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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피부미용실
안유환
3월 중순, 바깥은 봄기운이 무르익어가고 있지만 밤새 비워둔 피부 미용실은 겨울들판처럼 썰렁하다. 여느 때 같으면 들어오자마자 간이침대의 전기장판 스위치를 넣을 것이지만 온풍기만 틀었다. 복순이 이달 말이면 마사지실 문을 닫는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알린지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엊그제 이번주간에는 한의원 쪽 내벽을 허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통보도 받았다. 곧 그만둔다는 것을 알고도 손님들은 여전히 예약된 시간에 마사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오직 남자손님 한사람만은 오늘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터 혜영의 미용실에 커트를 하러오는 사람이다. 말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듯 복순은 소식이 없으니 그가 더욱 보고 싶어졌다.
“남자손님 한분이 피부 마사지를 받고 싶다는데-.”
혜영이 샛문을 열고 들어와 복순에게 물었다. 비좁은 마사지실 형편을 알지만 한사람이라도 고객을 더 늘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쎄-.”
복순은 망설이며 대답을 했다. 복순의 마사지실에는 남자를 위한 방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복순은 틈틈이 읽고 있던《엄마를 부탁해》를 탁자위에 엎으며 혜영의 말을 받았다. 남자는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혜영을 뒤따라 들어왔다. 예술가 타입의 헤어스타일에 푸근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한 친밀감을 지녔다. 얼핏 학교 선생님 같은 그의 인상에는 어울리지 않게 얼굴은 검게 그을려있었다. 첫눈에 보아도 이 지방 사람은 아니었다. 혜영은 복순의 애매한 대답을 허락한 것으로 알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민 성욱 입니다.”
남자는 가볍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남자분 마사지는 이른 시간에만 가능한데요.”
복순은 자기도 모르게 남자손님에게 약간 퉁명스런 어조를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면······?”
민성욱은 의자에 앉으며 무엇 때문인지 그 이유를 묻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남자손님만을 위한 방이 따로 없습니다.”
복순은 오전10시 30분 이후부터 여자들이 이용하는 마사지실의 형편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몇 시부터 가능합니까?”
“오전9시면 너무 이른가요?”
“저는 괜찮습니다만-.”
민성욱은 매주 월요일 아침 9시부터 얼굴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어떻게 ‘들길 미용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복순은 그가 혜영의 미용실에 오게 된 동기를 물었다.
“마음에 드는 이발소를 찾다보니 마침내 미용실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여자들만이 아닌 것 같다. 남자들도 한곳을 정하면 언제까지나 그 이발소를 이용하지만 멀리 이사를 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서울에 살던 민성욱은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마산 교외로 귀농을 했다. 이사를 하면 여자들이 미용실을 먼저 찾듯 남자들은 이발소를 찾는다. 대부분의 이발사들은 자기 나름의 틀에 매여 처음 오는 손님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 민성욱은 두어 차례 이발을 해보았지만 마음에 맞는 이발소가 없었다. 그다음엔 목욕탕에서 커트를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미용실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만족하지는 않지만 들길 미용실의 커트 솜씨는 그가 바라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여자 분들이 모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헤어스타일 덕이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민성욱은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는 것을 변명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남자처럼 머리를 깎는다면 여자의 매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요.”
복순은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책을 좋아하시는가 보지요?”
복순이 읽다 엎어놓은 책 표지에 눈길을 주며 민성욱은 말했다.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오래도록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에는 관심이 가드군요.”
“저도 집사람이 읽는 것을 몇 페이지 넘겨본 적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 평생을 고생하신 부모님들이 부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요. 게다가 갈수록 노인치매가 늘어난다고 하니.”
“저는 부모님이 계시는 분들을 보면 늘 부러울 뿐입니다.”
복순은 한 달째 아무런 소식이 없는 민성욱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젠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
혜영이 미용실 샛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무슨 다른 결정이 있겠나.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지.”
복순은 벽 쪽으로 밀쳐져있던 의자를 끌어당겨주며 대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젠 우리도 그만할 때가 되었잖아. 나는 이번주간에는 아예 손님을 받지 않기로 했어. 그런데 넌 왜 언제까지 계속할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없긴 왜 없어. 늘 오시는 손님들에게는 일일이 사정을 얘기했지. 다만 오랜 고객을 그대로 길거리로 내몰 수가 없어 내가 좋은 곳을 안내해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을 뿐이야.”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요즘은 통 얼굴을 볼 수가 없네.”
복순은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민성욱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우리 집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커트를 할 때도 지났는데.”
민성욱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혜영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그분에게만 연락이 닿으면 내일이라도 문을 닫고 싶은데-.”
복순은 속마음을 감추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뭐 밀린 돈이라도 있는가?”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던 사람이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복순과 혜영은 ‘민성욱’이란 이름 외에는 그의 주소도 전화번호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분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순 없잖아.”
“혹시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갔을까?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는지 염려도 되고······.”
복순은 전기주전자의 코드를 꽂으면서 걱정스레 대답했다.
“귀농을 했는데 그렇게 쉬 떠나지는 않겠지. 이사를 하면 한다는 말이 있을 텐데.”
혜영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연락처라도 알아놓으면 좋았을 것을······.”
복순은 커피를 따루었다.
“그분은 내게도 전화번호나 주소를 남겨주지 않았어.”
혜영은 그가 스스로 밝히지 않는 것을 억지로 물어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똑같은 옛날 사람들이야. 흘러간 시대-. 요즘 사람들 같으면 열차나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아서 잠시만 얘기를 나누어도 전화번호를 교환한다는데-.”
혜영은 아직 5학년 8반이고 복순은 5학년 9반이었다.
“그러니 이제 조용히 멍에를 내려놓을 때가 된 거야. 아무리 마음은 청춘 같아도 세월을 거슬러 살 수는 없는 것이지.”
복순과 혜영은 지난날을 회고하듯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시계는 열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혜영은 복순의 오랜 친구이다. 오래전 부산역이 중앙동에 위치할 때 복순은 역 맞은편에서 미용실을 열고 있던 이모 일을 도왔다. 그때는 요즘처럼 피부 관리실이 따로 없었다. 머리를 손질하러오는 사람들의 요청이 있으면 주문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복순은 밀양에서 유복한 가정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결혼한 지 3년이나 기다려 얻는 딸의 이름을 ‘복순’이라 지었다. 복순은 금이야 옥이야, 귀염을 듬뿍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죽은 뒤에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순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첫돌 지난 4촌 남아를 양자로 맞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순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복순의 불행은 1년 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어린 동생을 기르기 위해 친척들의 소개로 계모를 맞아들였다. 진영이 고향이라는 계모는 다행히 아기는 잘 보살폈지만 복순에 대한 구박은 심했다. 아침밥을 제때에 해주지 않아 밥을 못 먹고 학교에 갈 때가 많았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학교까지 도시락을 들고 오기도 했다. 계모가 도시락을 싸주었던 것은 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복순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복순에게 남아있는 것은 어머니가 남기고 간 패물상자. 그 속에는 당시 시골에서는 흔치 않았던 다이아반지, 금목걸이 등 귀금속이 들어있었다. 아버지는 6개월간 병석에 있을 때 복순에게 패물상자를 내어주며 결혼할 때까지 잘 보관하도록 일러주었다. 복순은 그 패물을 자기방의 장롱 속에 깊이 간직해두었다. 그러나 복순이 이모 집으로 갈 때 패물상자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계모와 살면서 복순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계모는 네 살이 된 동생에게는 신경을 쓰고 있었으나 복순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설거지와 청소까지 다 시키면서도 복순의 머리 한번 감겨주지 않았다. 부산에 살던 이모가 한 번씩 다니러오면 머리의 이를 잡아주고 공중탕에 데려가 목욕을 시켜주었다. 부모에게 그처럼 귀염둥이였던 복순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중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가문의 몰락으로 인한 가난은 둑이 터지는 것처럼 그렇게 복순에게 밀려왔다. 여자 아이는 자기이름자만 쓰면 되고 남자는 끝까지 공부시켜야한다는 생각이 남아있는 시골이었기 때문이다. 복순은 아무에게도 그 설움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복순은 어머니가 즐겨 읽던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공부를 더하고 싶어 했으나 그것은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 삼촌이 있었지만 양아들이 된 복순의 동생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복순아, 내가 하는 일도 좀 도와주고 우리집에 가서 살자.”
어느 해 추석에 밀양에 들렸던 이모가 말했다. 복순은 이미 삼촌과도 이야기를 다 끝낸 줄을 나중에 알았다. 삼촌은 자기가 보살펴주지 못하는 조카를 이모가 돌보아 주겠다니 쉽게 동의를 한 것이다. 그때부터 복순은 이모의 집안일을 도우며 살았다. 복순은 혜영을 이모의 미용실에서 만났다. 혜영은 복순이 보다 먼저 이모 미용실의 시다바리로 일하고 있었다. 복순은 혜영을 돕기도 하고 이모가 시키는 대로 곡물팩으로 얼굴마사지를 하는 법을 익혔다. 요즘처럼 많은 고객은 없었지만 이모는 앞으로 피부마사지 수요가 점차 늘어날 것을 내다보고 틈틈이 복순에게 가르쳐 주었다. 복순은 혜영과 함께 서로의 어려운 처지를 털어놓으며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나저나 하던 일을 그만두면 무얼 하며 소일하려나?”
복순이 혜영에게 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돈과 시간밖에 없잖아. 올가을에는 북유럽을 여행해보고 싶어.”
혜영은 틈나는 대로 남편과 함께 해외여행을 했었다.
“나는 사실 건강만 허락하면 하던 일을 좀 더 계속하고 싶지만 이제 몸이 무리가 되는 것 같아. 몸을 굽힌 자세로 오래도록 일하다보니 허리가 아파 못 견디겠어. 지난달 서울 외손주 백일에 갔다가 딸의 권유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았어.”
“결과가 뭐라고 나왔어?”
혜영이 다그쳐 물었다.
“몸이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척추협착증입니다.”
복순은 의사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복순은 미련함을 책망하는 의사의 말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치료방법을 물어보았다.
“이제 약물치료로는 어렵습니다. 수술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데요?” 옆에 있던 복순의 딸이 물었다.
“적어도 6개월 동안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다 낫고도 무리하게 허리를 쓰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순은 달포 전에 진단을 받았지만 혼자서 일하다보니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복순은 마사지실 운영문제가 마무리되면 치료를 받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마사지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김해언니’가 들어왔다. 마사지실을 그만둔다는 말은 벌써부터 들었지만 그녀는 오늘도 복순을 찾아온 것이다.
“동생이 그만두면 난 어디서 마사지를 받을까.”
올해 일흔인 김해언니는 눈물을 짜면서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녀는 서른다섯 살 때부터 복순과 인연을 맺었다. 복순은 결혼하고 6개월도 안되어 피부 미용실을 열었다. 복순은 결혼하면 수년 동안 해오던 피부마사지를 그만두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집안 살림을 살뜰히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번듯한 차림새와 외모에 이끌려 회사원이라는 말만 듣고 결혼을 한 것이 복순의 꿈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어버렸다. 남편은 친구들이 많았으나 술과 노름에 빠져있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집안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복순은 부지런히 일해 남편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이모의 도움으로 김해 부원동에 조그만 마사지실을 열었을 때부터 김해언니는 오늘까지 사십년 가까이 단골이 되어온 것이다. 그동안 복순은 주변환경이 변하면서 다섯 번이나 장소를 옮겼다. 김해언니는 세 번이나 이사를 했지만 창원의 여러 피부 미용실을 지나 마산 상남동까지 복순을 찾아왔었다.
복순은 단지 마사지만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자들마다 어찌 그렇게도 어렵고 답답한 사정이 많은지. 고부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부부간의 갈등, 심지어 기대를 걸었던 자녀들에게도 외면을 당하면서 여인들은 모두가 속으로 울고 있었다. 복순은 시간 나는 대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클렌징을 해줄 때는 자기 얘기를 하기도 했다. 말 한마디라도 살갑게 해 줄줄 모르고 아내를 시종처럼 부려먹던 남편의 흉을 털어놓았다. 그때마다 복순은 하늘나라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남편의 귀가 몹시 가려울 것이란 생각을 하며 남몰래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엉긴 것을 풀어내는 복순은 가슴이 후련했고, 이야기를 듣는 고객은 자기들의 삶에 비추어 위로를 받기도 했다. 복순은 읽은 책이나 신문에서 얻은 생활의 지혜를 나누어주기도 하고, 질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의사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마사지실에 들르는 고객들 한사람, 한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음이 따뜻한 복순에게 생활의 지혜로 쌓인 것이다. 복순과 고객은 이렇게 가족친지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너무 서운해 하지마세요. 안 그래도 자기 손님들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요즘은 여기저기 직접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고 있답니다.”
혜영이 옆에서 보다 못해 눈물을 짜고 있는 김해언니를 위로했다.
“그래요. 엊그제 저녁때는 멀지않은 시장통 K마사지실에 들려 마사지를 받아보았어요. 피부손질도 문제지만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었어요. 주인아줌마와 고객들의 주고받는 얘기가 술 마시고 고스톱 치는 얘기, 시시껄렁한 주간지 얘기를 늘어놓는 것을 보고 이집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니까.”
복순도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 시간에 특별히 송별파티는 못 열어도 함께 점심이나 시켜먹지.”
김해언니가 안경에 묻은 눈물자국을 닦으며 말했다.
셋이서 짜장면을 시켜먹고 있는데 출입문에서 노크소리가 났다. 혜영이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기다리던 민성욱이 환하게 웃으며 서있었다.
“어머, 오셨군요. 오랜만입니다.”
복순은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오늘은 일하지 않습니까? 아무도 없네요.”
민성욱은 짐짓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 있지 않습니까.”
복순은 혜영과 김해언니를 가르치며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무 연락도 없으시고, 소문도 없이 이사 가신 줄 알았어요.”
혜영이 그간의 안부를 물었다.
“귀농협회가 주관한 일본 농업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일본 농촌은 참으로 부러운 것이 많았어요. 우리농촌은 한꺼번에 대량으로 농산물을 재배하여 값이 폭락하고 무·배추를 갈아엎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요. 일본은 작은 하우스에서 오이와 각종 채소류를 조금씩 가꾸고 있었습니다. 대량으로 재배해서 도매로 출하하는 것이 아니라 소량으로 심어 1년 내내 거두면서 직거래로 값도 제대로 받고 있었습니다. 직접 유기농으로 기른 채소를 가지고 가공하는 현장도 둘러보았습니다. 농가에서 배추나 무를 절이는 시설이 되어있어서 수요공급을 조절하는데도 별로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기른 농산물을 투자조합으로 가지고 와서 소포장으로 진열하여 판매하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농촌인데도 거리와 농가들이 너무도 깨끗하여 정말 부러웠습니다.”
민성욱은 신나게 일본 농촌 얘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우리나라 경우는 어떻습니까? 귀농하신 분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고 하던데요.”
복순은 요즘의 귀농에 대해 물었다.
“많은 투자를 하고 농촌에 들어왔는데도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보다 1년 뒤에 들어온 당산골 K씨는 이태동안 부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판로를 찾지 못해 고생했습니다. 배추나 고추, 양파는 친척이나 이웃들에게 나눠주기 바빴지요. 올봄부터 그는 농장은 아내에게 맡기고 덤프트럭으로 댐 공사 일을 하면서 생활을 꾸리고 있습니다. 귀농의 현실이지요.”
민성욱은 창밖의 푸른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로스쿨 변호사였지만 로펌의 현실에 실망을 느끼고 아내를 설득하여 5년 전에 귀농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아이들의 생활도 돌볼 겸 동료모임에 참석하기위해 서울을 다녀와야 했다. 귀농 후 해를 거듭하면서 일을 하나보니 얼굴도 검게 타고 피부노화도 빠르게 나타났다. 3년쯤 지나자 흰 머리카락도 나오기 시작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아내와 함께 길에 나서면 얼핏 아버지와 딸이 함께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성욱은 아내의 청을 계속 거절할 수 없어 머리 염색도 하고 피부마사지까지 받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선생님 농장은 잘 되어가고 있습니까?”
혜영이 민성욱에게 물었다.
“문제가 많습니다. 내가 연수를 떠난 뒤 한주일 동안은 농장이 그대로 방치되어있었어요. 아내는 갑자기 몸이 아파 서울에서 한 달째 입원을 하고 있고, 나도 없으니 인부들이 일을 못했습니다. 아내에게 귀농을 설득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건강마저 좋지 않으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은 농장을 정리하고 하우스를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이발도 할 겸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동안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아직도 우리농장을 외부에 드러내놓기는 때 이른 것 같아 되도록이면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있습니다. 허허.”
많은 공부를 하고도 현실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이 혜영과 복순은 안쓰러웠다. 이제 짐을 내려놓으려는 때를 맞은 혜영과 복순에게는 민성욱이 메고 있는 멍에가 너무도 힘들어 보였다. 복순은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액자를 쳐다보았다. 액자에 적힌 글은 복순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말씀이다. 복순은 그 말씀을 민 씨에게 전해주고 싶었으나 드러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수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네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벼움이니라.”(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복순은 어려울 때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다. 견디기 어려웠던 결혼생활도, 계약이 잘못되어 빈손으로 마사지 실을 내어주어야 할 처지에서도 하나님은 마침내 길을 열어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야기가 잠시 멈춘 동안 김해언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해언니가 돌아가자 혜영이 민성욱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미용실도 마사지실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민성욱은 친구를 통해 미용실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은 일본에서 귀국하던 다음날 건축자재상을 하는 친구로부터 한의원 확장 소식과 조만간 미용실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나왔습니다.”
미용실과 피부 마사지실이 있는 2층 건물 반대편 절반은 한의원이 물리치료실로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한의원은 환자들보다는 물리치료실의 마사지를 위해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물리치료실의 수요도 그만큼 늘어났다. 한의원 측은 옆에 있는 미용실과 피부 마사지실을 흡수하여 물리치료실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마산으로 내려와서 이발할 곳을 찾느라 한동안 헤매었는데 이제 또 어디에서 이발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민성욱은 덥수룩한 머리를 왼손으로 걷어 올리며 서운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이발할 곳은 제가 안내해드리지요. 마사지실도 단골손님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좋은 집을 찾고 있는 중이니까요.”
혜영이 대답했다.
“단골손님을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은 디지털마사지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직접 받아본 적이 있는데 푸근한 맛은 없는 것 같았어요.”
복순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오늘은 민 선생님에게 특별히 기념이발은 해드려야 겠네요.”
혜영이 민성욱을 쳐다보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이발부터 하고 송별파티라도 합시다.”
민성욱은 혜영을 따라 미용실로 들어갔다.
“이발을 하고나면 저도 기념으로 마사지를 해드리겠습니다.”
복순은 민성욱의 등 뒤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복순은 그가 커트를 하고나면 거칠어진 그의 얼굴을 마사지하며 축 처진 어깨도 마음껏 주물러주고 싶었다. 복순은 검은깨와 들깨가루를 걸쭉하게 개어 곡물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남성의 거칠어진 피부에 보습과 영양을 공급하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복순은 민성욱의 얼굴을 매만질 때마다 자주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허우대가 멀쩡한 남편에게 아내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복순은 초등학교 때 부모를 다 잃었고, 하나뿐인 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그는 복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줄 몰랐다. 어쩌면 견딜 수 없는 위암말기의 통증이 그의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을 떠나보낸 복순에게 슬픔은 남아있지 않았다. 오래도록 울고 난 사람의 눈물이 마르듯 그에게 슬픔은 말라있었다. 남편과의 이별은 마치 나뭇가지에 앉았던 메추리 한 마리가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복순의 가슴은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 같았다. 그녀는 뜻밖에 민성욱을 대하게 되면서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남편을 자주 떠올렸다. 민성욱은 월요일 아침 9시 마사지 시간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시간이 끝나면 환한 미소를 남겨놓고 돌아갔다. 계절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찾아오지만 민 씨에게는 언제나 봄이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때때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복순의 텅 빈 가슴은 민 씨의 부드러운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복순이 그를 위해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순은 민성욱을 위한 기념 마사지 준비를 해놓고 미용실의 커트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갑자기 한의원 쪽에서 쿵, 쿵, 내벽을 허물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멍 난 복순의 가슴도 함께 쿵, 쿵, 울리고 있었다.
안유환 : 계간《한국동서문학》소설등단. 월간《수필문학》천료. 계간《문예한국》시 신인상. 부산문인협회 회원. 전 부산일보 기자·크리스천문인협회 회장. 시집『그림자의 귀향』, 수필집『마음을 건드리는 노래』, 에세이『발틱해의 일출』등. <광나루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