
성스런 조정의 충신이었네 / 성조신신
임금의 총애 이미 융숭하여 / 예권기륭
지극한 정치를 이룩할 수 있었네 / 지치가진
그런데 물여우가 먼저 공격하자 / 역사선사
용은 예전의 못으로 돌아갔네 / 룡귀고연
벽서는 누가 전하였나 / 벽서수전
먼 변방으로 유배를 갔네 / 황예원천
저 푸른 하늘을 어찌 믿을 것인가 / 피창하시
어머니 돌아가시자 풍수지탄하였네 / 훤위풍비
한 번 인간 세상과 영결을 하니 / 일결인간
만 리 먼 곳에서 제문을 지어 보냈네 / 만리애사
곤경에 처하고 환란 속에 살면서도 / 처곤행환
자신의 정도로 순응하여 받아들였네 / 순수기정
자신을 성찰하여 온종일 두려워하고 / 성신석척
책상 위엔 늘 경계하는 잠명이 있었네 / 궤상유경
금계의 소식 몹시 더디고 / 금계고지
들판에는 올빼미만 날뛰었네 / 야복선최
멀리 서쪽으로 유배되니 / 적의서요
태산이 무너지는 듯 하였네 / 태악기퇴
세 조정의 두터운 은혜는 / 삼조후은
〈진수팔규〉에 남아 있네 / 팔규유편
보유와 연의를 지으니 / 보유연의
증자와 자사에서 연원한 것 / 증사연원
도가 해와 별처럼 찬란하여 / 도병일성
우리 동방을 빛나게 했네 / 욱아동방
자옥산은 높이 솟았고 / 옥강외외
자계는 잔잔히 흐르네 / 자계양양
천년토록 본보기가 되어서 / 표준천재
산처럼 높고 물처럼 장구하리 / 산고수장
퇴계 이 선생찬(퇴계리선생찬)
총명한 자질은 무리에서 빼어나서 / 영오절륜
침착하고 조용하고 단정하고 성실했네 / 침정단각
나이 겨우 칠팔 세 때에 / 년재초츤
이미 학문을 돈독히 하는 데 뜻을 두었네 / 지이독학
일찍이 청현직에 올랐고 / 조양청현
지위는 숭정대부에 이르렀네 / 위지숭반
임금의 총애 높고 중하여 / 상권륭중
은혜가 산처럼 높았네 / 은약구산
매번 경연에서 모실 적에는 / 매시경유
의리를 진언하며 베풀었네 / 진설의리
관심을 기울여 듣고 받아들이니 / 경의청납
수어지교처럼 기쁨이 깊었네 / 환심어수
임금이 이름을 부르지 않고 / 불호이명
늘 판부사라고 부르셨네 / 칭판부사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는 / 륙조십도
인도하고 보좌함이 지극한 것이네 / 계옥역지
여러 신하에게 인쇄하여 반포하니 / 인반군신
지극한 다스림을 이룰 듯하였네 / 의진지치
본래의 지향 정해진 것이 있었으니 / 소리유정
벼슬살이는 자신의 뜻이 아니었네 / 환비오의
병으로 사직하며 물러갈 것을 청했지만 / 사병구퇴
여섯 번이나 그만두지를 못하였네 / 륙도불이
동호에 나아가 묵으니 / 출숙동호
그 뜻을 호연하게 한 것이네 / 호연기지
고향으로 돌아오니 / 귀래고원
소나무와 국화는 황폐해졌네 / 송국장무
퇴계의 물가였고 / 퇴계지상
도산의 모퉁이였네 / 도산지우
도서가 벽에 가득하였으니 / 도서만벽
성현들의 아름다운 가르침이었네 / 현성㦤모
독서를 하며 우러러 생각한 것은 / 부독앙사
성리설의 온축된 깊은 이치였네 / 성리온오
후진들이 문하에 가득하니 / 후진영문
친절하게 가르치며 일러 주었네 / 제이조고
나이가 들고 덕이 높아지자 / 년고덕소
조예가 더욱 돈독해졌네 / 소예미돈
그 여파가 끊어지지 않았으니 / 여파불절
이락의 학문에서 연원한 것 / 이락연원
천추토록 우러러 사모하니 / 경앙천추
그 성대한 덕을 잊기가 어렵구나 / 성덕난훤
탁영 김 선생찬(탁영금선생찬)
강호에서 갓끈을 씻고 / 탁영강호
난초와 방초 엮어 찼네 / 철패란방
희풍 연간의 인물이요 / 희풍인물
서한 시대의 문장이었네 / 서한문장
세도를 바로잡고 회복하여 / 만회세도
요순시대 만들기를 바랐네 / 서주우당
어찌 알았으리 참소하는 말이 / 나지패금
임금의 마음과 뜻을 얻을 줄을 / 입자좌복
무오년에 / 성주황마
사화가 크게 일어났네 / 사화대작
공은 한훤당 일두와 함께 / 공여훤두
점필재를 스승으로 모셨네 / 동사점필
곤륜산에 불꽃이 일어 / 화염곤강
옥과 돌이 모두 타버렸네 / 옥석구분
멀고 아득한 저 우주에서 / 유유우주
깊은 원통함에 귀신이 곡하네 / 귀곡유원
구천에서 다시 살아오기 어렵지만 / 구원난작
만고의 공론을 부지하였네 / 만고공론
화담 서 선생찬(화담서선생찬)
송도에 살던 처사 / 송도처사
화담은 그의 호이네 / 화담기호
총명함이 남보다 빼어났고 / 총명절인
자품은 옛 사람을 초월했네 / 자품초고
문을 닫고 꿇어 앉아서 / 폐호위좌
성리를 배우고 연구했네 / 학구성리
후학들이 스승으로 삼아 / 후학구의
문에 가득 강의를 들었네 / 전문강의
말단관직이 내리자마자 / 일명재급
문을 굳게 닫고 나아가지 않았네 / 뢰개불기
포의로서 일생을 마치니 / 이포의종
사람들 모두 탄식을 했네 / 인개차석
몇 편의 지극한 논설은 / 수편지론
후학들을 계발해 주었네 / 계발후학
허암 정 선생찬(허암정선생찬)
《시경》에선 현명하고 사려가 깊음을 칭송했고 / 시칭명철
《주역》에선 기미를 아는 것이 귀하다고 여겼네 / 역귀지기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고서 / 불사종일
기색을 보고 날아가듯 도망쳤네 / 색거여비
세상 밖에서 한가로이 맘껏 노닐며 / 우유물표
역수를 연구한 것 정미하였네 / 수철정미
도인의 풍모와 천진한 모습은 / 도모천용
학처럼 여위고 소나무처럼 꼿꼿하였네 / 학수송경
신선처럼 자취가 묘연하였으니 / 선종막연
나로 하여금 공경심을 일으키게 하네 / 령아기경
충암 김 선생찬(충암금선생찬)
평생 배운 바는 / 평생소학
충효 두 글자였네 / 충효이자
빛나고 빛나는 붉은 충정 / 경경단충
공도와 나라를 위할 뿐이었네 / 공이국이
우뚝하게 꼿꼿이 서 있으니 / 정정직립
소나무인가 잣나무인가 / 송야백야
먼 곳 유배지에서 죽으니 / 척사하황
만 리 떨어진 제주도였네 / 만리탐라
어머니 곁을 멀리 떠났으니 / 격리자위
더욱 처량하고 측은하였네 / 우증처측
남긴 글 공경히 읽어보니 / 경독유사
굳센 그 넋을 보는 듯하네 / 여견의백
아! 슬프구나 / 오호애재
눈과 서리 같은 풍도로세 / 설상표격
청송 성 선생찬(청송성선생찬)
그 자질은 순수하였고 / 수호기질
그 자태는 우뚝하였네 / 탁호기자
정암의 문하에 유학하여 / 유정암문
일찍이 좋은 스승 얻었네 / 조자득사
죽을 마시며 여막에 거처할 땐 / 철죽거려
제사 음식을 손수 장만했네 / 제찬궁집
슬퍼하는 것이 예에 지나쳤고 / 애훼유례
효행은 미치는 이가 드물었네 / 효행선급
청송으로 당호를 명명한 곳은 / 청송명당
백악산 기슭이었으며 / 백악산록
죽우로 편액한 곳은 / 죽우편명
파산의 아늑하고 빼어난 곳이었네 / 파산유절
한 평생을 초야에서 소요하며 / 소요일세
명예와 현달을 구하지 않았네 / 불구문달
두 번 유일로 천거되었으나 / 재거유일
단단한 돌보다 의지가 확고했네 / 확호개석
천년 뒤에 그 풍도를 듣는 사람들 / 문풍천재
완악한 자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는 뜻을 세우리 / 완렴나립
규암 송 선생찬(규암송선생찬)
성품은 자애로워 상서롭고 화락하였으며 / 자상개제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네 / 호학불권
선을 즐기기를 목마른 듯이 하여 / 기선여갈
아름다운 덕이 드러나고 드러났네 / 령덕현현
사림들이 풍문을 듣고 달려오니 / 사림추풍
뭇 선비들의 영수가 되었네 / 령수군언
청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 력양청요
많은 사람의 중망이 모였네 / 여망시집
그런데 소인들이 더럽혀서 / 청승점오
백옥에 흠이 생겼네 / 백벽생극
무함하여 죄를 꾸며서 / 라직성죄
원통한 옥사로 생을 마쳤네 / 유사원옥
임종 때 자식에게 경계하여 / 림종계자
호학으로써 면려하였네 / 면이호학
천추토록 우러러 사모하니 / 경앙천추
사람들로 하여금 기막히게 하네 / 령인기새
삼가 살피건대, 점필재(점필재) 김 선생(금선생)은 가정에서 수업을 받았는데, 가학은 고려 때 주서(주서)를 지낸 야은(야은) 길 선생(길선생)에게서 나온 것이니, 우리 조선에 도학이 전해진 것이 유래가 있다. 한훤당(한훤당)과 일두(일두)가 점필재에게 도학을 얻어 들었고, 정암(정암)ㆍ모재(모재)ㆍ회재(회재)ㆍ퇴계(퇴계)로 전해진 실마리는 또 한훤당과 일두에게서 나온 것이니, 주고받은 심법이 실로 우리나라 도학의 연원이 된다. 탁영(탁영) 이하 여러 선생은 도학에 부끄러움이 없고, 곧은 충성이 닳아 없어지지 않았으나, 좋지 못한 시대를 만나 도를 품은 채 간흉의 손에 머리를 나란히 하고 형을 받거나, 기미에 밝아 깊은 산 속으로 자취를 숨겼다. 그리고 허암(허암)에 이르러서는 기미를 안 것에 가까우니, 왕양명(왕양명)이 관과 신발을 벗어 던진 것이 아마 그에 가까울 것인데, 생을 끝마친 바를 알 수 없으니 그 자취가 더욱 기이하다. 다만 앞으로 닥칠 심각한 일에 초연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아! 하늘이 내린 자질 어찌 그리 풍부했는데, 그분들이 베푼 것은 이와 같이 인색한가. 대개 성현이 때를 만나 도를 행하는 것이 예로부터 어려웠다. 공자와 맹자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과 정자와 주자가 궁색해진 것이 또한 이 때문이다. 또한 그 점을 논해 본다면, 우리 조정의 중종과 명종 시대에 많은 현자가 배출된 것은 송나라의 염락관민(렴락관민) 등과 같아 임금이 성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고, 신하가 현명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일종의 흉악하고 간사한 무리가 성총을 좀먹고 미혹시켜서 충신과 선한 이를 모함하고 해친 것이니, 송나라가 사문의 지치를 이루지 못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래서 뜻있는 선비는 희풍(희풍)과 순소(순소) 연간을 개탄하고 통탄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어찌 탄식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위는 낮아도 덕은 높았고 신세는 궁색해도 도는 형통하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수천 리 땅에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운 것에 이른 것은 우리 선생들이 그 기강이 되고 그 경위가 되지 않음이 없었으니, 몸이 곤궁하고 현달함에 따라 도가 막히느냐 형통하느냐가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이에 감히 여러 설을 고찰하고 그 행적을 기록하여 어설픈 글을 붙이는 것은 감히 찬양하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공경하고 사모하는 성의를 부칠 따름이다.
비명(비명)
진주 목사 김공 전성각적비명 기미년(1619, 광해군11) 〔진주목사금공전성각적비명 기미〕
아! 위난을 급하게 여기고 오랑캐를 물리치는 것은 충성에서 격발된 것이고, 죽음으로 지켜 달아나지 않은 것은 의리에서 결단한 것이고, 기묘한 계책을 내어 적을 물리침은 용기에서 분발된 것이다. 이 세 가지에 능하여 드높은 공렬을 세워 지금까지 사람들의 이목에 빛나는 분은 고 목사 김후(김시민)이다.
만력 임진년(1592, 선조25) 여름 4월, 왜놈들이 국력을 기울여 침범하여 삼도(삼도)를 곧바로 공격해 팔도의 길로 가득 몰려와서 임금의 수레는 서리와 눈을 맞고 종묘사직은 풍진에 휩싸였다. 이때 여러 고을은 소문만 듣고 달아나 무너져 머리 내민 쥐처럼 머뭇거리며 후사를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유독 김후만은 진주의 통판(통판)으로서 나라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여 눈물을 뿌리며 민중들에게 맹세하였다. 사천(사천)과 고성(고성)의 적들을 공격하여 쫓아냈으며, 진해(진해)에 웅거하고 있는 왜장을 잡아 행재소로 보냈으며, 병사들을 거느리고 김산(금산)으로 달려가 적진을 쳐부수어 위명을 크게 떨쳐 개령(개녕)과 금산(금산)의 적들로 하여금 소문만 듣고도 물러가게 하였다. 이것이 충성에서 격발된 것이 아니겠는가.
관군이 출전하여 돌아오기 전에 왜적들이 빈틈을 타 곧장 침범한다는 소문을 듣고 두 배로 빨리 달려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전단(전단)이 즉묵성(즉묵성)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싸운 것처럼 분발하고, 장순(장廵)이 수양성(휴양성)을 지킨 의지처럼 군사들을 독려하여 살기를 구차하게 취하지 않고 죽음으로 반드시 인을 이루었다. 이것이 의리에서 결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달무리 지듯 왜적이 성을 포위하여 바야흐로 긴급한데 구원병은 오지 않았다. 밤낮으로 성을 순시하며 쇠고기와 술을 군사들에게 먹이고, 술자리를 화목하게 하여 피리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게 하니, 군사들의 마음이 절로 굳건하여 공을 믿고서 두려움이 없었다. 기회를 엿보아 호응하여 모이고, 민첩하게 신묘하고 기이한 계책을 냈다. 자신이 사졸보다 앞장서서 피눈물을 삼키며 전투를 독려하니, 왜적의 기세가 크게 꺾여 시체가 쌓인 것이 삼대와 같았다. 고립된 성루의 적은 병사가 실로 채 천 명도 되지 않지만, 능히 수십만의 많은 왜적을 물리쳤다. 용기를 분발한 자가 아니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있었겠는가.
공은 충성이 이와 같고, 의리가 이와 같고, 용기가 이와 같았다. 그러므로 천둥이 치고 큰비가 내려 사방이 깜깜해지자, 왜적의 무리들이 놀라고 당혹하여 넋을 잃고 밤에 도망한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다. 성이 6일 밤낮으로 포위되어도 백성들이 배반할 뜻이 없고, 공과 함께 왜적을 원수로 삼은 것은 백성들이 공을 사랑한 것이다. 하늘이 돕고 백성들이 사랑했지만, 괴이하게도 조물주의 장난이 심해 적이 물러가는 날에 마침 공은 유탄에 맞았다. 군영에 별이 떨어지니, 장성(장성)이 갑자기 무너지는 듯하였다. 아, 애통하다! 아, 애통하다!
조정에서는 김후의 공을 아름답게 여겨 이미 목사로 승진시켜 품계를 높이고 이어서 총병(총병)으로 발탁 제수하였으며, 돌아가시자 대사마(대사마)로 증직하였으니, 포숭(포숭)하는 나라의 은전이 또한 지극하였다. 고을 백성들이 추모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서로 눈물을 흘리면서 의논하여 비석을 세워 큰 공을 기록하고자 하였다. 이에 상국 남이흥(남이흥)이 이곳에 부임하여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말하기를 “김 목사(금목사)가 성을 온전하게 한 공은 실로 우리나라에 변란이 있은 이래로 없었던 일입니다. 그 공적을 없애 전해지지 않게 할 수 없으니, 마땅히 금석에 새겨서 영구히 전할 것을 도모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고서, 이에 나에게 글을 짓도록 하였다.
내가 삼가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아! 우리 김후의 충성과 의리와 용기는 비록 옛 사람들에게서 구해도 쉽게 얻지 못할 것입니다. 김후가 만약 살아 계셨다면 반드시 계사년(1593, 선조26)의 왜적이 진양성을 원수처럼 여겨 끝내 세 장수가 원숭이나 학이 되게 하고 많은 군졸이 모래나 벌레가 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운일까요? 운명일까요? 하늘의 뜻은 믿기 어렵습니다. 김후의 휘는 시민(시민), 자는 면오(면오)이며, 본관은 안동입니다. 대대로 한양에 살았고, 대대로 벼슬을 하였습니다. 선조 때에 선무공신(선무공신)에 녹훈되었고 상락군(상락군)에 봉해졌습니다.”라고 하였다. 명은 다음과 같다.
기상은 예리하면서도 강했고 / 기예이강
자질은 굳세면서도 온화했네 / 질의이온
의리로써 줄기를 삼고 / 의이위간
충성으로써 뿌리를 삼았네 / 충이위근
성을 온전히 하고 적을 물리침은 / 전성각적
그 공적과 같고 / 여기공
나라 일에 죽음은 / 사어왕사
그 충성과 같네 / 여기충
진주의 산이 높고 높으며 / 진산아아
진주의 물이 넘실거리니 / 진수양양
비석 하나 천추에 전해져 / 일석천추
산처럼 높고 물처럼 장구하리 / 산고수장
진주영장 강공 군졸 송덕비명〔진주영장강공군졸송덕비명〕 비는 촉석루(촉석루) 아래에 있다.
장수된 자는 사졸의 마음을 얻는 것을 최상으로 삼고, 지혜와 용기는 그 다음이다. 오기(오기)의 병사가 달아나지 않고 죽음으로 대적한 것은 그 종기를 빨아준 데서 나왔고, 악비(악비)의 군대가 산을 흔들기보다 어려운 것은 그들과 동고동락한 데서 말미암았으니, 병사들의 마음을 얻은 자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공이 중군장(중군장)이 되니, 사졸들이 노래하기를 “우리를 낳아주고 우리를 길러주시니, 공은 우리들의 어머니 같은 분. 우리를 어루만져 주고 우리를 돌봐주시니, 공은 우리들의 아버지 같은 분. 공이 있을 때 우리는 즐거웠는데, 공이 돌아가시니 우리는 슬프네.”라고 하였다. 공적을 칭송하고 돌에 새겨 그 공덕을 영원히 전하고자 하여 이에 서로 더불어 돌을 깎아 세웠다. 아! 공이 사졸들의 마음을 얻은 것이 어떠하였던가.
공의 휘는 덕룡(덕룡), 자는 여중(여중)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계미년(1583, 선조16)에 무과에 급제하고, 군공(군공)으로 칭송을 받았다. 공은 일찍이 함창(함창)과 장기(장기) 두 고을의 수령을 지냈는데, 고을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여 지금까지 추모하는 것을 부모와 같이 하니, 공의 재주와 덕망은 편장(편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재주는 크고 지위는 낮았으니, 시운인가? 운명인가? 명은 다음과 같다.
산은 높고 물은 길다 말하지만 / 위산고위수장
산은 높지 않고 물은 길지 않네 / 산불고수불장
공의 덕은 / 공지덕
산보다 높고 물보다 길다네 / 산어고이수어장
묘지(묘지)
장기 현감 강공 묘지〔장기현감강공묘지〕
공의 휘는 덕룡(덕룡), 자는 여중(여중)이며, 성은 강씨(강씨)이고, 관향은 진양이다. 휘 민첨(민첨)이 공에게 시조가 되는데, 은청흥록대부 사자금어대 태복경 상주국(은청흥록대부사자금어대태복경상주국)이며, 시호는 은렬(은렬)이다. 고려 현종(현종) 때 강감찬(강감찬)의 부장(부장)으로 거란을 정벌하고 돌아오니, 임금이 시 한 수를 지어 두 장수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경술 연간에 오랑캐 난리가 있어 / 경술년간유로진
적병이 한강 가에 깊이 들어왔네 / 간과심입한강빈
당시 강공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면 / 당시불용강공책
온 나라가 모두 오랑캐가 될 뻔했네 / 거국개위좌임인
그리고 초상을 그려 고을의 관리에게 제사지내게 하였다.
그 후손들이 서로 이어 창성하게 드러났는데, 휘 보충(보충)에 이르러 병조 판서를 지냈다. 이분이 공의 8대조이다. 7대조 휘 용리(용리)는 순천 부사를 지냈고, 6대조 휘 희려(희려)는 광양 감무(광양감무)를 지냈고, 5세조 휘 취(취)는 영등 만호(영등만호)이고, 4세조 휘 지(지)는 호군이 되었다. 증조 휘 세호(세호)는 처음엔 어천 찰방(어천찰방)을 지냈고, 의주 전사(의주전사)를 거쳐 흥양(흥양)ㆍ상원(상원)ㆍ평산(평산)ㆍ회양(회양) 등 모두 아홉 고을의 판관을 지냈다. 청렴하고 근신하여 자신을 지켜서 항아리에는 한 섬의 쌀도 없었다. 사람들이 청백리로 일컬었다. 조부 휘 오수(오수)는 선무랑(선무랑)이다. 부친 휘 심(심)은 자는 태함(태함)이고, 통정대부 공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기품과 도량이 뛰어나고 크며 재예가 남보다 탁월하여 여러 번 향시에 합격하고 연달아 삼장(삼장)을 통과했으나 끝내 대과에 합격하지 못하자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 하였다. 향리의 신점(신점)ㆍ정몽규(정몽규)와 더불어 온 고을의 부역을 의논하여 정하니, 고을 사람들이 편안히 여겨 ‘진양삼로(진양삼로)’라고 일컬었다.
만년에 시냇가에 초정(초정)을 짓고 절구 한 수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감암산 아래에 있는 설매촌 / 감암산하설매촌
시냇가 띳집은 대나무로 문을 만들었네 / 모옥림계죽작문
병이 많아 근래에는 인적마저 끊기고 / 다병년래인적절
아침 내내 홀로 앉아 있는데 어느덧 황혼이네 / 종조독좌도황혼
재상경차관(재상경차관) 김행(금행)이 그 집을 지나다 보고서 매우 칭송하고 감탄하면서 그 시에 차운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산이 에워싸고 골짜기가 품어 절로 형성된 마을 / 산위곡포자성촌
이곳은 인간세상 화복의 문이 아니로세 / 불시인간화복문
대숲을 마주하여 앉으니 맑은 생각 넉넉하여 / 좌대죽림청의족
한바탕 봄잠에 곤히 취하고 싶네 / 일장춘수임혼혼
모친 단양 우씨(단양우씨)는 숙부인에 추증되었으며, 선무랑 우세걸(우세걸)의 딸이자 고려조 성균 좨주(성균제주) 우탁(우탁)의 후예이다.
공은 가정 경신년(1560, 명종15)에 태어났다. 10세에 비로소 글을 배웠고, 15세에 혼례를 하였으며, 18세에 글공부를 중단하고 무예를 익혔다. 신사년(1581, 선조14) 고성(고성)의 향시에 나아가 높은 점수로 장원을 차지하였고, 계미년(1583, 선조16) 무과에 급제하였다. 당시 정기룡(정기룡)ㆍ주몽룡(주몽룡)과 함께 모두 무예로 명성이 있었는데, 한양 사람들이 일컫기를 “영남의 세 용은 두려워할 만한데, 용맹과 기력은 강덕룡이 두 사람보다 낫다.”라고 하였다. 다음 해 봄에 신방(신방)으로 북관(북관)의 변방을 지키는 자리에 부임했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경상 우수사 박현(박현)의 비장(禆장)이 되었고, 원균(원균)이 박현을 대신함에 그대로 막하에 머물렀다.
임진년 여름에 왜구가 갑자기 들이닥치자 원균이 미처 배를 무장하지 못했고, 수군도 많이 부족하여 계책이 나올 바가 없었다. 공이 계책을 올리고, 밤중에 도보로 사천ㆍ고성ㆍ곤양 등지에 가서 군인을 소집하여 기일에 맞추어 정렬하였다. 노량(로량)을 건널 적에 노량 만호가 그의 첩을 태우고 먼저 건너기에, 공이 마음속으로 비루하다 여겨 그와 함께 배를 타지 않았는데, 바다를 반도 건너지 않아 풍랑에 침몰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이 건너지 않은 것은 하늘이 도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원균과 더불어 한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방어 태세를 갖추고 연거푸 열두 번을 싸워 전투에서 모두 크게 이겼다. 이 때문에 원균이 애지중지하였으며 장계를 올려 공적을 논하였는데, 조정에서 정3품의 품계를 내리니 당시 사람들이 원통하게 여겼다.
왜적이 육지에 내려 온 도내에 더욱 가득하니, 장수와 수령, 군사와 백성들이 풍문만 듣고서도 무너져 흩어졌다. 함창(함창)은 영남의 요충지인데, 왜적이 당교(당교)에 진지를 구축하니, 함창 군수가 산중으로 도망가 숨어 경내가 텅 비게 되었다. 초유사 학봉(학봉) 김성일(김성일)이 공의 명성을 듣고 장계를 올려 공을 함창 군수로 제수하게 하였다. 공이 군민(군민)을 어루만지고 깨우쳐 충의로써 면려하니, 흩어진 자들이 모두 돌아와 모였다.
계사년(1593, 선조26)에 왜적들이 물러나 울산의 연해 등지에 진을 치고, 명나라 장수 10여 명도 대구ㆍ팔거(팔거) 및 상주 등에 진을 쳤다. 방백이 평소 공의 현명함을 듣고 공을 명나라 군대의 방량차사원(방량차사원)으로 삼았다. 공이 충청ㆍ전라ㆍ경상 삼도의 군량을 총괄하여 매우 균등하게 배포하니, 각 도의 사람이 모두 기뻐하였고, 명나라 군사도 공경하고 사랑하였다. 이해에 크게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모두 떼를 지어 도적질을 하여 도로를 통행할 수 없었다. 공이 상주 목사 정기룡 및 문경 현감 변혼(변혼)과 함께 힘을 합하여 토벌하니, 도적들이 무너져 흩어졌다.
고을 백성들을 구휼할 물자가 탕진되어 남은 것이 없게 되자, 본가에 저장해 둔 곡식을 운반하여 계속해서 구휼하였다. 군량을 나누어 줄 적에는 인근의 남녀들이 빗자루와 바가지를 가지고 와 좌우에 줄지어 앉았으며, 뜰에서 받는 곡식은 고르게 나누어 주었다. 또 자기가 먹는 것의 반을 덜어서 그들을 먹였다. 또 길들인 매 두 마리를 얻어 날마다 꿩을 사냥해 명나라 장수의 진지에 넣어주고 곡식과 바꾸는 등 다방면으로 구휼하니, 고을 백성들이 감읍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도적의 무리들도 또한 감복하여 몇 말의 쌀과 몇 덩어리의 고기를 보내며 말하기를 “군수께서 지성으로 백성들을 구휼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에 감히 와서 사례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도적을 잡을 술책을 진술하였는데, 그 계책을 써서 마침내 도적의 우두머리를 잡아 대장에게 보냈다. 대장이 자기의 공적이라 거짓으로 꾸며 상과 품직을 대신 받았다. 길에서 버려진 아이를 만나면 자식 없는 사람을 모집해 어미로 삼아 기르게 하고, 또 부하로 삼아 어루만져 보살피며 살려준 자들이 또한 많았다.
갑오년(1594, 선조27) 7월, 마음이 갑자기 놀라고 동요되어 곧바로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참의공(참의공)이 이질에 걸려 오래도록 낫지 않다가 집에 온 지 5일 만에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이 유검루(유검루)의 효성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상을 마치자 완평부원군(완평부원군) 상국 이원익(이원익)이 체찰사로서 호남에 관부를 개설하고, 격문을 보내 공을 체찰부의 영장(영장)으로 불러 크고 작은 일을 더불어 의논하였다. 얼마 뒤 진주의 영장(영장)으로 옮겨 군졸들을 어루만져 보살피기를 어린 아이 보호하듯 하니, 군중에서 자애로운 어머니라 일컬었다. 병사(병사) 정기룡과 성주의 화원현(화원현)에서 왜적을 만나 싸워 크게 이겼고, 고령 안림역(안림역)에서 왜적을 만나 또 이겼다. 팔계(팔계)와 덕곡(덕곡)의 경계에서 왜적을 만나 전투가 불리해져 퇴각하여 돌아오는데, 한 늙은 장교가 왜적과 대치하여 형세가 매우 급하였다. 공이 말을 돌려 적을 쏘아 죽였다. 그러자 왜적들이 추격하여 자신이 또한 위급하게 되었는데, 마침 석굴이 있어서 말을 탄 채로 그 아래에 엎드려 있다가 나와서 죽음을 면하였다. 집에 돌아오자 모부인이 말을 타고 엎드려 있다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서 말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말아,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자가 어찌 오늘 상봉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하였다. 뒤에 또 별장 우배선(우배선)과 삼가(삼가)에서 왜적을 만나 함께 싸워서 크게 이겼다. 그 나머지 접전한 곳은 몇 곳인지 이루 다 알 수가 없다.
매번 적을 토벌할 때 노모가 살아 계셨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몸을 아끼며 적을 죽일 뿐, 목을 베지는 않았다. 전공(전공)을 논할 때에는 겸손하게 물러나 자랑하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대수장군(대수장군)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진주의 서쪽 고산촌(고산촌)에서 적정을 살필 때, 고을 사람 정계원(정계원)의 아내가 왜적에게 사로잡히자, 공이 그 왜적을 끝까지 쫓아가 군인 강두명(강두명)의 말에 태워 돌아왔다. 또 진주의 동쪽 진성리(진성리)에서 적을 정탐할 때는 마을 뒤에 깊고 넓은 석굴이 있어 인근의 30여 명이 아내와 자식을 거느리고 그 안에 숨어 있었다. 왜적이 이를 알고 굴 안에 불을 질러 거의 모두 타 죽게 되자, 공이 병사를 거느리고 달려와서 왜적을 모두 쫓아내어 굴 안의 사람들이 죽음을 면하였다. 또 송대사(송대사)에 이르니, 진주 고을의 남녀 수백 명이 모여 있었는데, 왜적이 사방을 포위하여 양식이 끊겨 굶주림이 심하였다. 정명진(정명진)이 일찍이 군율을 어긴 일이 있어 소 한 마리를 바치는 것으로 속죄를 해주었는데, 또 왜적에게서 소 한 마리를 빼앗아 잡아서 그들을 먹였다. 그러고 나서 적병을 피하는 방향을 알려주며 보내니, 모두 은혜에 감사하며 오래 살기를 송축하였다.
경자년(1600, 선조33)에 장기 현감(장기현감)이 되어 정사를 깨끗하게 하고 백성을 편하게 하니, 열 번의 고과에서 열 번 모두 상(상)을 받았다. 당시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공을 청토굴취차사원(청토굴취차사원)으로 삼았다. 공이 흙을 파는 곳으로 달려가니, 군인 40여 명이 모두 나와 줄지어 절을 하였다. 그때 토굴이 갑자기 무너져 막히자, 군인들이 손을 모으고 감사하며 말하기를 “지금 죽음을 면하였는데, 이는 큰 덕을 지닌 당신이 이르러 그런 것이지, 우리들이 모두 명이 길어서 그러한 것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 일을 들은 사람들이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임기를 마친 뒤 예빈시 주부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군기시 주부로 옮겨 제수되었는데 나아가지 않으며 말하기를 “노모가 계시니 멀리 가서 벼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모부인이 일찍이 병환이 있어 민물고기를 드시고 싶어 했으나, 마침 강물이 불어서 그물을 칠 곳이 없었다. 공이 강 가운데 배를 띄우고 뱃전을 두드리며 슬피 우니, 문득 큰 물고기가 배 안으로 뛰어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지성이 감동시킨 바라고 하였다. 모부인 연세가 93세에 이르자, 공이 흰 머리로 노래자(로래자)의 춤을 추며, 날마다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을 일삼았다. 향리의 부로(부로)들이 소를 잡고 술을 준비하여 수연(수연)을 베풀어 각자 잔을 들어 헌수(헌수)하였다.
장수 현감(장수현감) 하성(하성)이 증서(증서)를 지어 기록하기를 “아! 만력 40년(1612, 광해군4)은 장기 현감 강공의 대부인이 89세 되는 해이다. 동안(동안)은 더욱 젊어지고, 참된 기운은 더욱 왕성하시다. 슬하에 벼슬한 자식이 있고 현손과 증손이 눈앞에 있으니, 어찌 우리 마을만의 드문 경사일 뿐이겠는가. 실로 인간 세상에 듣기 드문 일이다. 주인 장기공은 벼슬하는 것을 일삼지 않고 집에서 지내며 어머니를 봉양한다. 매일 모친 앞에 색동옷을 입고 매번 남산(남산)의 축수(축수)를 올리니, 이것이 진실로 우리들이 감탄하는 것이다. 이에 우리 마을의 부로와 자제들은 다함이 없는 공의 효에 감복하여 급노(급로)의 의리를 미루었다. 모두 모여 술자리를 마련해 풍악을 울리고, 당에 올라 춤을 추며 잔을 잡고 축수할 것을 약속하니, 때는 2월 26일이다. 자리에 참석한 사람의 성명은 아래에 기록한다.”라고 하였다. 뒤에 병사(병사) 김태허(금태허)와 우후(우후) 신응담(신응담)이 와서 헌수하였고, 병사(병사) 윤선정(윤선정)도 와서 헌수하였으며, 함양 군수 이대기(리대기)는 시를 지어 읊었다.
병진년(1616, 광해군8) 3월 초나흗날에 모친상을 당하여 참의공(참의공)의 묘를 옮겨 의령의 경계에 있는 태산(태산)의 남쪽에 합장하고, 묘 곁에 여막을 지어 3년 동안 피눈물을 삼키며 여묘살이를 하였다. 상복을 벗고 또 우병영(우병영)의 중군장(중군장)이 되었는데, 군사들이 마음으로 사랑하고 기뻐하여 비석을 세워 덕을 칭송하였다. 유지신(류지신) 공은 동년의 벗으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 목사였는데, 그가 낮은 직위에 있음을 애석히 여겨 공로를 포상하는 계를 올렸다. 뒤에 절충장군 중추부사에 가자(가자)되었고, 선무공신(선무공신)으로 녹훈되자 부모의 관작도 추증되었다.
천계 7년 정묘년(1627, 인조5) 10월 25일에 병환으로 집에서 일생을 마치니, 향년 68세였다. 친척들이 달려와 슬피 곡하고, 원근의 사람들이 탄식하며 애석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모두 말하기를 “훌륭한 사람이 죽었다.”라고 하였다.
공의 성품은 청렴하고 순후하였으며, 일을 할 적에는 규각을 드러내지 않았고, 마음가짐은 겉과 안이 다름없기를 힘썼다. 어떤 사람이 전답과 집을 사기를 권하면, 양 옆에 있던 사람들이 반드시 그렇게 하려고 하여도 ‘나는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서, 자제들을 훈계하기를 “진실로 마음을 전답 사는 데에 두면 원망이 많게 된다.”라고 하였다.
집안의 일을 처리할 적에 노복을 부리는 것은 어짊과 용서를 위주로 하여 노복들이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였고, 자제를 가르치는 것은 엄함을 위주로 하여 자제들이 의관을 갖추지 않으면 감히 곁에 있지 못하였다. 동네와 향리에서 처신할 적에는 관대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온화하고 유순했으며, 군중(군중)에서 처신할 적에는 공정하고 정직하면서도 청렴하고 공평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는 청렴하고 검소했으며, 윗사람 섬기는 것은 공손하고 신중했고, 아래 사람 부리는 것은 충심과 후덕함으로 하여 사람들 중에 공을 거스르는 자가 없었다. 참의공이 임종 때에 말씀하시기를 “내 아들은 성품이 본래 선량하니, 내가 재산을 나누어 주지 않더라도 그가 반드시 균일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공이 뒤에 과연 삼등분 하여 그중에 하나를 취하였다.
아내 숙부인 밀양 박씨는 정략장군(정략장군) 용매 만호(룡매만호) 박사신(박사신)의 딸이며, 병조 판서를 지내고 좌의정에 추증된 박익(박익)의 6대손이다. 3남 1녀를 낳았는데, 장남 석윤(석윤)은 진양 하씨 사인(사인) 하항(하항)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일찍 죽었다. 차남 득윤(득윤)은 울산 김씨 사인 김운익(금운익)의 딸에게 장가들어 3남 1녀를 낳았으니, 아들은 오(오)ㆍ채(채)ㆍ준(준)이고, 딸은 사인 하자온(하자온)에게 시집갔다. 셋째 유윤(유윤)은 선산 김씨(선산금씨) 사인 김영(금영)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공보다 먼저 요절하였고, 1녀를 낳았는데 사인 노게(로垍)에게 시집갔다. 딸은 직장 윤우벽(윤우벽)에게 시집가서 2남 1녀를 낳았는데, 장남은 윤재(윤재)이고 차남은 윤요(윤요)이며, 딸은 사인 송명(송명)에게 시집갔다.
공이 돌아가신 지 석 달 28일 만에 선영의 왼쪽 기슭에 장사를 지냈다. 공은 평생 가업을 신중하게 지켜 생산(생산)을 일삼지 않고, 거문고를 타면서 스스로 즐겁게 지냈다. 돌아가신 후에는 단지 긴 칼 한 자루와 짧은 거문고 한 벌 뿐이었다. 또 공은 어릴 때부터 야외에서 대소변을 보면 즉시 묻어서 더러운 물건으로 하여금 하늘의 해 아래에 드러나 보이지 않게 하였으니, 이는 공이 하늘을 공경히 하는 정성이었다.
아! 공의 신중한 몸가짐, 어버이 섬기는 효도, 나라를 위하는 충성, 관직에 임하는 청렴함, 적을 토벌한 공적, 사람을 살리는 어짊, 사물을 대하는 후덕함, 하늘을 공경하는 정성은 옛 사람에게서 구하더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에게 혼인의 친함 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에 참의공에게 학업을 익혔으니, 정의(정의)가 두터워 일가 형제의 정과 다름이 없었다. 공의 매부인 함양 군수 이대기(리대기)와 자굴사(도굴사)에서 나와 함께 공부할 적에 공도 따라와서 학문을 하였으니, 서로 아는 친구가 된 지도 오래 되었다. 더구나 남의 선한 점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고, 또 선행이 매몰되어 전해지지 않을까 두려워 이에 공의 사적을 기록한다.
숭정 5년 임신년(1632, 인조10) 7월 그믐에 창산후인(창산후인) 진사 성여신(성여신)이 기록하다.
제고축문(제고축문)
소과에 합격한 후 부모님 묘를 쓸고 고하는 글 기유년(1609, 광해군 원년) 〔소과후친영소고문 기유〕
하늘 같이 높고 땅처럼 두터워 / 천고지후
망극한 은혜를 갚지 못하였습니다 / 미수망극지은
쉬지 않고 가는 세월에 / 일거월제
끝없는 통곡만 길이 품었습니다 / 장포무애지통
몸이 장차 늙어감에 / 일신장로
오장이 타는 듯하였습니다 / 오내분여
얼마나 다행입니까 / 하행금년
금년에 이름이 연적에 오른 것이 / 명등련적
북궐의 금방에 이름이 걸려 / 괘금방어북궐
부자의 성명이 높이 불러진 것이 / 고창부자지성명
남쪽 고향으로 백패를 가지고 돌아오니 / 반백패어남향
친척과 벗들이 축하하기 위해 어지러이 모였습니다 / 분집친붕지하축
다시 병사와 상국의 칭찬과 장려가 드리웠고 / 경우병상지가奬
선영을 영예롭게 하는 제수를 특별히 내렸습니다 / 특사영분지제수
여러 가지 제기에 / 변䇺보궤지기
각종 음식과 과일을 차렸습니다 / 교진도서진률
육지와 바다의 산해진미를 진설하고 / 수륙산해지미
생선과 육고기를 올립니다 / 착진린갑우모
이승과 저승의 간격이 없으니 / 무간유명
밝게 이르러 임하십시오 / 유림소격
슬픔을 머금고 공경히 올리니 / 함애경천
향기로운 제수를 이에 흠향하소서 / 필분사흠
조부모에 대한 제문〔제조부모문〕
소손의 이름이 연방에 기재되어 / 명참련방
영화와 행복이 이에 빛났습니다 / 영행사혁
슬프게 산소를 바라보니 / 비촉송추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격해집니다 / 추모미격
관아에서 제수를 내려주니 / 관사전수
술은 향기롭고 희생은 정결합니다 / 주향생결
조부모님 남은 경사가 미친 바이니 / 여경유기
감격의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 감체교적
영원히 함께 하시는 혼령께서는 / 불민자존
이 향기로운 술을 흠향하십시오 / 흠자형작
선조 사간부군에 대한 묘제문〔제선조사간부군묘문〕
아득한 옛날부터 무덤이 / 면유가성
용산의 기슭에 있었는데 / 재룡산록
후손이 타향으로 이사를 와서 / 래잉이향
향 피우는 일도 오래도록 끊겨 / 향화구절
구름이 근심하고 학이 조문하며 / 운수학적
소나무는 늙고 풀은 묵었습니다 / 송로초숙
어떤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이 / 하물치맹
금함을 무릅쓰고 구역을 침범하여 / 모금범역
더러운 해골을 실어 와서 / 여치예해
선영 옆에 남몰래 묻고 / 투입영측
계단 섬돌을 쪼아 부수고 / 착파계체
상석과 비석을 옮겼습니다 / 천동상갈
혼령께서는 편안함을 잃었을 것이고 / 령응실녕
땅도 또한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 지역변석
멀리 있으면서 이 소문을 듣고 / 재원문지
쓰라린 고통이 뼈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 신통입골
노쇠한 병에 계속 묶여 있어 / 로병련미
달려와 살펴보지 못하고 / 진미성알
고을 수령에게 전전하며 고하고 / 전공읍재
방백에게 달려가서 호소하여 / 왕소방백
강제로 기한을 정해 이장하게 해서 / 륵한이장
국법을 밝게 보였습니다 / 명시왕법
주위를 둘러보며 우러러 절하니 / 환시첨배
슬픈 감정이 더욱 격해집니다 / 비감미격
그 더러운 자취 씻어내고 / 척기오촉
그 흉한 흔적을 쓸어내고서 / 소궐흉적
삼가 제수를 갖추어 / 근구초려
정결한 제사 올리며 고합니다 / 정인리치고
영원히 함께 하시는 혼령께서는 / 불민자존
이 간절한 마음을 살펴주십시오 / 감차충곡
장인 박공에 대한 제문〔제부옹박공문〕
영령의 조상은 / 유령
신라 초에 나와 / 계출라초
세 성씨 중 하나였으며 / 삼성지일
자신은 현달하여 태평시대에 / 신현명시
만호의 벼슬을 지냈습니다 / 만호지질
밀양과 김해의 큰 가문이고 / 응분우족
의령과 봉성의 큰 집안이었습니다 / 의봉거실
용모와 마음은 예스럽고 / 모고심고
기국과 베품은 덕스러웠습니다 / 기덕종덕
보잘것없는 제가 / 무상일신
혼례를 올려 사위가 되었는데 / 첨행륙례
저를 묵게 하고 저를 좋아하여 / 관아호아
만년의 사귐으로 허여하셨습니다 / 허이만계
집을 지어 저를 살게 하니 / 축실거아
담장과 집이 붙어 있었고 / 장련옥접
가난을 구제하여 저를 넉넉하게 하며 / 발빈요아
좌우에서 먹여 주셨습니다 / 좌전우죽
저의 재주를 기이하게 여겨 / 기아지재
입신양명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 망이양립
저의 낙방을 가련하게 여겨 / 련아지굴
애석한 탄식을 이으셨습니다 / 계이차석
길흉에 따라 근심하고 기뻐하며 / 길흉우희
득실에 따라 즐거워하고 슬퍼하였습니다 / 득상흔척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없고 / 망불여동
어기거나 거스른 것도 없었습니다 / 무위무불
임진ㆍ계사년의 난리에 / 룡사란리
기러기들이 못 안에 있어 / 홍안중택
울퉁불퉁한 산비탈을 걷고 / 간관산판
바람과 이슬, 서리와 눈을 맞았습니다 / 풍로상설
거처할 집이 없고 / 미실미가
굶주리고 목말라도 / 재기재갈
서로 따르고 서로 우애하며 / 상수상우
수족처럼 여겼습니다 / 여수여족
친분은 혼인으로 맺어진 어버이지만 / 분수인친
정은 부모가 길러주신 것과 같았습니다 / 정동고부
그동안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가 / 광음기하
아침 이슬처럼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 조로이합
황천길은 아득히 머니 / 천로망망
구천에서는 살아오기 어렵습니다 / 구원난작
그 모습이 세세히 생각나는데 / 세상의형
바람이 솔숲에서 울어댑니다 / 풍호송백
얼마나 다행입니까 늘그막에 / 하행수로
이름이 연적에 오르게 되었으니 / 명참련적
영령께서 알고 계신다면 / 령여유지
어찌 기뻐하며 뛰지 않겠습니까 / 갈승흔약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 지야부야
변방에 달빛이 검습니다 / 관새월흑
자굴산 남쪽 가에 있는 / 도산남반
무덤에 편안히 잠들고 계십니다 / 유안유댁
한 잔 술을 가지고 와서 올리니 / 일배래전
두 줄기 눈물이 절로 떨어집니다 / 쌍체자령
이승과 저승의 간격 없으니 / 유명무간
이 향기로운 술을 흠향하소서 / 서흠사형
모촌 이정에 대한 제문 계축년(1613, 광해군5) 〔제리모촌 정 문 계축〕
아, 슬프구나 / 오호애재
영령께서는 / 유령
정련한 금 같은 자질을 품부 받았고 / 질품정금
아름다운 박옥 같은 자품을 머금었습니다 / 자함미박
덕은 증자의 삼성에 나아갔고 / 덕취증성
학문은 안연의 사물을 일삼았습니다 / 학사안물
가슴에는 은택을 베풀려는 뜻을 품어 / 회치택지
삼장에 여러 번 뽑혔으나 / 삼장루첩
둔건의 운수를 만나 / 치둔건수
일명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 일명미립
덧없는 세월은 빨리도 흘러 / 정정광음
어느덧 오십이 되자 / 임염반백
등에 땀이 나듯 두려워하며 / 송연한배
과거를 포기하였습니다 / 기거자업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니 / 소회종지
덕천의 물결이 넓기만 하였습니다 / 덕연파활
공손한 자세로 천천히 나아가 / 장공서추
앞에서 장부의 사업을 닦았습니다 / 전수사업
산천재에서 경의의 가르침 받아 / 산천경의
마음을 응집하여 투철하였고 / 응심투철
굳건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 / 차주각근
밖을 바르게 안을 곧게 하였습니다 / 외방내직
세 관문의 길을 밝고 밝게 하며 / 관로명명
매일 사욕 섬멸하기를 일삼았고 / 일사시살
자연 속에서 풍월을 읊으며 / 음풍영월
호연지기를 터득함이 있었습니다 / 호연유득
임진년의 난리에 / 임진지란
국사가 위태롭자 / 국사올열
향리의 병사들을 소집하여 / 소집향병
한 마음으로 적을 잡았습니다 / 일심포적
의로운 명성 조정에 알려지자 / 의성승문
임금께서 공적을 가상히 여겨 / 왕가내적
단성 현감에 제수하였으니 / 수수강성
은혜가 의지할 데 없는 이에까지 미쳤습니다 / 혜편고독
정유년에 이르러서는 / 체정유세
악견산성을 지켰는데 / 악견성수
어떤 이리 같은 자가 / 하물랑자
매우 어리석고 무식하여 / 치치무무
패역하는 말을 적은 글을 / 어역일지
감히 공에게 올렸습니다 / 감정좌우
그 편지와 장계를 / 병지여상
방백에게 전하여 올렸고 / 전吿방백
위로 조정에까지 알려서 / 상문우조
저자에서 처형하였습니다 / 사시이륙
은혜로운 교지가 빨리 내려져서 / 은교천급
이마에 옥관자를 붙이게 하였습니다 / 비정기옥
특명이 또다시 내려서 / 특명우하
청주 목사로 부임해 갔습니다 / 서원왕목
병화가 지나간 고을마다 / 병화소경
백성들이 편히 살기 어려웠는데 / 민불료생
한 번 살려주는 수단을 행하자 / 일투활수
경내 백성들이 환호를 질렀습니다 / 합경환성
공이 그 체임되어 돌아올 적에 / 태기체래
왜적이 바닷가에 주둔하여 / 적둔해곡
감문에 피신하여 우거했으니 / 피우감문
부평초 같은 신세였습니다 / 평봉종적
무술년에 왜적이 물러가서 / 무술적퇴
세상이 편안해졌습니다 / 우내녕밀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 설가환향
진주의 서쪽에 있는 원당에 / 진서원곡
몇 칸의 띳집을 지었는데 / 수연모자
바람과 해를 겨우 가렸습니다 / 재폐풍일
옛날의 경전에 담긴 내용과 / 추전분전
성현의 자취를 미루어 보며 / 성현도철
편안히 자신의 본심을 지켜 / 이연자수
외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 불위물탈
나라가 잘못되어 가자 / 국시전착
직언의 소장을 올려 분변하니 / 항장이변
왕께서 가상하게 여겨 장려하시고 / 왕용가장
따뜻한 말씀으로 면려하였습니다 / 온언이면
송천을 왕래하면서 / 왕래송천
의문을 질정하고 문답하며 / 질의문답
은미한 말과 심오한 뜻을 / 미사오지
꿰뚫어 자세하게 분석하였습니다 / 동절곡절
때때로 덕천으로 들어가서 / 시입덕천
후학들을 이끌어 일깨우며 / 제시후학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게 하고 / 학기미학
깨닫지 못한 것을 깨우치게 하였습니다 / 각기미각
백록동서원 규약을 학규로 하고 / 백록시䂓
악록서원의 규약을 본받으니 / 악록시칙
향리의 여러 자제들이 / 향리제자
대략 귀의할 곳이 있게 되었습니다 / 조유귀숙
어찌 한 번 병이 나서 / 나지일질
갑자기 영결할 줄 알았겠습니까 / 거지영결
아! 슬픕니다 / 오호애재
만 리 밖의 동해 섬에 / 만리동명
맏아들이 포로로 잡혀갔으니 / 일자부집
울면서 하늘 끝을 바라봐도 / 곡망천애
누가 소식을 전해주겠습니까 / 수전소식
근심하다 늙어 버렸으니 / 유우용로
귀신도 애처로워 웁니다 / 신귀처읍
그래도 다행스럽게 여길 것은 / 소가행자
한 아들이 여막을 지키고 / 일고수려
젖먹이 손자가 총명하니 / 유손기억
훗날 넉넉한 경사가 있을 것입니다 / 하경유여
생각건대 응당 구천에서 / 상응구원
눈을 감고 앉아 계시겠지요 / 명목이거
이로써 생각해 보니 / 이차사지
후사는 이어짐이 있을 것입니다 / 후사유속
아, 슬픕니다 / 오호애재
공이 살아 계실 적에는 / 공지재세
우리들이 의지할 수 있었는데 / 오당유의
공이 문득 세상을 떠나시니 / 공홀거세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 오당주의
공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 공지재세
젊은이들이 본받을 것이 있었는데 / 소자유식
공이 문득 세상을 버리시니 / 공홀기세
젊은이들 누구를 본받아야 합니까 / 소자하식
의문 나는 것 누구에게 물을 것이며 / 의어하문
예는 누구에게서 본받겠습니까 / 례어하법
강학하시던 서원은 황량하고 / 원우황량
덕천강은 오열합니다 / 덕수오인
저 같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 여아무상
오래도록 공경하는 한 사람으로 여겨 / 구경중일
청년시절부터 서로 허교하였고 / 청년상허
백수가 되도록 막역하였습니다 / 백수막역
예전에는 불초한 자식을 맡겨 / 석탁돈식
착한 사람 되기를 바랐습니다 / 서기식糓
시와 예로써 가르치는데 / 교이시례
규칙이 있고 법도가 있었습니다 / 유규유칙
나아갈 방향 깨닫게 하여 / 비효추향
성취한 데에 이르게 했습니다 / 용지성립
은혜가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 은막대언
정의가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 정하유극
공의 어진 아우는 수령을 지내며 / 현계사군
사귐을 더욱 친밀하게 하였습니다 / 교계역밀
한 집안에 함께 사위가 되어 / 동췌일가
깊은 우정을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 환심교칠
이미 백아와 종자기처럼 허교했는데 / 기허아양
또 인척으로 맺어졌습니다 / 우면고갈
정과 의리로 헤아리면 / 규정췌의
거경과 원백의 경우입니다 / 거경원백
그런데 어찌 알았겠습니까 오늘 / 나지금일
옥 거문고 줄이 끊어지게 될 줄을 / 현단요금
그 모습 영원히 멀어지니 / 의형영격
황천길은 어두컴컴합니다 / 천로심심
엎드려 술 한 잔 올리니 / 궤전일가
강림하여 흠향하시기를 바랍니다 / 서기양양
하창주 징 에 대한 제문 계해년(1623, 광해군15) 〔제하창주 憕 문 계해〕
영령께서는 / 유령
천성이 어질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부받아 / 성품인애
마음에는 자애롭고 선량함이 쌓였습니다 / 심온자량
마음가짐은 경으로써 하고 / 지기이경
몸단속은 법도로써 하였습니다 / 칙궁이방
집에서는 효도하고 우애하여 / 효우우가
화락하고 순응하고 화합하였으며 / 옹옹순흡
사람들에게는 신중하고 중후하여 / 근후어인
공손하고 미덥고 진실하였습니다 / 순순신실
배워서 예법을 알았고 / 학이지방
어버이를 따라 법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 인친불실
글은 시속을 따르지 않고 / 문불추시
오직 옛 것을 본받았습니다 / 유고시식
한 송이 홍련을 움켜쥐니 / 일타홍련
이백 명의 연방에 들었습니다 / 련방이백
명성이 매우 자자하니 / 성명자심
구고에서 학이 우는 듯하였습니다 / 구고명학
명예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 무예무구
빛을 감추고 자취를 숨겼습니다 / 도광회적
임천에서 소요하며 / 파사림하
자신의 곧은 삶을 얻었습니다 / 원득아직
비유컨대 저 떨기의 난초가 / 비피총란
그윽한 골짜기에 향기를 날리는 듯 했습니다 / 양분유곡
나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을 / 여여무상
오래 공경하는 한 사람으로 대했습니다 / 첨구경일
구름 떠있는 곳을 서로 바라보기를 / 정운상망
강의 남과 강의 북에서 하였습니다 / 강남강북
종자기와 백아의 아양 같은 지기였고 / 종백아양
진중과 뇌의의 교칠 같은 우정이었습니다 / 진뢰교칠
서로 따르고 서로 방문함에 / 상수상방
어김도 없고 거스름도 없었습니다 / 막위막역
복사꽃 뜬 비단 물결에서는 / 도화금랑
살진 쏘가리 그물로 잡았고 / 망위비궐
흰 달 비치는 가을 못에서는 / 호월추담
피리 불며 교룡 굴을 넘나들었습니다 / 고적교굴
강호를 유람하는 이 즐거움 / 강호차악
백년을 함께 하자 기약하였는데 / 백년위약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루 저녁에 / 나지일석
죽음이 갑자기 촉박했음을 / 계몽거촉
부음를 듣고 놀라 일어나니 / 문부경기
창자 끊어지는 슬픔에 실성하였습니다 / 실성장절
아, 슬픕니다 / 오호애재
백도처럼 아들이 없고 / 백도무아
외로운 양자였습니다 / 명령혈혈
장자가 동이를 두드리는 것처럼 / 장생고분
홀로 남은 봉새는 외로웠는데 / 고봉영척
살아서는 한 방에 살았고 / 糓이동실
죽어서는 무덤에 같이 묻혔습니다 / 사이동혈
인간 세상이든 황천이든 / 인간천하
공은 비록 유감이 없겠지만 / 공수무척
두 분 관이 쌍으로 돌아가니 / 량구쌍선
우리들의 처량하고 측은함은 배나 됩니다 / 배아처측
아, 슬픕니다 / 오호애재
경의당 안과 / 경의당중
취성정 가에서 / 취성정반
어렵고 의심난 것을 문답하고 / 난의답문
담소하며 화기애애하였는데 / 언소안안
그대가 세상을 떠났으니 / 자자지서
이제 누구와 문답한단 말입니까 / 수여문답
월아산의 남쪽에 있는 / 월아산남
벽동의 고찰에서 / 벽동고찰
함께 《진양지》를 찬술하면서 / 공찬주지
산천과 인물을 기술하였는데 / 산천인물
그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 자자지서
이제 누구와 의논을 마친단 말입니까 / 수여의필
마을에 사람이 없는 듯하니 / 항무거인
우리들은 누구를 의지합니까 / 오당주의
옥 거문고의 줄이 끊어지니 / 요금절현
보배 상자엔 먼지만 날립니다 / 보갑진비
지극한 정은 글로 표현할 수 없고 / 지정무문
뜻이 간절하면 말이 졸렬하기 마련 / 의절사졸
슬픔을 머금고 와서 곡하며 / 함애래곡
변변찮은 막걸리 한 잔 올리니 / 박료일작
영원히 함께 하시는 혼령께서는 / 불민자존
밝게 이르러 흠향하십시오 / 서기소격
문흥서원 봉안 축문 경자년(1600, 선조33) 〔문흥서원봉안축문 경자〕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은 / 도재천하
물이 땅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 여수재지
진실로 성심이 있으니 / 구유성의
구하면 이를 것입니다 / 구지칙지
선생의 덕을 / 선생지덕
직접 배우지는 못했지만 / 수불훈적
선생의 도는 / 선생지도
오히려 해와 달 같습니다 / 상여일월
우러러 사모하고 귀의하여 바라보니 / 경앙의첨
그리움이 더욱 돈독해집니다 / 갱장미독
이에 사당을 지어 / 원구사우
우리들의 모범으로 삼습니다 / 작아矝식
금릉현 서쪽에 있는 / 금릉현서
석문의 시냇가 이곳은 / 석문계변
땅이 외지고 그윽한 곳으로 / 지벽이유
아껴 감추어 둔 지 오래된 곳입니다 / 간비유년
지을 곳을 점쳐 지금 지으니 / 복축우금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 개비우연
무슨 누추함이 있겠습니까 / 하루지유
여기에 영령을 봉안하려 합니다 / 원타령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