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20 목. 아침에 교회 가는 가족 차편으로 청계 하오고개에 내려 산행을 시작하다.
하오재 청계공원묘지를 지나 고려말 조윤의 충절이 서린 국사봉 지나고 이수봉 석기봉 매봉을 지나 옛골로 하산하다.
하오재 하오재 하오리요 하오재 고개로 올라서니 / 청계골 오르는 산자락엔 혼백들 고요히 속삭이고
국사봉 오롯한 일편단심 충절은 죽어도 영원하네 / 이수봉 유래를 듣고보니 큰이상 애통함 새롭구려
매바위 하늘위 매야매야 큰날개 활~짝 펼쳐보게나
[청계산은? 펀글]
청계산은 그야말로 <은둔과 지조의 산>이다. 국사봉國思峰540m은 고려 말 이색李穡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던 봉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一蠹 정여창 선생은 성리학적 이상 국가 실현이 좌절되자 망경대 아래 하늘샘(금정수터)에 은거했다. 오랜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말년 4년간 청계산에 은둔하던 정여창선생이 두 번이나 목숨을 건졌다는 545m의 이수봉二壽峰- 그가 은거지인 금정수에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다 통분해 울었는데 그 피울음 소리가 산 멀리까지 들렸다 하여 후학인 정구鄭逑가 혈읍재라 명명했다.
역성혁명에 가담한 조선왕조의 개국공신 조준趙浚- 그 형 앞에서 지조志操를 굽히지 않았던 고려 말엽의 명유名儒 조윤趙胤, 그는 나라를 잃고도 죽지 못함은 개와 같은 것이며 또한 옛 주인을 잊지 못함도 개와 같다>는 뜻으로 이름인 윤胤자를 견犬로 고치고 청계산에 숨어 매일 정상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며 소리 내여 통곡했다 하여 만경대萬景臺를 만경대望京臺라 불렀다.
청계산 북쪽 옥녀봉 아래 돌무께에 마련한 과지초당瓜地草堂은 추사 가문의 별서別墅 : 별장 겸 묘막으로 마련된 것으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선생이 제주에서 9년, 함경 북청에서 1년의 오랜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말년 4년간을 과지초당에서 생활하였다.
국사봉 넘어 호젓한 곳에 가톨릭성지인 <성 서(徐)루드비꼬> 신부님이 숨어서 선교하던 동굴-둔토리 성지도 있다.
(출처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isan80&logNo=130176873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