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정희는 단칸 월세 방을 얻을 마음을 결정하고 부모님께 상의하기로 한다. 어차피 집에서도 먼 거리의 직장이다. 교통비가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감당을 하지 못할 것도 없다. 정희는 조금 일찍 퇴근을 해서 부모님이 계신 시장으로 간다. 거의 파장이 되는 시장이지만 늘 늦게까지 남아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하는 부모님은 가게를 닫지 않고 있다. 모든 야채들은 오늘이 지나고 나면 신선하고 싱싱함이 사라져 모든 것을 패기처분 해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더 팔겠다는 생각이다. “네가 집으로 안가고 여기엔 웬일이냐?” 김영아는 늦은 시간에 시장으로 온 정희를 보며 하는 말이다. “엄마! 상의 드릴 것이 있어서요.“ ”무슨 급한 일이기에 이 시간에 여기를 와서 그래?“ ”집에서는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잖아요.“ ”무슨 말인지 해 보거라!“ 두 모녀가 이야기를 나누게 유영기는 손님을 맞이하며 조금 더 싼 값으로 물건을 팔고 있다. “엄마! 나, 방을 얻어서 따로 나가려고 하는데..........“ ”뭐라고? 방을 얻어서 따로 나간다고?“ ”네! 방이 두 개뿐이라서 집에 와서 연습할 공간도 없고 이제는 부모님하고 같은 방을 쓰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방이 세 개짜리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 공연히 마음 들뜨지 말고 조금만 참고 기다려!“ “엄마! 어차피 마음을 결정한 일이에요.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영아는 정희를 바라본다. 딸의 마음을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참지 못하고 부부생활을 하는 자신들이다. 이제 다 큰 딸이 그것을 왜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싶다. “엄마, 도움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나가겠습니다.“ ”정희야!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다.“ 두 모녀의 말을 듣고 있던 유영기가 나서서 말을 한다. “부모로서 자식들을 편안하게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제 너도 어엿한 직장이 있으니 네 말대로 독립을 해 나가는 것도 그리 나쁘다는 생각이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가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니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여보! 아직 어린 정희가 어떻게 집을 나가서 살 수 있겠어요?“ 김영아는 남편의 말에 펄쩍 뛴다. “나이 이십이면 제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나이요. 어차피 직장생활을 하느라 동생들이고 집안 살림이고 하지 못하고 있으니 제 나름대로 개척을 해 나가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 싶소.“ ”아빠! 고맙습니다. 걱정시켜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유영기는 정희가 독립을 한다는 것에 반대할 마음이 없다. 어차피 다 큰 자식은 제 나름대로 독립을 해서 살아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유영기다. 정희는 미용실 근방에 방을 얻는다. 작지만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 자체로서도 정희는 행복감을 느낀다. 정희의 이사 날짜가 정해지자 김영아는 그런 딸을 위해서 이것저것을 준비하면서 가슴이 아파온다. 당장 들어가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준비해 준다. “뭘 그렇게 사들여?” 시간이 나면 시장을 돌면서 한 가지씩 사 들고 오는 아내를 보며 유영기는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혼자라도 덮고 잘 것과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준비를 해 줘야지요. 고아도 아니고 부모가 살아있는데 모른 척을 할 수는 없지요.“ ”제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그러나 김영아는 남편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다. 정희는 그런 엄마의 마음이 고맙다. 그렇게 정희는 따로 독립을 해 나간다. 누나가 그렇게 나가고 나자 정원이는 더욱 부엌일에 신경을 쓴다. 이제 자신들의 끼니는 자신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부엌일을 해 나가고 있는 정원이다. 사내아이 같지 않고 그런 일들을 좋아하고 즐겨하는 정원이다. 공부도 그다지 싫증을 내지 않고 있지만 성적은 그저 평범하다. 중간정도의 실력이 정원이가 최대한 노력을 하는 성적이다. 정원이는 작은 형 정만이처럼 공부에 대한 욕심은 없다. 모든 것이 그저 적당히 하면 된다는 생각이 바로 정원이의 성격이다. 정원이 밑으로 정민이는 둘째 형의 성품을 닮아서 그런지 공부를 썩 잘하고 많은 노력을 하는 성품이다. 그러나 정길이 역시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고 장난이 심하다. 공부하기 보다는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형들의 눈치를 보며 밖으로 놀러 나가기를 즐겨하는 장난꾸러기다. 이제 아이들은 제 각각의 성품대로 하루하루를 지낸다. 누구 하나 나무라는 사람도 없다.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들은 제 각각의 성품대로 시간을 보내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부부는 그것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려는 생각으 로 억척스럽게 일을 해 나간다. 학교를 갔다 와서 정길이는 가방을 방안으로 내 던지고 밖으로 나간다. “막내오빠! 숙제를 해야지. 그러다가 둘째 오빠한테 혼난다.“ 집을 나가는 정길이를 보며 정선이가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정길이는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듯 그대로 밖으로 나간다. 이제 정선이도 학교에 입학을 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런 정선이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엇보다 숙제를 먼저 해 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막내 오빠는 늘 둘째 오빠에게 혼이 나곤 한다. 숙제도 해 놓지 않고 늦게까지 나가서 놀기 때문에 둘째 오빠에게 혼이 나는 막내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매일 혼나면서도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또 나가서 노는 막내오빠다. 정선은 그런 막내오빠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숙제를 다 해놓고 나가도 얼마든지 놀 수가 있는데 왜 그러지 않고 매일 둘째오빠에게 혼나고 그러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정선은 막내오빠를 찾으러 나간다. 또 다시 혼나고 울고 있는 오빠의 모습이 안쓰럽기 때문에 찾아서 데리고 올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선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정길이 오빠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를 갔지?” 동네를 몇 바퀴를 돌아도 정길이 오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또 혼나고 울려고 그러지.” 정선은 그대로 집으로 간다. 아무리 찾아도 볼 수가 없는 정길이 오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선아!” 이모의 음성이 들린다. 정선은 뒤를 돌아본다. “이모!” 이모 모습을 보자 정선은 반가움에 달려간다. “왜 나와 있었어?” “이모, 정길이 오빠가 숙제를 하지 않고 또 나갔어요. 그래서 찾으려고 나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요.“ ”그랬구나! 우리 정선이가 정길이 혼나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네! 숙제를 해 놓으면 혼나지 않아도 되는데 맨날 숙제도 하지 않고 나가서 놀기만 하니까 정만이 오빠한테 많이 혼나고 울고 그래요.“ ”그래, 정길이가 참 바보다. 어서 들어가자.“ 영숙은 한손 가득 들려진 보따리를 힘겹게 들고 온 것이다. 모두 시장에 들려서 가지고 온 것이다. 아이들의 반찬을 해 놓기 위해서 동생 집으로 온 영숙이다. 정희가 독립을 해서 나갔어도 그런대로 정원이가 곧잘 해 나가고 있기에 밥을 굶지 않고 있는 것이 대견스럽다. 그러나 집안은 엉망이다. 아이들이 벗어 놓은 빨래하며 흐트러지고 지저분한 집안이 정신이 없다. 영숙은 우선 집안을 청소한다. 정선이 또한 이모를 도와 집안 청소를 거든다. 집안 청소를 다 해놓고 나서 가져온 보따리를 풀러 재료들을 꺼낸다. 모처럼 아이들을 위해서 고등어를 사 보낸 영아다. 영숙은 생물 고등어를 무를 많이 넣어서 얼큰하게 고등어조림을 한다. 아이들이 모두 얼큰하고 매운 것을 잘 먹는다. 쌀을 씻어서 밥솥에 앉혀놓고 빨래 감들을 모두 거두어 한보따리를 만든다. 세탁기가 없는 동생네다. 손빨래는 시간이 많이 가고 힘이 들기에 한 보따리 만들어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는 영숙이다. 영숙이 모든 것을 끝내고 막가려고 하는데 정원이가 학교에서 돌아온다. “이모 오셨어요?” “그래, 마침 정원이가 잘 왔구나! 이모가 반찬도 해 놓고 고등어조림을 해 놓았으니까 밥솥에 전기만 꽂으면 된다. 저녁을 먹고 엄마 아빠한테도 가져다 드릴 수 있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원이는 고등어조림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인다. 유난히 생선을 좋아하는 정원이다. 정원이는 냄비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아본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통해서 온 몸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그럼 이모는 간다.” “네, 안녕히 가십시오.” 영숙은 빨래 감을 가지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사내 녀석들만 있는 집이라 청소를 해 놓아도 금방 어질러지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모두 서로 돕고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다만 큰조카인 정우가 늘 집에 붙어 있지 않아 그것이 안쓰러울 뿐이지만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정우만 제대로 살아간다면 그런대로 걱정 없이 살아가는 동생네가 아닌가? 시골에서 살아 갈 때와는 달리 아이들 모두 살집이 오르고 인물 또한 훤하게 살아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서울로 올라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영숙은 정우가 걱정스럽다. 글: 일향 이봉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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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