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흠시조 041
한송정 달 밝은 밤에
홍장(紅粧) 지음
한송정(寒松亭) 달 밝은 밤에 경포대(鏡浦臺)에 물결 잔 제
유신(有信)한 백구(白鷗)는 오락가락 하건마는
어떻다 우리의 왕손(王孫)은 가고 아니 오는고
한송정(寒松亭) - 강릉 경포대 호변의 누대로, 달구경의 풍광이 빼어나다.
경포대(鏡浦臺) - 관동 팔경의 하나. 강원도 강릉시 저동에 있는 누대(樓臺)이다.
유신(有信)한 – 믿음이 있는. 미더운.
백구(白鷗) - 갈매기.
지은이 홍장(紅粧)은 보통명사로 보면, 짙게 칠한 화장입니다만, 여기서는 이 시조를 지은 강릉기(江陵妓)로서 생몰연대 미상입니다.
시조의 내용은 아주 평이하여 단어 풀이 외 별달리 더할 말이 없습니다.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에 등장하는 ‘홍장의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인 바, 이 곡의 주인공은 박신(朴信)일 것입니다. 유선(遊船)에서 강릉부사가 둘 사이의 신의를 따져보려고 홍장을 다른 배에 태우고 박신의 마음을 떠보았다는 것입니다. 종장의 왕손(王孫) 운운은 한시의 구절 ‘王孫歸不歸’를 편안하게 가져다 쓴 것입니다.
흠흠시조 042
매화 옛 등걸에
매화(梅花) 지음 1/6
매화(梅花) 옛 등걸에 봄 절(節)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柯枝)에 피엄즉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매화(梅花) - 매실나무의 꽃. 봄소식의 전령사 역할을 함.
옛 등걸 – 오래된 가지. 여기서는 노기(老妓)가 되어버린 자신을 비유.
봄 절(節) - 봄 철.
피엄즉 – 피어날 만도.
춘설(春雪) - 봄 눈. 꽃샘추위로 함께 온다.
난분분(亂紛紛) - 어지럽게 흩날림.
필동말동 – 필지말지. 피게 될지 어떨지.
작가의 이름이 매화(梅花)인지라 작품 속의 매화 또한 작가라고 곧장 유추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생몰연대는 미상이고, 진주기(晉州妓)라 하고 평양기(平壤妓)라기도 합니다.
옛등걸이 노기가 된 자신을 비유한다면, ‘피엄즉도’는 ‘그리운 님이 옴직도’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춘설이 난분분’은 여러 방해 요소들, 즉 ‘젊은 기녀들’ 정도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굳이 작품의 주제를 찾자면, ‘어느새 덧없이 늙어버린 자신을 조용히 돌아다 봄’ 정도가 되겠습니다.
흠흠시조 043
죽어 잊어야 하랴
매화(梅花) 지음 2/6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서 그려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려웨라
저 님아 한 말씀만 하소라 보자 사생결단(死生決斷)하리라
사생결단(死生決斷) - 죽든지 살든지 양자택일(兩者擇一)함.
죽는다는 말은 모든 게 끝이라는 뜻도 있거니와 이쪽저쪽 갈피를 못 잡는 일에 있어서도 양단간의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됩니다. 죽는다는 데야 어디 털끝만큼이라도 머뭇거릴 이유가 있겠습니까.
우리말 어휘로 어기(語氣)를 알뜰살뜰 살린, 낭송하기에 아주 좋은 수작(秀作)입니다.
죽어 영이별 살아 생이별,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요. 생이별로 사는 동안 내내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이 훨씬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흠흠시조 044
살뜰한 내 마음과
매화(梅花) 지음 3/6
살뜰한 내 마음과 알뜰한 님의 정(情)을
일시상봉(一時相逢) 그리워도 단장심회(斷腸心懷) 어렵거든
하물며 몇 몇 날을 이대도록
일시상봉(一時相逢) - 한 때 서로 만남.
단장심회(斷腸心懷) - 애간장이 끊어지는 것 같은 아픈 마음.
‘알뜰살뜰’이 알뜰하다와 살뜰하다의 합친 말인 것을 알겠습니다.
알뜰하다 - 일이나 살림을 정성스럽고 규모 있게 하여 빈틈이 없다.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참되고 지극하다.
살뜰하다 - 일이나 살림을 매우 정성스럽고 규모 있게 하여 빈틈이 없다.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자상하고 지극하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잠시잠간 만나서 푸는 회포가 애간장을 끊어내는 것일지언정 오래도록 떨어져지내는 이런 세상이야말로 어찌 참고 지내겠느냐는 하소연이 가득합니다.
종장의 끝 구절은 시조창법에 의한 생략으로 ‘지내랴’ 정도가 되겠습니다.
흠흠시조 045
심중에 무한사를
매화(梅花) 지음 4/6
심중(心中)에 무한사(無限事)를 세세(細細)히 옮겨다가
월사창(月紗窓) 금수장(錦繡帳)에 님 계신 곳 전(傳)하고자
그제야 알뜰히 그리는 줄 짐작이나
무한사(無限事) - 한이 없는 일. 님과 같이 있다면 끝없이 조잘조잘댈 만한 세상의 모든 일.
월사창(月紗窓) - 달빛 드는 비단 바른 창문.
금수장(錦繡帳) - 비단으로 수를 놓은 휘장.
한자어가 난무합니다. 그리는 님이 계신 곳을 부유하고 긴한 것이 없는 장소로 묘사하느라 그런 듯합니다. 제 속 또한 그 님이 알아듣기 쉬우라고 한자어로 말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서로 떨어져 지내는데 저 홀로 님을 그리워할 뿐, 님은 기척도 없으시니 어떡해서든지 이 쪽 마음을 전해봐야 하겠노라는 간절함이 넘쳐납니다.
종장 끝구의 생략은 시조창법에 의한 것으로 ‘아시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흠흠시조 046
야심 오경ㅎ도록
매화(梅花) 지음 5/6
야심(夜深) 오경(五更)ㅎ도록 잠 못 이뤄 전전(輾轉)할 제
궂은비 문령성(聞鈴聲)이 상사(相思)로 단장(斷腸)이라
뉘라서 이 행색(行色) 그려다가 님의 앞에
야심(夜深) - 밤이 깊음.
오경(五更)ㅎ도록 - 새벽이 되도록. 오경 명사에 하다를 붙인 어휘력이 현대판과 같습니다.
전전(輾轉) - 전전반측(輾轉反側). 이리 누웠다 다시 뒤집었다 하면서 잠을 못 이룸.
궂은비 - 날씨가 어두침침하게 흐리면서 오랫동안 내리는 비.
문령성(聞鈴聲) - 방울 울리는 소리를 듣다.
상사(相思) - 서로 생각하고 그리워함.
단장(斷腸) - 서러워 애간장이 끊어짐.
행색(行色) - 겉으로 드러나는 차림이나 태도.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잠 한 숨도 못 잤지요, 애간장이 끊어지지요. 일방적인 ‘기운 사랑’에 지쳐서 그만 누가 봐도 병자입니다. 그런 모습이나따나 누군가가 그려서 님에게 전해주기를 바라니 또한 더욱 안타깝군요.
종장 끝구의 생략은 시조창법에 의한 것으로 ‘보일까’ ‘전할까’ 정도가 되겠습니다.
흠흠시조 047
평생에 믿을 님을
매화(梅花) 지음 6/6
평생(平生)에 믿을 님을 그려 무슨 병(病) 들손가
시시(時時)로 상사심(相思心)은 지기하는 탓이로다
두어라 알뜰한 이 심정(心情)을 님이 어이
들손가 – 들 것인가.
지기하는 – 지기(知己)하는. 지기지우(知己之友) - 서로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
여섯 편의 단시조가 서로 연결된 느낌이 있습니다. 정갈하고 꿋꿋한 느낌의 ‘알뜰’ ‘살뜰’ ‘알뜰살뜰’도 그렇거니와, 헤어져 못 보는 서로 그리는 마음, 상사심(相思心)도 연결의 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좋아한다는 솔직한 고백이라면 표현이 조금 서툴고 직설적이라고 해도 참아줄 만한 것입니다.
종장 끝구의 생략은 시조창법에 의한 것으로 ‘모르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흠흠시조 048
상공을 뵈온 후에
소백주(小柏舟) 지음
상공(相公)을 뵈온 후(後)에 사사(事事)를 믿자오내
졸직(拙直)한 마음에 병(病)들까 염려(念慮)러니
이리마 저리차 하시니 백년동포(百年同抱)하리라
상공(相公) - ‘재상’을 높여 이르던 말. 여기서는 감사(監事)를 높인 말이다.
사사(事事) - 일마다. 모든 일.
믿자오내 – 믿고 맡겼는데.
졸직(拙直)한 – 옹졸하고 곧은. 융통성이 없고 외곬.
백년동포(百年同抱) - 오래도록 같이 껴안고 있음.
이 작품의 저자 소백주(小柏舟)는 광해조(光海朝) 때의 기녀(妓女)로 생몰연대는 미상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평안감사 박엽(朴燁)이 소백주더러 장기판을 보고, 거기 나오는 장기쪽을 들어가며 구애됨 없이 시 한 수를 읊으라 하는 청을 받아 지어졌다고 한다.
‘상공’은 상(象)과 궁(宮)‘, ‘사사’는 사(士), ‘졸’은 졸(卒). ‘병’은 병(兵), ‘이리마’는 마(馬), 저리차는 차(車), ‘동포’는 포(包)와 대(對)한다고 보면 됩니다.
후세인들이 이 작품을 대하면서 기생 신분인 소백주가 감사 나으리에 대한 은연중 애정고백인 것을 알고 더욱 가상히 여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