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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High noon) 이야기
얼마 전 우연히 케이블 TV의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채널에서 고전 서부극 <하이 눈>을 접하게 되었다. 막 시작한 영화이고 또 초등학교시절(1950년대)에 “잘 이해도 못한 채 보았던 영화다” 싶어 채널을 고정시켰는데 정말 오랜만에 영화다운 한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이 영화는, <게리 쿠퍼>와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하고 <프레드 진네만>이 감독한 서부극으로 <세인><역마차>등과 함께 대표적 서부극의 고전에 속하는 1952년작이었다. <게리 쿠퍼>의 그 고뇌하는 고독한 사나이의 눈빛이 내 노라는 세계의 여성들을 “뻑” 가게 만든 유명한 영화라고 소개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또한 그 자신은 이 영화로 그 보다 10년 전인 1942년의
예나 지금이나 영화에 폭력배가 등장하여 평화를 유린하거나 이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수호자인 주인공이 등장하기는 매 일반이지만, 요즈음의 영화처럼 말도 안 되는 무차별적 폭력과 신의 경지를 뛰어넘는 엄청난 전투기술이나 무기를 동원한 화려하고 허황한 액션이 아니라 사실적 묘사에 충실한 이 고전적 액션을 보노라면, 바로 이웃에서 실재로 일어나고 있는 듯 한 사실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서부의 한 작은 마을 <헤이들리 빌>.
보안관 <케인>(게리 쿠퍼)과 젊고 아릿따운 <에이미>(그레이스 케리)는 막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다. 이 마을의 보안관으로 있던 <케인>이 그 생활을 청산하고 평화를 찾아 다른 곳에 정착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나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5년 전, 그가 체포하여 감옥으로 보냈던 살인범 <프랑크 밀러>라는 악당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감옥에서 풀려나 정오 편 기차로 마을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악당<밀러>는 자신을 5년씩이나 감옥살이 시킨 <케인>에게 복수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두목을 기다리던 그의 세 명의 부하들은 벌써 시골역에 나가 <밀러>가 타고 올 정오의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가 바로 오전 10시 경이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해들은 <케인>은 악당 <밀러>의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알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자신과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는 이 사건을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을 결심으로 마차를 돌리게 되지만, 그의 막 결혼한 아내 <에이미>는 그런 <케인>의 행동에는 한사코 반대 한다. 그녀는 폭력으로 부모를 잃었으며 폭력은 무조건 싫어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밀러> 따위는 무시해 버리고 떠나자고 <캐인>을 조른다. 지금 <케인>은 보안관도 아니고 그는 이미 그의 임무를 훌륭하게 끝냈으니 더는 상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폭력은 반대였다. 그리고 금방 결혼한 마당에 흉악한 악당들과의 결투로 행여라도 <케인>에게 변고가 생기는 일은 싫다고 한다.
<에이미>가 자신은 과부가 될 수 없다고 버티며 남편을 어떻게든 말려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포악한 악당<밀러>가 스스로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한 그를 피할 수는 없다며 일단 마차를 돌려 버린 케인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두려움과 절망에 빠진 <에이미>.
<케인>을 설득해 보려는 노력이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안 <에이미>는 드디어 혼자서 마을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마을 사람들은 읍내에서 총싸움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복수극이 펼쳐지면 행여 자신들에게 불똥이 뛸 것을 두려워해서 하나같이 손사레를 치며 싸움을 반대했다. 악당 <밀러>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케인에게 그냥 조용히 떠나 줄 것을 요구한다.
<케인>은 악당과의 조우를 회피하고 싶은 욕망과, 끝내지 않으면 안 될 숙명적 필연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결국은, <밀러> 일당에 대항하여 싸울 결심을 굳힌다.
그는 여러명의 악당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열심히 마을을 돌아다닌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회피할 구실만을 만들어 목숨을 건 외로운 싸움을 해야할 그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던 바로 그들인데도 모두가 하나같이 비굴하게 등을 돌려버린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한 사람 친구에게서 조차 철저히 배신당하고 만다. <케인>은 결국, 혼자서 악당들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는 어제까지 몸담아 온 마을사람들은 물론, 사랑하는 아내 <에이미>에게서 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한채 고립되고 말았다.
그의 편이 되어 결투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열여섯 살짜리 소년과 애꾸눈의 노인이 나서서 기꺼이 함께 싸우겠노라고 하였지만 그는 소년과 노인의 자발적인 참여를 거절한다. 그리고 힘없이 보안관 사무실로 돌아온다. 이때의 고뇌하는 고독한 그의 영혼은 과히 압권이었다.
정오는 다가오고, 홀로 사무실에서 유서를 쓰고 있는 케인. 죽음은 외롭고 두렵다.
괘종시계 소리가 서서히 긴장을 고조시키기 시작한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주제음악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정오를 가리키는 시계. 드디어 멀리서 악당이 타고 오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케인>과 그를 두고 떠날 결심을 굳힌 <에이미>의 표정이 초조하게 교차되고, 케인은 텅 빈 거리에 홀로서서 마차를 타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아내를 지켜본다. 서로의 눈빛이 안타깝게 교차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케인>을 외면하고, 그녀의 마차는 작은 모퉁이를 돌아 달려 가 버린다. <에이미>는 악당 밀러가 타고 온 곧 떠나게 될 열차에 올랐다.
<에이미>가 열차에 올라 보니 마을의 여관집 주인여자(캐티 주라도)도 열차에 올라 있있다. 그녀는 한 때 <캐인>을 사랑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악당 <밀러>가 체포되어 감옥으로 갈 무렵에는 <밀러>의 정부가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것은 악당<밀러>의 강제에 의한 원치 않은 관계였던 것 같다. 그녀는 <밀러>의 귀환 소식을 듣자 급히 여관과 술집을 서둘러 헐값에 처분하고 그 곳을 떠나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케인>의 아내인 <에이미>를 보자
“당신은 왜 남아서 남편을 지켜주지 않고 혼자 떠나려하는가?”
라고 묻는다. 두 사람의 날카롭고 미묘한 감정이 표출되는 장면이었다.
“좋다면 당신이 남아서 그를 도와주면 될 것 아닌가?”
라고 <에이미>가 받자, 그녀는
“그는 내 남편이 아니니까.”
라고 차갑게 치받는다. 확실하고 분명한 대답이었다. <에이미>는 아무말 못한다.
긴 기적소리. 곧 열차는 떠나려하고.......
두려움과 분노와 체념으로 초췌 해 진 <케인>.
꾸부정한 걸음 거리
축 쳐진 어깨
그는 홀로 침묵에 쌓인 텅 빈 거리에 서있다. 마을사람들은 어딘가로 모두 숨어버렸다. 부하 악당들의 영접을 받으며 도착한 <밀러>는 일당들과 함께 서서히 읍내로 들어서고......... <밀러>가 서 있는 가까운 골목 갈림길에서 네 명의 악당이 흩어져 포위해 온다.
정오의 햇빛에 고독과 두려움과 긴장의 땀으로 범벅이 된 <케인>
1:4 의 결투를 위해 천천히 걸어가는 눈물겹도록 고독하고 비장한 그의 뒷모습.
터질듯 한 긴장이 고조된다.
<케인>은 악당들과 혼자서 벌일 죽음의 결투를 두려워하는 보통사람이지만 그의 자존심과 도덕성은 죽음 앞에 비굴하지 않았다. 판에 박힌 것 같은 전형적인 고전 서부극의 스토리 전개지만 어쩐지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신선하고 감동적이기 조차 하다.
서로의 총이 불을 뿜는 숨 가쁜 결투의 순간들..........
먼저 밀러의 부하 하나가 <케인>의 총을 맞고 쓰러진다.
마구간 근처에서 케인은 어렵사리 또 한명의 악당을 멋지게 쓰러뜨린다.
어렸던 시절. 이런 장면들에서 악당이 쓰러 질 때마다 무슨 의미인지, 그게 왜 손뼉을 칠 일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을 따라 마구 손뼉을 쳐대던 생각이 나서 그만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케인>을 버리고 혼자 떠나가기 위해 열차에 올랐던 <에이미>. 결투의 총소리를 듣자 그만 떠나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버린다. 그리고 한 달음에 마을로 달려온다. 그녀는 거리에 쓰러진 시체 하나를 발견하고 놀라서 살펴보지만. 이내, 그가 <케인>과 결투를 벌이고 있는 악당중의 한 명임을 확인하고 잠시 안심한다.
<케인>이 악당들에게 쫓기다 숨어든 마을 공용마구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한숨 돌리는가 했으나, <밀러>일당이 지른 불이 마초에 옮겨 붙으며 맹렬하게 타오른다. <케인>은 불길을 피해 말위에 납작 엎드린 채 달려서 빠져나오지만, 그만 악당이 쏜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고.......
기차를 내려 마을로 달려 온 <에이미>는 결투현장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말에서 떨어진 <케인>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기진맥진해서 어떤 건물로 숨어드는데....... 마침 <케인>에게 <라이플>을 겨누는 악당을 발견한 <에이미>.
그냥두면 그녀의 정랑은 악당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사무실 책상 근처에서 그녀는 얼른 권총 한 자루를 찾아내어 악당의 등을 향해 힘겹게 발사한다. 악당은 <케인>을 겨누던 <라이플>을 안고 풀썩 쓰러져 죽는다. 폭력을 죽도록 미워하고 반대하던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처음 쏜 총에 대한 공포로 심하게 몸을 떨었다. 여러 명과의 결투로 지쳐있는 <케인>은 그를 떠나던 아내 <에이미>가 다시 돌아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때 혼자 남게 된 악당 <밀러>. 역시 <에이미>를 발견하고 <에이미>가 있는 건물로 숨어들었다. 처음 사람을 쏘아 죽이고 당황해 하며 방심하고 있던 <에이미>는 그만 악당 <밀러>에게 사로잡혀 인질이 되고 만다. <에이미>의 비명을 들은 <케인>은 사태를 직감하고 숨어있던 건물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게 되고, 반항하는 <에이미>를 방패삼아 총을 겨눈 <밀러>와 마주서게 된다.
<에이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총을 내려 버린 <케인>.
그를 향해 막 <밀러>가 총을 쏘려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이제 남편이 악당의 총탄에 쓰러질 차례였다. 이 절박한 순간에 사랑스러운 여인 <에이미>는, 그러나 앙칼진 여인이 된 <에이미>는 그만 돌아서서 필사적으로 악당 <밀러>의 얼굴을 할퀴어 버린다.
얼굴을 감싸 쥐는 <밀러>. 순간적으로 케인의 권총이 불을 뿜고........ 마지막 남은 악당 <밀러가> 천천히 쓰러져 죽는다. 떠나던 여인 <에이미>는 다시 돌아와, 결국 두 번씩이나 정랑 <케인>의 목숨을 구한다.
마지막 장면.
결투가 끝나고 나서 두 사람은 뜨거운 포옹을 하는데....... 숨어있던 어리석은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지만 두 사람은 이들을 외면한다. 그리고는 <케인>을 도와 함께 싸우겠다던 외눈박이 노인과 열여섯 살의 소년(케인은 이들의 결투 가담을 거절했었다)이 몰아다 준 마차를 타고 마을을 등진 채 미련 없이 떠나간다.
실재로 흐른 시간과 영화가 상연된 시간의 절묘한 일치가 묘한 현실감을 더해 준다.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도망을 생각하기도 하였고, 믿었던 친구와 마을사람들의 배신에 분노를 느끼기도 한 <케인>이었지만, 그는 결코 자신에게 돌아 온 쓴잔을 회피하려하지 않았다. 그는 악당들과의 결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아니 그의 아내 <에이미>조차도 여러 명을 상대로 하는 결투에서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야 할 죽음의 길로 두려움과 분노와 고독을 함께 짊어지고 처연하게 걸어간다. 그러한 그의 고뇌하는 고독한 눈빛은 가히 일품이라 하고 싶다.
인간들이 잔혹한 폭력 앞에 어떻게 무력해 지며, 어떻게 비굴해 질 수 있는지도 이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디미트리 티옴킨>의 영화주제곡도 일품이다.
영화가 시작된 후부터 계속되는 테마음악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폭발할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이 음악은 오랫동안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전파를 타고 흐른다.
액션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도, 아직 이 영화를 못 본 사람들에게도 모두 권해주고 싶은 영화다. 어쩌면 비디오 대여점 같은 데를 찾아가면 영화테이프나 DVD도 구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첫댓글 몇번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테마음악 또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명곡이라 생각하구요.
어릴적 세인 또한 감명 깊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모처럼 서부극을 접하게 해 주셔서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세한 스토리까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