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2015. 가을)
내가 봉사하며 다녔던 요양병원에는 대부분 어르신이 치매 증세를 보이고 계셨다. 어느 분은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기가 바쁘게 “나 밥 줘” 하시며 큰소리로 야단이시다. 아무리 설명을 해드려도 소용없다. 이해하려고 애를 써 봐도 온전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금방 먹었던 밥마저도 까마득하게 잊은 채 밥 달라는 소리만이 귀에 쟁쟁하다.
그 병원에 입원하셨던 젊은 어르신이 계셨다. 아직 육십 초반인 나이임에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신다. ‘알츠하이머’라는 증세를 겪고 계시는 분이다. 그 어르신이 가끔, 온전하게 인지가 돌아올 때면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재밌게 잘하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치매 증세를 보이신다. 아무에게나 느닷없이 당신 생각대로 이름을 부르신다.
“아야, 누구누구 동생아! 손님 올 시간이다. 술독에 술을 채워야 쓰것다.”라고, 전라도 사투리로 크게 얘기하면서 웃으신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되풀이하신다. 예전에 당신이 운영했던 주막집을 떠올리신다.
예전에 살아오셨던 기억에 머물러버린 것이다. 그 어머님을 바라볼 때면 마음속에서 서글픈 감정이 일렁거려 한참 동안 눈물을 훔쳤다. 나는 그 어머님의 수준에 맞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해맑은 눈동자를 지켜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양 대화를 나눌 때, 누가 봐도 정상적인 사람이시다. 비단 그분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증상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 어르신은 아침에 눈 뜨면서 시작한 말들은 하루 종일 반복되고, 그 이야기는 내일도 모레도 언제 그칠지 모른다.
매달 한 번씩 환자분들의 머리를 깎아 드리는 날이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용 봉사자들이 오는 날, 전문가들의 어깨너머로 유심히 관찰하면서 익혔었다. 그러다 보니 차츰차츰 미용사들의 솜씨 버금가게 자신이 생겼다. 이제는 얼마든지 솜씨 자랑도 하고 싶었다.
내가 직접 어르신들의 머리 손질을 해드리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바쁘게 서둘러야 순조롭게 일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우선 어르신들을 휠체어 태우고 질서정연하게 순번으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아무리 봐도 어린아이 모습들이다. 사람이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성장 후에 다시 성장 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하는 의아심이 생긴다.
“나 머리, 예쁘게 안 해주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여! 나 시내 미용실에 가야 헌디!!”라고 호통을 치시는 할머님은 머리를 자르는 와중에 정상적으로 인지가 돌아오신 것이다.
치매 어르신을 대상으로 하는 이 봉사는 이처럼 여러 가지 감정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세월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서 어린아이로 돌아간 어르신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 그리고 그 어르신들의 세월만큼의 시간을 축적해 오신 삶을 생각해 본다. 차가운 복도 바닥에 오늘도 가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떨어진다. 잘려 나간 세월을 떠나 보내고 어린아이 마냥 순수해진 어르신들과 눈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