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3년 1월 17일 금요일. 맑음.(인도네시아)
새벽 3시 40분에 족자에 도착했다. 숙소도 구할 수 없고, 가게도 문이 닫혀있다. 거리도 조용해 달리 갈 곳이 없다. 역을 찾아가기로 했다. 도꾸 역에 가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숙소를 잡고 일과를 시작하려고 했다. 역전을 먼저 찾아가보니 웬 한국 사람이 혼자 앉아있었다. 배낭도 큰 것을 갖고 있다. 인사를 나누었다. 서울에 개포 중학교에 미술교사로 재직 중인 박재0 선생님 이었다. 나이는 52년생이시니 한참 어른이시고 여행 시작한지 10년이 넘으셨단다. 이렇게 방학 때 마다 혼자 20여일을 돌아다닌단다. 한국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날이 새기를 기다린다. 웬 낯선 사람이 접근해서 말을 건다. 쉽게 얘기하면 호객꾼, 삐끼인데 우리에게는 천사 제비다. 돕는 쪽에서는 천사인데 생긴 모습은 제비다. 이 사람이 호텔과 여행을 싸게 해준단다. 그가 갖고 다니는 호텔 모습과 여행 일정을 보니 가격을 흥정할 만 했다. 호텔은 수영장이 딸린 좋은 곳이란다. 이 새벽에 달리 갈 곳도 없어 천사 제비를 따라갔다. 택시 2대에 타고 간 곳이 Metro Hotel 이다. 숙소도 맘에 들고 가격도 적당했다. 3개를 빌렸다. 대충 짐을 정리해 놓고 우리의 여행 목적지인 보로부두르를 향했다. 봉고차 하나에 기사와 제비 아저씨와 우리 10명이 함께 타고 하루를 돌기로 약속을 하고 요금은 나중에 지불하기로 했다. Pay after! 우리의 이번 배낭여행에서 우선순위 1번이 인도네시아 족자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프람바난, 2번이 말레이시아 바투 동굴로 삼았다. 드디어 족자에 와서 우리의 목적지를 찾아간다. 인도네시아의 고도 족자카르타는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약 550km에 위치해 있다. 간단하게 족자라 부른다. 이곳이 자바 문화의 발상지로 우리나라 경주와 비슷하다. 족자 교외에 있는 보로부두르 사원은 7~9세기에 영화를 누린 불교문화의 유산이 있다. 그 후에 번영했던 힌두교 문화유적 프람바난 사원을 비롯해서 근교에 수많은 사원이 있다. 또한 바틱(밀납 그림), 인형극의 와양(그림자놀이), 감란 음악(전통악기), 자바 무용등과 같은 자바 예술을 완성하고 전승해 온 도시로 이름이 높다. 이 도시는 옛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한적한 도시다. 고층 빌딩도 없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비즈니스맨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보다는 오토바이가 많이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자전거와 베차(마차)다. 모든 것이 유유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여유롭다. 시외에 있는 보로부두르 사원 앞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두당 7달러다. 생각보다 비싸다. 사원 내에 들어서니 마주 보이는 사원이 생각보다 작고 간단해서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도착해서 만났다는 감격은 대단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왓을 나중에 보았다면 좀 더 감격했을 것 같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1814년에 당시 인도네시아를 통치하고 있던 영국의 래플즈(T.S.Raffles)에 의해 발굴되었다. 9세기 중반에 조성되었다.
누가 무엇 때문에 조성했으며, 그리고 어재서 1,000년 동안이나 밀림 속에 파묻혀 있었을까? 아직도 신비한 베일에 뒤덮인 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각국 학자들의 연구와 조사에 의하면 7세기 이후 자바를 중심으로 번영했던 불교 왕국으로 샤일 렌드라 왕조가 8세기에 착공해서 약 70년에 걸쳐서 조성한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 그러나 그 후 보로부두르 사원은 홀연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화산의 분화에 의해서 매몰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인위적으로 숨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미스테리에 둘러싸인 이 사원에 매료되어서 유구한 세월의 낭만을 찾으러 방문하는 여행자가 많다. 한 낮의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이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을 몰아내기는 날씨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사원은 사방 120m의 기단위에 여섯 층의 단을 쌓았다. 맨 위 층의 중심 불탑까지 42m 가 된단다. 기단 벽에는 불경과 명산에 잠긴 부처의 모습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피라미드 같이 솟아있는 모습이 하나의 사원으로는 웅장하다. 부처의 사리가 있다는 부도와 조각이 엄청 많아 돌 숲 같다. 조각들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조각과 많이 닮아서 인도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보로부두르의 네 방향의 가운데에는 부도의 가장 높은 곳에 일직선으로 이르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으로 오르는 입구에는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공문(아치)이 있다. 공문 중앙에는 귀신의 얼굴이 험상궂게 조각되어있다. 귀신의 얼굴은 병이나 재앙을 일으키는 마귀를 막아준단다. 맨 아래 기단은 몇 백 년 동안 돌에 파묻혀 있다가 1885년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제 1화랑(복도)의 불상들은 본래 감실에 모셨는데 감실 석재가 사라져 불상이 드러났단다. 목이 없는 불상들은 그 후의 힌두교도들에 의한 것이란다. 제 1 화랑의 벽의 돋을새김은 석가모니의 전생, 배, 마야부인의 행차, 석가모니의 최초설법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제 3 화랑의 폭은 모두 2m 씩 똑같은데 경전의 내용들이 나타나 있다. 이 사원의 발굴에는 실로 20년이라는 세월이 소비되었다. 그 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붕괴 우기에 처해졌다. 그래서 유네스코와 각국의 원조 협력으로 총 공사비 1650만 달러로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려 복구공사가 완성됐다. 이렇게 해서 1983년, 이 사원의 장대한 모습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안산암을 사용하여 100만개 이상의 벽돌을 사용하여 전체 9층(하부 사각형 6층, 상부 원형 3층)까지 접착제 없이 쌓아 올렸다. 많은 조각은 총 2km 가까이 달하고 2500면의 부조(돋을새김)에는 등장인물이 1만 명 이상이란다. 재건축하면서 부조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대단하다. 한참을 구경하는데 중학교 2학년 여학생 10여명이 갑자기 영어로 질문을 퍼붓는다. How many child do you have? 등 기초적인 것을 부끄럼 없이 물어온다. 알고 보니 영어 선생님이 옆에서 코치를 하며 실습 차 나온 것이다. 이곳에 외국인이 많이 오니 그들의 회화 공부에 도움이 된다. 부러운 광경이다. 살아있는 영어를 실습할 수 있는 장소였다. 교사로서 우리의 영어 공부의 현실과 대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이와 주소를 교환하고 그들 물음에 성심껏 대답을 해주고 격려해 주었다. 상부 원형 층에 이르니 부도가 숲을 이루고 있다.
모두 27개의 부도란다. 1, 2 층은 부도 뚜껑이 마름모꼴이고 3층은 사각형으로 달랐다. 이 뚜껑 속에는 불상이 모두 들어있다. 손으로 만지면 어떻게 된다고 모두 열심히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 만진다.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 거의 일주일 있었지만 이곳이 관광객이 제일 많은 것 같다. 보로부두르 사원을 나오니 시장이다. 옷가게 과일, 기념품 상점이 노점 형태로 길게 늘어서 있다. 각종 기념품과 모자 등을 팔러 다니는 사람이 많다.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팽이가 윙 소리를 내며 도는 것이 재미있다. 10,000 루피 짜리를 깎아서 2,000루피에 하나 샀다. 식당에서 시원한 주스를 본인의 취향대로 주문해서 마셨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이 문두트 사원이다. 봉고차 예약을 5군데 가기로 하고 250,000루피에 계약을 했다. 문두트 사당 옆에 세워진 새로운 절에는 예쁜 연꽃이 잘 자라고 있다. 정원 보리수나무 아래 앙상한 뼈 위에 붉어져 나온 핏줄기까지 세미하게 조각된 불상이 엄청 불쌍해 보인다. 걸어서 큰 나무 옆에 있는 문두트 사당으로 갔다. 보로부두르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다. 오랫동안 밀림 속에 감추어져 있다가 1834년에 발견되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바로 사당이다. 약간 어두운 데 들어서니 불상이 3개 있다. 가운데가 본존 석가여래상인데 사르나트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인도 굽타 왕조의 사르나트 파 미술을 본 뜬 것이란다. 가운데 석가모니를 본존이라고 하고 오른쪽 보상을 우협시, 왼쪽 보살을 좌협시라고 한단다. 까맣게 그을린 불상들이 정이가지 않는다. 사당을 한 바퀴 돈다. 도마뱀이 제법 큰 것이 사당 벽에 붙어있다. 사당 마당에 약 250년 됐다는 엄청 큰 나무가 있다. 줄기인지 뿌리인지 땅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모두 하나씩 매달려 그네 타듯 놀았다. 그 다음 다시 족자 시내로 돌아왔다. 은 세공공장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Tom’s silver라는 공방이다. 제법 규모도 크고 전시관도 넓었다. 이런 곳은 별로 흥미가 없다. 하나도 사지 않고 둘러보기만 하고 주차장으로 나와 마당에 갇혀 있는 이구아나 둘레에 모여 신기한 듯 쳐다본다. 족자의 외곽도로를 타고 프람바난 사원으로 간다. 족자에서 동쪽으로 약 20km 지점에 Prambanan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불교 왕국 샤이렌드라 왕조와 그 후에 번영했던 힌두교 마타람 왕조 시대에 세워진 수많은 힌두사원 유적이 남아있다. 특히 보로부두르 사원과 나란히 자바 섬 관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힌두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별명 ‘로로 종그랑(Lolo Jong-grang, 여윈 소녀)’ 으로도 불린다. 아름다운 여인인 로로 종그랑이 1,000번째 찬디(사원)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유적지 입구에는 시장이 형성되어있다. 입장료 7달러를 주고 들어간다. 잘 정돈된 벌판에 사원이 멋지게 들어서 있다. 멀리 브로모 화산에서는 흰 연기를 계속 뿜어대고 있다. 오파크 강 유역에 높이 47m의 뾰족탑을 가진 시바사당이다. 이 시바 사당을 중심으로 비슈누 신과 브라흐마의 사당이 있다.
그 옆으로 난디, 가루다, 한사를 모신 세 개의 사당이 있다. 이 여섯 개의 사당을 중심으로 사방 110m의 안뜰이 있다. 그 바깥쪽에 234동의 작은 사당들이 네 겹으로 들어서 있다. 이 사원이 주당인 시바 신당의 화랑에는 인도의 유명한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의 이야기를 42장의 판에 돋을새김 했다. 자바 섬의 유적은 정사각형의 구도가 특징인 것 같다. 시바 사당이 가장 높게 되어있다. 기단 밑동은 한 변ㅇ이 34m로 여섯 단의 기단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았다. 층계를 올라 들어서니 시바신상이 우뚝 서 있다. 높이가 3m나 되는 석상이다. 신상을 세우도록 한 마타람 왕조의 피카탄 왕의 모습을 본떴다고 한다. 다음 칸에는 시바 신과 그의 아내 파르바티 신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가네샤 신상이 코끼리 모양으로 앉아있다. 지혜와 행운의 신이란다. 또 돌아서니 손이 많은 도르가 신상이 있다. 도르가는 가까이 갈 수 없다는 뜻이란다. 힌두교에서는 소를 난디라고 하며 신으로 섬긴다. 시바신이 소를 타고 다녔기 때문이란다. 또 힌두교 신자들은 비슈누신이 사람으로 태어난 라마왕자의 모험담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한다. 이 라마 왕자의 이야기인 라마야나는 모두 일곱 편으로 2만 4,000여 시구로 쓰인 장편서사시란다. 힌두교는 신이 엄청 많은 다신교다. 날씨는 엄청 더워 살이 익고 정신이 나갈 정도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 있어 잠시 쉰다. 구경도 좋지만 날씨가 너무 덥고, 피곤하다. 어제 버스를 타고 새벽에 내려서 또 강행군을 하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출구로 나오니 얼음 물 장사들이 달려든다. 아이들은 숙소에 가서 수영하자고 보챈다.
시원한 대나무 숲길에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젊은이들이 돈을 달랜다. 차를 세워둔 주차장에 오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자전거에서 예쁜 벨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린다. 다음으로 간 곳이 바틱 공장이다. 공장인지 작업장인지 천에다가 촛농을 가지고 다양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Send Batik 작업실을 구경하고 만들어 놓은 작품을 구경했다. 녹은 초 농을 붓과 대롱 그릇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린다. 아주 독특했다. 작품을 하나 샀다. 헝겊만 사와서 집에 와서 다리미질을 하면 펴진단다. 더 이상 구경하러 다니기에는 지겹고 피곤하다. 점심을 먹지 않아서 가이드(이름은 Wardi)에게 중국음식 집으로 안내를 부탁했다. 탕수육과 볶음밥 그리고 콜라, 사이다를 시켜서 먹었다. 숙소로 와서 가이드와 계약한 금액을 주고 헤어졌다. 피곤하다고 짜증내던 아이들이 수영장에 집어넣으니 팔팔하다. 수영을 함께 했다.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다. 다리 품 팔아가며 구경하는 것도 여행이지만 이렇게 실내풀장에서 긴장을 풀며 쉬는 것도 여행이다. 아내는 빨래를 해서 널었다. 저녁이 되어서 큰 길로 나와 거리 구경을 한다. 상가 앞에는 조그만 과일 장사와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있다. 과일가게에서 호박만한 파파야를 하나 샀다. 닭 꼬치 포차에서 숯불에 구워주는 꼬치를 하나씩 입에 물었다. 콩 소스에 찍어 먹는 꼬치는 구수하고 맛있다. 거리를 산책하다가 감자떡, 감자, 계란, 야채를 접시에 담아오는 대로 기름에 튀겨주는 곳이 있어 들어갔다. 너무 맛있다. 오이같이 생긴 야채를 튀겼는데 도무지 써서 먹을 수 없었다. 찬주아빠가 맛있다는 포차에서 우동을 시켜 또 먹었다. 숯불에 각종 양념을 넣고 요리하는데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닭고기 육수에 계란을 넣고 각종 양념을 넣은 후 쌀국수 굵은 것을 넣고 주는데 국물이 진하고 입에 딱 맞는 음식이다. 숙소로 돌아왔다. 방 하나에 싱글 침대가 두 개다. 서로 붙여놓고 가로로 누워 잔다. 날은 더워서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 놓고 잔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하루 동안 많은 것을 체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