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해안도로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 중의 하나가 애월해안도로쪽이지요. 애월해안도로가 끝나가는 고내포구와 애월항 끝자리에는 곤밥&보리밥이라는 보리밥이 맛있는 한식집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의 돌담길과 투박한 제주항아리들이 참 정겹습니다.
안에 들어서니 전형적인 제주 민가를 개조해서 식당으로 만든 집이라 천정이 낮은데다 고가구들과 옛물건들, 옛스러운 인테리어때문에 아늑한 느낌이 느낌이 드는군요.
메뉴로는 보리밥정식, 보쌈정식, 족발냉채, 해물파전, 보쌈 등이 있었는데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저렴한 보리밥정식(6천원)을 주문했습니다.
보통 이런 한식집에서는 보리밥정식, 보쌈정식 등 정식이란 이름이 붙은 메뉴에 (2인 이상)이라는 조건이 내걸리곤 하는데, 이집은 혼자와도 주문이 가능해서 속으로 매우 흡족했답니다. 대부분 혼자 여행하는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지요. ^^
주문을 하고 나니 커다란 대접에 누런 물이 담겨 나오는군요. 뭔가 해서 마셔보니 보리밥 숭늉이었습니다.
햐~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보리밥 숭늉이네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보리밥 숭늉은 쌀밥으로 만들어진 숭늉보다는 맛이 없는 편이지요. 보리밥 메니아인 저도 보리밥 숭늉만은 그리 즐겨하지 않는답니다. 쌀밥으로 지어진 숭늉처럼 구수한 맛이 나지 않고, 씹기도 좀 그렇거든요.
한데 이집 보리밥 숭늉은 구수하고 맛있었습니다. 아마 제대로 시간을 들여 팍팍 끓였던 모양입니다.
아... 이집 간판이 '곤밥&보리밥'인데, 보리밥은 아시겠지만 '곤밥'은 무슨뜻일까 하는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곤밥'은 쌀밥의 제주말이지요.
아시겠지만 제주는 지형상 물이 고이지 않아 쌀농사가 불가능한 지형이었습니다. 하논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쌀농사가 가능했고, 나머지는 밭벼로 쌀농사가 행해지긴 했지만 생산량은 극히 적었습니다. 다른지역에 비하여 쌀이 매우 귀했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제주사람들은 대부분 조나 보리 등의 잡곡등을 평소에 먹었다 합니다.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명절이나 제사, 혼례 등 집안의 대소사가 있었을 때 뿐이었지요. 아낙들은 이런 집안 행사를 위해 쌀계를 조직할 정도였으니까요.
쌀밥을 지으면 하얀 빛깔이 참 곱지요. 밥을 지으면 다른 잡곡에 비하여 하얀 빛깔이 고와 제주에서는 흰쌀밥을 '고운 밥'이라는 의미로 '곤밥'이라 불렀습니다.
여하한 '곤밥&보리밥'이라 간판을 걸 정도이니 밥맛이 그만큼 자신있다는 얘기겠지요? 그럼 밥맛을 한번 볼까요? ^^
이집 보리밥정식 상차림입니다. 한상 딱벌어지게 나왔군요. 게다가 채식 위주의 찬거리들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익은지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파지와 갓김치가 익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생지 자체로도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알타리지와 알타리로 만들어진 물김치는 적당히 맛이들어 식욕을 돋구는군요. 다른 반찬들도 정갈하니 모두 맛있었습니다.
이 두부... 미리 만들지 않고 방금 끓는 물에 익혀져 나왔는데, 위에 뿌려져 나온 간장소스가 달지 않고 양념도 잘되어 아주 괜찮은 맛이었습니다.
특히나 저는 이 찬이 맘에 들더군요. 연한지 않은 무잎을 데쳐 들깨소스와 된장에 버무렸는데, 무잎 특유의 쌉싸름한 맛에 구수한 된장과 들깨소스맛이 어우러져 먹을수록 젓가락이 더 가게 되더군요.
삶은 돼지고기도 나왔습니다. 멜젓(멸치젓을 제주에선 멜젓이라 부르죠)과 같이 먹으면 환상의 궁합이지요. ^^
드디어 보리밥이 나왔습니다. 조와 같이 지어진 보리밥이로군요. 보시면 알겠지만 쌀이라곤 전혀 섞이지 않은 제대로된 보리밥입니다.
뭐, 찬이 괜찮으니 그냥 먹어도 되겠지만, 저는 위에 나온 야채들과 함께 비벼먹기로 했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식당에서 비빔밥을 주문해보면, 비빔용 야채가 하나같이 참기름 범벅으로 무쳐지거나 지져 나오지요. 거기에 다시 참기름을 부어 비벼먹으니 첫맛은 먹을만 하나 조금 먹다보면 고기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느끼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한데 이집 비빔용 야채들은 비벼먹기 좋도록 최소한의 조리만 했지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았습니다. 참기름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져달라 해서 비벼먹으면 됩니다. 이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예전 집에서 먹던 식으로 참기름 없이 비벼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소스는 된장과 고추장이지요.
된장과 고추장... 비벼먹기 전 슬쩍 맛을 보니 모두 공장제품이 아니라 집에서 담근 된장과 고추장 맛이었습니다.
된장의 경우 제대로 맛이 들었습니다. 또 비벼먹기에 짜지않도록 으깬두부와 같이 데펴져 나왔기 때문에 된장을 많이 넣어 비벼도 짜지 않았고, 구수한 된장의 향은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죠? 보리밥은 된장에 비벼먹어야 제맛이라는 것... ^^
거기에 고추장도 슬쩍 같이 넣어 비볐습니다.
고추장은 아직 맛이 덜들었단 느낌이 들더군요. 많이는 아니고 2%정도요. 그점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시중에서 파는 달디단 공장표 고추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
이렇게 해서 참 오랜만에 참기름 범벅의 보리비빔밥이 아니라 제대로 된 깔끔하고 구수한 보리비빔밥을 맛보았습니다.
배가 부르니 이집의 인테리어들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어디 하나 흐트러진 곳 없이 참 깔끔하게 정돈된 집입니다.
옛날 제주의 민가를 개조해 만든 집이라 제주다운 현무암과 현무암 멧돌들... 그리고 옛물건들이 참 잘어울리는군요.
이집은 애월항 끝 해안도로에 위치해 있습니다. 해서 배불리 밥을 먹은 후에는 애월항과 바로 옆에 있는 아름다운 고내포구를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군요. ^^
* 곤밥보리밥 찾아가시는 길 :