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도 이제는 선택
이영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기에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누구나가 다 행복하게 살아가진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주관이 분명하고 이기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위한 삶에 적극적인 투자와 더불어 진취적인 삶을 살아간다. 오죽하면 욜로족이란 신조어를 탄생시켰을까.
욜로(YOLO)족이란,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의 약자로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보다는 현재를 즐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이다.
반면에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대의 주춧돌 역할을 감당했고 가장 존중받아 마땅하고 행복을 누려야 할 베이비부머 세대인 육십 대와 이전 세대를 보면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다 보니 방법을 모르기도 하고 또한 스스로 고착화된 관계성의 틀에 갇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는 올무에 갇혀 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게 된다.
특별히 현장에서 보게 되는 베이비부머 세대 내담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어느 정도 생활의 안정과 쉼을 통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미처 준비되지 못한 채 맞게 된 배우자의 가정으로의 진입(정년퇴직 등)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와 자녀들이 떠나며 느끼게 되는 빈 둥지 증후군 속에서 겪게 되는 심리적 박탈감, 그로 인해 생성되는 갈등으로 인해 황혼이혼이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요즘엔 졸혼이란 단어가 잠잠해졌지만 몇 년 전 연기자 백일섭 씨의 졸혼선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일이 있다.
가타부타 편 가르기 할 생각은 없지만 어찌 보면 남자보다는 여자 쪽에서 졸혼에 관한 문제를 먼저 제기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품어보게 된다.
어찌하든 이제는 인권 차원을 넘어 한 개인의 행복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임에 분명하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행복이 곧 모두의 행복을 좌우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졸혼이란 문제는 사회적 이슈 이전에 개인의 행복추구권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임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
육십을 갓 넘긴 내담자가 있었는데 일반적 시각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형편의 환경과 기본적인 경제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삶에 대한 의욕도 없고 무기력증에 빠져 숨 쉬고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고 문제인 것은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끝없는 자존감의 추락을 겪고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많은 형제자매 가운데 맏이로 힘들게 성장했는데 결혼해서도 남편이 둘째임에도 장남의 역할을 해야하는 형편에 놓이다 보니 가족들을 위한 희생과 아들, 딸 남매의 뒷바라지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돌아보니 정작 자신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불쌍한 한 여자만 보인다며 울분과 분노의 쓴뿌리로 마음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선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며 신뢰(rapport)를 형성한 후 몇 번의 마음 나누기를 통해 한결 밝아지고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찾아가는 변화를 보며 너무나 감사했다.
행복을 선택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에 의존하는 것만이 아닌,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과감하게 깨뜨릴 수 있는 자신의 의지적 결단이 필요하다. 차츰 안정을 찾으며 조금씩 변해가는 내담자에게 조언했던 부분은 남편과 자녀들에게 너무 기대지 말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당당해져 볼 것과 ‘착한 사람 증후군’의 껍질을 깨버린다고 해서 일탈을 하는 게 아님을 주지 시켜 주었고 나 또한 내담자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잊고 있던 자신을 위한 삶을 향해 서툰 첫걸음을 내딛는 일에 용기를 낸 내담자를 위해 기꺼이 미술관 나들이의 동행이 되어 주었다.
켜켜이 쌓아 올렸던 분노를 덜어 내는 일에 한 발 내딛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며 제시했더 것은 무슨 일이든 절대 늦었다는 생각을 버리고 쉽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떠하겠느냐는 제안을 처음엔 망설였지만 적극적인 참여로 자신을 찾아 가는 모습을 보며 보람도 느꼈고 눈물겹도록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행복도 선택이다.
도래한 백세시대를 살아가야 하니 절대 늦은게 아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굳이 내담자뿐만이 아니라 삶의 터닝포인트를 돌아선 이들 중 방황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것. 다름 아닌 지역의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강좌들을 수강해 보기를 꼭 추천하고 싶다. 일반 학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수강료와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들을 통해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할 수도 있고 취미를 떠나 전문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잊고 있던 꿈을 따라가는 안전한 디딤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한가 불행한가가결정 되는 것이다.
행복도 습관화 해 발전시키면 생활은 잔치의 연속이 될 것이고 나날이 즐거워 지리라”
노먼V. 필의 <적극적 사고방식> 중에서
최고의 생일 밥상
남편은 추석 다음날이 생일이라서 그나마 덜 불편한데 내 생일은 구정 명절이 지나고 나흘 째 되는 날이기에 나는 괜찮지만 가족들에게는 불편하고 좀 애매한 편이다.
올 해도 어김없이 아들의 출근과 손자 녀석의 등교 때문에 설 명절 다음날에 앞당겨 축하를 받으며 식사를 했기 때문에 부모님도 뵐 겸 친정집에 내려갔다.
일도 있고 저녁식사 후 올라올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서운해하시는 모습에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며 하룻밤 자고 새벽에 올라가자고 남편이 먼저 말을 해주니 얼마나 고맙던지...
평상시엔 아홉 시 반이 어머니의 취침시간이신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정이 다 되어 잠들었다. 어느 순간 잠결에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에 눈을 떠 보니 어머니가 주방에 계신 게 아닌가. 순간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두 시 이십 분,
세상에나 아침이 오려면 아직도 먼 한밤중에 일어나셔서 밥을 안치시고 미역국을 끓이시고 계셨던 게다. 일어나는 내게 더 자라고 하시는 어머니. 아침밥을 챙겨 먹고 가게 하시려고 잠을 안 주무시고 밥을 짓고 계신 모습에 명치끝을 훅 치고 올라오는 울컥함에 목이 메었다.
요즘 시대야 차고 넘치는 것이 입고 먹을 것이지만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를 기억해보면 밥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참 많았었다.
어머니께서는 꼭 그분들을 대문 안으로 불러들이시고 때론 마루에 상까지 차려 내시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한 때는 사촌들과 삼촌 두 분까지, 수시로 드나드는 식솔들까지 이십여 명에 달할 때도 있는 대가족의 맏며느리 역할을 하시느라 무던히도 고생하셨다. 어린 날 비위가 약하고 철이 없던 나는 추레한 모습에 악취까지 풍기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어머니께 그냥 밖에서 주시면 되지 안에까지 들어오게 하시느냐고 불평을 하기도 했었다.
일찍이 홀로 되신 할아버지를 잘 섬기시고 작은 것도 나누며 어려운 이웃을 챙기고 보듬으시며 우리 일곱 남매를 반듯하게 키워 내신 자랑스러운 우리 어머니.
효부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시며 삶으로 본을 보이시던 우리 어머니, 그 산 같던 어머니가 이젠 팔십 중반을 눈앞에 둔 연로하신 모습임에도 아직까지 자식들을 내려 놓지 못하고 등에 업고 계시다. 중간에 교통사고로 인한 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불편함을 겪으시면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주시고 자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신 내 사랑하는 어머니.
존경하는 아버지와 함께 더도 말고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도 어느덧 어머니와 같이 나이를 더해 가며 육십을 넘긴 할머니가 되어 생각지도 못한 연로하신 내 어머니로부터 받은 소박한 회갑의 생일 밥상은 평생 잊지못할 눈물겹도록 고맙고 감사한 최고의 생일 밥상이 아닐까...
*산 같으시던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는 2020년 11월 88세로, 아버지는 올 2월 91세를 일기로 세상여행을 마치시고 본향에 오르셨습니다. 두 분을 향한 그리움에 여러 해 전의 일기를 꺼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