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2026류종렬QA고대A1
철학사를 읽는 관점 (26Q)
2026 06 30 – 07 07(화, [소서(小暑)]).
# 젊은이에게: 서양 철학사를 읽기 전에,
젊은이에게, 흔들리지 않고 <숫타니파타>에서 무소처럼 세상을 즐겁고 유쾌하게 나가는 길을 스스로 만들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만치(貪慢癡) 또는 탐진치(貪瞋癡)에 빠지지도 말고, 일베놀이와 좌표찍기에서 벗어나 혼자서 가라! 탐만치는 파라노이아 환자의 것이라는 것이 기나긴 생명의 역사가 가르쳐 준다. 파라노이아들이 쓴 역사는 오답노트이며, 오답노트는 그 속에 빠져들지 말라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오답과 다른 사물, 사실, 사건들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철학은 자연에서 이법(la raison)을 찾는다. 신으로부터도 아니고 그리고 하나의 통일성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연의 자기 생성과 다양한 발산의 원인과 기원을 찾는다.
인물이 시대를 만든다는 것은 그의 사후에 그를 찬양하는 파라노이아의 찬가였다. 이를 거짓이라고 아는 길가메쉬는 왕위를 버리고 서쪽으로 갔다. 해지는 쪽에 삶의 마지막이 있을 것이라는 상징이다. 우리에게는 서방정토란 말이 있다. 현자는 언제나 동쪽으로 간다. 그 동쪽에 산정에서 해 뜨는 나무 사이에서 환하게 밝은 새로운 날을 살아갈 것이다. 그 곳에서는 여러 골짜기에서 모인 현자들이 협의, 합의, 평결을 통해 결정하리라. 전쟁의 역사는 착취와 수탈의 역사였다. 조화중항(중용이든, 시중이든, 중도든 간에)을 가우스의 볼록 곡선의 중앙처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류라는 명칭으로 지구의 기나긴 역사에서 남긴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그 나라에서 전승되어 온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의 일부를 보시라. 공룡의 뼈 한조각의 발견으로 그 공룡의 모습을 만들 듯이, 그 토지와 영토에서 나온 조각 하나로 그 시대를 살았던 자들의 진솔한 삶을 조성해보자. 요하(遼河)에서 삶이 인더스 강의 하라파 문화에서 삶만큼이나 협력, 상부상조, 합의가 있었으리라는 생각에는 파라노이아는 아닐 것이다.
필히 그 나라의 그 터전 위에 일어난 긴 역사에 관심을 가지시라. 적어도 신석기시대 이래로 그 터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았는지, 문자를 남기지 않았더라도 그 흔적과 과정을 사유하자. 따라서 각자는 역사서 한권을 가지자. 그리하여 인류가 이어온 구전에서 문자화의 길을 걸으면서 남긴 이야기를 상기하자. 이런 이야기를 지식과 체계를 통해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철학사도 한 권 가지자, 더하여 인간이 자기 스스로 살자고 자연과 사회를 어떻게 제조(제작)하며, 터전에 맞게 조직화와 도식화를 만들고 전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노력했는지를 기억하며 수학사도 한 권 가지자. 그리고 우주 또는 지구 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생명이든 물질이든) 인간만이 아니며, 말없이 영속적으로 운동하는 지구를 생각하면서 자연 속에서 함께(공감과 공명) 살아가는 공생을 생각하며, 생물학사도 한권 가지자. 구석기, 신석기와 청동기를 포함하는 우리 역사책을, 철학에서 에밀 브레이어의 “철학사”를, 문제를 풀기위한 기나긴 수와 도형의 이야기로서 브룅슈비끄의 “수학철학의 여러 단계들”, 생물학에서는 우선은 굴드(Gould, 1932-1982)의 진화에 관한 책을 읽기를 권한다. (59Q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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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앵글로 색슨(일제와 미제)의 이원성의 구조와 그것을 거짓 통합하려는 변증법적 통일을 무시하자. 그리고 통합에서 절대성과 완전성이라는 유일신앙의 믿음(belief, 흄이 가짜라고 했다)을 벗어나자. 이것은 철학사를 읽으면 당연히 풀리는 것이 있다.
이원성은 하나의 대상과 대상 아닌 것에서 나왔다. 즉 A와 A아닌 것의 구별이었다. 이로부터 있다와 없다. 즉 있음과 부재, 삶과 죽음일 것이다. 이 둘을 동시에 같은 평면 위에 놓을 수 없다. 여기서 사람들은 하나를 선 또는 진리, 다른 하나를 악 또는 거짓이라고 여기다. 이 사고는 머릿속에서 만드는 것이기에 위험하다. 자연 또는 우주(세계)는 변화한다. 계절이 있고, 달이차고 기울어진다는 점에서 순환이 있다. 그리고 식물과 동물에게 다른 성(性)으로 상보관계에 있으며, 사회는 협동과 상부상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안다. 그런데 하나와 다른 하나의 구별을 넘어서 순환불가능, 협력불가능을 생각하는 것은 병자이다. 그런 병자를 파라노아라 한다.
이런 이원성 파악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부르는 이유가 있다. 이겨서 독식하겠다는 생각은 이런 이원성 교육에서 비롯된다. 20세기 초 두 번의 전쟁은 이겨서 타문화들을 지배하고 잉여이익과 수탈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졌다. 이에 저항하는 두 나라가 소비에트 연방과 중화인민 공화국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천문학과 이집트의 기하학이라고 하지만 둘 다 천문학과 기하학이 있었다. 이 둘의 종합이 레반트 지역에서 꽃피운 것이 페니키아인들에 의한 도시 비블로스(Byblos, 현재의 레바논 주바일)에서 수렴된다. 이 도시에서 알파벳이 조성되었다. 이 문자가 카드모스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그리스 중부의 테베이다. 테베의 설화중에 외피푸스 참주의 설화가 있다. (59R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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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지(天人地)에서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은 근대의 갈릴레이와 데카르트 이후이다. 그 이전에서 삼원성보다 이원성의 구별을 통해 세계(우주)와 사회(터전)를 생각할 정도 였다.
그리스 철학에서 발생(기원)의 관점으로 보면 두 가지가 보인다. 후대 철학자들의 분류이다. 아르케와 아이티아의 용어에 주목하였다. 두 갈래 하나는 자원의 질료이고 다른 하나는 원인에 대한 탐구이다. 이런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였다.
공시태의 국면에서 다음처럼 볼 수 있다. 한편 변화(운동) 대 정지(부동), 자연론(이오니아) 대 존재론(엘레아) 이런 관점의 배경에는 철학을 시작의 문제를 아르케(ἀρχή, 원질) 또는 아이티아(αἰτία, 원인) 라고 하는데, 전자에서는 원리 또는 도식을 후자에서는 원인 또는 근원을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 철학은 이오니아 지방에서 출발했으나 두 갈래로 갈라졌다고 할 수 있다.
통시태의 국면에서, 우주(코스모스, 그리스인들의 세계)에서 발생이든 원인이든 하나의 아르케에서 출발하여 변화과정과 변모모습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우주가 하나의 원질에서 출발하는 초기 철학자들로서는 밀레토스학파는 변화과정에 관심이었고,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하였다.
세계의 모습을 수들로 이루어졌다는 퓌타고라스학자들은 수의 운용(적용) 방식에 따라 비례관계와 조화 관계를 보았다. 이로부터 산술과 기하를 다루는 방식 대 음악과 영혼을 사유하는 방식의 차이를 알아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구별이 플라톤에 이르러 정의를 구현하는 방식에서 비례중항과 조화중항으로 구별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참조: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https://cafe.daum.net/milletune/REM0/148
현실에서 또는 표면에서 이중성을 인정하는 유시민의 A(C)B 도식론은, 이원성을 기본으로 한다. A는 공동체의 가치를 또는 자연주의에 가깝고 B는 이기주의와 잉여이익 수탈자에 가깝다. 물론 삶에서 이런 이중성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나타나지 않기에 C라는 중첩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A(C)B의 이원화에는 주재제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유일신앙자 또는 절대주의(참주정)를 옹호한다. 현실은 주재자의 손아귀 속에 있다는 것이고 이 주재자는 신의 역량과 같은 이성을 통해 세상을 꿰뚫어 아는 자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참주제, 독재체제에 자신들도 모른게 포획되어 간다. 일베, 용역평론가, 촉탁평론가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스스로 휴머니스트(인간주의자) 또는 리베랄리스트(상품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일베들을 만드는 기원이다. 스스로 자주, 자율, 자발성을 노력하지 않는 자는 제국에 포획되고 시간이 지나면 포로가 된다. 일제의 계몽지식인이, 그리고 미국 지배하에 경제 계산가들이 그러하다.
이에 비해 얼과 혼의 가치를 생각하며,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성찰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연민과 공감을 중요시하며 이타적인 사유를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휴머니떼르(인도주의자) 또는 리베르떼르(얼과 혼의 자유주의자)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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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철학적 사유를 위해서 다루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물론 천인지(天人地)에서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중요하다. 그럼에도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문제제기(화두)들이 있다. 이를 네 부분으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 고교철학에서는 1) 형이상학(존재론), 2) 인성론(의식), 3) 인식(과학론), 4) 사회(국가론)이다. 더 첨가하자면 5) 문화론(예술론)이며, 전미래의 삶을 담론으로 삼는 6) 종교성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6)의 문제가 모든 사람이 신(또는 부처)가되는 세상을 만드는 준비과정으로 생각 한다. (50MLG)]>
참조: 천사흘밤 <삼중 구성(constitution)과 세 갈래의 발전적 조성(composition)>
-*- https://cafe.daum.net/milletune/REMI/17
삼중 구조로 생각하는 방식에는 세상에 대하여 또는 대상화(일반화)의 방식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