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7일의《감사 리포트》
■뒷모습의 중요성을 알게하신 모친께 감사!■
소천하신지 10년째가 되는 어머님(정양덕
권사님)은 시공을 초월한 마음의 스승이시다.
"의관을 단정히 하되, 사는 날 동안 뒷모습이
고아야 한다" 목전의 이익 앞에서 신의를 저버
리는 세태에서 모친이 남기신 교훈중 하나다.
시골분이셨던 모친의 자존감의 근원은ᆢ?
대학 시절 어머님 친정의 족보를 보던 중, 어머
님 '자존감'의 근원중 하나가 정양용ᆞ정약전
선생님 같은 선비들이 선대에 계심을 알았다.
어머님께서 시집을 오실 당시엔 한의사셨던
할아버님 덕분에 우리집도 유복했지만, 이모
님들도 유복하셨고 이종사촌 형님 중엔
카이스트 부총장(최병규 교수)도 나왔다.
6.25 참화로 외할머님과 함께 우리집에서 한
동안 자란 외사촌 누님(어머님 오빠 외동딸)
인 정화임 여사는 최후 관선 장흥군수셨던
백도선 님(전남 공무원 교육원장 역임)부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제사를 모셔 온 외
가집 형님은 서울대 졸업 후 목포대 교수를
거쳐 목포시의회부의장을 지낸 정원술 교수님.
정원술 형님의 친누님인 정유자 여사님은
직전 방송통신위원희 수석 부위원장을 지낸
김충식 교수(가천대 신방과, 동아일보 논설위
원 역임)의 모친으로 현재 생존해 계신다.
어머님께서는 친정에 대한 자존감과 더불어
국왕의 '어인'이 찍힌 문짝만한 <벼슬장>을
여러장 보유한 우리집 <풍산 홍씨 : 조선조 명문가> 며느리라는 자존감도 은연중에
피력하곤 하셨다.
"늘 뒷모습을 염두에 두거라"
머슴들도 떠나고 가세가 기울었을 때도 어머님은 흐트러짐없이 한 평생을 사셨다.
심지어 소천 직전에 병상에 누워 계시면서도
예의 자존감을 끝까지 '사수' 하셨다.
"많은 환자들이 자신 먼저 주사를 놔 달라,
자기 먼저 물리치료를 해 달라 하는데,
모친께서는 단 한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계셨지요.
지금까지 그런 분은 처음입니다"
어머님이 소천하신 뒤, 너싱홈 원장님의 전언.
어머님께선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시고자 인간 본연의 한계를 기꺼히 극복
하신 것이다.
지금 아들들이 내게 장난을 걸어 오듯,
삼대가 함께 살면서,
나 또한 어머님과 즐겁게 지냈던 터라
뒷머리를 가지런히 빗은 뒤에 "자, 어머님~ 늘 말씀 하신 것처럼, 아들이 이렇게 뒷모습을 단정히 했습니다"라고 농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ᆢ
휴일(주일) 아침이라 마음의 여유도 있고
해, 어머님의 교훈을 되새기며 일상을 시작하기
전, 모친께서 눈 앞에 계시다는 생각으로
뒷머리를 가지런히 다듬고 '혼자놀이'를
잠시 해 봤는데ᆢ
영원한 동심 그 자체이신 어머님 덕분에
겨울밤 길다는 핑계로,
소홀히 했던 '모친교훈'들을 되새겨 본다.
어머님 = 행복 =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