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자의 비유1(빌립보서 3:12-14, 디메데후서 4:-7-8)
24년8월4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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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올림픽에 48년 만에 최소 인원(선수 144명)을 내보낸 대한민국 선수단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기막힌 반등으로 12년 만의 최대 성과를 앞뒀다.
우리나라는 개막 후 여드레째인 3일(현지시간) 현재 금메달 9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해 메달 순위 6위를 질주했다.
10년20년 ...연습하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영광의 메달 고생의메달 ...
우리역시 믿음생활하면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딤후4장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
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
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빌립보서 3장에 기록된 본문의 말씀 역시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자기가
바라는 바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는 목적은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
라."따라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밝혀주신 그 목적이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부름의 상'
이 목적인 것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그어떤 것이 목적이아니라....
내집마련 ...내꿈이 목적이 아니라....위에서 부르신 부름의상 ...
매우 높은 차원의 하늘에 있는 고상한 목적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상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찾아 쫓아가는 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종말론적인 것이
며, 저 높은 곳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향해 쫓아가는 것입니다.
그래 골로새서 3:1 말씀을 보면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목적을 높은데 두고 경기에 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말씀은 자기가 지금 어디까지 왔던지 간에 현재로서는 자만
하지도 말고, 절망도 하지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
이만큼했으면됬지...내가 직분이 있는데..
자만은 절대 금물입니다.
마라톤 경기를 하는 사람이 한 절반쯤 뛰어놓고는 이만하면 되었다거나 이
제 우승은 내 것이라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자세요 생각입니다.
언제든 골인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과신하거나 교만한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요즈음 사람들은 농사일을 놓고도 모심기가 끝나고 조금 있으
면 그냥 풍년이다 하고 떠들어대는데, 그러다가 태풍이 한번 쓸고 가면 어떻
게 됩니까?
풍년이 되고 안 되고는 창고에 거두어들이기까지는 말할 수가 없는 문제입
니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일들이 있는냐 할 때 그것은 도중에 자기가
자기를 평가하고 자만해 하기 때문입니다.
선수는 마지막에 골인하는 순간까지는 절대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
며, 또한 놓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부르셔서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
서"하고, 요단강을 건너 주님 앞에서는 순간까지는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된
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잘 믿는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신
앙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라도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교만할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절망을 해서도 안됩니다.
절망이나 교만은 모두 불 신앙의 소치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은 보장된 승리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에 보면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것을 잡으려고 쫓
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잡힌바 된 그것"이란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도저히 구원받을 수가 없었음에도 주님께서 자신을 강제로
체포하심으로 포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예수를 믿게 했고 하나님의 종을 만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신을 생각할 때 여기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경
륜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에 대한 구원은 틀림없이 보장을 받았다
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문제는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얼마나 칭찬을 듣고 상
을 받느냐하는 문제만 있을 뿐 구원받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미 잡힌바 된 것을 잡으러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 이상이나 취미, 경험, 가능성에 맞추어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잡은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제시해 주신 목표! 그리스도께서 나로 하여금 하라고 하
시는 명령! 그것이 목표란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 목표가내 이상, 취미, 내 능력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
니다. 우리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강제로 붙들어서
나로 나되게 하신 것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 목표는 내 뜻이나 소질에 의해서 세워진 목표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자기가 세운 본래의 목표, 즉 유대 종교와
헬라 철학에 모두 능통하여 명망 있는 인물이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는 다 지워버리고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세워주신
그 목표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목표는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내가 세운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쫓아가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헬라 원어로는 '디오코' 라고 하는데 ....이것은 보통으로 말하는 정
도의 달려간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새번역 성경에서 "온 몸을 앞으로 기울여"라고 한 것처럼 전심 전력을 다해
서 달려가는 것을 말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젖 먹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힘을 다 쏟으며 마구 뛰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자세와 상태로 달려가는 것을 뜻하는 것이 쫓아 가노라는
말입니다.
달리는 선수는 내일 걱정, 모레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시간에 있는 힘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끈까지 자기가 가진 힘을 적절히 안배하여 골인을 하는
지점에서는 마지막 전부를 쏟음으로 골인한 다음에는 쓰러져서 못 일어나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옳은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힘이 남았다면 진작 힘을 써서 좀더 좋은 기록을 낼 것이지 왜 힘을 남겼느
냐는 말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우리의 신앙 생활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내게 있는 힘, 다 쏟아 버렸느냐는 말입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듯이 우리의 신앙 생활도 그러해
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12:1 말씀에 보면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는 거추장스러운 모든 장애물을 다 제거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것도 생각할 것 없이 가장 가벼운 차림으로 뛰어야 합니
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 생활도 거추장스러운 것이 많으면 그만큼 지장이
많습니다.
운동선수는 되도록 몸을 가볍게 하여 뛰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운동선수는 잠시라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되며 뒤엣 것을 생
각해서도 안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직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며 뛰어야 합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깨끗하게 앞에 있는 푯대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 생활이 왜 이렇게 갈지자걸음을 걸으면서 맥이 빠져 있는
가 하는 것은 앞의 것을 향하여 집중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뒤에 있는 것,... 즉 과거의 허물과 죄, 수치스러웠던 것들을 모두
잊어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본다면 지난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려고 다
메석으로 갔던 일...,
아덴에서 실수하여 교회를 세우지 못한일,;;;
고린도 교회를 비롯하여 전도하면서 실수한 크고 작은 일 등,
이런 저런것들을 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점점 나약해지는 자기를 믿을 수가
없게 되어 앞으로 나갈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뒤에 있는 것은 깨끗하게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오늘 이후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되씹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늘과 내일이지 결코 과거가 아닙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 관한 생각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고 그를 위한 경주자가 됨으로 이 경기
에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 4장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서 보면 "나의 달
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는 골인 장소의 직전에 있음을 말합니다.
이제 한발자국만 들여놓으면 그대로 요단강을 건너갈 시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남은 것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 시간에는 벌어 놓은 많은 돈도, 널리 알려진 명예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
니다. 문제는 오직 하나 믿음을 지켰느냐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신학을 다닐 때의 일인데...,친구와함께 총동문회에서 아가씨와 건달
들... 연극을 유관순 기념관에서...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요즈음 하는 말로 세련되지를 못해서 표를 반 찢어
서 준 것을 잃어버린 채 아무 데나 앉아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조금 있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 와서는 일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기 가 좀 있으면.... 또 일어나라고 또 일어나라고 하는 것인데,
아무튼 이리 저리 쫓겨다녀야 하며 마지막엔 쫓겨나기도 합니다
거기에 사람이 어떻고 나도 제학생인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표를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가 문제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이 바로 믿음의표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손해를 보고 약해지는 것이라면 다 주어버리고 끊어 버리
십시오,
믿음에 손해 되는 이야기라면 듣지도 말고,
나 또한 믿음에 손해보는 말은 하지도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직 믿음만 강하고 고귀하게 간직했다가 요단강을 건너갈 때에
이 믿음의 표를 내어놓을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는 것입니다.
이 면류관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하고 들어와서 하는말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을 하더라며 그간에 자기들이 행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보고들을 하자,
예수님께서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
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하늘 나라에 기록된 것! 이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요, 최종 영광이며, 최종
보상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생명의 면류관을
다 함께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