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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중순(10수)
하루시조070
03 11
남색도 아닌 내오
무명씨(無名氏) 지음
남색(藍色)도 아닌 내오 초록색(草綠色)도 아닌 내오
당대홍(唐大紅) 진분홍(眞粉紅)에 연반물(軟半物)도 아닌 내오
각씨(閣氏)네 물색(物色)을 모르셔도 나는 진남(眞藍)인가 하노라
당대홍(唐大紅) - 당다홍(唐多紅). 중국에서 나는 짙은 붉은 색깔.
연반물(軟半物) - 연한 검은 빛을 띤 남색.
남색(藍色) - 쪽 람(藍), 마디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 이풀로 염색을 하면 고운 푸른색이 든다. 쪽빛. 국어사전에는 푸른빛을 띤 자주색.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기본 색깔 중의 하나로 먼셀 표색계에서는 7.5PB2/6에 해당한다.
초록색(草綠色) -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 짙은 초록색을 우리말로는 갈맷빛이라고 한다.
물색(物色) - 물건의 빛깔.
자신의 분명한 색깔을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초장과 중장에 등장하는 여러 색깔 단어가 생소하기도 하거니와 파랑과 빨강 계통을 넘나들어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종장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몰라주는 여인에 대한 원망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자기가 ‘진짜 남자(男子)다’라는 강변(强辯)입니다. 그런데 정작으로 진남(眞藍)이라는 색깔은 따로 없으니 ‘진짜 남색’ 정도로 풀어야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1
03 12
나는 나비 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나는 나비 되고 자네는 꽃이 되어
삼춘(三春)이 지나도록 떠나 살지 말자ㅎ더니
어디 가 뉘 거지살 듣고 이제 잊자 하는고
자내 - 듣는 이가 친구나 아랫사람인 경우, 그 사람을 대우하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하게할 자리에 쓴다. 사위를 부르거나 이를 때, 또는 아내의 남동생을 부르거나 이를 때도 쓸 수 있다.
삼촌(三春) - 봄의 석달. 세 해의 봄으로 보기도 함. 꽃이랑 나비의 일생을 생각하면 일생(一生) 또는 평생(平生)입니다.
거지살 - 거짓말
배신(背信)하려는 님에게 던지는 일갈(一喝)입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들은 거짓말에 속아서, 말은 이렇게 해도 그런 사람을 믿고 살아온 자신에 대해 억장이 무너질 것은 자명합니다. 애정하던 사이에 힐난(詰難)이 등장하면 이제는 그 사랑도 종말(終末)에 이른 것입니다.
삼춘이 지나도록 곧, 평생이 다하도록 헤어지지 말자 약속했던 나비와 꽃 중에 ‘누가’ 어디 가서 거짓말을 듣고 헤어지자 했는지는 교묘히 숨겨져 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2
03 13
꽃이야 곱다마는
무명씨(無名氏) 지음
꽃이야 곱다마는 가지 높아 못 꺾겠다
꺾지는 못하나마 이름이나 짓고 가자
아마도 그 꽃 이름은 단장화(斷腸花)인가
단장화(斷腸花) - ‘애를 끊게 하는 꽃’이라는 풀이가 가능한데, 실제 꽃으로 베고니아의 한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접근 불가한 아름다움에 대한 진한 아쉬움의 표현입니다.
작명(作名)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본다고 해 놓고서는 극히 이기적인, 상당한 심술기가 드러난 이름을 붙였습니다.
꽃을 ‘꺾는다’는 말은 여성을 꽃으로 비유하는 것 자체가 현재 우리들에게 양성 평등의 기준에서 허용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잘생긴 미남 중에서도 빼어나면 '꽃미남'으로 부르기도 하데요만.
‘성(性) 인지도’라는 말이 새롭게 등장한 저승사자이니 조심 또 조심하자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있기도 하고요.
꽃은 두고 보는 것인가, 꺾어서 이리저리 꾸미고 탐(探)하는 것인가. 옛사람들은 후자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려니 싶습니다.
종장 끝 구 세 글자는 창법(唱法)에 따른 생략으로 ‘하노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3
03 14
닭아 울지 마라
무명씨(無名氏) 지음
닭아 울지 마라 일 우노라 자랑 마라
반야진관(半夜秦關)에 맹상군(孟嘗君) 아니로다
오늘은 님 오신 날이니 아니 울다 어떠리
일 – 일찍. ‘일삼아’로 풀어도 뜻은 통합니다.
반야진관(半夜秦關) - 한밤중의 진나라 국경 관문. 반(半)의 풀이에 ‘한창’의 뜻이 있습니다.
맹상군(孟嘗君) - 제(齊)나라 사람으로 진나라 소왕의 초빙을 받아 갔다가 자신을 가두어 죽이려 함을 알고 도망치는데,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러, 한밤중이라 어찌 할까 망설이는데 식객 하나가 닭울음을 진짜처럼 소리내어 수직군사가 관문을 열어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는 고사의 주인공임.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성어로 알려져 있음.
울다 – 운다고.
님이 오신 날 밤이 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등장하는 닭이 밤을 새게 하고 늦추게 하고 하는 주관자처럼 설정되어 부탁의 대상입니다. 맹상군의 고사와 함곡관의 정경에 얽힌 성어가 교묘하게 펼쳐저서 긴장감을 더합니다. 자기는 맹상군이 아니고 함곡관을 지나야 하는 형편도 아니니 굳이 닭소리가 필요 없다는 말이 되겠네요. 주제는 종장에 ‘님이 오신 날 밤에 닭아 너 안 운다고 누가 뭐라 아니 한다’고 드러낸 속마음이 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4
03 15
닭의 소리 길어지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닭의 소리 길어지고 봄이 장차 점었어라
바람은 품에 들고 버들빛이 새로와라
님 향한 상사일념(相思一念)을 못내 슬허 하노라
점었어라 – 저물어 가는구나.
상사일념(相思一念) - 서로가 그리워하는 한결 같은 생각.
상사 相思, 서로 생각한다. 생각은 뒤에 오는 개념이고, 서로라는 의미가 중요한 조합입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 변함 없어 슬프다고 노래했습니다. 봄이 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버들색이 신록으로 새롭고, 바람마저 시원해져 봄이 무르익고 장차 저물어갈 태세입니다. 특히 바람이 ‘품에 든다’니 참 살가운 표현입니다.
종장의 슬픔은 헤어진 님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어 못 만나 서럽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우리네 민요 중에 ‘봄날은 간다’가 해마다 구성지게 들리나 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5
0316
닫는 말도 오왕하면
무명씨(無名氏) 지음
닫는 말도 오왕(誤往)하면 서고 섰는 소도 이랴 타(打)하면 가네
심의산(深意山) 모진 범도 경설(警說)곳 하면 도서나니
각씨(閣氏)님 뉘 어미 딸이건대 경설(警說)을 불청(不聽)하느니
닫는 – 달리는.
심의산(深意山) - 뜻이 깊은 산. 시의가 드러나지 않은데, 혹자는 수미산(須彌山)의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깊은 산(에 사는)’으로 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설(警說) - 경계하는 말씀.
도서나니 – 되돌아서나니.
달래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각씨님을 경계하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초장에 등장하는 ‘오왕(誤往)’은 의성어이면서 또한 뜻풀이가 가능한 표현입니다. ‘잘못 갔다’는 뜻이지요. 서 있는 소를 가라고 할 때는 잘 알려진 대로 ‘이랴’이니 그대로 쓰되 한 번 친다고 칠 타(打)가 들어갔습니다. 음수율에 아랑곳하지 않는 엇시조의 매력이 듬뿍 묻어납니다.
중장에는 초장의 말이나 소보다 훨씬 무서운 범이 등장합니다. 말이 전혀 안 통한다고 할 수 있죠. 그런 범도 되돌아선다고 하면서. 종장에서는 ‘뉘 어미 딸아건대’라 모친을 끌어다대며 ‘제발 좀 말을 들어라’ 거듭 경설(警說)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76
03 17
닭 한 홰 운다 하고
무명씨(無名氏) 지음
닭 한 홰 운다 하고 하마 일어 가려는다
저근덧 지정에 또 한 홰 들어 보소
그 닭이 시골서 온 닭이라 제 어미 그려 우느니
홰 – 긴 장대를 가로 눕게 매달아 둔 것으로, 닭장에 두면 닭들이 모두 이 홰에 올라 잠을 잤습니다. 장닭이 새벽을 알릴 때 두 날개로 홰를 치면서 울어댔기에 첫 홰, 두 홰 하면서 아침의 진행 시간 정도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상황은, 이른 새벽닭이 운다, 시계가 없던 시절이니 일어나서 기동할 사람은 일어나야 한다. 곁에 자던 님이 일어나 가려 한다. 붙잡아 두고픈 마음에, 한 홰 더 울도록 기다려보라 청하더니, 종장에서 저 우는 닭이 날이 새서 우는 게 아니라 제 어미가 그리워서 우는 것이라 어불성설(語不成說)이지만 애절한 마음을 읊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촌닭이 그 때도 있어서, 미련곰탱이의 대명사였나 싶었다가, 에미 그리워 운다고 ‘어린’ 닭임을 말하고 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077
03 18
달 뜨자 배 떠나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달 뜨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리
만경창파(萬頃蒼波)에 가는 듯 돌아옴세
밤중만 지국총 소리에 애 끊는 듯 하여라
만경창파(萬頃蒼波) - 만 이랑의 푸른 물결이라는 뜻으로, 한없이 넓고 넓은 바다를 이르는 말.
밤중만 – 한밤중에.
지국총 - 배에서 노를 젓고 닻을 감는 소리. 한자를 빌려 ‘至匊葱’으로 적기도 한다.
배를 타고 떠나가는 님을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만경창파, 제주 바닷가에서 뭍으로 향하는 이별의 아쉬움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 시절 어느 이별인들 허무하고 서글프지 않으랴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한밤중의 출항(出港)이라, 아마도 물 때가 맞았다거나, 시간을 다툰다거나, 물결이 잔다거나 등의 상황이 맞물리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별이 아쉽고 돌아오는 일에 어떤 확신도 할 수 없는 애 끊는 상황이며. 밤에 들리는 노 젓는 소리는 밤마다 더 크게 들릴 뿐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8
03 19
닻줄을 길게길게 드려
무명씨(無名氏) 지음
닻줄을 길게길게 드려 사리고 뒤사리 담아
만경창파지중(萬頃蒼波之中)에 풍덩 드리치면 알려니와 물 깊이를
아마도 깊고 깊을손 님이신가 하노라
드려 – 드리다 - 여러 가닥의 실이나 끈을 하나로 땋거나 꼬다.
사리고 – 사리다 -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
만경창파(萬頃蒼波) -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나 호수의 물결. 지금 사람들은 큰 배로 항해하고, 태풍도 위성으로 잡아가면서 예보하기 때문인지 이 말은 별 느낌이 없어서 잘 쓰지 않습니다.
임의 마음속 깊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초장의 ‘사리고 뒤사리’는 앞에는 물론 사려 담고 뒤에도 마무리하듯 사린다는 뜻입니다.
중장 후구 ‘알려니와 물 깊이를’의 도치법 사용으로 좀 길다 싶은 느슨함을 지웠군요.
님이 요즘말로 ‘밀당’을 즐기시거나 ‘썸’을 많이 타나 봅니다. 상대의 마음을 애태우면 좋을 게 뭐 있나요? 그래도 탈 때 타야지 시간 자나면 살짝 후회가 될 거라나요. 그런가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079
0320
대붕을 치떠 잡아
무명씨(無名氏) 지음
대붕(大鵬)을 치떠 잡아 번갯불에 쬐어 먹고
남해(南海)를 다 마시고 북해(北海)로 건너 뛸 제
태산(泰山)이 발 끝에 차이어 왜걱제걱 하더라
대붕(大鵬) - 하루에 구만 리(里)를 날아간다는, 매우 큰 상상(想像)의 새. 북해(北海)에 살던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되었다고 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태산(泰山) - 높고 큰 산. 중국에 있는데, 산의 높이보다는 황제가 제사를 지내는 산으로 가치가 무척 크다고 여겼습니다.
왜걱제걱 – 의미가 불명확해진 사라진 어휘로, ‘아프다’는 의미의 의성어인 듯합니다. 지방어로는 비슷한 단어가 남아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부리다니요, 황당무계(荒唐無稽)하네요. 그래서 차마 이름을 못 밝혔나 싶기도 하고요. 한번 따라가 봅니다.
초장에서는 눈을 한번 위로 치껴 떠서 그 큰 붕새를 잡아먹었거늘, 번개불에 굽지도 않고 쬐어 먹는군요. 최남선 본 <청구영언>에는 ‘손으로 잡아 구워먹는다’고 돼 있습니다만, 허풍 한 번 세군요. 중장은 남해 바닷물을 다 마시고도 모자라 북해로 건너뛴답니다. 종장에서는 의인화된 태산이 제 발 끝에 채여 아프다 어쩌다 한답니다.
이렇게 말장난이라도 해야 못 죽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대로 읽어주는 수밖에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공화순
"왜걱제걱"은 "왜각대각"의 옛말입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는군요.
대붕을 잡아먹고 남해를 다 마시고 북해로 건너 뛸 정도의 거인족이라도 돼야 태산이 발 끝에 차여 조각나듯 깨져 소리가 나겠지요. 어쨌든 배포 한 번 큰 사람이 틀림없거나 힘이 없어 큰소리나 치는 겁쟁이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하겠습니다.
제갈경인
소심하기 짝이 없는 요즘, 한 번쯤 느껴볼 만한 사이즈네요.ㅎ
첫댓글 한 수집기의 통계에 의하면 무명씨의 시조는 810수로 집계된다고 합니다. 그 자료에서 뽑아 시절 분위기에 맞춘 1년치 '하루시조'가 이 자료의 근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