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락쿠마(Rilakkuma) 캐릭터의 베어브릭.
누구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곰 인형에 관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가이 여길 장난감이 있다.
최근 어른들 사이에서 수집 붐이 일고 있는 곰 인형 모양의 베어브릭 장난감이다.
베어브릭은 성인들의 수집을 목적으로 탄생한 장난감으로, 2001년 일본 메티콤 토이(Medicom Toy)사가 디자인에
민감한 젊은 세대의 소비자를 타깃으로 개발한 것이다.
베어브릭은 유년 시절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연상시킨다.
곰 인형의 포근한 이미지나 막대 사탕의 먹음직스런 알록달록한 색깔도 곂쳐지고, 레고 미니피겨의 귀여운 모습도 떠오른다.
베어브릭(Be@rbrick)이란 이름이 곰과 브릭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어브릭은 은유적으로 어린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주 독특한 장난감인 것이다.
그럼 오늘은 21세기 컬렉션 토이의 선구자 베어브릭에 대해 알아보겠다.
곰돌이 브릭이 탄생하다
호두까기 인형 테마의 베어브릭.
베어브릭은 2001년 5월 21일 동경에서 열린 제 12회 세계 캐릭터 전시회(World Character Convention)에서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지면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베어브릭의 새로운 디자인과 친근하고 톡톡튀는 매력에 감탄했으리라.
베어브릭의 기본 형태는 곰을 의인화한 것이다.
곰이 사람과 같이 직립보행을 하는 것처럼 반듯이 서 있는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본형의 베어브릭 곰들은 눈, 코, 입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제품은 머리, 몸, 엉덩이, 팔, 다리, 손 등 9개의 파트로 나눠지며 배는 곰돌이 푸우처럼 볼록 나와 있다.
이렇게 볼록 나온 배의 모양을 일명 항아리 배(Pot belly)라고 부르는데, 베어브릭 만의 불변의 형태가 된다.
베어브릭이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탄생한 만큼 베어브릭의 디자인은 일반화된 획일성 보다는
창조적인 다양성에 중점을 둔다. 베어브릭의 색상은 원색(Solid-Color)이 대부분이지만,
시리즈나 주제에 따라 부드러운 파스텔 톤과 형광색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소재도 다양하게 제작되고 있는데, 플라스틱, 합금, 나무와 펠트 형광 물질 등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들어진 베어브릭이 생산되고 있다.
몸으로 말하는 장난감
베어브릭은 태생부터 아이들의 장난감이 아닌 성인들의 수집 장난감으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메티콤 토이 사는 장난감을 통해 성인들의 시각적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고심 끝에 나온 것이 @ 마크였다. 베어브릭의 이름에 @ 마크를 넣어 Be@rbrick이란 단어를 완성하고,
@ 마크를 베어브릭을 연상시키는 상징 로고로 사용했다.
@ 마크는 인터넷 시대의 성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심벌이 될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
영화 [스타트렉] 테마의 베어브릭100%(7cm).
베어브릭의 기본 사이즈는 7cm이다. 이 사이즈를 100% 크기라고 부른다.
기본 사이즈를 기준으로 베어브릭의 비율별 사이즈는 다음과 같다.
50%(4cm), 70%(5cm), 100%(7cm), 200%(14cm), 400%(28cm), 1000%(70cm) 이다.
사이즈가 커질수록 가격도 비싸지며 최근 들어 400%와 1000%의 베어브릭이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
영화[아이언맨] 테마의 베어브릭 1000%(70cm)
베어브릭은 디자인에 따라 10가지 이상으로 나뉜다.
첫째로 기본(Basic)형은 모노톤의 베어브릭이다.
베어브릭의 기본이 되는 디자인으로 이목구비가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젤리빈(Jellybean)형도 기본형처럼 단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반투명(Translucent)의 플라스틱으로 제작해
베어브릭 내부에 다양한 액세서리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패턴(Pattern)형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만든 다양한 무늬를 패턴화하여 디자인한 제품이다.
임스 체어로 유명한 찰스 임스(Charles Eames)의 디자인도 이 패턴 형 제품들에서 볼 수 있다.
국기(Flag)형은 각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호러(Horror)형은 유명 공포 영화의 괴수와 살인마를, SF(Science Fiction)형은 공상과학영화를 소재로 만들어졌다.
동물(Animal)형은 단색 컬러에 동물을 상징하는 무늬를 입힌 것이고
큐트(Cute)형은 단색 바탕에 귀여움을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구성하였다.
아티스트(Artist)형은 유명 작가의 작업을 베어브릭에 옮긴 컬래버레이션의 형식으로
최근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집 품목이다.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들과의 협업 제품들은 베어브릭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제품군이다.
마지막으로 히어로(Hero)형은 슈퍼맨, 배트맨 같은 유명 코믹북 히어로를 소재로 만들어진다.
이외에도 디즈니 캐릭터와 저패니메이션을 주제로 한 제품들도 간간히 만들어지고 있다.
뽑기 장난감 베어브릭
베어브릭은 블라인드 박스(Blind box)로 제작되어 소비자가 구매하기 전에는 내용물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수집가들은 베어브릭을 살때 마다 항상 마음을 졸인다.
일부 판매자들은 이런 확률을 감안하여 오픈 박스로 내용물의 확인 후 판매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베어브릭 마니아들은 자신의 행운을 시험한다.
베어브릭의 제조사인 메디콤 토이 사에 따르면, 각 모델 별 베어브릭을 선택할 확률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기본(Basic)형은 14.58%, 젤리빈(Jellybean)과 패턴(Pattern)형은 11.45%, 국기(Flag)형과 호러(Horror)형은 9.37%이다.
SF(Science Fiction)형은 10.41%, 큐트(Cute)형은 13.54%, 동물(Animal)형은 8.33%이고 히어로(Hero)형은 7.29%이다.
아티스트(Artist)형은 노멀 버전이 4.16%, 시크릿 버전이 1.04%이다.
이런 베어브릭의 선 결정 생산 비율(pre-determined produce ratios)은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다양한 판매 형태를 자아내며 베어브릭만의 독특함을 특징짓는다.
정규 시리즈의 베어브릭은 네임카드(베어브릭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적혀진 카드)가 제품에 포함되고
한번 생산된 시리즈는 절대 재생산을 하지 않는다.
메디콤 토이 사 15주년 기념판 베어브릭 패키지와 400%(28cm)크기의 베어브릭
베어브릭의 랜덤한 매력은 아티스트형의 시크릿 모델에서 정점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베어브릭은 새로운 제품 출시 전 제품에 대한 정보와 디자인을 공개하는 데,
시크릿 모델은 디자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려지지 않은 비밀 마케팅을 활용해 컬렉터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베어브릭의 가격 중 가장 비싼 것은 이 시크릿 모델로, 어렵게 수집한 수집가들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메디콤 토이 사의 이러한 마케팅은 수집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베어브릭의 독특한 마케팅은 베어브릭의 포지셔닝을 드러내는 방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베어브릭의 패키지 디자인에는 베어브릭을 15세 이상의 수집품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장난감이 아니다(Not Toy)'라는 표기도 되어있다.
이렇게 장난감이 아닌 장난감으로 불리우는 베어브릭의 애매한 포지셔닝은 한편으로 높은 가격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베어브릭, 기업 상품과 결합하다
안나수이(Anna Sui) 베어브릭과 폴 프랭크(Paul Frank) 브랜드를 부각시킨 베어브릭.
베어브릭은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군과 결합해 신선한 마케팅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베어브릭의 첫 출발이 전시회 홍보를 위한 마케팅이어서 일까, 베어브릭은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과 잘 맞아떨어졌다.
영화 [킬빌(Kill Bill)]은 베어브릭을 효과적으로 영화 홍보 마케팅에 활용한 좋은 예가 된다.
2003년 [킬빌] 베어브릭은 [킬빌] 2편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며,
[킬빌] 1편의 DVD 박스 세트에 베어브릭을 포함시킨 일본 특별 판을 제작하기도 했다.
연이어 [킬빌] 2편의 DVD 박스 베어브릭도 출시되었다.
위 제품들은 모두 일본에서만 한정 판매된 것으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
2008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트의 베어브릭이 요미우리 도쿄 돔 구장 내의 기념품 가게에서
한정 판매되었고 펩시콜라와 함께 영화 [스타워즈]의 캐릭터들을 묘사한 16종 세트의 베어브릭도 출시되었다.
일본의 유명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의 베어브릭이나 모스버거 베어브릭 또한 성공적인 베어브릭 마케팅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커피 빈 코리아가 2000세트 한정으로 베어브릭을 출시하여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베어브릭, 예술로 불리우다
일본의 유명 그래픽 디자이너 미카 니나가와(Mika Ninagawa)의 월드 투어 컬래버레이션 베어브릭
아트토이(Art Toy)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장난감 회사에 소속된 디자이너나 제작자가 아닌 순수 예술이나 상업 예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이 만든 장난감을 뜻한다.
베어브릭은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예술적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대표적인 아트토이 중 하나다.
영화 [에일리언]의 아트 디렉터 H. R. 기거(H. R. Giger),
세계적인 스컬 전문 디자이너 푸시헤드(Pushead),
그라피티 아티스트 스태쉬(Stash) 등은 베어브릭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대중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시도한 바 있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도 예외는 아니다.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와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등은 자신들이 만드는 옷, 장신구와
베어브릭의 만남을 통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외에도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기부자 혹은 기고자(Contributor)란 이름으로 활발하게
베어브릭과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난감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장난감이 되는 이런 현상 속에서
우리는 21세기의 문화의 다양한 실험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문화를 관통하는 베어브릭
오늘날 유행하는 단어 중에 '컬래버레이션'이라는 것이 있다.
서로 같고,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작업하는 것을 뜻한다.
장르의 구분을 넘어 모든 것이 섞이고, 그렇게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21세기 문화 트렌드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일 것이다.
베어브릭은 장난감과 다양한 영역의 문화 간 컬래버레이션을 아주 쉽게, 또 적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베어브릭이 말하고 또 그리고 싶은 이들에게 장난감이란
새로운 캔버스를 만들어주었다는 점,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문화의 지평이 넓어질 수 있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일일 것이다.
단순하고 귀여운 모습의 곰 인형이 오늘날 우리 삶의 다양한 면면들을 그려내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으로 변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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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 [스타워즈]의 C3PO, 에반게리온을 형상화한 베어브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