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봉정사 극락전, 역사책을 바꾼 기적의 건축물
Dragon ・ 2026. 4. 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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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숨결이 머무는 곳, 안동 봉정사
안동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 서후면 태장리로 접어들면, 굽이치는 산세 속에 다소곳이 안겨 있는 사찰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하나인 천등산 봉정사(鳳停寺)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국보)
화려하고 웅장한 대형 사찰들과 달리, 봉정사는 첫눈에 묵직하고 단아한 기품을 뿜어낸다. 그 중심에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자 국보로 지정된 '봉정사 극락전'이 자리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소박해 보이지만, 이 건물 하나가 간직하고 있는 천 년의 시간과 그 속에 얽힌 스토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엔 공식적인 역사 기록을 넘어, 봉정사 극락전이 품고 있는 흥미로운 야사와 비사까지 알아보겠다.
■ 봉황이 머물고 선녀가 불을 밝히다: 창건에 얽힌 신비한 야사
봉정사의 역사는 신라 문무왕 시절인 672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적인 기록과 전설이 혼재되어 있지만, 이곳에는 창건과 관련해 아주 매력적인 설화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천등산(天登山)과 선녀의 등불: 봉정사를 품고 있는 산의 원래 이름은 대망산이었다. 신라의 고승 능인 대사(능인 스님)가 젊은 시절 이 산의 바위굴에서 지독한 수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때 스님의 흔들림 없는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내려와 어두운 굴 안을 환하게 밝혀주었다고 한다. 하늘의 등불이 내려왔다 하여 산의 이름은 '천등산(天登山)'이 되었고, 그 굴은 ‘천등굴’로 불리게 되었다.
종이 봉황이 내려앉은 자리, 봉정사(鳳停寺): 수행을 마친 능인 대사는 도력으로 도술을 부려 종이로 큼지막한 봉황을 접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던 종이 봉황이 사뿐히 내려앉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봉정사 터이다. '봉황새 봉(鳳)' 자에 '머무를 정(停)' 자를 써서 사찰의 이름이 봉정사가 된 이유가 바로 이 낭만적인 야사 때문이다.
푸른 말(靑馬)의 전설: 또 다른 설화로는 의상 대사가 산에 올라 기도를 드릴 때, 신비로운 푸른 말이 홀연히 나타나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 앉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창건주가 의상 대사냐, 그의 제자인 능인 대사냐 하는 논쟁은 아직도 학계에 남아있지만, 어느 쪽이든 이곳이 신라 불교의 성지로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 고려의 숨결을 간직한 기적의 건축물: 극락전의 미학
봉정사 극락전은 원래 불교의 경전을 보관하는 '대장전'으로 불렸으나, 훗날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건물이 국보 중의 국보로 꼽히는 이유는 통일신라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고려 전기'의 솜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건축학적으로 꼭 짚어봐야 할 3가지 감상 포인트를 소개한다.
봉정사 극락전 측면
가장 간결한 지붕, 맞배지붕: 극락전의 측면을 보면 사람 인(人) 자 모양으로 툭 떨어지는 지붕 선을 볼 수 있다. 화려하게 치켜 올라간 지붕과 달리, 맞배지붕은 수행자의 꼿꼿한 뒷모습처럼 단정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구조의 마술, 주심포 양식: 건물의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 위에 덧대는 나무 장식을 ‘공포’라고 한다. 극락전은 이 공포가 오직 기둥 바로 위에만 있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이다. 장식을 최소화하고 구조적인 안정감을 극대화한 방식으로, 매우 고풍스럽고 튼튼한 느낌을 준다.
봉정사 극락전 배흘림 기둥과 주심포식 공포
시각적 착시를 보정하는 배흘림기둥: 극락전의 기둥을 자세히 보면 위아래는 얇고 중간이 볼록한 형태다. 직선 기둥을 멀리서 보면 가운데가 얇아 보여 건물이 불안해 보이는 착시 현상을 막기 위해, 고도의 계산을 통해 기둥 중간을 두껍게 다듬은 고대 건축의 훌륭한 지혜다.
또한, 내부에 부처님을 모신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부처님 머리 위를 장식하는 구조물)'이 세워져 있으며, 불단 옆면에는 고려 중기 청자에서나 볼 법한 덩굴무늬가 새겨져 있어 당대 미술의 정수를 엿볼 수 있다.
■ 역사책을 뒤바꾼 극락전 해체 수리와 대웅전의 반전 비사(祕史)
봉정사가 품고 있는 가장 흥미로운 비사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발견들이다.
첫 번째 반전: 부석사 무량수전을 이긴 극락전의 상량문 (1972년)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들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1972년, 낡은 극락전을 전면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문서가 발견되었다. 지붕의 마루도리를 받치는 부재에서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옥개부(지붕)를 중수(수리)했다"는 상량문이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목조건물은 보통 100년~150년 주기로 대규모 지붕 수리를 하므로, 1363년에 수리를 했다면 건물이 지어진 것은 최소 1200년대 초반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발견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을 제치고 공식적인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타이틀은 봉정사 극락전이 차지하게 되었다.
두 번째 반전: 진짜 최고(最古)는 바로 옆에 있었다? 대웅전의 묵서명 (2000년)
드라마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0년, 극락전 바로 옆에 위치한 대웅전(국보 제311호) 지붕 보수공사 중 또 다른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무려 "신라 시대 창건 이후 500여 년에 이르러 법당을 중창(1435년)하다"라는 기록이었다.
1435년에서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대웅전 불단 바닥에서는 1361년(공민왕 10년)에 탁자를 제작했다는 묵서명까지 확인되었다. 건물 하나를 뜯어고칠 때마다 한국 건축사가 다시 쓰이는 진풍경, 봉정사만의 짜릿한 비사다.
■ 영국 여왕이 반하고, 공민왕의 눈물이 서린 곳
극락전 단청을 유심히 살펴보면 옛 단청 무늬 속에 '주상전하(主上殿下) 성수만세(聖壽萬歲)'라는 글귀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학자들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을 왔을 때, 봉정사에 머물며 절을 수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를 고맙게 여긴 스님들이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며 남긴 흔적으로 추측한다. 국난의 위기 속 임금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셈이다.
더불어 1999년 한국을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다"며 이곳 봉정사를 찾았다. 당시 여왕이 서양의 예법을 뒤로하고, 한국의 전통 예절에 따라 댓돌에서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르는 모습은 전 세계에 방영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2세 방문 기록
이밖에도 대웅전 오른편의 '영산암'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동승(2003)>의 촬영지로 쓰일 만큼 아름다운 전통 마당을 간직하고 있어 문화예술계에서도 사랑받는 곳이다.
■ 낡음이 아닌 '깊음'을 마주하는 시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가장 오래된 옛날 건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선녀의 등불과 종이 봉황의 신비로운 전설을 시작으로, 나라를 잃을 뻔한 임금의 피난 기록과 천 년의 시간을 증명하는 상량문이 담긴 거대한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벅찬 감동의 시간이다.
화려했던 단청이 씻겨 내려가고 목재의 결이 깊게 파였음에도, 그 소박함 속에서 오히려 묵직한 위로를 받게 된다. 기회가 되신다면 천등산 자락의 맑은 공기 속에서 봉정사 극락전 기둥을 가만히 바라보시면, 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목조 건물의 숨결이 생생하게 전해질 것이다.
[출처] 안동 봉정사 극락전, 역사책을 바꾼 기적의 건축물|작성자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